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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3화)
프롤로그 - 콜라대마왕!(3)
지하 PC방을 나오며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제길슨!”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환은 자신의 방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이내 고시원이 보였고 서둘러 방으로 올라갔다.
“혹시 인터넷 되려나?”
지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트북을 켰으나 역시나 여전히 불통이었다. 아마 공유기가 먹통이 된 것 같은데 아직 주인집 할아버지가 처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 진짜 다음 달에는 방 바꾸고 만다!”
지환이 화를 벌컥 내며 소리쳤다. 그리고 방 한쪽에 던져져 있던 서류를 집어 들고 다시 움직였다.
“이게 웬 생쇼냐.”
올 때에는 뛰어왔으나 갈 때에는 진이 빠져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지하에 위치한 PC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으, 세이프.”
지하 통로를 내려가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방값에 원래 인터넷 비용이 다 포함되어 있을 터인데 그게 안 돼서 이렇게 PC방까지 와야 된다고 생각하니, 이중으로 비용이 드는 것 같아 욱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어휴. 어쨌든 원서 접수가 우선이지.”
돈보다도 이렇게 두세 번 움직여야 한다는 것에 더 화가 났지만 최대한 화를 삭이며 지환은 PC방으로 들어갔다.
건너편에는 거만한 PC방 알바가 여전히 목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고, 그는 지환을 보더니 손을 뻗어 자신의 메인 PC를 작동시켰다.
“다시 하세요. 정지 풀었어요.”
PC방 알바의 음성이 들려오자 걸어가던 지환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이놈아.’
어느새 화면이 다시 밝아진 PC를 바라보며 지환이 가져온 서류를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시간은 4시 50분. 왕복 20분이 걸린 것이다. 나름대로 빠르게 움직인 편이었다.
‘어쨌든 다시 처음부터.’
울화통이 터졌지만 속으로 삭였다. 어쨌든 1시간 10분이나 남았다. 시간은 아직 넉넉했다.
그리고 처음 작성할 때와 달리 아무래도 이미 한 번 작성한 상태이니 빠르게 작업할 수 있을 터였다.
탁탁탁.
주소를 입력하고 00실업에 접속했다. 그리고 채용 공고란에 들어가 원서 접수를 다시 시작했다.
아까 전에 한 번 봤던 화면이 다시 나타났다. 물론 공백이 남겨진 빈칸으로.
지환은 재빠르게 키보드를 움직이며 아까 기재했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적기 시작했다. 가족 사항 등 신상 정보를 기재하고 자기소개서 관련 부분도 재빠르게 자신에게 맞춰서 옮겨 적었다.
“오케이.”
잠시 후 마지막 화룡점정, 친구 병진의 추천인 아이디까지 기재한 후 지환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간은 5시 15분.
한 번 작성한 것인지라 지겹기는 했지만 술술 넘어간 것이다. 이제 입사 지원 전송 버튼만 누르면 임무 완수였다.
마우스를 움직이려던 지환이 잠시 생각나는 게 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혹시 모르니…….”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윈도우즈의 메모장을 작동시켰다.
한 번 작성한 자기소개서 같은 것, 만의 하나라도 다음에 또 써먹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지환은 자기소개서, 왜 이 회사에 지원했는지, 그리고 입사 후 포부, 내 성격의 장단점 항목에 적은 글들을 복사해서 그대로 메모장에 붙여 넣었다.
일일이 복사해서 붙이는 것도 조금 번거로웠지만 어쨌든 한 번 이렇게 해 두면 나중에 편할 것 같았다.
메모장 하나 가득 채워 넣은 후 지환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좋아. 그럼 입사 지원 마무리.”
이제 마음 편하게 일이 끝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환은 빼곡히 기재된 화면을 향해 마우스를 클릭하려 했다.
그런데!
빠치직.
휘잉.
“엇!”
“앗.”
순간 옆에서 서X데X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지환도 마찬가지.
갑자기 PC방 전원이 나간 것이다.
현재 PC방에 있는 사람들은 10명도 채 안 되는 상황. 도중에 전원이 꺼져 겜에서 튕겨 나온 사람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툴툴거리며 PC를 다시 부팅시켰다.
마침 MMORPG 종류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웹 서핑이나 한X임, 서X어X 정도를 하고 있었던 터라 다시 접속하면 될 터였다.
하지만 지환은 아니었다. 그냥 전원만 켜면 다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덜덜덜.
속으로 온갖 욕이 흘러나왔다. 엄청난 시간을 들여 쓴 것들을 또 날려 먹은 것이다.
벌떡.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PC방 알바가 있는 쪽으로 갔으나…….
“아, 전원 나갔네.”
거만한 알바는 무표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전원 단자 쪽으로 가서 다시 전원을 켤 뿐이었다.
단 한마디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이.
뭐라 한마디 소리치려 했으나 전혀 아무 일도 아니란 듯한 알바의 태도에 지환은 기운이 빠져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허어…… 씨바. 다시 여기 오나 봐라.”
PC는 어느새 재부팅 되어 있었으나. PC방이 순간적으로 정전이 되는 초유의 사태에 지환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제길, 또 다 날아갔잖아.”
메모장을 켜 놓고 백업을 해 둔 상태에서 꼭 저장까지 해 뒀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지환은 PC 앞에 쭈그리고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 제길, 제길, 제길.”
두 번이나 똑같은 입사 지원서를 날려 먹은 지환은 엄청난 짜증을 느끼며 속으로 욕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이 PC방에 오지 않으리라를 되새기며 지환은 서둘러 다시 사이트에 접속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 남은 시간은 약 40분. 현재 시간 5시 20분이었다.
접수 마감은 6시였다.
결국 후다닥 다시 접속해서 원서 작성. 이번이 세 번째니 웬만한 부분은 재빠르게 다시 작성할 수 있었다.
어찌어찌 원서 작성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서버 속도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 지환의 신경을 거스르는 음성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선불 시간 5분 남았습니다.
문서 작성한 지 10분이 지난 5시 30분. 선불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것이다.
한 10분 정도면 완성될 것 같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여기…… 1시간 추가요.”
지환은 PC방 알바에게 추가 요금을 주고 선불 시간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지갑도 없이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500원짜리 동전 서너 개 집어넣고 나온 것이었다. 주머니를 뒤져 보니 500원짜리 동전 두 개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아까 정전된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로 추가 요금을 면제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지만…….
전혀 그런 것 없었다.
알바는 무표정하게 돈 받고 시간을 추가시켜 줄 뿐.
지환은 1시간 추가시킨 후 다시 원서 접수 마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마감하는 입사 지원 서류만 아니었다면 벌써 다른 곳으로 갔을 터였다.
‘시간…… 시간이…….’
지환은 약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말 어떤 일이 있더라도 빨리 끝내야 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메모장에다가 자기소개서에 넣을 내용을 작성하며 수시로 저장했다.
“좋아, 좋아.”
복사하기와 붙이기를 통해 입사 원서를 빼곡히 기재했다.
어쨌든 병진의 소개로 들어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도 원서가 시간 맞춰 접수가 되어야 취직이든 나발이든 될 터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취직이 가능할지도 알 수 없었다.
째깍째깍.
초침이 돌아가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현 시각 5시 40분.
“됐다!”
지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병진의 추천 사원 아이디까지 입력한 상태.
드디어 세 번째 입사 지원 서류가 작성되었다.
이번에는 어떤 방해가 있더라도 원서를 접수하겠다는 생각에 우선 입사 지원 버튼부터 재빠르게 눌렀다.
클릭. 클릭.
잠시 초조한 표정으로 지환이 화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화면이 변하며…….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우리 00실업을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접수번호는 A9431입니다.]
“와! 이제야 됐네.”
지환이 큰일을 치렀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접수 완료되었다는 창이 뜨자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지환이었다. 오늘 무슨 액이 끼었는지 서류 접수 한번 하면서 엄청난 고생을 한 것이다.
갑자기 방의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질 않나, 서류를 놓고 오질 않나, 또 난생처음 PC방에서 정전이 되질 않나.
“어쨌든 세이프. 이제 이 백수 생활도 안녕이다.”
역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연줄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지환은 천천히 남은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남은 시간 그냥 버리긴 아까우니 시간이라도 때워야 하는 것이다. 이 PC방에 돈 남겨 주고 오긴 싫었다.
덜컹덜컹.
건너편의 환풍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덜컹거렸다.
PC방의 위치가 지하인 탓에 공기 순환이 잘 되어야 했다. 그런데 내부의 엉성한 시설과는 달리 벽면에는 의외로 엄청나게 큰 환풍기가 달려 있었다. 아마도 이전에 무슨 봉제공장 터였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제대로 관리가 안 되었는지 소음이 나기 시작했다.
쓰윽.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알바생은 환풍기에서 진동과 소음이 크게 일자 환풍기를 끄기 위해 외부와 연결된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지환은 헤드셋을 착용해도 계속해서 들리는 소음에 약간 귀가 거슬렸지만, 알바생이 환풍기를 껐는지 이내 조용해지자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클릭. 클릭.
시간 때우기용으로 몇 가지 화면을 클릭하던 지환은, 배너 광고를 하나 잘못 클릭했는지 난생처음 보는 사이트 하나가 팝업으로 뜨는 것을 발견했다.
“아 씨. 뭐야.”
마우스 클릭만 조금 잘못해도 팡팡 뜨는 광고 사이트를 생각한 지환은 사이트 창을 닫아 버리려 했으나, 문득 그 사이트에 적혀 있는 글귀에 눈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무개념(無槪念) 측정도?”
갑자기 무슨 심리 테스트라도 하듯 무개념 측정도란 익스플로러 화면이 떴다.
지환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심리 테스트였다.
자신의 관심을 끄는 흥미로운 제목에 지환은 종료시키려던 손을 잠시 멈추고 그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적당히 시간도 있고 게임하기도 애매하니 한번 재미 삼아 해 볼 생각으로 처음 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클릭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까 정전 때 한 번 크게 데인 다른 사람들은 화가 난 듯 PC방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홀로 PC방을 전세 내듯 쓰고 있던 지환은 화면에 나타나는 문구를 바라보았다.
[무개념 측정을 하기 위한…….]
“뭐? 무개념을 측정?”
지환은 미소를 지었다. 평소 무개념이란 단어는 종종 들어왔지만 무슨 무개념 측정까지 등장했냐는 웃음이었다.
처음은 객관식. 몇 가지 질문이 보기와 함께 나열되어 있었다.
지환이 찬찬히 읽어 보니 의외로 자신의 생활 스타일과 맞는 것이 많았다.
“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물론 당근이지. 해 지면 일어나고 해 뜨면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지.”
보기 항목 중 신기하게도 자신이 생각하는 대답, 해 지면 일어나고 해 뜨면 자는 규칙적인 생활이란 항목도 있었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만들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심리 테스트였다면 ‘기타’ 항목에 적어야 할 법한 내용이 원래 주어진 보기 중에 있었다.
쉽게 몇 가지 항목을 클릭하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이번에는 주관식이었다.
“뭐야? 이런 것도 있어?”
인터넷상으로 이런 설문 조사는 처음이었기에 지환은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문득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수십 개나 되는 객관식과 달리 주관식은 몇 개 되지 않았고, 그래도 한 김에 다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 키보드를 두들기며 답을 입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