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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4화)
프롤로그 - 콜라대마왕!(4)
“어디 보자. 좋아하는 것…… 콜라, 초콜릿, 피자, 포카칩……. 콜라에 초콜릿과 포카칩, 그리고 피자를 얹어 먹는 것.”
삐이.
“응?”
대충 식습관을 적으니 갑자기 경고 메세지가 한 번 뜨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시하고 다시 다음 항목으로 넘어갔다.
“하루 운동량? 그런 것 없음. 숨쉬기 운동.”
단순하게 기재한 후, 지환은 계속 답을 이어 나갔다. 그러자 몸에 유해한 합성 감미료가 어쩌고저쩌고하는 붉은색 경고문이 담긴 글이 나왔다.
그러자 처음으로 지환의 머릿속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혹시 무슨 몸에 좋은 음식이 어쩌고저쩌고 구라치는 그런 데서 하는 거 아니야?”
항상 가공 식품과 합성 조미료라는 인간의 발명품, 그리고 콜라에 감탄하며 살고 있던 지환으로서는 그런 곳에서 떠드는 말들이 상당히 기분 나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해당 사이트의 홍보 문구가 나왔다면 바로 설문 조사를 끝냈겠지만, 그런 문구는 없었기에 조금 더해 보기로 하고 설문을 이어 나갔다.
“응? 트랜스 지방이 어쩌고저째? 몸에 쌓이는 지방?”
전체적으로 뱃살에 지방이 쌓이면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대응책에 대해서 지환은 간단히 적었다.
그 다음은 피하지방 제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떻게 자신의 피하지방에 대해 알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최근 들어 숨쉬기가 조금 힘들 정도로 뱃살이 늘어난 지환이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절묘한 해결 방법을 지환은 재빠르게 기재했다.
“그냥 나중에 수술 받아서 복부 지방 뺄래.”
지방 흡입 수술 받아 지방을 제거해 버리고 말겠다는 대답. 운동으로 지방을 태운다는 것은 지환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음식을 상당히 편식하는 지환. 그런 문제에 대한 대답은 나중에 필수 영양소가 결핍되면 비타민제 사 먹겠다는 것.
콜라는 식수와 같은 존재, 초콜릿은 밥과 같은 존재란 대답. 냉동 가공 식품이란 인간의 발명품에 찬사를 내보이는 지환이었다.
이후 몇 가지 질문이 더 추가로 나왔으나, 지환은 그 이후 자신의 신조와 관련된 한 가지 대답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이렇게 살다 죽을래. 나 귀찮게 하지 마.
그것이 지환의 신조였다.
대충 열 가지의 질문을 쓱싹쓱싹 적은 지환은 이내 마지막 완료 버튼을 눌렀다.
시간 때우기용으로는 적당히 설문 조사를 한 셈이었다. 내용을 전송하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화면이 떴다.
“도대체 무슨 사이트야, 이거. 무슨 유기농 어쩌고저쩌고 그런 곳이기만 해 봐라.”
그렇게 투덜거리며 잠깐 기다렸는데 문득 갑자기 화면에 기이한 문구가 떠올랐다.
[당신을 무개념 측정도 No.1, 무개념 마스터로 등록합니다.]
“뭐? 무개념…… 마스터?”
지환이 어이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무개념 마스터가 도대체 뭐냐는 말투였다.
그 순간 모니터 화면이 다시 변화했다.
[이제 곧 새로운 세상이 당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흔한 게임 광고 문구에서 보던 글자가 나오자 지환은 혹시 이곳이 새로 나온 온라인 게임 회사인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빤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말이 나온 이후 보통 나올 법한 동영상 CF나 그런 것은 없었다.
“아니 뭐 이따위 설문이 있어? 도대체 뭐 팔아먹는 회사…… 응?”
파아앗.
지환이 속았다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종료시키려는 순간 모니터 화면이 눈부시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밝았기에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흡사 태양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
서류를 든 손으로 시야를 가리는 순간 지환은 무언가가 자신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싸라락.
그리고 잠시 후 빛이 사라진 지하 PC방에서 지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끼익.
잠시 후 PC방 옆문이 열렸다. 환풍기를 끈 후 밖에서 친구랑 전화 통화 한 통 하고 온 게으른 PC방 알바는 조금 전까지 지환이 앉아 있던 자리를 두리번거리며 바라보았다.
“어? 이 아저씨 그냥 갔나 보네.”
하지만 이내 선불 요금을 이미 받았기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이것저것 어지러워진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핸드폰 두고 갔네, 그 아저씨.”
신형 핸드폰이라면 따로 팔아먹기라도 했을 터였지만 누가 줘도 안 가져갈 구식 핸드폰이었기에 알바는 대충 카운터 구석에 챙겨 넣었다.
“아싸, 돈 주웠다.”
알바가 흥겹게 외쳤다. 반짝이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의자에 흘러 있었던 것이다. 알바는 조금 전 이 자리에 앉았던 남자가 트레이닝복 바지 차림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바지에서 돈 흘렸나 보네.”
공돈 생겼다는 표정을 지으며 알바가 흥얼거렸다.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돈 넣어 두면 잊어버리기 딱 좋다니까. 쯧. 항상 조심해야지.”
제1장 무개념 지환,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1)
쿠당탕.
“어이쿠.”
갑자기 온몸을 후려치는 듯한 고통에 지환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으윽.”
등에 충격이 느껴졌다. 업어치기 한판을 당한 것처럼 등이 얼얼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반대편으로 엎드린 지환은 입으로 흙이 들어온 것이 느껴졌다.
“에퉤퉤.”
까칠까칠한 느낌에 침을 뱉었으나 여전히 입이 텁텁했다.
“후욱, 후욱.”
잠시 숨을 고르던 지환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털며 일어났다.
휘이잉.
바람이 불며 귀를 간질였다. 주변은 온통 풀밭. 날씨는 참 좋고 선선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감상할 때가 아니었다.
“뭐, 뭐야. 도대체 어찌 된 것이지?”
지환은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하 PC방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이더니 이상한 곳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꿈인가?”
평소 낮잠을 잘 때 꿈을 자주 꾸는 편이었다. 지환은 자신의 뺨을 꼬집고 나서야 이것이 꿈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도대체 여긴 뭐야?”
지환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흡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 눈부신 이상한 빛과 함께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떨어진 것이다.
팔랑팔랑.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들어 부채처럼 부쳤다.
머릿결을 휘날리며 바람이 불어오자 얼굴이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은 온통 풀밭이었다.
거의 머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풀숲이었다. 농작물도 아니고 지환이 처음 보는 잡초 같은 것들이었는데, 사방이 그런 것으로 빼곡했다. 시야가 가려 안 보일 정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니, 그건 불가능해.”
왔다 갔다 하며 지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약 5미터의 원형 공간만 움푹 파여 있었다.
누가 만약 하늘에서 본다면 원반형 UFO가 착륙한 자리라고 생각할 정도.
살랑살랑.
원의 외각까지 나아가 시야를 가리던 풀들을 만져 보던 지환은 이내 그것들을 밀어내면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좀 번거롭기는 해도 풀을 밟고 밀쳐 나간다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과연 어디로?
“허어. 괴의한 일이다.”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말투를 읊조리며 지환은 허리에 손을 댄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뜨거운 열기가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머리 위에 떠 있는 태양은 딱 정오였다. 분명 자신은 저녁 무렵에 PC방에 있었고, 그렇다면 이곳은 한국이 아니란 뜻.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갑자기 이동될 이유도 없었다. 문득 지환은 마지막으로 PC방에서 보던 화면이 떠올랐다.
[이제 곧 새로운 세상이 당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문구가 떠오르자 지환이 양손을 번쩍 들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더 이상 생각이 불가능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도 머리 좌우가 지끈거렸다. 뇌의 연산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추후 생각해 보기로 결심했다. 어쨌든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될 터였다.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간에 어쨌든 움직여 보기로 마음먹었다.
“될 대로 되라지. 몰라!”
마음 한구석에 진짜 영화에서나 보던 차원 이동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가족 생각도 났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했다.
비록 가족과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거의 5년 가까이 떨어져 살았지만, 흡사 진정제 주사라도 맞은 것처럼 마음이 크게 두근거리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차분한 인간이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지환은 천천히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침을 튀기거나 신발을 던지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일단 서쪽으로…….”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펄쩍펄쩍 뛰어 봐도 좌우 어디도 산 하나 보이지 않는 평평한 초원의 대지였다.
지환은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삼아 태양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가야지.”
쓰윽.
쓱.
날카로운 풀에 손이 베일까 걱정도 할 법했지만 지환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풀을 헤치고 나갔다.
만약 한국의 숲에서 그랬다가는 풀에 손이 베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도시 촌놈 지환은 그냥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대충 자신이 생각한 서쪽이었다.
“에잇. 뭐가 이리 거치적거려.”
아무래도 풀들이 가로막고 있으니 앞으로 나아가기는 힘들었다. 짜증난다는 듯 거칠게 발로 밟아 재끼며 전진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미국 옥수수 밭을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옥수수 밭이었다면 옥수수라도 따겠지만 여기는 그냥 밋밋한 풀들이었다.
그렇게 지환이 움직이고 사라진 공간은 다시 고요에 휩싸였다.
치이익.
치익.
그러나 미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있었다.
조금 전 지환이 내뱉은 침이 떨어진 곳에서 새하얀 연기가 나며 바닥의 풀들이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흡사 염산에 녹아들어 가듯 시꺼멓게 액화되고 있었다. 땅이 잠시 진동하는 듯했으나 이내 다시 조용해졌다.
“헉, 헉. 힘들다.”
지환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온몸에 피를 공급했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모자란 것 같았다.
“이렇게 움직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후윽.”
평소 방구석 폐인의 삶을 유지하던 지환은 항상 ‘식사 후 방 안에서 뒹굴뒹굴’을 신조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몇 년째 해 온 지환이 대략 1시간이 넘게 풀숲을 헤치고 걸어온 것이었다.
지환에게 있어서 이렇게 걸어 본 적은 요 근래, 아니 근 몇 년 사이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지환의 몸이 강하게 갈구하는 것이 있었다.
“콜라…… 콜라가 고파.”
온몸에서 열이 나며 몸 안의 지방을 태우기 시작하자, 자신도 모르게 목이 말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평소 물 대용으로 마시던 콜라가 떠올랐다.
“편, 편의점이라도 없나? 그 비싼 편의점 콜라라도 사서 마시고 싶다.”
평소 근처 편의점의 콜라 값에 분노(?)를 느껴 마트에서 한 박스씩 사서 마시던 콜라였다. 그러나 지금은 하다못해 편의점의 비싼 콜라라도 있다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털어서라도 마시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냉장고에 쌓아 둔 콜라가 몇 개인데!”
냉장고 안을 푸짐하게 채우고 있는 콜라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제길!”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생각. 지환은 혀를 찼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풀밭에서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털썩.
하릴없이 걸어가던 지환은 결국 힘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았다.
평지였다면 모를까 풀숲을 헤치면서 걸어가는 것은 흡사 모래사장을 걸어가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체력적 소모를 가져온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몇 시간 걸었다고 해서 이렇게 진이 빠진 지환의 체력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평소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지환의 온몸 근육은 지금 비명소리를 내며 주인을 압박하고 있었다.
“끄윽. 내가 천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진 것인가?”
난데없이 떨어진 세상. 무개념 마스터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설문 조사를 한 이후 떨어진 곳이었다.
타는 듯한 갈증과 함께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자 이 세상의 모든 고난을 혼자 다 짊어진 기분이었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눈앞에는 여전히 치솟아 있는 기다란 풀들이 보였고 코로는 난생처음 느껴지는 진한 풀 냄새가 느껴졌다.
“후우…… 후. 나 이대로 죽는 거 아니야?”
처음으로 죽는 것 아니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평소 문명의 이기에 완벽히 적응되어 있던 지환으로서는 이런 자연의 삶을 몇 시간 겪은 것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이미 군대 생활의 추억은 제대 후 3개월이 지난 이후부터는 싹 잊은 상태. 그리고 사실 운이 좋아 본부에서 행정병으로 사무실만 지키던 지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