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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5화)
제1장 무개념 지환,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2)


졸졸졸.
“응?”
그렇게 좌절에 빠져 있는 지환의 귓가에 문득 기묘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지환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벌떡.
“이건 물소리?”
영화에서 효과음으로 많이 들어 보던 물소리였다.
졸졸졸이든 잘잘잘이든 상관없었다. 일단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원천이 근처에 있다는 것으로도 지환은 온몸에 힘이 솟기 시작했다.
“어디지?”
갑자기 귀가 엄청나게 밝아진 느낌. 지환은 살짝 고개를 돌려 천천히 물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냄새도 난다.’
물 냄새란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오랜만에 느꼈다. 사람은 궁하면 통한다고, 마음이 급해지니 평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팍.
팍팍!
좀비처럼 질질 걸어가던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흡사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지환이 번개처럼 뛰어갔다.
방향은 물이 있는 곳.
“이엿차!”
출렁출렁.
덜덜 떨리는 뱃살의 진동을 느끼며 지환은 빠르게 달려갔다.
“강물?”
갑자기 어느 순간 자신의 시야를 가리던 풀숲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갈색의 부드러운 흙이 깔려 있는 대지가 보였고 그 앞으로는 길게 늘어진 강이 보였다.
지환의 시야에 찰랑거리는 강물이 보였다.
“와!”
햇살에 반짝거리는 물결이 사방을 감돌고 있었다. 대충 봐도 너비가 거의 30m에 달하는 강이었다.
건너가기에는 곤란했다.
그러나 지금 지환이 필요로 하는 것은 어찌어찌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목말라. 목말라.”
지환이 강물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으음…….”
하지만 아무리 목이 말라도 그냥 강물을 마시기에는 너무 떨떠름했다. 어떻게 저것을 정수해서 마실 방법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CF로 보던 청X 나XX 정수기가 문득 떠올랐으나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왜 이리 계속 헛생각이 들지?”
지금 이 상황에서 정수기를 찾아 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물론 영화나 만화에서는 어찌어찌 땅을 파든가 별 방법을 써서 물을 찾던 것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어떤 만화를 보니…….’
지환의 머릿속에 문득 예전에 봤던 재난 만화가 떠올랐다.
주로 예기치 못한 재난을 소재로 다룬 독특한 작품이었는데, 그 만화 주인공의 처지가 지금 자신의 그것과 비슷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강물을 그냥 마시지 못하고 잠시 고민하던 주인공은 근처 나무 옆의 땅을 판 뒤 그곳에서 솟아나온 물을 마셨다.
즉 강물을 바로 마시는 것은 위험하니 어느 정도 자연 정수가 된 물을 마심으로 인해 건강을 보호한 것이었다.
그것을 떠올린 지환이 강가 주변의 풀숲을 바라보았다.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풀들이니 강물을 흡수할 터였다.
그러므로 저 아래를 파면 어쩌면 지하수처럼 물이 흐를지도 몰랐다.
“저곳을 파면 물이 솟아오르려나?”
왠지 땅이 축축한 것이 잘만 파면 물이 솟구칠 것 같기도 했다.
지환은 다시 쭈그리고 앉아 눈앞에 찰랑거리는 물을 바라보았다.
“귀찮아. 그냥 마시면 안 되나? 먹고 안 죽으면 장땡인데 말이야.”
땅을 팔 도구도 없었고, 그렇다고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파고 싶지도 않았다.
“이걸로 되려나.”
지환은 아까 전에 주머니에서 확인한 맥가이버 칼을 꺼냈다.
풀을 헤치고 나오기 직전에 며칠 전 지하철에서 2,000원 주고 산 맥가이버 칼이 떠오른 것이다.
트레이닝복 바지 안에 넣어 두었던 물건인데 핸드폰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으로 만져 보니 뭉툭한 것이 느껴졌다.
“제길 핸펀은 없네.”
지환이 툴툴거렸다.
핸드폰은 같이 안 딸려 온 것 같았다. 아마 잘 접어 주머니에 넣은 서류 봉투처럼, 손에 들고 있거나 몸에 지니지 않은 물건은 그대로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먹통일 핸드폰보다는 맥가이버 칼이 더 유용할지 몰랐다.
툭툭.
주머니를 털어 보니 맥가이버 칼이 나왔다.
“흐음…….”
맥가이버 칼과 땅바닥을 바라보던 지환은 이내 포기했다.
야전삽도 아니고 이걸로 땅바닥을 팔 재간은 없었다. 지환은 게으른 백수이지 두더지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려 강물을 바라보았다. 잔잔한 강물이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물…… 물이 눈앞에 있는데…….”
지환이 가까이 다가가 강물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물이 정말 맑았다.
“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정수장에서 바로 나온 물 같았다.
만일 이물질이 둥둥 떠 있으면 고민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눈앞에 있는 강물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물고기도 없나?”
혹시 물고기도 없다면 조금 곤란했다. 맑은 물 아래로 조그마한 물고기 한 마리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뭔가 다른 영향으로 겉보기에만 깨끗하고 실제로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첨벙첨벙.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잠시 주저했는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건너편에서 팔뚝만 한 물고기가 강물 위로 한 번 펄쩍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와. 크다.”
지환은 그것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한강에 서식한다는 커다란 외래종 어류와 비슷한 크기 같았다. 근데 등이 푸르스름한 게 고등어와 비슷하기도 했다.
‘하긴 내가 저렇게 뛰어오르는 녀석을 본 적이 있어야지.’
사실 살아 뛰어오르는 물고기는 처음 보는 강지환이었다.
그가 본 어류들은 대부분 통조림으로 포장되어 나온 물고기들과 그 겉면에 인쇄된 그림들뿐이었다.
“어쨌든 물고기가 살아 있으니 괜찮겠지.”
먹고 죽을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물을 떠 올렸다.
다시 봐도 평소 마시던 생수와 같았기에 지환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홀짝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인상을 찡그리며 물을 뱉어 냈다.
“왁. 쓰다. 퉤! 퉤!”
물이 아니라 무슨 보약을 먹는 것 같았다. 아직도 싸한 텁텁한 맛에 지환은 인상을 찡그렸다.
투덜거리며 설탕을 듬뿍 찍은 떡이 그리워지는 등 단 것이 고파졌지만, 신기하게도 이 텁텁한 물이나마 조금 마시니 그동안 느껴졌던 갈증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휴. 다행이다.’
지환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갈증이란 놈이 자신을 계속 공격한다면 이 쓰디쓴 강물을 계속 마셔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고, 자연 정수된 물은 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땅을 파야 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마 그랬다면 지환으로서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치여서 몇 시간은 고생했을 터였다.
“후우.”
갈증이 해소되니, 갑자기 온몸이 나른해졌다. 그리고 땀에 젖은 온몸이 갑자기 눅눅해지고 짜증이 밀려왔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던 지환은 이내 훌렁훌렁 옷을 벗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바글거리는 도시에서 살다가 이렇게 잔잔하고 고요한 곳에 와 보긴 처음이었다. 점차 지환은 대담해지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몸이나 씻자.’
수건이 없어서 안타까웠지만 마침 태양이 내리쬐고 있으니 그 빛과 선선한 바람으로 몸을 말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씨도 훈훈했다. 해가 떠 있어서 그런지 몰랐지만 만약 해가 지고 추워지면 씻지도 못할 것 같았다.
어쨌든 다른 것은 몰라도 하루에 샤워는 두 번씩 했던 지환이었다.
고시원 방비에 물 값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기에 안 쓰면 손해란 생각에 샤워를 쉬지 않고 해 왔던 것이다.
풍덩.
어느새 자연의 나체로 돌아간 지환은 몸을 강물에 담갔다.
혹시 바닥에 뭔가 날카로운 게 있을까 잘 살펴봤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허리 높이까지 오는 위치에서 앉았다 일어나며 몸에 묻은 땀을 씻어 냈다.
출렁출렁.
물살에 흔들리며 지환의 옆구리 살과 복부에 끼어 있는 지방덩어리가 흔들거렸다.
일명 거미인간형 몸통.
“뱃살이 그새 엄청 늘었네.”
손으로 잔뜩 만져지는 뱃살을 늘려 잡으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거의 몇 년째 방 안에 콕 박혀서 움직이지를 않으니 항아리처럼 배가 불러 나온 것이다. 지금 지환의 허리를 둘러싼 것이 모두 엄청난 양의 지방덩어리였다.
“스파이더맨이 따로 없구나.”
배만 볼록 튀어나온 거미가 연상된다는 듯 옆구리 살과 뱃살을 만지며 차가운 물에서 몸의 땀을 마저 씻어 냈다.
“후아. 살 것 같다.”
밖으로 나온 지환이 온몸을 비비 꼬며 바람과 햇볕에 몸을 말렸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야외 일광욕이었다. 도시에서는 생각도 못해 볼 일.
영화에서 서양인들이 간혹 일광욕하는 것은 봤지만 막상 자신이 이렇게 해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따뜻한 햇볕이 온몸을 감싸며 바람이 물기를 말리자 기분이 상쾌했다.
처음에는 차가운 물에 들어가는 것이 조금 꺼려졌으나 잠깐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뿐인데도 근육이 풀리고 몸에 활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수건이 따로 필요 없네.’
몸의 물기를 말리면 좋겠는데 수건이 없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자연 건조를 시키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햇볕과 바람 덕분에 빠르게 몸에서 수분이 사라졌다.
파라라락.
흡사 피부로 물이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르게 수분이 없어졌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피곤이 싹 가시는 느낌에 지환은 상쾌했다.
잠시 지나니 기분상 근육에서 다시 힘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물기가 금방 마르자 지환은 서둘러 옷을 입으려 했다.
“찝찝하네.”
시원하게 몸을 씻고 나서 땀이 밴 옷을 입으려 하니 오히려 좋았던 기분이 사그라지는 느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빨래라도 하고 싶었지만 우선 귀찮았고, 또 옷이 언제 마를지 몰랐다. 지금의 기분으로는 땀이 밴 옷을 다시 입기는 싫었다.
“어떻게 할까…….”
잠시 머뭇거리던 지환은 옷을 전부 뒤집기 시작했다. 안쪽의 땀이 밴 면이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그대로 입기에는 너무 찝찝했다.
풍덩풍덩.
결국 지환은 단단히 결심을 하고 옷을 대충 물에 헹궜다. 그리고 세탁기와 탈수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그리워하며 최대한 비비 꼬아 물기를 뺀 후 탈탈 털었다.
어디다가 옷을 널어서 말릴 곳도 없었기에 그냥 계속 털기만 했다. 그러다 보면 마르지 않을까 하는 낙천적인 생각을 한 것이다.
휘이잉.
다시 바람이 불어 옆구리를 간질였다.
홀랑 벗은 채로 양손으로 빨래를 들고 있는 것도 참 기묘한 자세였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지환은 이제부터의 진행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강은…… 아무래도 있어야겠지? 물도 필요하니.’
일단 강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원천이었고 몸도 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환이 상류로 시선을 돌렸다.
“상류로 가 보면…… 뭔가 있지 않을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상류를 향해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강을 건너갈 도리는 없으니 강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뚜벅뚜벅.
몸의 물기가 빠르게 마른 것과 달리 빨래는 순식간에 마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지환은 신발과 양말을 대충 들고 나체로 상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어가다 보면 마르겠지.’
내심 자신이 야외에서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환이었다. 어느새 자연의 햇빛과 바람으로 샤워를 마친 자신이 대견스러워지고 있었다.
사실 야외 생활이라곤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지환이 지금까지 멀쩡히(?) 온 것만 해도 기적이었지만, 지환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맨발로 움직이려던 지환은 그래도 까칠한 느낌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양말을 탈탈 털었다. 양말은 아까 전에 빨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양말을 신은 채로 운동화를 착용했다. 아무리 고운 흙바닥이라도 맨발로 다니기에는 이미 운동화 쿠션에 익숙해진 자신의 발이 적응하지 못했다.
성큼성큼.
다시 발걸음을 앞으로 향하며 지환이 이동했다. 물을 조금이나마 마시고 샤워를 한 것만으로도 꽤 힘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왜 이리 몸이 가볍지? 보약 먹은 것 같네.”
지환은 갑자기 몇 년째 느껴 보지 못했던 ‘에너지 충만’이란 느낌을 가지고 강을 따라 상류로 걸어갔다.
높이 솟아오른 풀숲도 흡사 경계를 나누듯 좌측 편에 몰려 있었고 강변에는 어느새 초록색의 잔디만이 이어졌기에 훨씬 걸어가기도 편했다.
흡사 강변을 따라 자전거전용도로가 생겨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지환이 강을 따라 올라가기로 마음먹은 이유기도 했다.
풀숲을 헤쳐 나가는 것보다는 이렇게 뚫려 있는 길이 움직이기 편했다.
지환이 상류로 떠난 지 몇 분이 지난 후.
둥실.
둥실둥실.
갑자기 강물 위로 성인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까 전에 펄쩍펄쩍 뛰며 힘을 자랑하던 물고기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부들부들.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이 흡사 도미노처럼 하류를 향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의 기운을 잃고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축 늘어졌다.
윤기가 있던 지느러미는 어느새 새까맣게 변색이 되어 있었고 아가미는 퉁퉁 불어 있었다.
물론 벌거벗은 채로 빨랫감을 든 채 상류를 향해 걸어가고 있던 지환으로서는 그런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