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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6화)
제1장 무개념 지환,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3)


“흐읍.”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환이 숨을 들이켰다.
옷도 생각보다 빨리 마른 상태. 다시 옷을 뒤집어서 착용하자 약간 답답한 느낌도 들었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으얏차.”
다시 한 번 기합을 내지른 지환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강변길을 계속 걸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가 지려 하니 조금 고민에 빠졌다. 나름대로 힘내서 몇 시간을 걸었으나 흡사 아무도 없는 청계천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아무리 무감각한 지환이라도 잠잘 곳은 생각해 봐야 했다.
비록 낮에 자고 밤에 움직인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환도 잠시 자신의 철학을 수정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지환은 큰 문제 하나에 봉착해 있었다.
“배…… 배고파.”
꼬르륵.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지환은 후덜덜 손을 떨었다. 배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요동치고 있었다.
“피자가 먹고 싶어. 초콜릿…… 포카칩도 먹고 싶다. 치킨도…….”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나열하며 지환은 낮 동안 게이지가 올라갔던 에너지 파워가 쭉 감소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점심때 이후로 거의 두 끼나 식사를 못한 셈이었다.
갈증이 날 때 강물을 조금 마신 이후로 힘이 넘쳤지만, 그 이후로 해가 떨어지자 힘이 급격히 감소함을 느꼈다. 지쳐 가기 시작한 것이다.
“쉬긴 쉬어야겠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동물 한 마리, 아니 쥐새끼 한 마리 보지 못한 터였다.
즉 위험한 동물은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랐다.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잠자리는 높은 나무 위나…….”
두리번두리번.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높은 나무 자체가 없었다. 오른편은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 왼편은 머리 높이까지 오는 풀숲이었다.
“벌레라도 있나…….”
생각해 보니 신기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벌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 환경이란 것을 무시하며 살아온 지환이었지만 TV 프로 등을 통해 이런 자연 환경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벌레들은 본 적 있었던 것이다.
풀숲을 다시 돌아보았으나 개미나 무당벌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흡사 이 드넓은 대지의 주인은 저 치솟은 풀이란 듯 생명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에이, 모르겠다.”
지환이 더 고민하기를 중단했다. 다행히 날씨도 선선했다.
지환은 추운 것은 딱 질색이었다. 무덤덤해진 마음이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혹시 밤이 돼서 추위에 덜덜 떨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추위에 벌벌 떨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휘이잉.
바람이 한번 불어 지나갔으나 오히려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습도가 높지 않은 여름밤과 같은 날씨.
“한숨 자기는 쾌적한 날씨네.”
순식간에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갔는지 어두워져 갔다. 지환은 더 깊이 생각할 것 없이 풀숲 한쪽으로 가서 그것을 매트리스처럼 쭉 밀어냈다.
팡팡.
지환이 밀어 버린 풀 위로 올라가 춤을 추듯 뛰기 시작했다.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다. 네모난 모양으로 매트리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잘 안 되다가 몇 번 밟으니 조금 모양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오케이.”
지환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았다.
원래 이렇게 이른 시간(?)에 자는 법이 없었지만 오늘은 몇 년 만에 한참 걸었더니 조금 피곤했다. 어둑어둑해지기도 했고 일단 누워 보기로 마음먹었다.
벌렁.
아무 생각 없이. 야외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 풀숲에 그냥 드러눕는 행위를 하며 지환은 대자로 몸을 뻗었다.
목 뒤가 조금 까칠했지만 이내 상의를 벗고 티셔츠 차림으로 누웠다. 물론 상의는 둘둘 말아 베개 대용으로 썼다.
의외로 위로 튀어 오르는 탄력이 조금 있으니 얇은 매트리스 같았다.
“푹신푹신하구나. 으응?”
벌떡.
문득 풀을 깔고 누웠던 지환이 하늘을 바라보며 놀라 일어났다. 조금 전부터 이상하게 주변이 조금 더 밝아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다.
그런데 시선을 하늘로 돌리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언제나 조명이 화려한 도시의 삶에 익숙해져 있었던 지환은 밤의 어두움을 잘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만약 이러한 대자연에 접하게 된다면 밤은 매우 어두운 곳이다.
인간이 만든 인공조명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러한 것을 충실히 대체해 줄 존재가 있었다.
“저건 뭐야? 트윈…… 아니 세 개니까 뭐지?”
지환의 눈에 비친 밤하늘엔 흡사 [∴] 모양으로 생긴 달 세 개가 수놓아져 있었다.
“무슨 전등 켜 놓은 것 같네.”
삼각형 편대처럼 그려진 동그란 달 세 개가 보였다. 그리고 밝기도 지환이 알고 있는 달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해가 지기 직전의 시간보다 지금이 더 밝은 것이 이해가 갔다.
아마도 시간 간격을 두고 저 세 개의 달이 하나씩 떠올랐기에 점차 밤이 밝아진 것 같았다.
“어쨌든…… 도대체 난 어떻게 된 거야.”
지환은 여전히 무감각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드러누웠다.
이미 모든 일이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생각과 추측이 불가능했다.

말똥말똥.
몸이 피곤해 누웠지만 아무래도 이런 이른 시간에 잠드는 것은 부담이었다. 아직 달이 중천에 떠 있는데 벌써 잔다는 것은 곤란했다.
결국 잠시 뒤척거리던 지환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우으. 차라리 좀 더 걸어가는 것이 좋을까?”
이 정도 밝기라면 걸어갈 만했다. 그러나 과연 왜 걸어가야 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아봐야 했다.
꼬르륵.
하지만 이내 지환은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여기 있어 봤자 배고픔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먹을 것. 지금 이 상태라면 카카오99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어떻게든 먹을 것을 찾아야 했다. 갈증은 물로 어찌어찌 해결한다지만 식사는 곤란했다. 극악의 맛, 카카오99까지 언급할 정도로 지금 지환은 허기가 진 상태였다.
물론 그동안 비축해 둔 지방이 많았기에 당장 굶어 죽을 것은 아니었으나, 평소 언제나 배고프면 냉장고 문을 열어서 허기를 채웠던 지환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아, 햄버거!”
사 놓고 그냥 놔두고 온 햄버거가 생각났다. 그것을 생각하니 입가에 군침이 돌았다.
“에이!”
결국 지환은 다시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잡다한 상념만 들고 배만 더 고파진 것이다.
차라리 걸어갈 때에는 배고픔이 조금 잊혀졌던 것이다. 그리고 왠지 조금만 더 걸어가면 뭔가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럴 턱이 있나.”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스스로 자책하며 머리를 한 대 쳤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풍덩.
터벅터벅 걸어가던 지환의 귓가에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물고기라…….”
몇 시간 전에 강에서 펄떡이는 그 녀석들이 기억났지만 놈들을 잡을 방법이 없었다. 보아하니 강의 중심 부근 깊은 곳에서만 활동하는 녀석들 같았다.
설령 낚시 도구가 있더라도 낚시해 본 적 없는 지환이 잡을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구워 먹어.”
지환은 자신이 불씨를 일으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시인처럼 나무를 비벼서 불을 일으킬 의향은 지환으로서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을 만들 자신도 없었다.
푹.
지환의 머리가 다시 숙여졌다. 현대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져 온 자신의 모습이 비춰진 것이다.
“별 수 있나. 일단…… 엇!”
절망의 나락에 빠졌던 지환은 문득 어둠 저편에 불빛이 보임을 깨달았다.
발돋움을 해서 보니 저 앞쪽 강변 끝에 분명히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누군가가 불을 피운 것이었다.
“사람?”
동물은 불을 피울 수 없었다. 불을 피운 것이라면 분명 사람일 터였다.
후다닥.
지금 상황에서는 앞뒤 가릴 것이 없었다. 지환은 불빛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보는 사람의 흔적이었다. 놓치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있는 힘껏 뛰어갔다.
잠시 후.
부들부들.
지환이 깔고 누웠었던 풀들이 흡사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난 풀들은 어딘지 모르게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굳건히 서 있는 다른 풀들과는 사뭇 모습이 달랐다.
끼이잉.
갑자기 부들거리는 풀들 주변에서 칼을 가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들부들 떨던 풀들이 더욱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흡사 사람으로 치면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모습.
휘익.
서걱서걱.
갑자기 풀이 베이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부들거리던 풀들이 베여 흩날렸다.
파라랏.
일부러 바람을 불어 밀어 넣는 것같이, 잘려 나간 풀들은 강물에 떨어져 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아아악.
그리고 그것은 검푸르게 변하며 아이스크림 녹아들어 가듯 물속에 녹아들어 가기 시작했다.
두둥.
둥둥.
이후 죽은 물고기들이 한두 마리씩 순차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죽음의 행렬이 강의 하류를 따라 도미노처럼 생겨났다. 낮과 동일한 현상이었다.

* * *

“헉! 헉!”
배가 고팠지만 마음속에 떠오르는 희망이란 것 덕분에 지환은 서둘러 뛰어올 수 있었다. 의외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이 이렇게 최선을 다해 뛰어올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며 지환은 점차 밝아지는 불빛에 희망을 가졌다.
“휴으.”
강은 곡선을 끼며 돌고 있었다. 어느새 풀숲은 사라지고 지환이 밟고 온 강변과 같은 얇은 잔디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나무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보던 것들이지만 이제야 처음으로 나무를 보게 되었다. 주변에 높이 솟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첨벙.
일단 불빛이 비추는 근처로 오자 지환은 강물로 얼굴의 땀을 간단히 씻었다.
손을 털어 내며 옷깃으로 대충 얼굴을 닦아낸 후, 지환은 조심스럽게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며 불빛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살금살금.
아무리 지환이지만 이제부터는 무턱대고 다가갈 수 없었다. 흡사 도둑놈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이상한 곳에 떨어지는 별 이상한 일을 겪은 후였다. 더 이상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터.
빼끔.
어느새 불길이 바로 코앞이었다. 지환은 살짝 나무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았다.
화르륵.
무엇을 태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방 포스터에 나올 법한 완벽한 불꽃의 전형을 보여 주며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매우 덩치 좋은 남자가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연한 파란색이었는데, 잠시 후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된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비늘 갑옷? 뭐, 설마 저런 엔틱한 복장을…….”
지환은 코스프레 전시장에 왔냐는 식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가 자신의 뒤에 서 있다는 것 같은 느낌에 흠칫 놀라 재빨리 몸을 뒤로 돌렸다.
“누구…… 와앗!”
갑자기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있는 얼굴을 본 지환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마…… 마귀!”
쿵.
그리고 순간 무언가 자신의 머리를 후려치는 느낌이 들었다. 빠직하는 느낌과 함께 머리가 울렸다.
“으아아아.”
360도 몸이 회전하며 지환의 몸이 털퍼덕 주저앉았다. 마지막으로 지환의 눈에 비친 것은 근육질의 털북숭이 남자가 커다란 몽둥이를 든 채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끄으윽.”
그리고 지환은 서서히 정신을 잃어 갔다. 조금 전 어둠 속에서 흘깃 보았던 마귀의 모습도 살짝 보이는 것 같았다.
‘그, 그런데 마귀의 피부가 언제 저리 희었나?’
그것이 지환의 마지막 사념. 이내 어둠이 지환의 정신을 에워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