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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7화)
제2장 마귀의 정체(1)
“으으음.”
지환은 감겨진 눈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새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
“아…… 해 떴나? 아직 푹 잘 시간이네. 으흐음.”
누운 채 기지개를 펴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해가 중천이면 푹 잠에 빠져들 시간이었다. 아직 달이 뜨려면 멀었다.
자고로 달이 떠야 진정한 하루의 시작이란 것이 지환의 개념.
벌떡.
그러나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고시원 방이 이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꿈?”
어질어질.
지끈지끈.
“아후욱. 머리야.”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매만졌다. 볼록한 혹이 느껴졌다. 그것을 매만지고 있자 순간 등 뒤에서 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렐돈! 저 남자가 정신 차렸나 보네요.”
“응?”
지환은 갑자기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서서히 몸을 돌리려 했다. 아직 정확한 상황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
자신이 지금 야외에 나와서 자는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 것이다. 꿈에서 또 꿈을 꾸며 잔다? 지환으로서는 겪어 본 적 있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촉감과 시각은 이것이 꿈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었다.
“누구…….”
멍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려 하는 순간 눈앞에 커다란 파란색 벽이 보였다.
“괜찮소?”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지환은 그제야 지금 눈앞에 놓인 벽이 파란색의 비늘 갑옷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얇은 금속을 겹겹이 꿰매어 만든 것 같았다. 지환의 얕은 지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쓰으윽.
지환이 거북이 목을 한 채 살짝 고개를 들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쫑긋 세운 지환의 눈에 커다란 몸집의 서양 남자가 보였다. 갈색의 머리와 갈색의 턱수염을 지닌 남자였다.
갑자기 눈앞에 거구의 남자가 보이자 지환은 잠시 긴장했다. 그래서 지금 당연히 가져야 하는 의문점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 이거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후려 쳤구먼. 미안하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그렐돈이라 불린 남자가 말했다.
“역시 워르크나이 계급은 다르군요. 거침없이 몽둥이를 휘두르다니요.”
무언가 질책하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지환은 그렐돈이란 남자에게 시선이 고정된 터여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드디어 기억이 난 것이다. 어젯밤에 자신의 머리를 후려친 남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등을 보이며 불을 쬐고 있던 그 남자였다.
“미안합니다, 리샤이엘.”
그렐돈이란 남자의 입에서 또 다른 이름이 나오자, 지환은 눈앞의 그렐돈이란 남자에 대한 경계는 뒷전으로 미뤄 두고 조심스럽게 몸을 마저 돌렸다.
“마…….”
지환이 중얼거렸다.
어젯밤에 본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지환의 눈앞에 괴이하게 생긴 여자 한 명이 팔짱을 낀 채로 있었다.
“마귀가 뭐죠?”
리샤이엘이라 불린 여자가 지환을 향해 다가오며 물어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참 붉다는 생각을 하며 지환이 놀라 더듬거리며 말했다.
“귀, 귀가…….”
흡사 당근을 붙여 놓은 것 같은 모습. 쫑긋이 솟아올라 있는 그녀의 귀를 바라보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응?”
리샤이엘은 잘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그렐돈과 눈이 마주쳤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의 귀는 보통 인간과는 사뭇 달랐다. 머리 꼭대기보다 높이 치솟아 있는 귀.
“귀요?”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지환을 다시 바라본 리샤이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 표현은 우리가 경멸하는 어둠의 종족, 세카르탄 마족을 가리키는 명칭과 비슷하네요. 사용을 자제 바랍니다.”
순간 리샤이엘의 표정이 굳어지자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반사적 행동이었다.
“으음.”
지환이 리샤이엘과 그렐돈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떼지 못하자 잠시 후 리샤이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다른 조금 낮고 평탄한 어조였다.
“저는 숲의 인도자 리샤이엘이라 합니다. 저쪽은 베르카니아에서 온 전사 그렐돈. 워르크나이 계급입니다.”
자신과 그렐돈을 가리키며 리샤이엘이 말했다. 그러자 지환은 ‘숲의 인도자’란 것이 리샤이엘을 가리키는 호칭이거나 또는 종족이란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저쪽 그렐돈이란 덩치 큰 남자는 베르카니아란 곳에서 왔으며, 전사란 말에서 워르크나이란 계급이 뭔가 싸우는 계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의 이름은?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리샤이엘이 지환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지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쨌든 지금 눈앞의 여자를 보니 거짓을 말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긴 거짓을 말할 수도 없었다.
“제 이름은 지환, 강지환이라고 하고요……. 그냥 쭉 왔는데요.”
“예?”
그냥 쭉 왔다는 지환의 말에 리샤이엘의 눈동자가 다시 커졌다. 그리고 그녀가 더 물어보려는 순간 지환이 먼저 대답했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오다 보니 이곳까지 흘러들어 오게 되었어요. 저기 건너편을 통해서요.”
지환이 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류에서부터 상류까지 걸어온 것을 지칭한 것이다.
물론 갑자기 풀밭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말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 생략했다.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설명할 재간은 없었다.
“아하, 알겠군요. 당신 남부의 오지 마을에서 흘러왔나요? 그곳에 당신과 같은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를 가진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어요. 흐음…… 그쪽 지역은 숲의 인도자들이 거의 거주하지 않으니 저를 보고 신기해 할 만도 하네요.”
그렐돈을 바라보며 리샤이엘이 말했다. 그러자 그렐돈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남부 오지에 훈카족이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거주지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인데…….”
그렐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느새 멍하게 있던 지환은 이야기에서 소외된 상태.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지환은 가만히 있는데 그 둘이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잠시 후 리샤이엘이 지환을 향해 물었다.
“근데 이것이 좀 의아하고 궁금한데요, 어떤 이유로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여기까지 왔죠?”
“에…… 그게…….”
지환이 머뭇거리자 리샤이엘이 다시 여러 가지 사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올라온 상인인가요? 아무것도 모른 채 올라왔지만 그래도 다행히 죽음의 결계를 피해 왔으니 운은 좋네요.”
“예?”
뗏목을 타고 상류를 거슬러 왔냐는 말에 지환은 그녀의 말을 정정하려 했다. 자신은 쭉 걸어서 올라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끊는 신호가 지환의 배에서 울려 퍼졌다.
꼬르륵.
아직 미약한 신호였지만 이제 곧 천둥처럼 몰아칠 것 같았다. 이제 정신을 차리니 다시 허기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저기…….”
“예?”
지환이 리샤이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상대가 마귀든지 뭐든지 간에 일단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은 지환으로서는 정말 다행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환이 말을 걸었다. 배가 고프니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식사 좀…….”
그 말에 리샤이엘이 그렐돈을 한 번 바라보았고 이번에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이 떠올랐으니 하루의 식사를 해야겠죠. 같이 식사합시다.”
멋진 표현을 쓰며 식사하자는 그렐돈의 말을 들으며 지환은 이제야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먹을 것이…….’
아무도 없는 초원길에서 아사(餓死)할 걱정은 일단 던 것이다.
* * *
“이것?”
지환은 순간 자신이 무언가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눈앞에 놓인 것은 더도 덜도 아닌 채 자신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흘깃흘깃.
지환은 조심스레 눈을 돌려 자신의 왼편에 앉아 있는 그렐돈이란 거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하는지 바라보는 것이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신께 감사를. 오 라헬 라 움푸 쿠디안.”
갑자기 식사 기도를 하는 듯 양팔을 벌린 그렐돈은 이내 자신의 앞에 놓인 ‘그것’을 조심스레 들더니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정말로 맛있게 식사를 하는 표정. 하지만 지환은 지금 혹시 몰래카메라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심각하게 자신의 앞에 놓인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웬 호두 열매?’
식사라며 지금 지환의 앞에 놓인 것은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호두알 두 개였다. 간에 기별도 안 올 것 같은 분량.
혹시 이자들이 놀리려고 그런 건가 싶어 앞을 바라보니 리샤이엘이란 귀가 뾰족한 여자, 지환이 밤에 보고 마귀라고 놀란 그 여자는 달랑 열매 하나였다.
오물오물.
그녀는 자신에게 놓인 것과 같은 호두알처럼 생긴 열매 한 개를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그것을 씹어 먹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니 지환은 귀 부위만 아니면 그녀가 꽤 괜찮은 얼굴이란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래도 계속 보니 조금 괜찮네.’
처음에는 정말 얼굴과 귀의 비례가 맞지 않아 기겁을 했었지만 그래도 계속 보니 눈에 익었다.
‘엘프족?’
귀가 매우 뾰족한 종족을 생각하니 생각나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코 수긍할 수는 없었다.
‘엘프를 묘사한 만화, 다 뻥이었어.’
만화나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보던 애니에서는 정말 미인으로 등장하는 그들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눈으로 보게 되니 귀가 뾰족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밤에 보고 마귀라고 놀랄 만큼, 정말 처음 보면 기겁을 할 정도로 괴이했다.
도리도리.
지환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식사가 중요했다. 다시 한 번 눈앞을 바라보았으나 분명히 놓여 있는 것은 작은 호두알 같은 열매 두 개였다.
‘좋아. 여자들은 다이어트를 한다 치고.’
혹시 지금 다이어트 중이라 조금만 먹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그렐돈이란 남자는 달랐다. 저 덩치라면 분명 엄청나게 먹어 치울 것이기에 이번에는 살짝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것이다.
그렇지만 그도 역시 흡사 무슨 금가루 먹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호두 열매 비슷한 것을 오물오물 먹고 있었다.
‘와. 먹는 것도 참 신성한 자세로 먹을 수 있구나.’
평소 되는 대로 식사를 했던 지환으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것을 따라할 지환은 아니었다.
탁.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지환은 한 번에 털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꾸울꺽.
어쨌든 저 그렐돈이란 덩치도 똑같이 먹고 있는 터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지환은 열매 두 개를 입 안에 털어 넣고 대충 두세 번 씹고 삼켜 버렸다. 좀스럽게 저들처럼 오물오물 씹어 먹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간에 기별도 안 갈 것 같은 식사를 하고 난 직후 지환은 문득 네 개의 눈이 자신을 빤히 바라봄을 알게 되었다.
“응? 왜, 왜 그러세요?”
갑자기 그 두 명이 씹어 먹던 것을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자 조금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자네 괜찮은가?”
“저…… 괜찮으세요, 엘푸카 열매를 그렇게 단숨에 먹어도?”
그렐돈과 리샤이엘이 사뭇 신기한 태도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지환은 자신이 먹은 것, 그리고 지금 일행이 먹고 있는 것이 엘푸카란 이름의 열매임을 알게 되었다.
“왜요?”
멀쩡한 태도로 지환이 반문하자 잠시 지환을 바라보던 그 둘은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훈카족은 몸집에 비해 대식가라더니 그 말이 맞네요.”
“하하.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저런 덩치에 저런 식욕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렐돈이 그렇게 말하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지환은 더욱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쥐꼬리만큼 먹은 것 가지고……. 이걸론 간에 기별도…….’
엘푸카인지 뭔지 하는 열매 더 없냐고 말하려는 순간 지환은 갑자기 순식간에 허기가 가시고 포만감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응? 후으으…….”
순식간에 배가 땡땡 불러 왔다. 이전에 친구랑 줄줄이 뷔페에 가서 싼 맛에 쉬지 않고 먹고 배가 남산만 해졌을 때의 기분이 그대로 느껴졌다.
“물 마실 텐가? 아무리 식욕 좋은 사람이라도 물은 마시면서 식사를 해야지.”
그렐돈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물주머니를 건네었다.
“감, 감사합니다.”
갑자기 숨쉬기 힘들 정도로 배가 불러 오자 지환은 한껏 감사를 표하며 조심스럽게 물주머니를 받았다.
흡사 지금 상태는 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식은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는 옛말이 절로 떠올랐다.
지환이 물주머니를 받아 들자 그렐돈이 말했다.
“혹시 자네가 다 마셔 버리면 강에서 보충하고 가면 되겠군. 물은 내가 뜰 것이니 걱정 말고 다 마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