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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25화)
제7장 마계에서 올라온 녀석(4)
부비부비.
“와앗. 뭐야. 징그러.”
“흐흐. 네가 카레보다 백배 낫다. 장한 것. 잘했어.”
“이것 놔. 어쨌든 어제 쓰던 칼 줘. 요리할 테니까.”
“그래, 그래.”
싱글벙글거리며 지환은 맥가이버 칼을 넘겼다. 그러자 지환의 손길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메르켄이 투덜거리며 물가에 가서 칼을 씻은 후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근처 나무의 그늘로 가서 최대한 햇빛을 피하고 있었다.
서걱서걱.
“정말 칼질 잘하네.”
메르켄의 칼질을 바라보며 지환이 감탄했다.
도시인인 지환으로서는 못하는 일이었다. 항상 포장 가공된 음식을 먹었지, 직접 저렇게 칼로 베어서 고기를 다듬고 요리하는 것은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뭇가지나 좀 가져와.”
“알았다.”
불을 피울 나뭇가지가 필요했다. 지환은 군말 없이 건너편의 풀숲으로 들어가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꺾기 시작했다.
우지근.
“잘 꺾이네. 아싸, 소화 잘 되는 고기.”
고기 먹을 생각하니 힘이 솟았다. 그리고 자신이 힘을 줄 때마다 나뭇가지가 술술 잘 꺾이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아, 맞다. 이럴 때가 아니지.”
지환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자신의 정신없음을 한탄했다.
“콜라를 뽑아야지.”
어제 다 마셔 버린 것이다. 콜라 자판기를 쭉 이용하기 위해서는 마검 카라이안을 써 줘야 했다.
꺾어 모은 나뭇가지를 메르켄이 해체 작업(?)을 하고 있는 옆에 대충 놓아둔 후 마검을 든 채 후다닥 건너편으로 뛰어갔다.
“야, 어디가!”
여전히 변함없는 메르켄의 건방진 음성이 들려왔지만 지환은 가볍게 무시했다.
“식전 운동하러 간다. 좀 시끄럽더라도 참아라. 몇 번 쿵쾅거릴 거야.”
이내 숲 속으로 들어온 지환은 대충 방향을 가늠했다. 혹시라도 메르켄이 피해를 보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아침 운동 해 보자.”
―클클클, 나를 이렇게 휘두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군.
“말 많다. 어서 콜라를 만들자.”
지환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마검을 힘차게 내질렀다. 스트레스 해소 시간이 온 것이다.
“하압! 다크니스 라이트닝!”
이전에 멋지게 붙인 이름을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빠지지직.
그러자 검 끝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스파크들이 뭉치는 순간 일직선상으로 빠르게 빛이 뿜어져 나갔다.
콰앙! 콰르릉!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이 부서져 나갔다. 잠시 후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한 대지가 드러났다.
“콜록. 콜록.”
지환이 기침을 했다. 먼지가 생각보다 많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곳의 지표면이 어제와는 달리 습기가 적고 더 물렁물렁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전보다 파괴력이 세진 것 같았다.
“스파크는 뭐야? 왜 이게 생겼지?”
문득 궁금해진 지환이 물어보았다. 이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네 녀석의 힘이 조금 강해진 것 같군. 믿어지진 않지만 오히려 천년수 녀석이 너의 힘을 억눌렀던 것이 틀림없어. 허허. 믿어지지 않는군. 인간이 이런 능력을 보이다니. 아니면 파멸의 용액을 섭취해서 나타난 현상인가?
“알아듣지 못할 소리는 그만 하고, 콜라는 얼마나 만들어졌냐? 고기 다 구워졌을지 모르니 빨리 가 봐야 해.”
분명히 메르켄은 고기 다 구워지면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서 먹어치울 녀석이 틀림없었기에, 지환이 다급하게 말했다. 늦으면 고기 한 점 남아 있지 않을 수 있었다.
―대략 지금까지 쌓인 분량은 네가 말한 기준으로 250㎖ 정도는 되는 것 같군.
어느새 마검과 지환은 용량에 대한 커뮤니케이션도 어느 정도 되고 있었다.
“뭐? 벌써 그 정도 된 거야?”
스파크가 검 끝에 생기는 단계가 되니 갑자기 콜라 생산량이 늘었던 것이다.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무엇이 업그레이드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좋은 일 같았다. 지환의 표정에 미소가 어렸다.
“오케이. 이대로 나가면 나중엔 별로 고생할 것 없이 궁극의 1.5ℓ…… 아니, 2ℓ 대형 팩도 가능하겠다. 으흐흐흐.”
콜라 떨어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
지환이 미소를 머금으며 구워지고 있을 고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지환의 뒤로는 폐허가 된 잔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길게 뻗은 폐허. 어제만 하더라도 두세 번은 휘둘러야 나올 광경이었지만 오늘은 단 한 번만에 처리한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폐허를 만들며 나아가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지환이었다.
타타탁.
“고기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지환이 허겁지겁 달려가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메르켄이 보였다. 아직까지 지환은 메르켄이 보는 앞에서 한 번도 콜라를 마신 적이 없었다. 그리고 힘을 쓴 적이 없었기에 메르켄으로서는 놀랄 만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마검 카라이안을 곁눈질하며 메르켄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내가 운동 좀 했다. 원래 이게 내가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다.”
“설마 아까의 폭발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메르켄이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휘익.
메르켄의 몸이 허공으로 약 10m 가까이 뛰어오른 것이다. 엄청난 도약력.
“저기 저 폐허를 네가 만든 거야? 어째서? 지상계의 인간들이란 존재는 결코 저런 파괴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넌 정말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존재구나.”
바닥에 착지한 메르켄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지금 뛰어올라서 그걸 본 거냐?”
지환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메르켄의 점프력이 상당했던 것이다. 하늘로 솟구친다는 말을 진짜로 실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메르켄은 지환의 말에 상관하지 않은 채 계속 곁눈질로 지환의 칼을 빤히 바라보았다.
“뭘 보냐?”
“그것! 지상계의 물건이 아니군. 그건 우리 마계의 물건이야.”
메르켄은 드디어 지환의 정체에 대해 무언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쑥.
손을 내밀며 메르켄이 말했다.
“내가 한 번 그 칼을 볼 수 있을까?”
“싫어.”
칼을 넘겨주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전에 마검이 말한 것. 함부로 넘겨줬다가는 정신이 마검에 제압당해서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몰랐던 것이다.
“치사한 놈. 어쨌든 너는 분명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야. 그건 우리 마계의 검과 관련된 것이 틀림없어.”
“뭐, 좋을 대로 생각해라. 식사하자.”
지글거리는 고기를 바라보며 지환이 침을 흘렸다. 노릇노릇한 고기가 잘 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끄러우니까 차라리 허공에다 쏘든지 해. 왜 시끄럽게 땅을 파!”
구워진 고개를 씹으며 신경질적으로 메르켄이 말하자 지환이 무의식적으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마검의 음성이 들려왔다.
―켈켈, 꼬마 말대로 만약 허공에다가 쏘면 네가 원하는 파멸의 용액을 얻을 수 없다.
“컥.”
지환이 숨이 막힌 듯 헐떡거렸다. 갑자기 놀란 것이다.
“침 튀기지 마. 저리 가. 꼭 식사할 때마다 저런다니까.”
메르켄이 투덜거리며 빠르게 고기를 먹어치웠다. 지환은 결국 콜라를 마시기 위해 칼을 들고 건너편으로 잠시 자리를 이동했다.
꿀꺽꿀꺽.
“캬하.”
콜라의 톡 쏘는 맛을 느끼며 지환이 좀 살겠다는 듯 숨을 돌렸다. 그리고 재빠르게 물어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허공에 쏘는 건 왜 안 돼?”
―파괴가 없다.
“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어차피 숲이나 대지를 박살내는 것이나 그냥 허공에다가 쏘아 버리는 것 모두 마검의 힘을 발산시키는 것에는 차이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러자 오랜만에 진지한 목소리가 지환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이 세계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것. 그것이 나의 힘의 원천. 물질의 파괴와 무질서가 동반되어야 한다.
“쳇. 무슨 말이야, 그게.”
고등학교 때 얼핏 들어 본 엔트로피란 말이 여기서 다시 들리니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마도 다른 언어로 되어 있는 것이 자신이 아는 언어로 변화된 것 같았다. 지금 이곳에서 지환은 신기하게도 대화가 다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럼 네 녀석을 허공에 그냥 쏘아 대는 것은 값진 콜라를 만드는 것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냐?”
―켈켈켈, 천 번 정도 쏘아 대면 대지에 한 번 쏘아 댄 것과 비슷하게는 나올 수 있을 것 같군. 그런 수고를 할래?
“사악한 놈.”
지환이 투덜거렸다. 대지를 부수고 박살내는 것에 대하여 희열을 느끼는 마검의 진동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마검이지. 그럼 내가 성검인 줄 알았냐? 나도 대지를 파괴하고 부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알았다, 알았어.”
어차피 메르켄이 떠들든지 말든지 간에 지환은 콜라만 제대로 얻으면 상관없었다. 이쪽 세계가 부서지든 말든, 마검으로 인해 엔트로피가 증가하든 말든, 그것은 지환이 알 바 아니었다.
“야! 메르켄.”
지환이 건너편에 앉아서 쉬지 않고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메르켄을 향해 소리쳤다. 꼬마 녀석이 배에 거지가 들었는지 정말 끝없이 먹어 대고 있었다.
“…….”
“야!”
불러도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고기만 먹고 있자 지환이 다시 소리를 쳤다.
“왜 불러? 고기 다 먹고 이제 없다.”
어느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메르켄이 고개를 들었다. 찰나의 시간에 엄청난 양의 고기를 혼자 다 먹어 치운 것이다.
“이 녀석이……. 어쨌든 한 번 더 휘두를 테니 시끄러워도 참아라.”
마검을 한 번 휘두른다는 말에 씻으러 가던 메르켄의 눈이 반짝거렸다.
“구경할래. 보여 줘.”
순간 지환은 메르켄의 눈이 아까보다 훨씬 붉어진 것을 깨달았다. 흥분한 것이다. 아마도 파괴란 것은 마족의 타고난 본성 같았다.
“뭐 상관없겠지.”
오히려 자신의 엄청난 힘을 보여 주면 조금이나마 메르켄이 고분고분해지지 않을까 싶어 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거기서 잘 봐라.”
조금 전 만든 콜라는 이미 다 마셔 버린 상태. 미리 콜라를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몸을 풀던 지환이 다시 마검을 휘둘렀다.
“하압! 교통 요금 인하하라! 환승 할인 추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내뱉었다. 평소 엄청난 교통비로 인해 밖에도 잘 돌아다니지 못했던 것이다.
가까운 거리 한번 가려 해도 지하철 요금이 기본 900원에다가, 퉁명스러운 할아버지는 카드 요금 입금시 10,000원 아래로는 아예 해 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학교 통학시에는 어쩔 수 없이 매일매일 엄청난 금액을 교통비로 써야 했다. 학교를 안 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실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 중 하나인 교통비는 항상 지환의 마음속에 불만으로 담겨 있었고, 이번에 크게 한 번 소리친 것이다.
지지직.
쿠콰콰콰쾅!
콰아앙.
이번에는 앞으로 쭉 뻗은 게 아니라 수평으로 휘둘렀다. 마검에서 뿜어져 나간 빛이 대지를 수평으로 갈랐다.
“와아!”
그 모습을 보며 메르켄이 탄성을 내질렀다.
잠시 후 드러난 폐허.
흡사 건너편 대지가 지진이 난 듯 움푹 파인 것이다. 순식간에 불도저로 밀어 버린 것 같은 모습에 지환도 꽤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엄청난데.”
우드득.
드드득.
숲의 나무들이 반 토막이 나서 무너져 있었다. 불은 나지 않았지만 마검의 힘이 닿은 곳은 시꺼멓게 변해 있었고 모락모락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레이저 광선이 휩쓸고 지나가 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떠냐?”
지환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메르켄도 그 제스처를 따라 했다.
“멋진데. 허공에다가 하라는 말 취소. 앞으로 계속 보여 줘.”
멋진 서커스 묘기에 빠진 아이처럼 메르켄이 감탄사를 내질렀다.
―클클, 역시 각성 전의 꼬마라도 마족은 마족. 그 피를 숨길 수는 없구나.
마검의 음성이 들려오자 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응?”
그 순간 무언가가 나타났다.
<『코크마스터』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