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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24화)
제7장 마계에서 올라온 녀석(3)
‘으음, 뭐부터 물어보지? 마족인 것은 알았으니 뭐 다른 것을 물어봐야 하는데.’
지환이 잠시 고민했다. 말을 꺼내긴 해야겠는데 다음에 무슨 말을 먼저 할지 애매했던 것이다.
“물어볼 것이 있다.”
“응? 물어봐.”
마침 다행히 메르켄이 지환에게 먼저 질문을 하였다. 말문이 열리자 지환이 메르켄을 빤히 바라보았다.
“인, 인간은 고기를 안 먹는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그런 살육을 빤히 보는 것을 보니 인간은 아니군. 그럼 너는 뭐냐? 어떤 주인을 섬기고 있지?”
주인을 섬긴다느니 하는 이상한 말을 하자 지환은 메르켄이 지금 자신을 마족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족, 그리고 인간이라?’
그 질문에 지환은 문득 지금까지 보아 왔던 이곳 사람들이 떠올랐다. 엘프족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렐돈만 보더라도 엘푸카 열매 두 알만 아침에 먹고는 그 이후 다른 것을 먹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또한 만약 이곳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들 성인과 같은 사람들만 있는 것이라면, 자신은 이곳에서 매우 괴이한 사람일 것이 틀림없었다.
막상 메르켄이 질문을 하자 그 점이 떠오른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혹시 전부 채식주의자? 그럴지도 모르겠네. 열매만 오물오물 먹으니. 그리고 그렐돈 같은 사람들을 전사 계급이라 했으니…… 그 외의 사람들은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는 건가?’
어디나 계급제를 하게 되면 그에 걸맞은 능력을 지니게 된다. 만약 전사 계급이 따로 있다면 흡사 병정개미처럼 전투와 같은 일은 그들이 도맡아서 할 터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오로지 생산에만 치중할 수 있는 것이다.
욱씬욱씬.
문득 그렐돈을 떠올리니 이전에 각목으로 한 대 크게 맞았던 것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으윽.”
“왜 그래?”
“아니, 예전의 기억이 잠시 떠올라서.”
지환은 머리를 한 번 매만지고 이내 메르켄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난 인간 맞다. 마족이 아니다.”
벌떡.
자신이 인간이라 말하자 메르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간! 근데 어째서 감히 아닌 척하고 있었느냐.”
갑자기 화를 내는 메르켄을 바라보며 지환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난 아닌 척한 적 없다, 꼬마야.”
―켈켈켈, 하는 행동을 보면 누가 네놈보고 인간이라고 하겠느냐. 나도 네 녀석이 지상에 올라온 마족인 줄 알았건만.
“조용히 해.”
지환은 자신의 몸에 기대어 놓은 카라이안이 비꼬는 투로 말하자 짜증스런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나를 어찌할 생각이냐, 인간?”
긴장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고 있는 메르켄을 향해 지환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꿀꺽.
지환은 문득 메르켄의 시선이 마검을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메르켄이 무척 긴장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쳇!’
지금 다른 계획이 있었기에 메르켄을 너무 긴장하게 하면 곤란했다. 지환은 카라이안을 살짝 자신의 뒤로 밀어 놓고는 메르켄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목적지가 어디냐, 마족 꼬마야?”
지환이 칼을 치운 채 물어보자 메르켄이 잠시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동방의 이스턴 우드.”
물론 지환이 그런 지명을 알 리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았다.
“어떻게 가는 건데?”
“동쪽으로 쭉 가다 보면 그곳에 너희 인간들이 신성시하는 이스턴 우드란 곳이 있어.”
지환은 메르켄도 그곳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의아한 듯 물어보았다.
“근데 거긴 왜 가는 건데?”
그러자 메르켄이 약간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거, 거기 가면 안전할 거라고 부모님이 말했어. 흐윽.”
갑자기 분위기가 전환되며 메르켄이 울먹이자 지환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애가 우는 것은 딱 질색이었던 것이다.
“마침 잘되었네. 그럼 나도 같이 가자. 어차피 나도 동쪽으로 가는 길이니.”
“……!”
같이 가 주겠다는 말에 메르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이내 긴장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싫다! 어째서 인간인 너하고 같이 가야 하느냐.”
“싫으면 말고. 그럼 잘 자라. 과연 꼬마 너 혼자 얼마나 잘 갈 수 있을지 보자. 그리고 아무래도 이곳은 인간의 세계. 마족인 네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며 지환은 벌렁 누웠다.
“잘 자고. 내일 아침에 서로 헤어지자.”
지환은 짧게 말한 후, 마검을 들어 자신의 손에 쥔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코고는 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메르켄이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지환의 말을 듣고 한 번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 본 것이다.
“저, 저기…… 야, 야, 지환.”
10분이 흐른 후 메르켄이 조심스럽게 지환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환이 살짝 눈을 뜨며 피곤한 듯 중얼거렸다.
“왜 불러?”
“큼. 원래 마족이 인간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너는 특이한 인간이니…….”
“나 잔다.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지환이 다시 침낭을 덮고 자려고 하자 메르켄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지환, 너와 같이 가도록 하지. 그럼 이스턴 우드에 갈 때까지 동행이다.”
“좋아. 그럼 잘 자 둬. 내일부터 빠르게 움직여야 하니까.”
지환의 말이 나오자 그제야 메르켄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이 만든 이부자리에 들어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새근새근.
잠시 후 메르켄은 잠이 든 듯 약한 숨소리만 들려왔다. 그러자 지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 참, 저런 각성 안 된 꼬마를 데려가서 뭐 하게? 약한 놈은 죽으면 된다. 그것이 마계의 법칙.
문득 머릿속으로 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후후후. 특급 요리사 구했다.’
내심 V자를 그리는 지환.
아까 전에 봤던 메르켄의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메르켄은 지금 지환에게 가장 필요한 불도 만들 수 있는 존재. 그리고 마족인 만큼 이런저런 특이한 능력들도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요리 걱정은 없겠구나. 뭐 다른 능력도 있겠지? 나이는 많지만 여전히 꼬마 같은 행동을 하니 다루기에도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고.’
불 때문에 숯검정까지 뒤집어썼던 지환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메르켄과의 만남으로 그런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더구나 이름만 마족이지, 지환의 생각에는 보통의 꼬마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지환으로서는 이곳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는 것은 메르켄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것은 하나도 내색하지 않은 채 메르켄을 데려갈 수 있게 되었다.
* * *
“후아. 잘 잤다.”
지환이나 메르켄이나 경비나 방범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불침번을 세워서 귀중한 수면 시간을 줄여야 하는 행위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지환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마검이 깨워 주겠지, 하는 여유로운 생각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아침이다, 카레.”
옆에 잘 놓여 있는 마검을 들어 올리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지환의 머릿속으로 마검의 음성이 들려왔다.
―흐음. 오랜만에 잠이란 것을 자 보니 몸이 개운하군. 이전에는 남는 것이 시간이라 끝도 없이 잤는데.
“응?”
지환은 마검을 흔들며 다시 물어보았다.
“네 녀석도 잤냐? 우리 안 지키고?”
―내가 너를 왜 지키냐? 나도 자야지.
“네 녀석은 마검이 아니냐. 잠자는 마검이 어디 있어?”
지환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마검의 음성이 다시 귓가로 들려왔다.
―여기 있다.
“이 녀석이!”
마검이 자신과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지환이 화를 내려는 순간 뒤에서 메르켄의 음성이 들려왔다.
“뭐하냐, 지환. 어서 움직이자. 아침이다.”
“그래. 어서 출발…… 허억.”
뒤로 몸을 돌린 지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눈이? 눈이?”
지환이 빤히 바라보자 메르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어제 처음 메르켄을 만났을 때에는 태양이 지고 달이 막 떠오르는 저녁이었다.
밤에는 몰랐는데 아침에 해가 뜨고 나서 메르켄을 보니 메르켄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녀석.”
콩!
“아얏. 이 폭력 인간아. 왜 그래! 말로 하라고.”
“밤새지 말란 말이야. 에구, 눈 충혈된 것 봐라.”
“내 눈? 원래 아침엔 이런 것 같던데?”
“어디서 뻥을 까. 애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에이 씨, 아닌데.”
메르켄이 화가 난 듯 입이 튀어나왔다. 그때 마검의 음성이 지환의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클클, 마족은 원래 해가 뜨면 눈이 붉어진다. 저 아이는 그나마 각성 전이라 저 정도인 것 같네.
“응? 원래 그런 거라고?”
지환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마검이 조금 더 설명해 주었다.
―마족의 땅, 마계에는 지상계와 같은 강렬한 태양이 없다. 그래서 지상계의 태양빛을 받게 되면 눈이 붉어진다.
“그래?”
엉뚱하게 밤새지 말라며 꿀밤을 때린 것이기에 지환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몸을 돌려 사과하려 했다.
“미…… 근데 그게 뭐냐?”
“왜? 햇볕이 따가워 그런다.”
메르켄은 밤에 덮고 잤던 보자기를 들어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있었다. 흡사 조선시대에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고 다닌 장옷 같은 모습.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사과는 뒷전이고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지금까지 낮에는 그렇게 하고 다닌 거야?”
“응.”
“불편하지 않아?”
“그래도 햇볕에 피부 그을리는 것보단 나아.”
“어떻게 편하게 갈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여행자용 망토라도 있으면 좋겠다.”
메르켄이 불편해 보였다. 보자기를 꼭 잡고 푹 눌러쓰며 가는 것은 왠지 불쌍해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난 상관없어. 어서 가자, 이스턴 우드를 향해. 안내해 줘.”
안내해 달란 말에 지환이 손을 들어 동쪽을 가리켰다.
“날 따라와. 가자.”
천연덕스럽게 지환이 말했고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길은 평탄했고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쭉 가다 보면 무언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옆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기에 물 걱정도 없었다.
‘뭐, 천년수인지 뭔지 하는 것도 가다 보면 알게 된다고 했으니.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만날 사람 다 만나겠지.’
천년수의 말을 떠올린 지환은 태평한 마음가짐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이스턴 우드란 것도 가다 보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주변이 변하고 있어.’
지환이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느껴지고 있었다. 어떠한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
끼익, 끽.
“새다!”
드디어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새 떼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확실히 죽음의 결계와 엘프족의 영역을 벗어나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간간이 사슴 같은 것도 수풀 사이로 지나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께륵, 께륵, 께륵.
듣기 싫은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새가 있었다.
“처음 보는 녀석이네.”
흡사 펠리칸처럼 생긴 새였다. 살이 통통하게 찐 것을 보자 지환은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맛있겠다, 구워 먹으면.”
고기가 고팠다. 어젯밤에 토끼 고기를 맛보고 나니 어느새 고기에 맛 들린 것이다.
지난 며칠간 엘푸카 열매를 먹다 보니 이제 그것은 질려서 먹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진 상태.
비록 엘푸카 열매를 먹으면 배는 불렀고 하루를 너끈히 버틸 수 있었지만 육질의 보들보들한 맛을 느끼고 싶었다.
톡톡.
지환이 마검을 두들겼다.
―왜?
퉁명스러운 마검의 말, 그러자 지환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카레야, 저기 떠 있는 것들 못 잡냐?”
―불은 쏴 주마.
“됐다.”
아마 마검에서 불길이 치솟으면 재도 남지 않게 될 터였다.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지는 않았다.
지환은 아쉽지만 고개를 돌려야 했다. 하늘에서 고깃덩어리가 날아다니고 있지만 잡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배고프다. 아침 식사 하자.”
그런데 갑자기 지환의 옆에서 조용히 걸어가고 있던 메르켄이 말을 꺼냈다. 그러자 지환은 문득 마족도 엘푸카 열매를 먹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다행히 엘푸카 열매는 둘이 나눠 먹어도 될 만큼 있었기에 지환은 가방에서 그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공짜로 얻은 것이니 나눠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중에 토끼 잡으면 그걸로 고기 구워 먹고 지금은 이걸로 식사를…….”
휘익.
퍽! 퍼퍽! 퍽!
철퍼덕.
하지만 뒤에서 울리는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지환이 고개를 돌리자, 메르켄이 아까의 그 새들 몇 마리를 손에 잡고 질질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쓰고 있던 햇볕 차단용 보자기는 잠시 옆에 던져 둔 상태였다. 얼굴이 계속 따끔거리는지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그래도 잘 버티는 것 같았다.
“어엇! 너 어떻게 잡았어?”
“이걸로.”
메르켄의 손에 쥐어진 것은 작은 조약돌이었다.
“그걸 던져서 잡은 거냐?”
“응.”
고개를 까닥거리는 메르켄. 그러자 지환은 꺼내려던 엘푸카 열매를 그대로 집어넣은 다음 환한 표정을 지으며 양팔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