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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무제 1권(22화)
제4장 흑룡회(黑龍會)(1)
혀와 혀가 엉키며 끈적끈적한 타액을 교환한다.
“하아.”
사내의 입에서 터져 나온 더운 숨에 여인 또한 더운 숨결을 토해 냈다.
“날…… 사랑해요?”
여인의 물음에 사내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마치 광인(狂人) 같았다. 핏발 선 사내의 눈이 여인의 알몸에 머물렀다.
“사랑……해!”
할짝할짝.
여인의 피부 위에 송골송골 솟아난 투명한 땀이 마치 천상의 감로주라도 되는 양 사내가 혀를 내밀어 미친 듯이 여인의 몸을 핥았다. 여인의 땀을 핥으면 핥을수록 사내의 눈동자 위로 돋아난 핏줄이 점차 굵어졌다.
“날 사랑한다면…… 내게 화산(華山)을 줘요!”
여인이 사내의 목을 부둥켜안으며 속삭였다.
“화산……!”
번쩍.
사내의 두 눈에서 검은빛이 번뜩였다.
스오오오.
사내의 몸에서 솟아난 검은 기류가 어둠에 스며들었다.
“화산…… 너에게 주마!”
벌떡.
사내, 흑룡마검(黑龍魔劍) 독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흑룡(黑龍)이 수놓아진 장포를 걸친 채 검을 들고 나섰다.
끼익.
독고진이 움직이자 어둠 속에서 자리 잡고 있던 거대한 문이 반으로 갈라지며 빛을 토했다.
우와아아아!
독고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대전 앞에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병장기를 흔들며 함성을 내질렀다. 하나같이 왼쪽 가슴에 흑룡 무늬를 새긴 무들이었다.
흑룡회(黑龍會)!
구파일방 중 무려 화산파(華山派)와 종남파(綜南派)가 자리 잡은 섬서에 뿌리를 내린 사파 단체!
독고진은 현 흑룡회주인 흑룡혈존 독고천의 외동아들이자 다음 회주 자리를 이어받을 위치에 있는 자였다.
펄럭펄럭.
독고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파에 몸을 휘감은 장포가 펄럭이며 독고진의 속살을 보였다. 수많은 상처가 새겨진 무인의 몸이었다.
챙.
핏발 선 눈으로 무인들을 내려 본 독고진이 애검 흑아(黑牙)를 뽑아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짙은 운무(雲霧) 속에 가려진 화산을 겨눴다.
“자랑스러운 흑룡의 형제들이여! 죽이고 또 죽여라! 혈존(血尊)과 내가 너희들의 뒤에 있으니! 화산은 흑룡의 보금자리로 바뀔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휙 소리 나게 돌아선 독고진이 함성 소리를 배경으로 다시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이이.
콰앙!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대전 안이 어둠과 쾌락으로 물들었다.
섬서성(陝西省) 합양(合陽)은 성도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근처에 커다란 강을 끼고 있어 오히려 성도 근처의 다른 곳들보다 훨씬 더 번화한 곳이었다. 그 증거로 수십 개의 기루를 비롯해 객잔, 그리고 중소문파가 자리 잡고 있는 합양은 수로(水路)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人山人海)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느 때와 다름없어야 했다.
“사람이…… 없군요.”
평소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합양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황량한 곳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것은 맞는지 근처에서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대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음.”
청연의 말에 홍단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연이 뽀얀 먼지가 앉은 머리를 정돈했다. 비록 풍객의 속도에 맞춰 무리한 여행길로 몸이 더러워졌다지만 화봉의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근처에 아는 객잔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요.”
끄덕.
고개를 끄덕인 홍단야가 청연의 뒤를 따랐다.
누군가의 뒤를 따르는 것은 질색이었지만 합양의 지리를 알지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
미묘한 감정이 섞인 홍단야의 시선이 청연에게로 향했다.
팽가를 나선 홍단야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미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지만 설마 그 기운이 청연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와 동행하는 것을 꺼리는 홍단야였기에 처음에는 청연을 떼어 내기 위해 경공을 펼쳤다. 제 풀에 나가떨어질 거라는 홍단야의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비록 체력이 약한 여자라지만 청연은 화산파의 일대 제자, 거기다 천재라 칭송 받는 여인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추적하는 기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멈춰 선 홍단야는 그 기운의 정체가 청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다시 그녀를 뿌리치려 했다.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무림에서 여자와 동행한다는 것은 거추장스럽고 또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여자라 해도 여자는 여자다.
따로 성별에 구분을 두지 않는 홍단야였지만 청연과의 동행은 확실히 거북했다.
억지로라도 청연을 떼어 놓으려는 순간, 청연의 말 한마디가 홍단야의 마음을 뒤바꿨다.
“섬서로 가신다고 했죠?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는 일이라면 화산의 힘을 빌려 드리겠어요.”
섬서에서 화산이 갖는 힘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화산파와 같이 구파일방에 속한 종남파도 있지만 종남파가 화산에 비해 세력이 밀리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비록 흑룡회의 마찰 덕에 그 힘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화산은 여전히 섬서의 기둥이었다.
그런 화산의 힘을 빌릴 수만 있다면 사람 한 명을 찾는 것 따위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화산과는 인연이 없는 홍단야이니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청연이 부탁한 것은 하나였다.
섬서에서만큼은 자신과 함께 행동을 해 달라는 것.
어떻게 보면 거추장스러운 부탁이었으나 화산을 통해 양소희의 행방을 전해 듣기 위해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대로였으나 사람들이 없는 관계로 경공을 시전해 도착한 곳은 ‘화향객잔’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객잔이었다. 화산파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 만든 객잔인 듯, 외양에 화려한 매화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덜컹덜컹.
막 객잔의 문을 열려던 청연이 굳게 닫힌 객잔의 문에 당황했다. 잠시 멈칫한 청연이 다시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아무도 없나요? 황 아저씨! 저 연이에요!”
쾅쾅.
청연이 한참을 외치며 문을 두드리자 굳게 닫혔던 객잔의 문이 덜컹거리며 천천히 열렸다.
끼이익.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이제 막 열다섯이나 되었을 법한 주근깨 가득한 소년이었다. 아마 이곳, 화향객잔의 점소이인 듯했다. 청연의 미모에 넋을 잃은 것인지 한참을 멍하니 있던 점소이가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 오늘 장사 안 해요!”
“잠깐!”
날카롭게 외치며 문을 닫으려던 점소이가 청연의 외침에 문 틈 사이로 고개만 배꼼 내민 채 청연을 바라봤다.
“안에 황 아저씨 계시니?”
“황 어르신이요? 계시긴 한데…….”
“그럼 안에 들어가서 청연이 찾아왔다고 전해라.”
“그게 무슨…….”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는 듯 입을 열던 점소이가 청연의 소매에 새겨진 매화 무늬를 보고 숨을 삼켰다. 아마 이제야 청연이 화산파의 제자인 것을 눈치 챈 듯했다.
“이, 일단 들어오세요.”
점소이가 문을 열고 청연과 홍단야를 맞이했다.
객잔의 일이층은 단순히 식사와 술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있고, 삼층은 주로 자고 가는 사람들을 위해 방을 만들어 놓은 듯했다.
탁.
“잠시만 기다리세요. 황 어르신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차를 내려놓은 점소이가 쿵쾅거리며 삼층으로 올라갔다.
후르륵 하고 차를 마신 청연이 입을 열었다.
“황 아저씨는 화산파에서 숙수로 계셨던 분이에요. 제가 처음 화산에 입문했을 때부터 저를 잘 돌봐주신 좋은 분이시죠. 그러다 하산하셔서 그 동안 모으신 돈으로 객잔을 차리신 분이죠.”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홍단야가 주변을 살폈다.
커다란 객잔에 사람은 홍단야와 청연 두 명뿐이니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아이고, 연이 아가씨!”
마침내 객잔 삼층에서 점소이와 함께 반백의 노인이 쿵쾅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의 중후함을 찾아볼 수 있는 백발과 잔주름, 그리고 약간 굽은 등은 전형적인 늙어 가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헐레벌떡 나타난 황 아저씨라 불린 노인이 청연의 손을 냉큼 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고, 지금 섬서 상황이 어떤데 혼자 다니고 그러십니까? 아이고, 먼지 묻은 것 좀 봐라. 이놈, 왕삼아! 당장 가서 물 데워라!”
노인의 반응에 청연이 살포시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아저씨.”
“괜찮기는요! 이놈 왕삼, 어서 서두르지 못해?!”
점소이를 향해 소리 지른 노인이 다시 청연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씻으시고 내려오세요. 모처럼 오셨으니 제가 솜씨를 부려 만들어 보겠습니다.”
“하지만 아저씨…….”
“어서요! 제가 무릇 여자는 깨끗해야 한다고 화산에서부터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노인의 채근에 청연이 도움을 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홍단야를 바라봤다. 이내 그제야 홍단야의 존재를 눈치 챈 노인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홍단야를 바라봤다.
“근데 이놈은 뭡니까?”
노인의 닦달에 결국 몸을 씻은 청연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점소이가 내온 차를 마셨다. 먼지가 내려앉아 있던 옷 또한 점소이가 구해 온 새하얀 무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홍단야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저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검은 무복을 입은 홍단야가 거북한 표정으로 눈앞의 요리를 바라봤다.
“자자, 어서 드십시오.”
상을 삐져 나갈 듯 빼곡히 차려진 음식들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대부분이 육식 요리가 아니라 채식 요리라는 것이었다.
“잘 먹을게요, 아저씨.”
가볍게 고개를 숙인 청연이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홍단야 또한 청연을 따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왕삼이라 불린 점소이는 청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느라 파리가 입술 위에 앉은 것도 모르는 듯했다.
요리는 담백하고 신선해 홍단야의 입맛에 딱 맞았다. 덕분에 소식을 하는 홍단야가 오랜만에 과식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황 아저씨?”
“네, 네?”
청연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이 청연의 부름에 화들짝 놀랐다.
그 모습에 청연이 쿡 하고 웃었다. 사람들 앞에서 항상 강철 같은 모습만 보여 주던 화봉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처음에 저한테 말하셨죠?”
“무엇을 말입니까?”
“지금 섬서의 상황이요. 대체 지금 섬서가 어떻기에 그러시는 거예요?”
청연의 말에 노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가씨……. 설마 최근까지 다른 곳에 계셨습니까?”
“예. 일 때문에 잠깐 다른 곳에 가 있었어요.”
“으음. 그래도 소문은 대충 들으셨죠?”
“예. 화산파와 흑룡회의 냉전으로 섬서 분위기가 안 좋다는 정도는요.”
음, 하며 무거운 신음을 흘린 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냉전 정도가 아닙니다. 흑룡회가 드디어 화산파에 공식적으로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예?”
노인의 말에 청연이 화들짝 놀랐다.
“화산파가 종남파와 무림맹에 도움을 요청했고, 흑룡회 또한 군림성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럴 수가.”
본래 한 지역에 있는 커다란 단체들끼리의 신경전은 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화산파와 종남파 또한 같은 구파일방이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밑으로는 은근슬쩍 신경전을 벌인다. 하물며 흑룡회는 더더욱 그랬다. 보통은 신경전이 조금 격렬해진다 싶으면 각 파의 문주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 보자는 식으로 서찰을 대충 써서 보낸다. 그러면 끝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 합양은 수로를 이용해 화산파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그렇기에 흑룡회의 압박이 더 심하죠.”
무거운 신음을 흘린 청연이 노인을 향해 걱정스레 물었다.
“아저씨는 괜찮으세요?”
노인이 화산파에서 일했다는 것은 합양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노인의 요리 실력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흑룡회가 먼저 압박을 가하는 사람은 황 아저씨가 불린 노인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 증거로 몇 일 전만 해도 사람이 끊이지 않던 화향객잔에는 파리만 날릴 뿐이었다.
청연의 마음을 눈치 챈 것일까.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런 잡배 놈들이야 떼로 와도 안 무섭습니다!”
“저번에 그놈들 왔을 때는 찍 소리도 못하더만…….”
“이놈의 새끼가!”
점소이의 중얼거림에 노인이 얼굴을 붉히며 그를 때리려고 하자 점소이가 주방으로 후다닥 도망쳤다.
“놈들이…… 왔었나요?”
얼음장 같은 청연의 목소리가 노인의 고막을 울렸다.
“아, 아가씨…….”
노인이 생소한 청연의 모습에 당황했다.
청연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황 아저씨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자신을 위해 헌신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자신이 죽은 딸과 닮아서였다.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황 아저씨는 자신을 진심으로 대했다.
“저놈이 헛소리를 지껄이는 겁니다.”
“사실인가요?”
“그럼요!”
노인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청연은 노인의 눈 속의 불안감을 볼 수 있었다.
“아저씨…….”
청연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사태를 지켜보던 홍단야가 입을 열었다.
“왔다.”
콰앙.
우당탕.
홍단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객잔 문이 부서져 나뒹굴었다. 동시에 한 무리가 객잔 안으로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