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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균은 자신을 공격한 이가 이미 멀리 떠난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숨을 죽이며 숨어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위가 조용해지자 승균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옆구리에서 밀려오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승균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이 갔던 것이었다.
승균의 주변에는 각종 폐자재가 널려 있었다.
구형 컴퓨터부터 시작해 TV, 위성 안테나, 고장 난 로봇까지…… 온갖 폐기물들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본 승균은 앞서 퇴각한 백호 PMC의 용병들과 합류를 해야만 자신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니, 그것은 굳이 동료들인 백호 PMC가 아니더라도 당장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정도로 승균의 부상은 심각하였다.
승균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피를 많이 흘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탓에 고통이 줄어들었다 착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승균은 자신의 부상이 생각보다 경미하다고 판단을 하고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미 적지 않은 피를 흘린 덕분에 승균의 몸은 더 이상 뇌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미 그의 발은 말을 듣지 않아 제대로 설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 이대로 죽는 건가? 안 돼! 난 죽을 수 없어! 승연아!’
승균은 이대로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승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겨우 몸을 회복했을 승연에게 자신마저 곁에 있어 주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승균은 절대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승균의 몸에서는 점점 피가 밖으로 빠져나가며 의식을 더욱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승균의 마음을 알았음인가.
하늘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였다.
승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내리는 비로 인해 주변으로 더욱 넓게 퍼져 갔다.
그렇게 피를 흘리며 승균이 죽어가고 있을 때, 주변의 고물 더미 뒤에서 어떤 물체가 튀어나왔다.
삐빅! 삐빅!
그것은 바로 승균의 휴봇인 노아였다.
전투 중 어딘가로 사라졌던 노아가 지금 이 순간 죽어가는 승균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노아가 나타나자 승균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정신없이 전투를 하던 중 자신의 수발을 들던 노아를 챙기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또 그런 혼란 중에 몸을 피해 안전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의 의미였다.
“노아야, 너를 내 아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구나. 하∼ 이것이 내 마지막인 것 같구나.”
순간, 승균은 지금이 자신의 최후임을 느꼈다.
승균은 마지막 힘을 짜내 유언과도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지켜 주어야 하는데…… 꼭 지켜 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미안하다, 승연아. 내가 죽어서라도 널 지켜 줄게…….”
마지막 말을 중얼거리던 승균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노아를 쓰다듬던 승균의 오른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신의 주인이었던 승균을 바라보던 노아.
그 순간, 방수 처리가 된 휴봇인 노아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굉음을 내며 폭주하기 시작하였다.
윙∼ 삐삐빅! 삑삑!
우웅∼ 삑삑!
한순간 무섭게 폭주하던 노아는 일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기를 잠시.
휴봇의 눈동자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밝은 빛이 번쩍였다.
그러더니 그동안 삐빅, 삐빅, 하는 단순한 음을 내던 것과는 달리 자연스러운 음성이 노아의 내부에서 울려 나왔다.
이는 분명 기사라 할 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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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네임, 노아. 임무, 생명체의 보호. 보조체 수명, 2시간. 마지막 임무, 보조체의 대체자 선정.”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던 노아는 ‘대체자 선정’이라는 말과 함께 차갑게 식어 버린 승균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새로운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선택 완료.”
노아는 그렇게 말하더니 승균의 시신을 두 팔로 번쩍 들어 올려 폐자재들이 있는 곳을 향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노아가 사라진 자리에는 승균이 흘린 핏자국만이 남아 쏟아지는 빗물에 그 흔적을 지워 갔다.

*
*
*

한참을 달리던 드와이트는 아무도 모르게 시베리아 주둔군 사령부로 침입하였다.
그런 뒤 사령관인 알렉세이 이그나초프의 관사로 주저 없이 들어섰다.
아직 날이 그리 어둡지 않은 초저녁임에도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알렉세이를 살핀 드와이트는 함께 있던 여자를 향해 권총을 쏘았다.
탕!
단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방금 전까지 알렉세이 사령관의 밑에서 헐떡이던 여자는 이마에 구멍이 뚫리며 싸늘한 시신이 되고 말았다.
한편, 열심히 정사를 즐기던 알렉세이 사령관은 느닷없는 총성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홀스터에 권총을 집어넣는 드와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알렉세이 사령관은 권총을 발사한 이가 드와이트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신음을 흘리다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입었다.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것이오?”
알렉세이 사령관은 약간 두려움 담긴 목소리로 자신을 드와이트에게 용건을 물었다.
그러자 드와이트는 침실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으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즉시 기지 건설을 하던 곳을 향해 전술핵폭탄을 발사해라.”
너무도 간단하게 흘러나온 말.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돌멩이를 던진다는 듯 전술핵을 발사하라는 드와이트의 말이었다.
사실 알렉세이 이그나초프는 발할라의 하부 조직에 속한 이였다.
발할라와 올림포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 세계 곳곳에 첩자들을 침투시켜 두고 자신들의 행사에 방해가 되는 요인들을 제거하곤 했다.
지금도 드와이트는 바티칸의 개들인 13과의 요원들의 현장 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너무도 쉽게 명령을 내리는 중이었다.
아예 아무도 갖지 못하도록 전술핵을 써서 그 지역을 파괴하고, 부수적으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방사능으로 오염을 시키려는 것이었다.
지금 지구는 대변혁 때 폭발한 핵발전소들에서 누출된 방사능으로 인해 갖가지 기형 동물이나 식물들이 생겨나는 중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잔류 방사능으로 인해 인간이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도 무척이나 많았다.
신체를 개조하여 지구상 그 어느 생물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갖게 된 블러드 캡이나 능천사라 할지라도 방사능 보호복을 입지 않는 이상 장시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방사능은 생물체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렇기에 드와이트는 임무를 실패한 지금, 바티칸의 개들이 신의 조각을 찾지 못하게 그 지역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찾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연막을 치는 것도 가능해질 터였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따져 본 뒤, 전술핵폭탄을 사용하여 완전히 파괴해 버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드와이트 님, 제가 아무리 주둔군 사령관이라 해도 전술핵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네 머리는 장식품인가? 머리를 써, 머리를!”
드와이트는 잔잔한 말로 타박을 하였다.
말의 내용과 달리 한순간 겁에 질려 버린 알렉세이 사령관은 머리를 쥐어짜 내며 궁리를 하다 포병대의 훈련 일정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포병 부대의 훈련 일정을 약간 조정하면 무언가 가능할 것 같다고 느낀 것이었다.
눈을 빛낸 알렉세이 사령관은 드와이트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곳 시베리아에서는 사령관인 동시에 절대 권력자이지만, 자신이 속한 비밀조직인 발할라에서는 겨우 말단 조직원에 불과한 알렉세이였다.
한데 그가 발할라의 핵심 부대 중 한 곳인 블러드 캡의 수장인 드와이트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블러드 캡에 결원이 생기면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블러드 캡의 대원들이 어려 보이는 것은 모두 개조 수술을 받아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들 모두는 나이가 알렉세이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았다.
조직에 충성을 하고 성과를 보였기에 은총을 받아 그러한 힘과 젊음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블러드 캡 대원들이 평상시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하는 것은 에너지를 모으기 위한 행위이기도 했다.
평상시에도 괴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 돌아다니기도 불편할뿐더러, 에너지의 소모가 컸다.
하지만 소년의 모습을 하면 사람들 사이에 쉽게 침투가 가능할 뿐 아니라 적에게 방심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년의 모습을 오래 유지할수록 변신했을 때의 능력이 더 강해졌다.
아무튼 아직 일반 말단 조직원인 알렉세이 이그나초프 사령관으로서는 드미트리와 인연을 맺어 두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작정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거실로 나온 알렉세이는 자신의 집무실로 전화를 걸어 포병부대에 비상을 걸었다.
훈련은 며칠 뒤였지만 어차피 시베리아에서 자신의 결정을 막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알렉세이는 생각했던 계획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런 알렉세이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드와이트는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한마디를 남겼다.
“참, 혹시 모르니 이번에 이 지역을 차지한 조직도 아예 없애 버려.”
그동안 자신의 명령을 따르던 이그노아 마피아를 지우라는 말이었다.
그들에게 블러드 캡의 모습을 보였던 것이 생각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들도 함께 없애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쓰고 버리기로 마음먹었기에 기지 건설 현장에서도 이그노아 마피아의 행동대를 그리 잔인하게 죽였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미 사전에 계획된 것이기에 드와이트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지나가는 말로 알렉세이 사령관에게 그들의 최후를 명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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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 주둔군 예하 포병 부대는 며칠 후의 훈련을 염두에 두고 장비를 점검하던 중 급하게 출동을 하였다.
200㎜ 견인포인 M―245와 3S20 자주포, 그리고 다련장 로켓인 BM―33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출동하는지도 모른 채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미리 입력한 좌표로 일제히 무기를 발사하였다.
가장 먼저 신속하게 움직인 것은 역시나 차륜으로 움직이는 다련장이었다.
시속 80㎞로 이동을 한 다련장은 배치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포격을 시작하였는데, 이도 사령관인 알렉세이가 미리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주둔군 사령관인 알렉세이도 자신의 명령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헬리콥터를 타고 공중에서 확인을 하고 있어 포병 부대 지휘관들은 모두 잔뜩 긴장을 한 채 명령을 수행했다.
목표가 어디인지 의심할 생각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사령관에게서 내려온 명령대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포격을 하는 것이었다.
다만, 공격하는 목표가 대도시인 이르쿠츠크와 가깝기에 혹시나 오발 사고가 나지 않게 더욱 주의를 기울일 뿐이었다.
다련장의 공격이 끝나자 이번엔 3S20 자주포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200㎜ 대구경인 이 신형 자주포는 그 위용에 걸맞게 전술핵 포탄까지도 발사가 가능했다.
3S20 자주포가 포신에서 불꽃을 뿜어내기 무섭게 뒤이어 자리를 잡은 M―245도 포신에서 연신 불을 뿜었다.
M―245와 3S20 자주포에서 뿜어낸 불꽃은 정확하게 목표에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그 순간, 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현상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훈련 중에 절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발사되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버섯구름.
일반 고폭탄으로는 절대 발생하지 않는 버섯모양의 먼지 구름의 정체는 명확했다.
핵과 같은 엄청난 위력의 폭탄만이 그런 현상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사실 알렉세이 사령관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친위 세력에게 지시를 내려 포병 부대의 훈련에 쓰일 포탄 중 일부를 전술핵으로 바꾸어 놓았다.
한데 그런 줄도 모르고 비상이 걸리자 적재탄을 확인도 하지 않고 수령하여 출동한 포병 부대는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지금 이 순간에야 비로소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저 멀리서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시베리아 주둔군 사령관인 알렉세이에게 지시를 내린 드와이트였다.
자신의 명령을 잘 이행한 알렉세이 사령관의 행동에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모든 진실이 핵폭발과 함께 묻혀 버리는 순간이었다.


<『가디언 더 하이브리드』 제2권에서 계속>
※이 글 속에 나온 인명, 지명, 단체명은 허구이며 실제와는 연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