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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렌 1권(25화)
제14장 이계 병기(2)


흥! 거야 네 생각이고…… 솔직히 일대일이라면 그 배틀 크리쳐라는 것도 별로 무섭지가 않거든? 하지만 체르너스는 자신이 타고 있는 배틀 크리쳐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한 번 더 말하겠다. 아무리 네가 대단해도 이 정도 수의 배틀 크리쳐를 상대하는 건 무리다. 이놈이 최초로 개발된 세이크리아라는 차원도 이놈 하나 때문에 세력 균형이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허어! 그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냐? 그 짜깁기한 누더기 프랑켄슈타인이?
“사실 아무리 잘난 소드 킹이라 하더라도 고작 소드 나이트가 올라탄 배틀 크리쳐를 당해 낼 수는 없었으니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노릇이겠지. 심지어 세이크리아의 인간들은 이놈으로 드래곤도 사냥한다. 한마디로 이놈은 최강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너도 더 이상 불필요한 저항은 이쯤에서 포기하고 그만 우리에게 항복해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
내가 여전히 대답이 없자 체르너스도 약간 초조한 목소리로 계속 말문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네 이름과 얼굴은 모두 다 알려졌다. 첸이라는 이름의 용병과 사촌이라면서? 네겐 더 이상 도망갈 길도 없다. 숨어 있어 봤자 우리가 반드시 널 찾아 낼 거다.”
훗! 크레이안 녀석이 나에 대해 죄다 불어 버린 모양이군. 하지만 이 모습이 내 실제 모습은 아니거든? 물론 첸의 사촌은 더더욱 아니고 말이야.
어쨌든 체르너스의 저 말은 날 설득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대답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작에 가까웠다.
‘내가 대꾸라도 할라 치면 그 소리를 바탕으로 내 위치를 찾아내겠다는 심산이겠지.’
하지만 내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없자 체르너스도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다는 듯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서 오러 소드를 내뿜어 주변의 나무를 하나씩 베어 나가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웅크리고 있을 거지? 그렇게 숨어 있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정말 소드 엠페러의 이름이 울겠구나. 크크크.”
하지만 나는 내가 있는 바로 옆 나무가 와지끈 쓰러지는 와중에도 눈썹 하나 미동하지 않고 있었다. 이 경우에는 내가 저 도발에 못 이겨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바로 나의 패배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싸움은 한마디로 참는 자가 이기는 거다.
그리고 그런 기다림이 내게 결국 기회를 주었다.
“타아아앗.”
어쨌든 나는 체르너스가 주변의 나무를 베기 위해 잠시 옮긴 틈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결국 신경 써야 할 놈은 체르너스가 탄 배틀 크리쳐 하나, 나머지는 별반 관심도 없는 놈들이다.
단지 귀찮은 걸림돌 정도의 수준이라고나 할까?
콰카카카카칵.
그렇게 나는 놈들의 빈틈을 노려서 남은 세 기 중 두 기나 되는 배틀 크리쳐의 가슴을 단번에 양단해 버렸다.
“저기다.”
그러나 체르너스는 내게 부하가 당한 것보다는 내가 모습을 드러낸 게 더 기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숲이다 보니 배틀 크리쳐 같은 큰 덩치가 움직이기엔 그리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 놈이 거치적거리는 나무를 베어 가며 내게 접근하려는 틈을 타서 나는 다시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크아아아악! 이 개자식.”
미안하지만 고양이다, 이 자식아!
어쨌든 흥분한 놈은 다시 미친 듯이 내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바라는 바였다. 결국 체르너스의 움직임을 따르지 못한 나머지 한 기의 배틀 크리쳐가 저 뒤로 뒤처지고 말았던 것이다.
“후훗! 멍청한 녀석.”
나는 그 길로 바로 반전해서 체르너스가 탄 배틀 크리쳐를 스쳐 지나갔다.
부우우우웅.
물론 체르너스도 날 노리고 검을 휘둘러 댔지만 그 거구로 묘인족의 몸놀림을 한 번에 따라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타아아앗.”
터어어엉.
나는 체르너스의 검을 피해 하늘로 몸을 날린 후, 근처의 나무를 박차고 그대로 남은 한 기의 배틀 크리쳐에게 달려들었다.
콰지지지직.
소드 나이트가 탄 나머지 배틀 크리쳐 한 기도 결국 내 손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나는 체르너스를 제외한 나머지 네 기의 배틀 크리쳐를 모두 박살 낸 연후에 발을 바닥에 탁탁 두들겨 가며 다시 몸을 추슬렀다.
“마…… 말도 안 돼. 배…… 배틀 크리쳐가 어떻게 맨몸의 인간한테…….”
하지만 체르너스는 그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말했다.
“흥! 덩치만 커 봤자지. 상대하기가 조금 까다롭기는 했지만 사실 내 상대는 아니었어.”
물론 그건 소드 나이트가 탄 배틀 크리쳐의 경우였다. 그렇다면 소드 킹이 탄 배틀 크리쳐는 어떨까?
“하아아앗.”
어쨌든 나는 체르너스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먼저 오러 소드를 뽑아 들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콰카캉.
“쳇!”
하지만 역시 체르너스는 여느 소드 나이트들하고는 달랐다. 놈은 내 기습에도 불구하고 마나로 배틀 크리쳐 전체에 반탄막을 만들어 내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 낸 것이다.
물론 배틀 크리쳐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소드 킹이라고 하더라도 아마 내 검에 허리가 일도양단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피해가 영 없을 수는 없었다.
“크으으윽!”
결국 내 공격에 체르너스가 타고 있는 배틀 크리쳐의 허리가 삼 분의 일가량 찢어져 버린 것이다.
물론 배틀 크리쳐의 뱃속에 들어 앉아 있는 체르너스에게까지 피해를 주지는 못한 모양이지만 배틀 크리쳐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것도 공짜는 아닐 터. 체르너스는 아마 배틀 크리쳐의 상처를 회복시키느라 꽤나 허리가 휘청거릴 것이다.
“이…… 이 정도로는 날 쓰러트릴 수 없다.”
어쨌든 내 예상이 그다지 틀리지는 않은 모양인지 체르너스의 말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물론 내가 만든 상처는 마나가 집중되면서 단번에 아물어 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후로는 체르너스도 각오를 한 듯 쉽게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쳇!”
놈이 드디어 공세에서 수세로 돌아선 것이다. 어쨌든 놈이 고작해야 소드 킹이라지만 배틀 크리쳐의 도움도 결코 괄시할 수는 없었다. 물론 내가 당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함부로 짓이겨 들어갈 만치 만만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챙!
콰카캉.
결국 5미터의 거인과 2미터도 안 되는 나와의 싸움은 어느 정도 비등비등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나의 우세였지만 나 역시 놈에게 일격을 가할 수는 없었고 놈도 시종일관 수세에 몰려 있으면서도 간간이 역습도 하면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카르서스를 상대할 때도 이렇게까지 골치 아프지는 않았었는데…….’
물론 카르서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행운이 작용하기도 했었다. 녀석이 방심한 탓에 좁은 레어에 갇혀 내게 몰매를 맞고 말았지만 만일 카르서스가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곳에서 싸웠더라면 아마 결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결국 카르서스의 경우에는 자신의 자만심이 뼈아픈 패배를 부른 것이다.
만일 정식으로 붙었다면 나도 그렇게 만만하게 이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래도 고작해야 카르서스 같은 변태 파충류한테 내가 질 거라는 생각은 별로 들진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체르너스의 경우에는 배틀 크리쳐의 도움으로 만만찮은 실력을 보이면서도 또 수세를 자처하고 있다 보니 아무리 나라도 이 싸움을 쉽게 결말지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저놈을 찢어발기고 싶은데 그걸 할 수 없으니 그 기분인들 어떠하랴.
‘제길! 저놈이 다시 내게 작은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군.’
법이라는 것에 보호를 받으며 언제나 당당하던 작은아버지, 내가 작은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걸려고 했을 때 변호사란 놈은 친족 간의 재판은 상당히 까다로우니 그냥 합의를 보라고 했었다. 몇 년을 걸쳐서 싸워 봤자 결국 하나도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잃을망정 그 빌어먹을 놈과 타협을 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 작은아버지처럼 배틀 크리쳐라는 껍데기에 싸여서 그것이 제 실력인 양 으스대는 꼴을 보니 나는 배알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체르너스 놈 역시 내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 소드 킹이 올라탄 배틀 크리쳐에게는 적이 없을 텐데…… 어…… 어떻게…….”
놈은 자신만만하게 여기고 있던 비장의 카드까지 꺼내 들고도 날 상대하지 못하는 게 자못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놈이 당황을 하든 기겁을 하든 그건 내 관심 밖이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놈의 면상에 대검을 쑤셔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순간 작은아버지와 체르너스의 얼굴이 내 머릿속에서 겹쳐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내 눈에 혈기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웬만해서는 하지 않으려고 하던 짓까지 하고야 말았다.
파파파팟.
내가 간만에 변신을 풀고 묘인족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네…… 네놈! 묘인족이었나?”
물론 내 모습의 변화에 체르너스도 기가 막힌다는 듯이 잠시 멈칫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작은 빈틈을 고작 대답 따위로 놓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결국 나는 말 대신 손톱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콰카카카카카카.
내 왼손에 맺힌 다섯 줄기의 완성된 오러 소드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에 맺힌 검강만큼이나 찬란했다.
“크르르릉! 개자식. 죽어 버려라.”
나는 손톱에 맺힌 검강을 횡으로 휘두르는 동시에 검을 아래로 내리찍어 버렸다. 흔히 쌍검으로 십자치기를 하듯 양손으로 검강을 내뿜어 버린 것이다.
“크아아악.”
결국 놈도 그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그 기세에 눌려 그대로 벌렁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콰콰콰콰쾅.
물론 그 거구가 나자빠지는 만큼 소리도 요란했다. 놈은 바로 몸을 일으켜 내 후속 공격에 대비하려고 했지만 그걸 호락호락 허락할 만큼 아량이 넓지는 못했다.
서컹.
나는 쓰러진 놈이 몸을 일으켜 세울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검을 들고 있는 배틀 크리쳐의 오른팔을 서걱하고 잘라 버렸다.
그리고 나는 귀찮다는 듯이 검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쳐 버리고 다시 양손에 손톱을 모두 뽑아 들고는 체르너스가 타고 있는 배틀 크리쳐의 가슴팍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나는 힘으로 가슴팍의 철판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기긱.
철판이 뜯겨져 나가는 소리에 당황한 체르너스가 얼른 왼팔로 나를 공격하려 들었지만 나는 가볍게 텀블링을 해서 놈의 공격을 피하고는 내 오른손으로 놈의 왼팔을 그대로 긁어 버렸다.
꽈지지지직.
그러자 검으로 배틀 크리쳐를 베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쇠고랑으로 철판을 긁어 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체르너스가 타고 있던 배틀 크리쳐의 왼팔이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배틀 크리쳐의 양손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나는 다시 놈의 가슴팍에 뛰어올라 반쯤 뜯어낸 가슴팍 철판을 마저 뜯어내 버렸다.
그러고 나니 철판 밑에 세로로 길게 갈라진 틈이 있는 배틀 크리쳐의 흉측한 흉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그 틈 사이로 양손을 쑤셔 넣고는 다시 있는 힘껏 잡아당겨 버렸다.
푸아아악.
그러자 팔을 베고 허리를 짓이겨 버릴 때도 흘러내리지 않던 배틀 크리쳐의 지저분한 피가 화악 하고 솟구쳐 올랐다. 물론 그 피가 내 온몸을 적시고 지나간 건 두말할 것도 없다.
“크크크…… 빙고!”
하지만 나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도리어 배틀 크리쳐의 가슴속에서 기겁을 한 듯한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체르너스의 모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부디 천국으로 가길 바란다.”
비록 마족에게 천국으로 가라는 소리가 합당한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퍼어억.
어쨌든 나는 그대로 놈의 얼굴에 내 주먹을 쑤셔 박아 버렸다.


<『카이렌』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