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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25화)
9장. 할아버지의 유진(3)
흔적도 없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조금 전과 같은 현상을 다시 경험할 수 있었지만 아직은 능력이 닫지 않는 것을 깨달은 장혁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평정을 깨트려야 했다.
곧바로 심결 운용을 중단한 장혁이 눈을 떴다.
“하아! 수련이 깊어지면 점점 나아질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능력이 안 되니 어쩔 수가 없구나.”
버틸 수 있는 한계는 고작 몇 분도 되지 않았다.
미지의 세계!
스스로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신세계로 들어가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평생을 두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건가?”
하나로 합쳐져 새롭게 변신한 심결에 대해서 알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두고두고 연구하며 수련을 한다고 해도 전부 알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째서 이런 엄청난 것이 내게 전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가다 보면 밝혀지겠지.”
아무리 고민해 봐야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장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은 자신에게 있어 무척이나 뜻 깊은 시간이었고,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라 천천히 나아갈 때였다.
“어둡군.”
방을 나서자 태양은 어느새 서산으로 넘어간 것인지 창밖은 짙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꽤나 오래 있었나 보구나.”
너무 깊이 빠져 시간 가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지낸 시간이 벌써 하루가 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10시를 가리키는 시계바늘을 보니 서광 스님을 만나고 온 후에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꼬르륵!
“아으! 배고프네. 뭐 먹을 거 없나?”
시계를 본 탓인지 허기가 밀려들며 갑자기 배가 고파 왔다.
간단하게 요기라도 할 것이 있나 부엌으로 가다가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장호의 방을 보았다.
“형님은 식사나 하신 건지 모르겠다. 설마, 나처럼 꼼짝도 안 한 것은 아니시겠지.”
방으로 찾아가고 싶었지만 혹시나 장호의 수련을 방해할 수 도 있는 일이기에 장혁은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으로 가 보니 누가 사용한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대충 때우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형도 식사를 하지 않은 것 같아 장혁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냉장고를 뒤졌다.
계란 몇 개와 김치를 꺼내고는 뚝배기에다가 계란찜 만들고, 종종 썬 김치를 볶아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에는 라면 정도나 끓일 줄 알았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리하는 것이 제법 익숙한 듯 음식은 금방 만들어졌다.
“와, 맛있겠다. 이제 식사 준비가 끝났으니 됐고.”
장혁은 자신이 만든 음식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식사 준비를 마치고는 장호의 방을 쳐다보았다.
“어디, 지금 뭘 하시나 한 번 볼까? 조용히 열면 될 거다.”
방해가 될 수도 있지만 무작정 수련만 한다고 해서 성취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형을 한 번 살펴보기로 했다.
문 앞으로 간 장혁은 방해가 되지 않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으음, 운기 중인 모양이구나.’
방 안에서는 장호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크흠,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지?’
코를 찌르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기에 장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 형님 몸에서 나온 노폐물 때문이로구나.’
마치 비가 흘러내리듯 구정물 같은 것이 장호의 얼굴에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야! 저 정도로 몸 안에 쌓인 노폐물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형님 말씀대로 서광 스님이 전하신 것이 대단한 것이기는 한 것 같구나.’
전수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몸 안에 있는 노폐물들이 운기를 통해 빠져나오고 있었다.
서광 스님이 전해 준 진기가 정순하고 형에게 맞는다고 봐야 했다.
‘금강밀문이라 눈여겨 볼 만한 유파다. 아니, 어쩌면 형과 안성맞춤일 수도 있는 유형의 무예일 수도 있고. 어찌 되었든 장호 형에게는 잘된 일이다.’
인연이 닿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라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장호가 타고난 무골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단시간 내에 체화되는 것을 보면 서광이 전수한 금강밀문의 심법이 보통심법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휴, 냄새! 도저히 못 참겠다. 이제 대충 운기가 끝나 가는 것이 분명하지만 아직은 깨울 때가 아닌 것 같으니 밖에서 기다려 보자. 적어도 형이 깨어날 때까지는 음식이 식지 않을 테니까.’
문 틈새로 흘러나오는 악취도 참기 어려운 지경이라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운기가 절정을 넘어 마무리 단계에 진입하고 있어 머지않아 끝날 것이기에 장혁은 문을 살며시 닫고 식탁으로 갔다.
“어?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음식이 식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식탁으로 오던 장혁은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미처 인식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장호의 내부 흐름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광 스님의 몸에서 흐르는 기운도 느낄 수 있었기는 하지만 이 정도까지 명확한 것은 아니었는데…….”
마치 눈으로 들여다보듯 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불쾌한 기운이었지만 서광의 기운을 느낄 때는 이렇게 선명히 다가오지 않았었다.
장혁은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비로서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대단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기운을 영상으로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니. 오감으로 느끼는 것을 벗어나 직관으로 느낄 수 있다니…… 분명히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일어난 현상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더라도 일정한 경계를 넘은 것이 틀림없이 보였다.
“보지 않아도 직관과 감각만으로 상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이기고 들어가는 것이나 진배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생긴 능력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
장호의 방에서 일던 기운들이 갑자기 수그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운기가 끝난 듯 자신의 변화된 신체에 놀라 벌어지는 소란 때문인지 방에서 커다란 인기척이 들렸다.
“후후후, 이제 운기가 끝났나 보구나. 뚝배기를 다시 올려놔야겠다.”
티티틱!
장혁은 약간 식어 버린 계란찜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는 불을 켰다.
우당탕!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물이 열리더니 부리나케 방에서 나온 장호가 급하게 욕실로 들어갔다.
“크크크, 형도! 자기 냄새인데도 견디기 힘들었나 보네.”
급하게 욕실로 들어간 뒤에 노폐물들을 씻기 위해 샤워를 하는 것인지 물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형! 샤워 끝내고 밥 먹어!”
샤워를 하는 장호를 향해 장혁이 소리를 질렀다.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
장호가 샤워하며 대답해 왔다.
후다닥!
쾅!
조금 뒤에 샤워를 끝마친 장호가 알몸으로 욕실에서 빠져나와 빠르게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스승에게 물려받은 진기로 인해 대주천까지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몸 안에 쌓여 있던 노폐물이 빠져나가 퀴퀴한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크으, 냄새!”
방에 들어오자마자 장호는 코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고약한 냄새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아무리 내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십 년 묵은 홀아비 냄새보다 더 지독하구나. 방이 식더라도 창문을 열고 환기 좀 시켜야겠다.”
장호는 창문을 열어 환기가 되도록 하고는 어느 정도 냄새가 가시자 옷장을 열었다.
약간 냄새가 배어 있기는 하지만 못 입을 정도는 아니기에 얼른 옷을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형, 얼른 와서 밥 먹어.”
장혁이 식탁에서 손짓해 불렀다.
‘내가 차려 주어야 하는데 미안하구나.’
자신이 수련을 하는 동안 밥상을 차린 동생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식탁으로 갔다.
“우와! 이거 정말 맛있어 보인다. 그런데 언제 이런 걸 만든 거냐? 꿀꺽!”
맛있게 보이는 계란찜과 발갛게 입맛을 돋우는 김치볶음밥에 장호가 침을 삼켰다.
이제 겨우 열 살짜리가 만든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얼마 안 됐어. 형, 배고프겠다. 어서 먹어.”
“그래, 어서 먹자.”
후르륵!
뜨거운 계란찜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은 장호의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이거 죽인다. 제법인데!”
“입맛에 맞는 것을 보니 나름 괜찮게 끓여졌나 보네. 많이 먹어, 형.”
“그래, 너도 어서 먹어라.”
하루를 생으로 굶은 터라 두 사람은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을 허겁지겁 금방 비워 나갔다.
“끄억! 좋다.”
바닥에 눌어붙은 계란찜을 닥닥 긁어 먹은 후 포만감을 느끼며 장호가 트림을 했다.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 그릇들은 싱크대에 그냥 넣어둬라.”
동생이 밥상을 차려 준 것이 미안했는지 그릇을 들고 일어나는 장혁을 향해 말했다.
“후후, 알았어. 형이 한다고 하면 나야 말리지는 않지.”
“하하하! 그래, 내가 하마. 너는 찻물이나 좀 준비해라. 거기 보면 주전자가 있을 테니 물 좀 끓여 놔.”
“알았어, 형은 녹차로 할 거지?”
“그래. 거기 찬장에 녹차 있을 거다.”
주전자에 물을 담고 녹차를 준비하는 것을 보며, 장호는 물을 틀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릇들이 씻겨지고 설거지가 끝날 무렵에 보글거리며 물이 끓어올랐다.
장혁은 은은한 유백색이 감도는 주전자에 끓인 물을 담아 녹차를 타고는 식탁으로 가져갔다.
조르륵!
주전자와 같은 유백색이 찻잔에 녹차를 따랐다. 맑은 향이 부엌에 가득했다.
장혁은 설거지를 끝내고 식탁에 앉는 장호의 앞자리에 놓았다.
후르륵!
“후우, 좋다. 형!”
“왜?”
“회사에 나가가 봐야 되는 거 아니야?”
자신 때문에 그동안 회사 운영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을 접은 터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걱정 마라. 며칠 비운다고 망할 정도로 허술하게 운영하지는 않았으니까.”
“칫, 누가 그런 거 걱정하나.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흉을 볼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명색이 사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농땡이나 피운다고 말이야.”
“야, 인마. 이게 무슨 농땡이냐? 그리고 내가 사장인데 설마 욕이야 하겠냐? 이미 다 이야기해 두었으니 조금 더 쉬다 출근해도 된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형!”
“또, 왜?”
“내일은 파출소에 한 번 가 보려고.”
“벌써, 시작하려는 거냐?”
“최대한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바로 시간이니까 말이야.”
“걱정되기는 하지만, 할 수 없지. 그렇지만 내가 먼저 손을 쓴 다음에 가도록 해라. 마침, 형이 후원하는 고아원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려면 경찰은 물론이고, 동사무소에도 손을 써야 하니까 말이야. 모레 정도 가면 될 거다.”
“형이 계속 후원하는 곳이라면 마침 잘됐네. 그런데 언제부터 후원을 한 거야?”
겉으로 보이는 무뚝뚝한 모습과는 달리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유별난 장혁이다. 예전부터 사회사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장혁이 물었다.
“조금 됐다. 물려받은 사업이 좀 그렇고 해서 말이야. 좋은 일 좀 하자는 생각에 몇 군데 후원해 왔다.”
“후후후! 역시, 형이구나.”
“뭘, 당연한 일 가지고. 그 일은 내가 다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나 잘 생각해 봐라. 난 다시 수련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알았어, 형!”
장혁의 대답을 들은 장호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곧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막 대주천을 끝냈으니 스승이 물려준 것들을 돌아봐야 할 때였기에 장호로서는 무엇보다 지금이 중요한 시기였다.
이제 행공의 진수를 알았으니 자신의 것으로 체득할 시간인 것이다.
“형의 성취가 대단하니, 앞으로 기대되는 걸.”
최상의 자질은 아니지만 최적의 자질을 지녔다는 서광의 말처럼 금강밀문과 상성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후후, 나도 형에게 뒤지면 안 되겠지.”
장호가 힘을 얻어 가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뛰었다. 사촌 형보다 뒤처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장혁도 이내 방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남겨진 것들을 수습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밤새 자신들이 얻은 심결과 심법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봤다.
<『카오스 오션』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