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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오션 1권(24화)
9장. 할아버지의 유진(2)
“그렇지만 금강밀문의 사명이 이 땅의 불법을 수호하는 것인 만큼, 우리 가문의 사명과 비슷해서 그리 염려할 것은 없을 것 같으니 안심해라.”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네. 그런데 수련은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야?”
“글쎄, 수련은 이미 시작됐지만 스승님께서는 봄이 되면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하시는구나. 수련하기에는 조금 추운 것이 아니냐고 하시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빨라야 4월부터나 시작할 것 같다.”
“크크크, 그러고 보면 서광 스님은 정말로 추위를 싫어하시는 것 같아. 수련하려면 바로 하지, 봄이 되면 시작하신다는 것을 보면 말이야.”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보다는 내 몸부터 만들어야 하기에 그러시는 것이니 오해는 하지 마라.”
스승에 대해 조금 안 좋은 어투로 말하자 장호가 변명하듯 말했다.
“몸부터 만들어야 한다니 무슨 뜻이야? 몸을 만들려면 본격적으로 수련을 한다는 뜻이잖아.”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은 장혁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스승님께서 나에게 당신의 진기를 건네주셨다. 한동안은 혼자서 심결을 수련하며 몸에 쌓인 노폐물들을 모두 몰아내고 순순한 상태로 만들어야 하니 본격적인 수련은 그때가 되어야 가능하다.”
장호의 말에 장혁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형! 정말, 금강밀문에서 배우는 무예가 내가진기까지 운용하는 거야?”
“후후후, 그래. 대단한 곳이지.”
뿌듯해 보이는 장호의 말에도 장혁의 인상이 굳어졌다.
‘허참! 스승의 인도도 없이 혼자서 내가진기를 수련한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군. 누가 땡중이 아니랄까 봐 형 혼자 수련하다가 안 좋은 꼴을 볼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힘인 진기를 다룬다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자신의 진기를 건네주고는 혼자서 수련하라고 했다고 하니 장혁은 서광의 진의가 의심스러웠다.
“형, 그거 위험한 거 아니야?”
“후후후, 내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걱정하지 마라. 스승님께서 진기를 건네주시며 일주천까지 시켜줘 행로를 각인시켜 주셨다. 아까 인사를 드리지 못하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너무 많은 심력과 진기를 소모하셔서 작은 충격에도 위험하실 수 있는 상태여서 말이다.”
“그럼 형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말이야?”
장혁이 깜짝 놀라 물었다.
“이미 각인까지 끝내 주셔서 혼자서 수련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스승님께서 봄에 수련을 시작하려는 이유도 몸을 회복하셔야 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아마도 나 혼자 수련하는 것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스승님은 그렇게 무책임한 분이 아니시다.”
“으음, 그렇다면 다행이고.”
장혁의 말에 적지 않게 안심이 되었다.
내가 공부를 혼자서 수련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를 않는 일인데 형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양반,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대단하군. 이거 조금은 미안해지는 걸.’
진기의 운행 경로를 각인까지 시켜 줄 정도였다면 상당한 희생을 감수했다는 뜻이었다.
진의를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스승님께서 전해 주신 것을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해서 오늘은 밤새 운기를 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알았어. 내가 괜히 방해를 한 모양이네. 어서 들어가서 수련하도록 해, 형.”
“고맙다. 그리고 진기를 운행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되니, 혹시나 내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해라.”
“알았어, 형.”
말을 마친 장호는 급한 듯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형이라면 금강밀문의 수련을 잘해 낼 거야. 그렇지 않은 척했지만 서광 스님도 형에게 욕심이 있는 모양이니 위험한 일이 일어나게는 안 했을 테니까.”
서광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기운이 기분 나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유지를 맡길 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형을 대할 때 보인 눈빛은 진심이 어려 있었다.
결코 해코지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장혁은 어느 정도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럼,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장호가 노력을 보이는데 자신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장혁은 정리할 것이 있기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자신이 얻은 것들을 수습하느라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장호는 서광이 전해 준 금강밀문의 비기 중 하나인 법문을 수습하고 진기운행을 시작했다.
장혁도 다른 가문의 절기들을 수습하기 안에 담긴 뜻을 해석하느라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시간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장혁은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가문의 무력을 위해 만들어진 심결에 대해 고민하기 위한 명상이다.
곱씹어 생각하니 암자에 있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 어려서부터 배워 왔던 가문의 명상법을 발전시킨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이었다.
깊이 살펴본 바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혁의 고민을 깊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가문의 피난처에 있었던 동안 자신의 뇌리를 스쳐 간 고대 전사가 남긴 심결이었다.
구결을 이어 가는 뜻들이 묘하게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깊은 고심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명상법이면서 심결인 두 가지는 한 나무에서 갈라져 나온 것처럼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배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할아버지가 남긴 것을 생각하며 어느 정도 이해를 끝낸 장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성을 터트렸다.
“정말 완벽하게 다르다. 극과 극으로 형태가 나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완벽하게 달라서 붙여 놓으면 한 짝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분명히 두 가지 심결은 한 곳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일 정도로 쌍둥이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완벽하게 배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장혁이 내린 결론이었다.
“가문의 심결이야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진 것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누가 전해 준 것도 아닌데 어느 사이인가 스스로 기억하고 있는 고대 전사의 심결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나에게 이어진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어둠과 밝음을 대변하는 것이 음양(陰陽)이다.
아니, 그보다는 근원적인 기운을 설명함에 있어 완벽하게 배치되는 두 가지 심결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자신에게 이어졌다는 사실이 문득 의심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이지 장혁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 봐도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는구나. 이론상으로는 완벽하게 배치된다고 생각되지만 실제로 익혀 보지를 않았으니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으음, 수련을 하면서 하나하나 알아내야 하는 것인가?”
할아버지가 남긴 것에는 자신의 의식 속에 기억된 심결에 대해서는 언급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가문의 심결과 완벽하게 배치되면서도 DNA의 나선 구조처럼 서로를 엮어 가는 형태의 심결이다.
그렇다면 뭔가 서로에게 작용할 것이고 수련하다 보면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는 것인지 결과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후우∼ 고민만 해서는 소용없는 일이다. 일단은 한 번 부딪쳐 보도록 하자.”
둘 다 어려서부터 배운 명상법과 같은 형태로 수련하는 것이기에 장혁은 결심을 굳히고는 곧바로 가부좌를 틀었다.
어려서부터 배워 온 가문의 명상법!
전신의 감각을 하나하나 일깨워 오감으로 세상을 보는 일종의 심결이다. 세상을 느끼고 그 세상과 동화되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명상법이다.
의식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하나로 모은 후 심결을 풀어 가며 남겨진 뜻을 되새겼다.
‘이, 이렇게까지…… 전보다 더 선명하구나.’
숨이 깊어갈수록 장혁은 확연히 자신의 오감을 자극하는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온수를 타고 오르는 방바닥의 열기가 방 안 대기를 움직이며 자신을 간질이는 것도, 방 안을 떠도는 먼지들이 품고 있는 미세한 냄새도 온전히 느껴졌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신과의 경계 밖에서 움직이는 세상의 무수한 자극을 통해 온전한 자신의 존재를 찾기 시작했다.
장혁은 고대 전사로부터 전해진 심결과 가문에서 전해지는 심결을 동시에 운용하기 시작했다.
번쩍!
심결에 따라 내부의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장혁은 눈조차 뜰 수조차 없는 강렬한 빛을 통과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아!’
강렬한 감각과 함께 장혁은 자신의 정신이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직 어둠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갑자기 나타난 광명이 가득한 공간을 본 적이 있는가?
장혁이 본 것은 어둠과 광명이 혼재된 여명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극명(克明)의 순간이었다.
‘아아아!’
그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의식만 남은 상태에서 가문의 피신처인 동굴을 나서며 보았던 여명의 순간에 대해서 기억은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온전히 체감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두 가지 심결을 운용하며 그와 같은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해 온 명상법으로 세상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은 세상이 주는 자극의 본질이 가지는 양면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었다.
비단 느낌뿐만이 아니었다.
잠깐이나마 자신에게 느껴지는 자극의 정체를 심상으로 정확히 그려 내는 것을 물론, 분자를 넘어 원자의 단위까지 낱낱이 파악할 수 있었다.
“헉!”
경이로움도 잠시, 갑자기 확장되는 감각과 믿을 수 없는 현상에 장혁은 지금까지 이루던 마음의 평정을 스스로 깨트려야만 했다.
수없이 전해지는 엄청난 정보들을 감당하다가는 이대로 정신을 놓고 미쳐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는 넘침은 화를 부르기에 자신도 모르게 장혁의 뇌가 명상의 평정 상태를 깨 버린 것이다.
“하아! 어, 엄청난 경험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이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명상으로 인해 보인 것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다.
장혁은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극히 단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뇌에 부하가 걸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을 만큼 엄청난 정보의 바다가 갑자기 펼쳐졌다.
“마, 마치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기분이라니! 어떻게 이런 심결이 있을 수 있는 거지? 마치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이런 미지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두 가지 심결은 분명히 하나의 심결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틀림없다.”
어느 정도는 장혁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엄청난 일이 일어날지 몰랐던 탓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
“어째서일까?”
마치 누군가에 의해 잘 짜여진 각본처럼 자신에게 다가온 미지의 심결!
장혁의 마음속에는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심결이 전해진 것일까?’라는 의문만이 소용돌이치며 커져 갈 뿐,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래, 다시 한 번 해 보자. 그러면 뭔가 알 수 있겠지.”
의혹뿐만 아니라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기에 장혁은 다시 명상에 잠겨 심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화악!
의식세계가 무한하게 확장하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또다시 찾아온 신세계!
‘헉!’
새로운 신세계는 자신의 모습을 장혁에게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위, 위험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무한의 의식세계에 접하는 순간, 자신은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