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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 1권 (25화)
14.누가 내 욕을 해? (2)


“먼저 협의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묻겠습니다. 사장님은 노동조합 설립을 찬성하시는 겁니까?”
“한 가지만 조합 측에서 받아들인다면 어떠한 방해 공작도 불이익도 없을 겁니다.”
“그 한 가지라는 게……?”
“조합장 임기 1년. 연임, 재임 불가능.”
“말도 안 되는…… 법적으로 노동조합장의 임기는 3년입니다!”
“알아요. 하지만 현재 제 입장에서는 좀 그렇군요. 일하라고 뽑아 놓은 지 1년도 안 되서 조합장으로 3년간 놀고먹는, 아! 죄송. 조합장으로 3년간 근무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군요. 회사 근무 10년쯤 된 사람이 3년간 한다면 불만은 없습니다.”
“그렇다는 건 조합 자체를 인정 안 하시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인정을 하신다면 법적 근거에 맞게 정확하게 하셔야 합니다.”
“조합장 임기 1년이 그리 큰 요구인가요? 앞에 계신 모니터를 보시면 현재 우리 회사의 주식 현황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가진 주식이 30%입니다. 우호 주식인 정아라 양의 주식이 25%, 나머지 외국 자본 주식이 45%. 제가 여러분들에게 막 퍼 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도 해 줄 수 있는 만큼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호 지분이 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려 한다면 그럴 수가 없겠죠. 저도 사장 자리가 필요하니까요.”
뻥이다. 처음 나와 아라의 이름으로 주식의 100%를 소유하려 했었는데 나눠 놓길 정말 다행이다.
곽철용이 인상을 잔득 찌푸린 채 갈등한다.
그래, 노동조합으로 힘 키울 생각 말구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
“일단, 그 문제는 좀 있다 다시 말하기로 하시죠.”
“그러죠.”
미뤄서 다시 협상할 모양인데 난 오늘 끝낼 작정이다. 연봉 협상까지.
“L&J소프트의 일반 직원들의 요구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직원들의 자기 개발에 대한 교육 확대와 사설 학원 등록 시 금액 지원을 요구합니다.”
“좋습니다. 사설 학원 등록 시, 업무 연관된 수강일 경우 100% 지원. 개인적인 수강일 경우 50% 지원. 수강 완료 후, 자격증과 별도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은 붙습니다.”
“하나, 사내 모임, 즉 동아리에 대한 지원을 요구합니다.”
“좋습니다. 동아리 모임이 있을 시 증빙 서류를 제출하면 점심값 일인당 20,000원씩을 지원하죠. 추후, 그 동아리의 특성을 파악해 필요한 물품에 대해서는 100% 지원합니다.”
“하나, …….”
“좋습니다. …….”
…….
복리후생 부분에 대해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하나, 올해 연봉 협상 시 20%의 연봉 인상을 요구합니다. 이상입니다.”
“연봉 인상에 대한 건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모든 걸 받아들이는 내 모습에 우쭐한 표정을 짓던 곽철용은 마지막 부분에 대한 거절에 발끈한다.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회사의 이익이 생겼다면 그 이익을 창출한 구성원들에게 재분배해야 하는 건 기업가로서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이유는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연봉이라는 것은 구성원이 작년 한 해 동안의 일한 내용과 앞으로 1년간의 일할 내용에 대한 판단으로 정해집니다. 지금 사측에서 제시한 연봉이 적다는 얘긴가요?”
“적진 않지만 구성원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우리 회사가 올린 매출이 15조가 넘습니다. 인원으로 나누어 보면 1인당 500억의 수익을 올린 겁니다. 저희가 요구하는 20% 연봉 인상은 정말 최소의 금액일 뿐입니다.”
헐, 기가 차는군. 어떻게 저런 계산이 나오는가?
“혹시, 곽철용 씨가 우리 회사에 투자를 했나요? 게임은 곽철용 씨가 개발했어요? 게임에 대한 초기 설치비는 곽철용 씨가 냈어요? 만에 하나 게임이 실패했다면 곽철용 씨가 책임을 졌을 겁니까? 그럼, 반대로 얘기해 보죠. 과연 곽철용 씨가 입사 후 지난 7개월간의 받은 월급 3,000여만 원과 특별 상여금 500만원, 야간 수당비와 기타 비용까지 250만원, 총 3,750만원어치의 능력을 발휘했습니까?”
“그건…….”
“여기 계신 직원 분들에게 물어보죠. 과연 우리 회사가 여러분에게 주는 연봉이 적다고 생각하십니까? 연봉에, 특별 상여금에, 야간 수당에, 아이디어 특별비에. 작년 4월입사한 사원 중에 가장 적은 돈을 받은 이가 6,200만 원입니다. 그리고 평균 7,000만 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중 혹시나 난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하시는 분은 말해 보세요. 팀장들은 예외입니다.”
형주 형, 저 인간을 짤라야 하는데…… 왜 손을 들고 지랄이야!
“여러분들의 노력을 절대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여러분들 중에 연봉보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도 있겠죠. 다만, 분위기 때문에 손을 들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죠. 여러분이 노력하면 전 그 노력한 것 찾아 최대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너무 사측에 대한 말씀만 하고 계십니다! 말씀하시는 사장님께서는 이번에 1조 2,000억의 배당금을 받으셨습니다. 그럼, 사장님은 그만큼 일을 했다고 보십니까?”
이 인간이 이제 막 나가자는 거야? 확 짤라? 아냐, 난 관대하잖아∼
“물론이죠. 제가 한 일을 값어치로 따지자면 5조는 넘어요. 그런데 잘못 알고 있는 게 있군요. 엄밀히 따지자면 1조 2,000억은 저의 투자에 대한 이자일 뿐입니다. 제 작년 연봉은 고작 2억. 전 5조 원만큼을 일하고 겨우 2억밖에 안 받은 거예요. 가장 연봉 많이 받은 직원들보다도 낮은 금액이죠. 그래서 올해는 많이 받을 생각입니다.”
어라, 표정들이 왜 이래?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어이, 관리자들. 자네들은 내 편이라고 내 편.
“커험, 도저히 대화가 안 되는군요. 다음에…….”
“다음은 없습니다. 오늘 결정을 보죠. 미래의 조합원들에게 지금 제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시고 투표에 붙이세요. 그리고 오늘 연봉 협상을 시작할 테니 팀장들은 팀원들에게 전달하세요.”
“이건 탄압입니다!”
참, 그 인간 전투적일세.
하지만 곽철용은 피해자의 한 사람일 뿐이다. 치솟은 등록금 덕분에 사회에 나오자마자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그런 그를 어느 곳에서도 환영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모든 걸 포기하고 게임에 파묻혀 살았으니 사회에 대한 불만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 복지 혜택에 한 가지 추가하죠. 혹시, 직원들 중에 빚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회사에서 대출을 해 줍니다. 제1, 2금융권은 물론 사채까지 갚아드립니다. 물론, 말 그대로 대출입니다. 매달 일정 금액씩 갚아 나가야겠지만 무이자니 괜찮겠죠? 이런 복지 혜택은 어떤가요, 곽철용 씨?”
“……괜찮은 방법이네요.”
“자, 그럼. 투표를 하시고 결과는 사장실로 보내 주세요. 각 팀장들은 일단 비조합원들에게 연봉 협상에 임하라고 말해 주세요. 2층의 고객 만족팀부터 시작하겠어요.”
난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고 일어났다.
‘어떻게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그런 뻥을…… 진짜 뻔뻔하다’라는 형주 형의 말을 들었지만 난 못 들은 척 나갔다. 난 관대하니까.

며칠 뒤, 회사 로비 앞 게시판에 ‘김형주 팀장, L&J경주호텔 2주간 파견’이라는 메시지가 깜박깜박 빛나고 있었다.

그래, 나의 관대함에 치를 떨어라∼ 음하하하핫!

***

김형주는 동바리가 쌓인 곳에 들고 온 동바리를 던졌다.
땡그랑! 탱! 탱! 팅!
마구 날뛰던 소리는 금세 사라진다.
“휴∼”
이곳에 파견 온 지도 어느새 일주일. 어째 날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이진하의 쪼잔함에 경주호텔 공사장에 파견 근무를 나왔다.
물론, 그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공사가 잘되고 있는지, 일하는 이들이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따위를 감시하는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공사장을 둘러보면 어쩔 수 없이 일손을 거들게 된다.
한사코 자신이 하겠다는 아저씨의 모습에 등 떠밀리는 척 쉴 수도 있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저 앞에 절뚝거리는 다리로 동바리를 들고 오는 모습을 보면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쥐고 있는 동바리를 잡으면 혼쭐이 나기에 가만히 서서 하는 양을 지켜볼 뿐이다.
땡! 땡!
확실히 숙련자는 숙련잔가 보다. 던지니 그냥 적당한 곳에 쏙 박힌다.
“허허, 오늘도 고생했네.”
“뭘요, 김씨 아저씨가 수고하셨죠.”
“덕분에 일이 일찍 끝났으니 한잔 어떤가?”
“좋죠!”
함바집으로 가는 길. 옆에서 보는 김씨 아저씨는 마른 몸에 나이답지 않게 늙은 모습이다.
하지만 눈동자와 웃음은 살아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저런 사람을 일을 시키다니 분노를 했던 김형수였다.
공사장 책임자에게 뭐라 한마디했다가 오히려 핀잔만 잔뜩 들었다. 그래서 김씨 아저씨가 날라야 할 동바리를 틈나는 대로 몇 개씩 날라드리고 있었다.
김씨 아저씨뿐만 아니었다. 공사가 과연 진행될까 의심이 들 정도로 김씨 아저씨 같은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면 저녁 늦게까지 이곳저곳을 돕는 게 그의 일이었다.
“어서 와, 김씨. 이제 끝났어?”
“김 팀장도 어여와!”
함바집 안은 초만원. 매일은 아니지만 간혹 한잔씩하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들 막걸리 통을 놓고 먹고 있다.
“오늘 무슨 일 있어? 다들 웬일로 모였어?”
“소식 못 들었어? 저기 민두현이하고 림재호 두 사람이 교육받으러 간다고 축하해 주고 있었어.”
“아이쿠, 잘됐네. 나도 축하 인사하고 와야지. 자네는 여기 앉아 있게.”
빨간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 앉으며 시끌벅적한 곳을 바라보니 두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연신 술잔을 받으며 붉은 얼굴로 웃고 있다.
“무슨 일이에요, 아저씨?”
“자네는 몰라?”
“뭘요?”
“내 정신 좀 보게. 일단 한잔 받어.”
막걸리를 주며 말을 잇는다.
“여기 일하는 사람들 중에 일정 기간 일하다 보면 L&J의자라던가 하는 곳과 호텔에 스카웃이 된다더군. 저 두 사람은 호텔에 들어가게 됐다고 축하하는 거 아닌가.”
“예끼, 의지지 의자가 뭔가?”
“의지나 의자나…….”
김형주는 그제야 그의 말을 이해했다.
어찌 보면 자신도 이런 식으로 L&J소프트에 입사를 하지 않았는가. 비로소 이진하가 연봉을 올리지 않은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새끼, 혼자 잘난 척은…….’
속으로 이진하를 욕하며 들이킨 막걸리의 맛이 평소보다 달게 느껴진다.
함바집의 분위기는 축제의 분위기. 그 분위기에 김형주는 막걸리를 과하게 마셨다.
축제는 끝이 나고 하나둘 한쪽에 쌓인 찬합을 들고 사라졌다.
김씨 아저씨도 낼 보자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이제 가 볼까?”
자리에서 일어나던 김형주는 함바집 한쪽 구석에 있는 오래된 3D TV에 눈이 사로잡혔다. 자신도 모르게 TV 쪽으로 다가갔다.
“……네, 사실입니다. L&J소프트의 이진하 사장과 그의 사업 파트너인 정아라 씨는 오늘 오후 5시경, 작년 배당받은 2조원의 돈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진하 사장과 정아라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L&J비서실장 채은희 씨가 이 사실을 밝혔는데요. L&J사회복지회를 설립 기금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복지회를 통한 세금 회피 의혹은 없어 보입니다. 소년 소녀 가장 돕기로 2,000억을 집행하겠다는 발표가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나가는 시민들도 이 소식에…….”
“미친 새끼, 연봉이나 좀 올려 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형주는 자신이 L&J소프트의 팀장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저런 배포가 있는 녀석의 행동이 부러웠다.
이제 결혼 준비를 하는 자신에게는 도저히 저렇게 할 용기가 없었다.
“……부의 재분배는 기업인으로서 당연한 행동이었다고 말한 이진하 사장의 말은 그렇지 못한 기업들에 대한 외침이 아닐까요? 이상 현장에서 임두호였습니다.”
“하하하하하! 웃긴 새끼.”
이곳으로 자신을 보낸 이진하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진하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오늘 T.B.C에서 만나기로 한 동생들에게 미안하지만 푹 자야겠다. 그래야 내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김형주는 한참을 그렇게 웃으며 진하를 욕했다.

***

아, 누가 내 욕을 해? 분명 형주 형 그 인간일 거야. 아주 그곳으로 발령시킬까 보다. 그나저나 귀이개는 어디 있지?


<내가 가는 길 2권에서 계속>
내가 가는 길 1

1판 1쇄 찍음 2011년 11월 1일
1판 1쇄 펴냄 2011년 11월 3일

지은이|준철
펴낸이|정필
펴낸곳|도서출판뿔미디어

기획총괄|이주현
편집장|이재권
편집책임|심재영
편집|문정흠, 이경순, 주종숙, 이진선
관리, 영업|김기환, 임순옥

출판등록|2002년 9월 11일 (제1081-1-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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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8,000원

ISBN 978-89-6639-376-3 04810
ISBN 978-89-6639-375-6 04810(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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