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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 1권 (24화)
13.변화 (3)
손을 잡고 이동 버튼을 누르자 영화관이 보였다. 주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새로 생겼다고 꽤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다음에 볼까?”
“오빠 저기 봐.”
날아다니는 전광판에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매표소에서 인원을 말씀하시면 그 인원만으로 극장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상영 시간은 들어가서 ‘플레이’라고 외치면 시작됩니다.
―상영 중 일시정지를 사용할 수 있지만 1시간 이상 지나면 자동으로 상영이 계속됩니다.(다른 기능은 없음.)
―극장 안에서는 가상 부부의 경우 간단한 스킨쉽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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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인은 꽤 긴 안내문이었지만 오직 하나의 문장만 보였다. 스킨쉽이 가능하다는 문장 말이다.
‘역시 이 회사는 대박이야. 대박! 진정 유저를 위한 서비스가 좋단 말이야.’
혜진도 봤는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동인이 이끄는 대로 매표소 앞에 섰다. 극장 요금은 5,000원으로 이곳 물가에 비해 비쌌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한다면 둘이 보면 할인 혜택을 받아도 최소한 20,000원이 넘는다.
“2명요.”
“10,000원입니다. 결재하시겠습니까? 결재 감사합니다. 영화 상영 시간은 2시간 30분이고 3시간 40분 뒤면 자동으로 극장이 사라집니다. 일시정지를 사용하거나 안 하시거나 같은 시간이 적용됩니다. 모두 관람 후에 ‘이동’이라 외치시면 극장 앞 이동 포인트로 이동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환상적이었다. 이 얼마나 멋진 배려란 말인가.
오동인은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편안한 좌석,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팝콘과 음료수, 일시정지 후 맛볼 수 있는 달콤한 키스와 스킨쉽,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하고 재밌는 영상들.
영화가 끝이 났다.
오동인은 이곳 리얼월드에서 영화를 상영한 사람이 부러웠다. 이건 안 봐도 성공이었다. 소설의 내용을 생각한다면 내년쯤이면 2부가 나올 텐데. 기다려진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혜진아, 우리 밖에서 만날까? 오빠, 오늘 한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좋아요.”
두 남녀는 약속 장소를 정한 후 리얼월드에서 벗어났다.
14.누가 내 욕을 해? (1)
한편으로는 따뜻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혹독한 겨울이었다.
그 날 이후, 매순간 일어나는 살기에 미쳐 버리는 듯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기억이 희미한 것을 보면 정말 미쳐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입·출력 캡슐로 살기를 조절할 수 없는 상황. 일권이 형이 왔다가 나를 제압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난 완전히 광인이 되었을 것이다.
백호 108식. 그가 남기고 간 춤사위의 정식 명칭으로 살기를 다스리는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권이 형은 백호 108식의 정확한 호흡법을 전수해 주었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일권이 형이 돌아간 후 24시간 백호 108식에 매달렸다. 입·출력 캡슐에서도, 깨어 밖에 있을 때도. 그리고 며칠 전 살기를 지울 수 있었다.
“후∼”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지만 마지막 동작과 함께 깊은 숨을 내쉬었다. 온몸을 휘돌던 따뜻한 기운이 단전으로 내려가 앉는다.
“여기.”
메이가 건네는 물을 한 잔 마시곤 샤워실로 향했다.
깡마르고 날카로운 인상의 내 모습이 어색하기만 하다. 음식다운 음식을 먹은 것이 언제였더라?
그날 이후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어났고 육류와 붉은 음식을 보면 토하기 일쑤였다. 식사를 할 수 없을 지경, 영양제와 아라가 구해 준 각종 약초가 아니었으면 영양실조로 쓰러졌을 것이다.
매콤한 김치에 담백한 고기를 얹어 싸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지만 단전에서 올라온 한 가닥 기운이 금세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 오늘 점심은 보쌈이다.
“아라야, 오늘 점심은 보쌈으로 부탁해.”
“괜찮겠어요?”
“그럼, 언제까지고 약에 의지해 살 수 있나? 이제 벗어나야지.”
“알았어요!”
두어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무사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곤 커피 한 잔의 여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듯하다.
“참, 영화는 그럭저럭 성공했어?”
희미한 지난 기억에서도 일에 대한 건 없다. 그 말은 그동안 아라가 이끌어 왔다는 얘기. 그중에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대박이죠. 환타지월드에서 누적 관객수가 2억 명이 넘었어요. 가상현실 속이라는 점 때문에 5,000원이라는 싼 가격으로 상영을 했는데 현재까지 해외에서 결재된 금액의 각종 수수료와 경비를 제외하고도 8,000억 원 넘게 벌었어요. 지금도 세계 각 국에서 접속이 이루어지고 있고 영화 때문에 환타지월드 회원 수도 증가 추세예요. 또, 한 직원이 아이디어를 낸 캐릭터 모드라는 것 때문에 2번, 3번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캐릭터 모드?”
“한마디로 자신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거죠. 즉, 주인공의 관점에서 영화가 진행되어요. 만들 때 가상현실에서 만든 거니 충분히 가능하죠. 그리고 영화 덕분에 광고도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어요. 리얼월드의 다섯 광장 중 하나인 제1광장의 메인 광고판 중 하나가 유명 자동차 회사에 한 달 110억에 팔렸어요. 메인 광고판의 경우 총 열 개 모두 비슷한 가격에 팔리고 있고요.”
현재 미국 슈퍼볼 결승전 15초 광고가 50억이다. 그 정도에 비하면 한 달 동안 24시간 내내 틀어 주는 광고 금액으로 110억은 싼 편. 좀 더 지켜보면 가격이 오를 것이다.
그리고 제1광장만 하더라도 광고할 수 있는 공간은 넘쳐 난다. 물론, 광고 효과를 봐야겠지만 말이다.
“문제도 있어요.”
“무슨 문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전 기금 3%를 내라고 했어요. 하지만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도 저촉되는 것이 없는 상황이니 거부하고 있죠. 운영위 측은 소송을 준비 중이에요.”
“3%로면 270억인가?”
“300억이 넘죠. 입장료의 3%니까요. 법무법인의 경우,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어요. 승리 수당으로 30억을 원하고 있는데…… 어쩔 생각이에요?”
“음…… 그럼, 법적으로 3%를 줘야 하는 건가?”
“5% 이하 범위에서 정할 수 있어요.”
“그럼,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고 하지, 뭐. 국내 관객에 대한 3% 아님, 전체 관객에 대한 1.5%로. 둘 다 싫다면 법적으로 승부하구.”
“괜찮은 생각이네요. 그 문제는 넘어가죠.”
“다른 문제도 있는 거야?”
“전국 극장주 협회에서 비정상적인 영화 유통에 대한 항의가 들어왔고, 영화 제작사 중 KJ에서 진하를 만나길 원하고 있어요. 각 정당에서도 한 번 보자는 연락이 왔고요. 각 방송 매체에서도 인터뷰를 요청하고 있어요. 그리고……(중략)…… 끝으로, 연봉 협상 기간인데 연봉 협상이 원활이 되고 있지 않아요.”
많기도 하다. 대부분이 날 보자는 얘기였지만 별 영양가가 없어 보인다.
다만 KJ가 진하의 어머니 쪽 집안이라 살짝 고민된다.
“연봉 협상이 왜?”
“팀장들과 TSB팀을 제외하곤 작년과 동일한 연봉을 제시했거든요. 그게 불만인가 봐요.”
현재 한국 대졸 초임이 평균 5,000만 원 정도. 작년 4월과 8월에 계약한 이들은 연봉 5,000만 원으로 계약했고, 팀장들은 6,000만 원에 계약했다.
“설날 보너스 안 줬어?”
“연말에 팀장과 팀원들에게 각각 1,500만 원, 1,000만 원씩 보너스가 나갔어요. 8월 입사한 직원들은 그 반만 나갔고요.”
“많이 줬네. 그런데도 불만이 있다는 거야?”
“진하와 저의 이름으로 된 주식 배당금이 2조가 넘었거든요.”
…….
내 주식 보유량은 30%, 아라의 주식 보유량은 25%, 나머지 45%는 가상 인물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대략 4조원을 주식 배당금으로 썼다는 소리.
현재 제계 1위인 기업의 주식 배당금이 2조가량. 도대체 얼마를 번 거야?
“작년 한해 L&J소프트가 벌어드린 돈은 대략 총매출액 15조원. 제1, 2연구소에 기술 사용료와 연구비 지원 비용, L&J의지와 L&J호텔 설립 자금, 서버 증축에 대한 비용 등의 모든 지출과 올해 사용할 예산 금액, 자기자본금 확충까지 하고 세금 납입금까지 준비를 마친 후 남는 돈을 배당한 것뿐이에요.”
회계 따위 아라에게…… 맡기자.
그러니까, 내가 많이 벌었으니까 연봉을 올려달라는 얘기다.
“연봉 협상이 끝난 사람들은 누구지?”
“팀장들과 TSB팀 그리고, 미화팀과 경비팀 이렇게 마쳤어요.”
뭔가가 쎄하다.
“혹시, 뒤에서 조정하는 사람이?”
“네, 8월 입사한 직원 중 한 명인 곽철용 씨가 노동조합을 설립하려고 하고 있어요. 마음이 흔들린 직원들이 꽤 많아요.”
악덕 고용주가 된 기분이다.
노동조합이 생기는 건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벌써 연봉 협상을 하려 하면 감당이 안 된다.
호텔, 리조트와 의지까지 포함하면 나쁜 선례가 될 듯하다.
현대 기업 사회와는 반대의 길을 걸으려는데 첫 번째 장애물이다.
일단, 팀장들을 소집했다. 간만에 내 얼굴을 본 팀장들은 놀라는 표정이다.
“건강이 나쁜 건 아니니 걱정들 말아요. 오늘 제가 여러분을 소집한 이유는 연봉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직원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해서입니다. 현재 직원들의 연봉 협상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다들 눈치를 본다.
평소 나와 친하다고 회사에 소문이 자자한 형수 형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당황하는 눈치다. 그러니까 평소에 자랑 좀 그만하지, 으이그!
“저…… 그러니까, 작년 연말에 보너스 나올 때까진 분위기가 너무 좋았는데…… 요즘은 의욕들이 많이 없어 보입니다.”
“원인은 뭡니까?”
“저…… 그러니까, 회사 배……당금 소식을 듣고는…….”
배당금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저……그러니까’는 빼요!
“김형수 팀장의 말은 제 배당금 때문에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생겨서 의욕이 없다는 그 말입니까? 그렇다면 계약을 완료한 팀장님들은 불만이 없었습니까?”
“그…… 저희들이야, 회사의 관리자니 노동조합 자체에 포함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오호∼ 관리자만 아니면 김형수 팀장도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저희 연봉은 인상도 됐고, 그게 불만이 있는…… 아니,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다른 팀장들도 같은 의견입니까? 다른 의견 있으시면 편히 말해 보세요.”
“…….”
하긴, 나라도 말 못하겠다.
“일단, 여러분이 스스로 관리자라고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 큰 힘이 되는군요. 일단 회사의 기본 정책에 대해 말씀드리죠. 연봉은 업계 평균을 기준으로 할 생각입니다. 물론, 연차에 따른 연봉 인상은 주어질 테지만 그 역시 평균에 근거합니다. 대신, 직급에 대한 연봉은 보장합니다. 여러분의 현재 연봉은 대리급과 과장급 사이입니다. 조직이 커져 나가면 과장을 뽑아야 하고, 부장도 뽑아야겠죠. 즉, 직급이 올라가면 그에 상응하는 연봉이 있을 겁니다. 이건 연차와 전혀 상관없습니다. 아마 지금 여러분들이 가장 큰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파격적인 승진의 길도 열려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 사실을 팀원들에게 주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표정만으론 저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다.
“제가 말한 것에 예외가 있는 팀이 있습니다. TSB팀의 경우는 영업을 주로 담당하기에 영업 성과에 맞게 별도의 인센티브를 부여할 생각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음, TSB팀장의 얼굴 표정은 알 수 있다. 무척 기뻐하는 얼굴이다.
“곽철용 씨가 어느팀 소속입니까?”
“고객 만족팀입니다. 죄송합니다.”
“팀장이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그럼, 곽철용 씨에게 전하세요. 이틀 뒤, 노사 협의를 진행하자고 하세요. 대신, 노동조합에 가입할 명단과 그들의 확인 도장을 받고 각 팀의 팀원 중 한 명씩 대동하는 걸로 하자고 하세요. 여러분도 사측으로 참여하도록 하세요.”
“저희도 참여해야 합니까?”
형수 형이다. 그럼, 혼자 뻘줌이 들어가 노사 협의를 해야겠어요? 폼이 안 나잖아요, 폼이!
***
머리에 둘러진 천에 ‘권리쟁취’라 적힌 빨간 글씨가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그냥 붉은 글씨일 뿐이다를 되뇌이며 자리에 앉았다.
곽철용은 비장한 눈빛으로 악수를 청한다.
“곽철용입니다.”
“이진합니다.”
아직 노동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대화이니 예의를 지켜야 했다.
가운데 자리에 앉자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착석한다.
“여기 노동조합 가입 의사를 밝힌 사람들의 명단과 확인서입니다.”
그가 건네는 명단을 받고 확인을 했다.
123명. 현재 회사 인원의 3분의 1정도 인원이다.
꽤나 이런 쪽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