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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엘 전기 1권(25화)
12장 폭풍의 핵 카미엘(2)


루시엘의 영주 집무실.
오늘도 시리스는 밖으로 통통 튀어 다니는 장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도착 예정일이 훨씬 지났음에도 아직도 귀환을 하지 않고 있는 딸의 생각에 머리를 집었다.
“양자를 들이던가 해야지, 내가 제명에 살기가 힘들 것 같군.”
얼마 전 루시엘의 상단에서는 원행이 있었고, 항해를 해 본 적이 없는 딸은 기어코 자신을 끼워 넣어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때 딸을 꺾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소신이 직접 나섰어야 했거늘…… 송구하옵니다.”
기사단장 라파엘로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원행상단의 선박에 탈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라는 말에 마르엔은 무작정 기사단 전부를 명단에서 제외하고 단독으로 원행을 떠난 것이다.
“아니네. 그것이 어찌 자네의 잘못인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라파엘로를 뒤로하고 창문 밖을 응시하던 시리스는 벌컥 열리는 집무실의 문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지고 말았다.
철컹!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검을 빼어들려던 라파엘로는 시리스의 만류로 그만두며 그를 응시하였다.
“각하! 영애님의 신변을 파악하였습니다!”
“뭐라! 어디 있다더냐?”
“그, 그것이…….”
딸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시리스의 공동은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가문에서 중요한 중심축이 되어야 할 큰딸의 부재는 시리시에게 큰 타격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병사에게 시리스는 답을 재촉하였다.
“어서 말하라!”
“그것이…….”
“어허!”
“카미엘이라는 자와 함께 카이사르로 귀환하였다고 합니다.”
“카, 카미엘!”
시리스는 그만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여 입만 뻥긋거릴 뿐이었다.
충격에 빠진 그를 대신하여 라파엘로는 호통을 쳤다.
“만약 거짓을 고한다면, 당장 목이 달아날 것이다!”
“아이고, 소인이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집무실 바닥에 연신 머리를 찧으며 진실을 관철하는 병사의 행동을 보니 거짓은 아닌 듯했다.
시리스는 눈을 감았다.
하필이면 딸이 몸을 의탁한 곳이 원수의 집이란 말인가.
“음…….”
“소신이 가서 모셔오겠나이다.”
딸의 신변은 분명 이상이 없을 것이다.
그는 칼리어스의 검공이며, 일국의 공작이다.
원수의 집안이기는 하나,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직접 움직이겠다. 신세를 졌으면 갚아야 하는 것은 사람 된 도리이다.”
“하오나, 주군!”
그가 직접 움직이면 일이 커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랭턴이 무슨 꼬투리를 잡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 불상사를 막을 방법은 미연에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다.
“최소한의 인원을 편성하라. 당장 카이사르로 내려간다.”
“알겠습니다. 곧 준비해 올리겠나이다.”
부복을 하고 자리를 떠난 라파엘로의 인기척이 저만큼 멀어지자 시리스는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쾅!
“어지간히 운도 좋구나! 하필이면 그 놈에게 걸려들 것은 뭐란 말인가!”
시리스는 떨리는 입술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평정심을 되찾은 시리스는 옷매무세를 가다듬으며 집무실을 나섰다.
‘쥐방울만한 아들놈 때문에 목에 힘 꽤나 들어갔겠구나!’
시리스는 오늘따라 아들을 낳지 못한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카이사르 본성의 입구.
랭턴을 비롯한 가신들과 제피로스가 멀리서 병사들을 이끌고 귀환하고 있는 카미엘을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엘레니아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는 듯, 손에 들고 있는 바구니를 계속 열었다 말았다 하고 있었다.
“공자님…….”
도대체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던지 눈에 가시가 돋칠 것 같았다.
이제 그의 이목구비가 훤하게 보이는 거리가 되자, 엘레니아는 그만 참지 못하고 그를 향에 뛰기 시작했다.
“에, 엘레니아!”
당황한 랭턴과 제피로스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사람을 반기는 것은 본 적이 없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잿빛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저렇게 좋을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이 순간을 위해 밤을 설친 날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그의 얼굴이 아른거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그녀였기에 이성이 몸을 지배하긴 힘들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달리면 그의 얼굴을 만질 수 있다.
카미엘은 전력을 다하여 달려오는 그녀를 발견한 모양인지 말의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엘레니아!”
말의 배를 무식하게 차며 그녀에게 돌진한 카미엘은 그녀의 얼굴이 보이자,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자신의 무릎으로 들어올렸다.
그의 향기가 엘레니아의 코를 타고 가슴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실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그의 향기에 그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흡!”
순간 카미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지만 그녀를 물릴 수는 없었다.
생사를 확인할 길도 없어 그저 하늘에 기도만 올리며 수개월을 지냈을 그녀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의 온기를 전하며 진한 키스를 이어가는 그들을 보며 랭턴과 제피로스는 혀를 찼다.
“저, 저!”
“험험, 청춘이 좋기는 좋군 그래!”
가신들은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했다.
바다에 살면서 바다로 나간 연인을 기다리는 기분을 겪어보지 않은 가신은 없을 것이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듯, 주름진 눈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공자가 장가를 가긴 갈 모양입니다.”
“허허, 그러게 말이오. 저렇게 좋아 죽는 연인도 있고.”
“어찌 되었던 보기 좋습니다. 각하, 기왕지사 공자도 돌아왔으니 혼례를 올리시지요.”
랭턴은 슬며시 제피로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랭턴을 주시할 뿐이었다.
랭턴은 살며시 눈을 감아본다.
인생의 옳고 그름은 정치적 인연과 관련되어 비춰지면 안 된다.
선대 공작의 말이었고, 그는 이제까지 그것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래, 혼례를 올립시다. 어차피 홀아비와 혈기왕성한 아들이 살아가기엔 힘든 세상이 아닌가? 이제 골칫거리 좀 치우고 편하게 살고 싶군.”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이고, 제가 살다 보니 각하와 사돈을 다 맺습니다. 하하!”
손을 맞잡은 둘은 의기투합을 의미하는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였다.
하지만 둘은 뒤에서 들리는 호통에 손을 놓치고 말았다.
“누구 마음대로 혼례를 올리네 마네 하는 것이오?”
“왕세자 전하!”
랭턴과 제피로스를 비롯한 가신들은 모두 그의 앞에 부복을 하였다.
따뜻한 듯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날카로워 보이는 그의 눈매는 날이 갈수록 칼번을 닮아가고 있었다.
“아직 공주의 부마가 결정되지 않았소. 국왕 폐하께서는 공주의 부마를 간택한다는 공문을 내리셨으니, 공작가에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오.”
“아, 아니. 그런 일이…….”
여유로운 미소사이로 보이는 예리함은 그의 말을 거역하면 큰일이 날 것처럼 느끼게 하였다.
“아니, 내가 일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랭턴, 자네의 아들은 왕가에 일원이 되어 폐하와 나의 충신이 될 것이라고.”
이제 세력을 불려나가는 공작가의 힘을 통째로 집어삼키겠다는 의도를 정면으로 드러낸 유피아는 제피로스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자제는 굳이 공작이 아니라도 혼처는 많을 것이지 않나? 하지만 우리 집안은 다르네. 적어도 랭턴 공의 집안 정도는 되어야 안심을 할 수 있네.”
“전하!”
부복을 한 제피로스를 향하여 협박을 하고 있는 유피아는 상당한 카리스마를 풍기고 있었다.
과연 일국의 왕세자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기개를 칭찬하기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아니, 우리 세실리아가 빠지는 것이 뭐 있단 말인가? 아, 성격이 좀 거칠긴 하지. 하지만 그것은 결코 흠이 되지 못하네. 그렇지 않은가?”
난감한 표정의 두 사람을 뒤로하고 멀리서 다가오던 행렬은 왕세자를 보자 일제히 다가와 부복을 하였다.
카미엘은 말에서 내려 엘레니아와 함께 부복을 하였다.
“신 카미엘, 왕세자 전하를 뵈옵니다!”
“소녀, 왕세자 전하를 뵈옵니다.”
다소곳하게 카미에의 옆에 부복을 한 엘레니아를 본 왕세자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꺾으며 말했다.
“그대가 제피로스 공의 영애인가? 저번에 연회에서 본 적이 있던 것 같군.”
“예, 전하. 그러하옵니다.”
날카로운 그의 시선이 엘레니아에 머물자 카미엘은 영문을 모르고 왕세자를 올려다보았다.
묘하게 긴장감이 증폭된 그들의 뒤로 한 사내가 다가와 부복하였다.
화려한 백색 기사단 복을 입은 시리스가 왕세자에게 부복하며 예를 갖추었다.
“신 시리스, 왕세자 전하를 뵈옵니다!”
“아니, 공작은 또 여기에 무슨 일로 오셨소? 설마 카미엘의 생사가 궁금해서 온 것이오?”
순간 랭턴의 동공이 터질 듯 확대되었다.
난데없이 카이사르에 나타난 시리스를 보며 일동 또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적진이나 다름없는 카이사르에 나타난 그의 영문 모를 행동은 부복을 한 랭턴을 긴장시켰다.
굳어 있는 랭턴의 표정 뒤로 맑고 청아한 자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 왕세자 전하를 뵈옵니다.”
얼떨떨한 표정의 유피아에게 부복한 시리스가 입을 열었다.
“제 여식이옵니다.”
그제야 카미엘의 행렬에 끼어 있던 여인의 정체가 밝혀졌다.
일동은 입을 쩍 벌리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점점 부복을 한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왕세자는 조금 정리가 필요한 것을 느꼈다.
“모두 일어나라!”
유피아의 명령을 받은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고개를 숙이며 왕세자에게 예를 표했다.
이윽고 왕세자를 포함한 일동의 시선이 시리스 부녀에게 쏠린다.
“아니, 그대의 여식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공교롭게도 원행 길에 올랐던 제 여식이 부득이하게 카미엘 공자에게 신세를 진 모양입니다.”
“신세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르엔은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해적 때를 만나 위기에 처해 있던 소녀와 상단을 카미엘 공자가 구해주었습니다. 만약 공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소녀는 이미 죽은 목숨일지도 모릅니다.”
“오호, 카미엘 공자는 여기저기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다니는군. 이 정도는 되어야 부마가 될 자격이 있지.”
‘부마?’
순간 시리스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카미엘과 엘레니아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며 곰곰이 그의 뜻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마르엔은 방금 본 카미엘의 키스와 부마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뭐, 뭐라?”
시리스의 표정이 가히 썩은 오이와 견줄 만큼 일그러진다.
엘레니아와 제피로스의 눈빛은 날카롭게 카미엘을 향하였고, 랭턴 부자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그것이 남녀 간의 은밀한 것은 아니었으나, 함께하는 일주일은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슬그머니 엘레니아의 손을 잡으려던 카미엘은 그의 손등을 찍어 누르는 엘레니아의 손톱을 느끼고는 절망하고 말았다.
‘하필이면 지금 그딴 말을 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일동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온 세실리아는 새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공주마마!”
일동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예를 표하였다.
“그래, 공자께서는 참 여러 여인을 거느리고 다니시는군요.”
고개를 숙인 카미엘은 흠칫 놀라 공주를 바라보았다.
“하긴 그것도 능력입니다. 매력이 없는 남자에겐 여자가 꼬이지 않는 법이니.”
“그런…….”
왕세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일동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어차피 이곳에 모두 모였으니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소. 어제부로 국왕 폐하의 명으로 세실리아 왕녀의 부마 간택을 시작하였소. 백작 가 이상의 자제들은 혼례를 미루고 왕도로 올라오기 바라오. 물론, 카미엘 공자. 자네는 국왕 폐하께서 비공식적으로 내정한 부마이니 반드시 왕도로 올라오기 바라네. 참고로, 이것은 왕명이네.”
부마 간택의 소식을 들은 시리스는 눈을 돌려 카미엘을 보았다.
지금 카미엘이 부마가 된다면 시리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강적이 생기게 된다.
차라리 제피로스와 혼담을 성사시키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껄끄러운 세력을 만드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최종간택에서 떨어지면 다른 집안과도 연을 맺을 수 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순간 눈이 동그래진 랭턴 일동과 유피아의 눈이 그에게 몰린다.
“아니, 딸을 가진 아비로서 좋은 혼처에 욕심이 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카미엘 전기』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