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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1권



드림 1권 (1화)
Prologue 1 리멤버 다이스 (1)


태초.
신의 위(位)를 탐낸 신족들이 나타났다.
자신들의 완벽함을 자랑하며 오만했던 그들은 스스로 가장 높은 보좌에 오르려 했다.
배역한 그들이었지만 그들을 사랑한 신은 그들에게 돌이킬 기회를 열어 주셨다. 그들을 진멸시키지 않고 다만 어둠으로 내쫓으신 것이다.
이후 배역한 이들이 쫓겨난 그곳을 천계와 구분 지어 마계라 불렀고, 쫓겨난 이들을 마족이라 불렀다.

신은 혼돈의 상황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니, 이를 현상계, 혹은 중간계라 불렀다.
마족들은 신족과 대적하며 현상계를 질시하였다. 현상계의 모든 피조물을 증오했고, 그것을 파괴하려는 악의를 품었다.
신의 은총 속에서 이루어진 현상계의 아름다움이 그들의 질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무엇보다 신족과 함께 평화를 누리는 현상계의 피조물을 증오했다.
현상계가 신의 은총 가운데 번성하고 있을 때였다.
현상계는 신족과 마족의 전장으로 변하고 만다. 마족이 전격적으로 현상계를 통해 천계를 침범했기 때문이다.
기습.
축적된 마계의 힘은 어느덧 천계의 힘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신족은 신께서 맡긴 현상계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에 신족은 신의 피조물들에게 권능을 나누어 주며 마족과 대적했다.
이것이 바로 신마전쟁의 향방을 결정하는 터닝 포인트였다.
초토화된 현상계에 이어 천계마저 짓밟히던 상황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신족의 권능을 나누어 받은 신의 피조물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어느 때부턴가 마족들이 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피조물의 조력에 힘입은 신족은 결국 마족을 어둠으로 다시 내치게 된다.
신마전쟁의 승리, 그 이면에는 피조물의 헌신적인 희생과 조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희생과 조력에 가치를 부여한 것이 리멤버 다이스였다.

리멤버 다이스.

그것이 바로 신족이 신의 피조물들에게 나눠 준 권능의 이름이었다.
후대에 비로소 명명된, 언급조차 비밀이 되어 버린.

한편, 마계로 도주한 마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았다.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이름에 저주를 퍼부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와 현상계의 모든 피조물들을 찢어죽이고 현상계를 소멸시킬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권능을 오염시켰다.
다시는 신족들이 신의 피조물과 권능을 나누지 못하도록 마황의 심장에서 나온 피를 주입시켰다. 권능을 오염시킨 것이다.
오염된 권능은 신족까지 타락시킬 정도였다. 결국 오염된 권능의 대부분은 천계에 봉인되고 나머지 일부는 마계로 떨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터인지 마족들은 마계의 황실에 보관하던 오염된 권능을 조각내 주사위 형태로 만들어 현상계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비로소 그 권능을 리멤버 다이스라 불렀다.



Prologue 2 분리된 시대


오염된 권능.
하지만 이 권능은 두렵고도 위대한 역사의 바탕에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어느 누구도 오염된 권능의 힘과 효능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다만 그것을 소유한 자들이 일으킨 역사적인 사건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문화대륙 테헤란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아트란 왕립 도서관 입구에 새겨진 비문이 있다.

마나시대,
그 위대한 초인의 세대여.

마도시대,
그 찬란한 메지션의 문명과 신비여.

자유시대,
방황과 분열 속에 담긴 아름다움이여.

암흑시대,
그 처절한 흑암의 고통이여.

놀랍게도 이 네 시대는 문명으로 구분한 인류의 역사였다.
신마전쟁 이후 남겨진 신족의 조력자들은 고대의 초인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인류는 놀라운 문명을 이룩한다.
이른바 초인시대다.
남겨진 기록은 그리 많지 않지만 수많은 초인과 그들이 이끄는 이종족들이 이 문명과 함께 눈부신 문명을 꽃피웠다. 그들이 지닌 능력은 엄청난 분량의 산물을 만들 수 있었고, 그 풍부한 산물들은 인류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인류의 미래는 그처럼 영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주도권을 잡으려는 일부 초인들의 탐심으로부터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초인들 위에 서기 위해서는 더 큰 권능이 필요했다.
그런 그들에게는 천계에 봉인된 권능보다는 마계에 있는 오염된 권능이 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끊임없이 마계와 교감을 나누던 그들에게 마계의 귀족들은 주사위 형태로 가공한 오염된 권능을 내보낸다.
이른바 리멤버 다이스였다.
그리고 리멤버 다이스를 얻은 자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마계의 마물과 몬스터들을 끊임없이 소환하기 시작했다.
결국 초인시대는 끊임없이 소환된 마물과 몬스터로 인해 그 힘을 소모해 갔다. 그리고 마지막 타이탄 족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초인들이 사라진 인류의 삶은 처절했다.
죽음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마물과 몬스터를 피해 기나긴 도주의 길에 오른 인류는 서로의 자녀를 바꾸어 먹는 처절함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먼저 죽은 자의 고기를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야 했다.
그리고 살인자는 죽은 이의 고기를 아귀처럼 입에 담아야 했다고 한다.
초인마저 어쩌지 못한 마물과 몬스터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도주였고, 어떻게든 그날 하루를 연명하는 것이 과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처절한 위기 속에서 끝까지 싸워 새로운 문명을 이룩한 인류가 나타났다.
이른바 마도시대의 시작이다.
초인들처럼 마나를 그대로 이용하지는 못했지만, 인류는 마나를 가공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지식이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이 새로운 권능이었다고 전해질 뿐이다.
어찌 되었든 이 지식은 놀랍게도 단기간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문명의 주역들은 엄청난 이기와 수많은 마도 기물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드디어 마물과 몬스터를 몰아내기에 이르렀다.
인류는 번성했고, 찬란한 문명의 시대가 다시 열렸다.
그들이 만든 마도 기물들은 인류 개개인을 초인에 버금가도록 만들었고, 그들이 만든 이기들은 인류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도시대도 끝을 맞이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급격한 이기의 문명이 오히려 인류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많은 이기를 산출하기 위한 개발이 그들의 대지를 황폐하게 만들었으며, 연구에 미친 메지션들의 실험으로 찬란했던 빛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의 조직적인 반란이 일어나자 마도시대는 유지를 위한 동력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흑마법사가 참여한 고위 메지션의 실험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대륙이 나뉘면서 마도시대는 너무도 허전하게 사라져 버렸다.
마치 빛이 사라지듯 한순간에.

한편, 지각 변동에서 살아남은 인류들은 각처에서 투쟁을 벌였다. 이는 순수하게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쟁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각기 그들 나름의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차츰 그런 문화들이 교차하고 서로 만나면서 어느 정점에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발전과 통합이 서로 교차되면서 결국에는 새로운 문명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이 이른바 자유시대다.
초인시대처럼 초인들도 없고, 마도시대처럼 마도기도 없었다.
하지만 이전 시대들과는 다른 확고한 인류 공통의 문명을 이룩했다. 도시국가 형태로 이룩된 문명은 지각변동이 멈춘 대륙 위에서 다시금 자유를 기치로 삼은 문명시대를 이룩한 것이다.
분열과 방황은 힘을 필요로 했고, 채워진 힘은 투사의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다시 통합되고 또다시 분열되면서 이룩된 문명은 흑마법사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고, 마법이 천시되는 시대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일컬어 기사의 시대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방임에 가까운 자유의 시대도,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자유기사들의 힘도, 더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마치 마계의 마왕처럼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나타난 단 다섯 명의 인물에 의해 인류가 통합된 것이다.

그로부터 천여 년.
초월적인 힘도, 거대한 문명도, 자유의 아름다움마저 잃어버린 비참함의 시대가 지속된 기간이다.
이른바 암흑시대다.
철저한 통제 속에서 인류는 자유를 잃고 그저 소수의 몇몇을 위한 노예로서 삶을 연명하게 된다. 몇 번이나 반란이 있었다.
하지만 소수가 지닌 힘은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그야말로 권능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큰 권능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약화되기 마련. 더욱이 지배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혼자의 힘으로는 작은 장원 하나도 감당할 수 없을 경우가 생긴다.
그때, 지배자인 소수가 선택하는 방법은 자신들의 권한을 나누는 것이다.
권력이 더 많은 이들에게로 나누어질 무렵, 이전 시대에 지각변동으로 떨어져 나간 대륙 하나가 발견되었다.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자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던 대륙을 천 년 전에 최초로 대륙을 일통했던 지배자의 이름을 따라 테헤란이라 불렀다.
그리고 새로운 대륙은 테헤란 대제에 의해 최후로 멸망한 왕국의 이름을 따라 아모라스라 불렀다.
마도시대 이후, 끝까지 살아남아 자유시대를 만든 테헤란 대륙과 달리, 아모라스 대륙의 인류는 완전히 멸망했는지 몬스터만이 떠도는 무주공산이었다.
이후, 아모라스를 식민지로 개발한 테헤란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몇 백 년이 지나기도 전에 엄청난 문명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문화대륙이라 불리게 되었다.



Prologue 3 어느 바드의 이야기 (1)


“후후, 꿈이라고? 자네들은 꿈에 대해 아는가?”
휘익―
약간은 비관적인, 그리고 자조적인 바드의 첫마디에 알 만한 얼굴의 고만고만한 장정들이 휘파람을 불어댔다.
손가락 사이로 터져 나오는 휘파람은 날카로웠다. 그리 좁지 않은 선술집을 헤집으며 탁자를 두드리는 맥주잔의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소성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리는 일 없이 흥미로운 눈길로 오랜만에 나타난 바드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어댔다.
바드 역시 시끄러운 소성이나 장정들의 재촉도 아랑곳없었다. 그저 약간은 피곤한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특이하게 생긴 만돌린의 현을 천천히 고를 뿐이었다.
“시끄러워! 자네들이 내 가게 전세 냈어? 오랜만에 우리 펍을 찾아주신 에뜨랑 님을 기다리는 여유는 있어야지!”
“오랜만이니까 더 궁금한 거야! 에뜨랑 님, 1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어서 이야기를 풀어 보슈!”
“하하하, 롤이 몸이 달았구만!”
“저 친구, 이번에도 들은 이야기로 몇 번을 우려먹을 거야!”
“하하하, 아마 술 몇 잔은 얻어먹을걸?”
“이봐, 에디! 맥주잔으로 두드리지 말라고! 잔이 깨지면 이번에는 반드시 돈을 받아 내고 말 테니 알아서 해!”
“크핫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