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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1권 (25화)
Chapter 10 타워 브리지 (2)
그런데 그렇고 그런 중형 상단의 하나였던 호돈 상단이 불과 일 년 만에 서부 3국에서 가장 유수한 상단으로 일어선 것이니 어찌 잘했다고 박수만 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호돈 자작이 백작으로 승작하고 디비이의 실질적인 핵심으로 등장한 것은 대형 상단들의 입장에서는 기함할 만한 사건이었다. 거기에 시비 성의 입주 상단들에 대한 전체 결정권과 운영권을 지닌 권력 앞에서 대형 상단들은 아프다는 소리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버렸다.
펠리컨 상단이나 몬테 상단의 입장은 그 아픔이 더했다.
과거 제국의 물품은 대부분 펠리컨 상단을 통해 왕국으로 유입되었지만 지금은 다른 상단들도 수입을 하고 있고, 제국의 상단들이 직거래를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과거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수익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직거래하는 제국의 상단들이 많아질수록 마진율이 떨어졌다. 더구나 제국의 상단들이 거래를 틀 때, 호돈 상단을 지명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수익이 많아져도 머리 노릇을 하던 때가 그리운 펠리컨 상단인 것이다.
몬테 상단의 경우도 비슷했지만, 좀 더 심한 형태였다.
호돈 상단이 제7군단과 대신전에 기사 갑옷과 무기를 공급하면서 왕실이나 여타 군벌에서도 그들에게 주문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대대로 전쟁 물자는 몬테 상단의 전유물인데, 중대형 상단들이 끼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유력한 후보로 호돈 상단이 부각된 것이다.
어스는 호돈 백작에게 이 문제에 대해 유연한 대처를 요구했고 백작 역시 조심은 했지만, 그렇다고 주문이 들어온 것을 거절할 마음은 없었다.
어찌 되었든 호돈 상단은 주변의 질시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상단으로 발돋움하며 펠리컨 상단이나 몬테 상단과 같은 유수의 상단들로부터 미묘한 견제를 받는 중이었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 회한으로 땅을 치는 부류가 있었다.
손해라면 가장 큰 손해를 입은 부류였고, 배가 아프다면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팬텀 공작을 비롯한 토지와 도로부지를 공급한 네 명의 귀족들로, 가장 큰 회한은 팬텀 공작이었으며, 이어 리튼 후작과 말보로 자작, 그리고 가센 백작이 그들이었다.
리튼 후작이야 들어간 땅이 도로로 내준 20여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나마 덜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체 지분의 1%는 어마어마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귀한 후작의 몸으로 자신의 입을 스스로 쥐어박아야 했다.
겨우 2만 골드에 도로부지를 내준, 타타르 왕국과 인접한 서부 지역의 말보로 자작과 가센 백작의 회한도 동일했다.
그들은 가슴을 치며 한동안 식욕을 잃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동일한 습성이 생겼는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브리지스 로드라 불리는 대로가 보이는 지역으로는 절대 접근하지 않았고, 그쪽 방향으로는 의자도 놓지 않았다.
그중 압권은 단연 팬텀 공작이었다.
남부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났던 공작이 돌아온 것은 불과 1개월 전이다.
근 10개월 넘게 영지를 비웠기에 영지 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 줄도 모르고 돌아온 공작 일가였다.
아모라스 대륙의 최대 휴양지인 남부 베울 왕국의 해안가에 대저택을 얻고 가족들과 함께 최고의 호사를 누리다 시종들까지 그 비싼 포털을 이용하며 돌아왔다.
실로 기꺼운 나들이였다.
하지만 공작은 돌아온 지 일주일이 못 되어 드러눕고 말았다.
* * *
“아버님, 대체 그자들이 뭔 짓을 한 것입니까?”
“세상에 저게 대체 뭡니까?”
“미친 게야! 미친놈들이야! 미치지 않고서는 세상에 이런 놈들이 어디 있겠느냐?”
큰아들 사모스와 셋째 아들 헤일과 함께 리볼 강에 세운다던 다리를 보러 가는 공작이었다.
실컷 호사를 누리고 왔겠다, 즐길 만큼 즐겼으니 그 어리석은 자들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 주고 싶었다.
겸사겸사 닉스 부인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들들과 함께 가는 것이 내심 찜찜하기도 했다.
성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마차는 대로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 대로가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던 생각이 천리만리 날아가 버리면서 순간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하얀 견치석으로 깔아 놓은, 자그마치 50미터 폭의 대로가 끝도 보이지 않도록 길게 뻗어 있었다.
자신의 영지를 관통하는 대로이니 응당히 기뻐야 했다. 하지만 공작은 너무 화가 치밀었다.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북부에 널린 것이 화성암이니 견치석이야 그렇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50미터나 되는 넓은 도로 전체를 견치석으로 깐 인간들이 어디 제정신이겠는가 말이다.
사모스는 허탈한 듯 웃었고, 헤일은 황당해했다.
공작은 미처도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하며 닉스 부인을 떠올렸다.
가다 보니 길 좌우에 표지판이 나타났다.
“2킬로미터 전방에 오아시스? 저게 뭐냐?”
“글쎄요? 그림을 보니 여관이나 술집 같은데요?”
큰 표지판에는 대로와 좌우에 세워진 건물들의 그림이 있었다.
헤일이 문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모스를 바라봤다.
“형님, 우리 영지에 그런 것이 있나요?”
“너는 영지에 대해 그것도 모르느냐?”
“아니, 없는 줄은 압니다. 하지만…….”
머쓱하니 머리를 긁적이는 헤일의 시선은 끝까지 표지판에서 떨어지지 않다가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고개를 돌렸다.
넓은 대로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과 짐마차가 보였다. 아마도 건축하는 곳에서 오가는 물자 같았다.
“다리 놓는 곳에 성을 짓는다더니, 거기서 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아버님. 대로만 해도 대공사인데, 성까지 지으려면 정말 엄청난 물자가 필요할 겁니다.”
“후후, 그러기에 미친놈들 아니겠느냐. 내 반평생을 리볼 강에 다리를 놓으려 했지만, 결론은 불가능이었다. 어리석은 베아트리체가 재산을 갈취당해 돈지랄을 떨려는 것이겠지만…… 어쩌겠느냐, 절대 리볼 강에는 다리를 놓을 수 없는 것을.”
“하하, 어려서부터 큰형님에게 수없이 들었던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그 일로 상당한 돈을 잃으셨다고…….”
“넌 아버님 앞에서 그리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싶으냐?”
“하하. 죄송합니다, 아버지.”
사모스의 책망에 얼굴이 붉어진 헤일은 사과를 했다. 같은 아들이라도 장자의 권한은 그런 것이었다.
“허허, 됐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10만 골드를 쓸모없는 땅과 바꿀 수 있었지 않으냐? 더군다나 덕분에 영지에 이토록 큰 대로를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으냐?”
사실 다리를 놓으려는 꿈을 위해 허비했던 골드를 일거에 회복할 수 있던 것은 그 미친 자들 덕분이었다. 아니, 회복 정도가 아니라 이자에 갑절로 돌아온 보상이었다.
그런 생각에 다시금 기분이 좋아진 공작을 보며 사모스는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하하. 아버님, 돌아와서 곧장 성과 연결시키는 공사를 추진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그래라. 이런 길이면 왕도까지도 꽤 시간을 단축하겠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미친놈들에게 성에서 멀리 떨어지라는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다.”
“아닙니다. 괜히 엮여서 좋을 것 없지요. 소자는 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그래그래. 나중에라도 돈을 달라고 하면 곤란하지. 허허허.”
공작은 뭔지 모를 찝찝함을 털어내며 시원하게 웃었다.
2킬로미터 정도 가다 보니 과연 그림처럼 대로가 조금 좁아지면서 좌우편으로 길게 들어선 여관과 주점들이 보였다.
“세상에……. 이건 대체 뭐 하자는 건지…….”
“허허허, 정말 돈지랄들을 하는구나. 에이, 미친놈! 그렇게 돈지랄할 데가 없다더냐? 에이, 미친놈들!”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호통을 치는 공작이었다.
만일 적극적으로 혼인을 원했다면 베아트리체의 돈은 자신의 것이었는데, 그것을 몽땅 땅바닥에 뿌려 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었다. 베아트리체의 재산이 그 정도였을 줄은 공작으로서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화강암으로 올린 건물들은 여관만 해도 열 개는 되었고, 주점도 그 이상으로 좌우 20채는 넘었다.
도로 중간에 누가 들어간다고 저토록 건물들을 많이 지어 놓은 것인지, 과연 얼마나 사람이 많아서 저곳을 다 채우겠는가. 공작으로서는 한심하기만 했다.
하지만 큰 여관은 상당히 고급스러웠고, 작은 여관은 단출하면서도 상당히 정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길을 재촉하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짐마차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답답함과, 오아시스에 들고나는 인파를 보며 고개가 갸웃거려야 했다. 아직 낮인데도 드나드는 마차나 인파가 상당했던 것이다.
드디어 멀리 새로 지어지는 성이 보였다.
사실 타워 브리지 앞에 세워지고 있던 시비 성을 지날 때만 해도 공작은 아직 완공이 되지 않은 성의 규모와 그 웅장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만 미쳐도 제대로 미쳤다고, 그리고 같이 엮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었다. 어차피 투자할 리야 없지만 자칫 합작이라는 미명 아래 한통속으로 몰려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닉스 부인과 그 재산은 생각만 해도 화가 났다.
하지만 부쩍 많아진 짐마차를 보며 불안감도 커져만 갔다. 그리고 브리지 좌우에 우뚝 솟은 타워와 관리청 건물에 이어 브리지를 보는 순간, 공작은 결국 거품을 물고 기절에 이르고 말 터였다.
“세상에, 그 짧은 기간에 별짓을 다 했구나. 쯧쯧.”
“참,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강변 지역이 보이면서 높이 솟은 두 채의 타워가 보였다.
그리고 마차에서 내리면서부터 공작은 기함을 금치 못했다.
양쪽으로 세워진 타워 두 채니 관리청의 규모가 멀리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더구나 타워 좌우편에 늘어선 마차들의 수는 언뜻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순번에 따라 짐을 싣거나 부리는 하역 장소 같았다.
오른쪽 타워에서는 짐마차가 들어서자마자 인부들이 달려들어 끊임없이 짐을 타워 위로 올리고 있었고, 왼쪽 타워에서는 들어가는 마차마다 짐을 싣고 나오고 있었다.
오른쪽은 부리는 곳이고 왼쪽은 싣는 곳으로, 공작이 지켜본 잠깐 동안에 네댓 대씩의 짐마차가 지나갔다.
양 타워를 연결한, 관리청이라 부르는 아치형 건물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공작은 늘어선 사람들과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입국자와 출국자들이었다.
공작의 심장이 물레방앗간의 방아처럼 쿵쾅거렸다. 의심할 것 없이 다리가 놓인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누구도 믿지 않던, 오랜 연인이었던 베아트리체와 결별하면서까지 부인했던 다리 가설이었다.
한데 분명히 가설에 성공한 것이 틀림없었다.
공작은 리볼 강을 알고 있었다.
리볼 강의 무서움은 우기에 비로소 드러난다. 이제 우기가 되면 아무리 튼튼한 교각이라도 부서지고 말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공작이었다.
한편, 입국자들은 표를 하나씩 손에 들고 왼쪽 타워로 향했고, 오른쪽 타워에서도 표를 하나씩 든 사람들이 긴 줄과 별도로 창구로 가서 줄을 섰다.
상인들의 입출국을 담당하는 창구였다.
관리청에 들어서자 맞은편 벽에 크게 글씨가 쓰여 있었다.
입출국 요금 10쿠퍼.
다리 이용료 10쿠퍼.
도합 20쿠퍼.
안내문과 자세한 내용의 건물 이용 요금표였다.
마침 신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미리 중앙신전으로 향하는 디란 왕국의 순례자들이 그 큰 건물 안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외에도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로 인해 관리청은 장사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입국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상인들이 분명했다. 그 복장이나 풍기는 기운도 그렇지만, 그저 여행이나 하려고 디란을 찾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때, 공작은 이미 그로기 상태였다.
웬만하면 생각을 정리라도 하고 싶었지만, 다리를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를 지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관리청 직원의 안내로 타워 브리지의 실체를 보고는 충격에 그로기 상태를 넘어서면서 혼절해 버렸다.
그것은 적교라고도 불리는 흔한 줄다리였다.
<『드림』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