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드림 1권 (24화)
Chapter 9 사람들 (5)


“오, 오만!”
뭔가가 이상했다. 이건 사기의 수준을 뛰어넘는 파격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치려는 듯 호돈 자작이 나섰다.
“저희 입장에서야 전하께서 합작을 해 주시면 가장 좋겠지요. 그리만 해 주시면 전하께 전체 지분의…….”
“됐네! 자네들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10만 골드를 맞춰 주게. 자네들이 팬텀 성만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50미터 폭의 도로부지와 20평방킬로미터의 부지를 자네들이 말하는 조건대로 국왕 전하 앞에서 허락을 받아 자네들에게 넘기겠네.”
기다리던 말이었다.
이로써 리튼 영지에 이어 팬텀 영지에서도 100퍼센트 목적 달성을 이루게 된 것이다.
네 사람은 잠시 머쓱해하는 팬텀 공작을 바라보았다.
공작은 지금 10만 골드라는 금액을 요구한 것이 과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토록 알 수 있게 설명했건만 단 한 가지도 믿지를 않았다. 그 결과, 일행들은 10만 골드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만일 원한다면 이에 대해 위반 사항이 나타날 시, 건당 일만 골드나 그에 준한 대지를 그대들에게 넘기겠네.”
“전하, 여기 1만 골드 어음 열 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요청 드립니다. 저희와 합작해 주십시오. 그러면 전체 지분의…….”
“어허!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했네! 아몬 집사, 직인을 준비해서 모이라 하라!”
“예, 공작 전하.”
공작의 뒤에서 자리를 지키던 집사가 서둘러 움직였다.
마지막까지 예상에 어긋나지 않는 반응이었다.
사실 팬텀 공작이 이 사업에 함께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지분의 얼마를 주더라도 향후 귀족들 간에 일어날 분란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었기 때문이다. 마론 백작이 있다고는 하지만 공작이 함께함으로써 왕도 디란 시티에서 그만큼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내심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깨어졌고, 어스가 예측한 대로 일은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만큼 힘이 빠지는 호돈 자작과 일행들이었다.



Chapter 10 타워 브리지 (1)


어느새 일 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리볼 브리지, 혹은 타워 브리지라 불리는 다리는 이미 완공되었고, 다리로 연결된 대로 브리지스 로드(Bridge′s Road)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성이 형태를 갖춰 가고 있었다.
이른바 ‘시비 캐슬(CB Castle)’이라 불리는 브리지스 커머셜 바로우(Bridge′s Commercial Borough : 교량 상업 자치 도시)가 그것이었다.
타워 브리지 관리청 입구에 세워진 시비 성에는 이미 수많은 상인들로 넘쳐 나고 있었고, 입주를 원하는 상단들이 디란 왕국과 데이모스 제국뿐만 아니라 폴로 왕국이나 심지어는 경쟁국인 타타르 왕국에서도 몰려들고 있었다.
개중에는 근래 새롭게 일어나 낭트 왕국과 전쟁 중인 디폴트 왕국이나 그 아래 스텔라 왕국의 상인들까지 시비 성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시비 성의 지어진 건물에 입주하는 조건으로 최소 천 골드 이상의 거금을 지불하며 순위를 기다렸고, 입주를 상담받는 곳에서는 항상 상인들로 넘쳐 났다.
다리 앞에 세워진 관리청 건물에는 다리를 건너기 위한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고, 다리 양측의 타워에 연결된 동아줄에서는 엄청난 짐들이 오가고 있었다.
타워 브리지가 가설되면서 그 덕에 디란 국왕과 중앙신전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디란 대신전의 입지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높아졌다.
아직 모든 것이 완전한 궤도에 오른 것이 아니지만, 벌써 나타나는 파급효과는 실로 지대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타워 브리지 시행자들은 짧은 시간에 매우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우선 호돈 자작은 이 일로 인해 국왕의 치하를 받으며 백작으로 승작했다.
그로써 펠리컨 상단이나 여타 거대 상단의 치열한 견제에 놓이게 되었지만, 대세는 이미 호돈 상단의 승리로 드러나고 있었다. 호돈 상단이 디란 왕국뿐만 아니라 오히려 타타르나 폴로 왕국 같은 서부 3국에서 어느 정도의 입지를 굳혀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펠리컨 상단으로서도 생각 못할 약진이었다.
한편, 베어헌트 단장은 평생의 숙원이던 용병들의 본거지를 시비 성에 잡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베어헌트 예하의 용병 길드들은 시비 성에서 각종 일거리들을 맡으면서 새로운 삶의 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데이모스 제국의 서부 지역 용병 길드들도 베어헌트 아래로 들어오고 있었다.
바야흐로 베어헌트는 아모라스 서부 지역의 용병왕과 같은 위치를 얻어 가고 있던 것이다.
닉스 부인은 오랜 연인 관계였던 팬텀 공작과 결별했다. 팬텀 공작에 대한 실망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거금 10만 골드를 받은 팬텀 공작이 전 가족과 함께 남부 휴양지로 긴 여행을 떠나면서 공식적으로 결별을 전해 왔기 때문이다.
닉스 부인이 타워 브리지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는 내용을 파악한 공작의 최후 결정이었다.
공작과의 결별은 닉스 부인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베어헌트 단장과 잦은 만남을 가졌고, 단장의 친절과 위로에 드디어 닉스 부인이 마음을 열게 되었다. 이후, 닉스 부인은 베어헌트 단장과 매우 긴밀한 관계로 발전해 나갔으며, 근래에는 용병들의 대모 노릇도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평생 홀로 보낸 베어헌트도 닉스 부인의 부드러운 손길에 녹아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리고 마론 백작은 왕국 내에 확실한 군벌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전에 제7군단은 일종의 몬스터 토벌대로 치부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왕국 내에서 누구도 제7군단을 무시하지 못하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왕국 최대의 군벌인 카르와인 후작으로서도 막을 수 없는 대세인 양 마론 백작의 제7군단은 타워 브리지 경계에 기반을 두고 강한 군벌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특히 베어헌트의 용병 길드가 대부분 제7군단과 함께 움직이면서 국왕조차 칭찬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한편, 마론 백작은 처음부터 자신의 지분을 대성전에 기부했다.
마론 백작의 지분은 15%. 이로 인해 디란 대성전은 원래 자신들의 몫 5%를 합하여 모두 20%의 지분을 소유함으로써 디란 브리지스 엔터프라이즈(Deran bridge′s enterprise : 디란 교량 기업, 이후부터 ‘디비이’) 최대의 주주가 될 수 있었다.
이는 곧 디란 대성전이 타워 브리지의 최대 수혜자라는 의미였고, 상대적으로 마론 백작의 최대 지원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는 지분을 넘길 때, 기계적인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모든 수익 지분은 대성전이 갖는 대신에 권리 지분에 대해서는 마론 백작이 행사하는 것으로 약정되었던 것이다.
대성전의 입장에서는 마론 백작의 입지가 커질수록 자신들의 입지도 커지는 것이었기에 성전 기사단조차 스스럼없이 마론 백작의 제7군단과 함께 움직이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근래 속이 터지는 부류들도 있었다.
디란 브리지 엔터프라이즈로 인해 타격을 받거나 손해를 입어 배가 아픈 자들이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디란 왕국의 최대 군벌인 카르와인 후작이었다.
카르와인 군벌이라 불리는 후작의 예하에는 왕국의 7개 군단 중 1, 3, 6군단이 들어 있고, 모두가 카르와인 후작의 직계거나 가신들이 지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카르와인 후작 가문은 개국공신으로 역대 국왕들이 지근거리에 두었던 최측근 군벌이다. 하지만 차츰 군벌의 세가 커지면서 상황은 변했다.
번번이 국왕과 부딪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카르와인 군벌은 국왕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곤 했다.
권력은 자식하고도 나누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당연히 국왕과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현 디란 국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우선 낭트 왕국과의 전쟁을 통해 카르와인 군벌에 대항할 군벌들을 키웠다. 그중 하나가 마론 백작이었고, 오랜 기사의 가문이었던 마론 가문은 훌륭하게 카르와인 군벌에 대한 대항마로 커 나갔다.
하지만 카르와인 군벌은 결코 자신들에 대한 대항마를 용납하지 않았다. 국왕을 부추겨 작전을 진행시키며 백작에게 전권을 위임한 것이다.
당연히 백작은 작전에 대해 고사했고, 국왕은 카르와인 군벌이 배제된 전시 작전권을 살리기 위해 백작에게 강권을 했다.
결국 고사한 백작은 북부 리볼 지역으로 쫓겨나고 국왕이 키워 온 군벌들은 작전의 패배로 대부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사실 국왕이 중앙신전과 척을 지면서도 전쟁을 계속하려는 이면에는 카르와인 군벌을 전쟁을 통해 소모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의 힘만 소모시키고 만 것이다.
그런데 겨우 국왕의 힘을 약화시킨 상태에서 예전에 밀어낸 마론 백작이 갑자기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디란 시티와 군부에서 카르와인 후작의 영향력이 꺾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무슨 이유에선지 후작의 큰 후원자였던 대성전이 마론 백작의 편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베르베르 대신관의 편애는 눈에 드러날 정도였다.
카르와인 후작과 대신관의 관계는 서로를 돕는 공생 관계였다. 하지만 대신관은 마론 백작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심지어 성전 기사단을 제7군단에 보내 함께 훈련하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보여 주고 있었다.
이것이 전체 군부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다.
카르와인 후작은 디비이의 여파로 군벌과 가문에 드리워진 그늘에 전전긍긍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배아픈 것으로 이야기하자면 역시 펠리컨 상단을 비롯한 여타의 상단들이었다.
아모라스 대륙은 문화대륙으로부터 건너온 상단들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했다.
디란 왕국 역시 과거 호돈 상단과 같은 중대형 규모의 상단들이 십여 개나 있었다. 특히 펠리컨 상단이나 몬테 상단 같은 경우는 아모라스 12대상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규모가 큰 대형 상단들이었다.
타워 브리지는 이들에게 상위 상단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였고, 나머지 중대형 상단들에게도 그 교역량을 늘릴 수 있는 엄청난 기회였다.
제국의 물품이 저렴하게 쏟아져 들어왔고, 디란 왕국과 남부에서 올라온 물품들이 또한 제값을 받고 제국으로 팔려 나갔다.
과거 타타르 왕국을 거치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격대에 물건이 풀렸고, 그만큼 수요자들이 많아지면서 거래가 활성화되었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상품이 팔려 나가는 것이었다.
이는 각 상단의 판매량뿐만 아니라 수익률이 높아졌다는 의미였고, 재고량이 사라져 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상단들로서는 만세라도 부를 만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왕도와 직통으로 연결된 폭 50미터의 넓고 안전한 도로와 매 30킬로미터마다 만들어진 오아시스라 불리는 여관과 식당 시설, 거기에 신속한 국경 통과와 화물 이송은 상인들에게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모든 것을 다 얻어야만 직성이 풀리기에 배가 아픈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펠리컨 상단과 몬테 상단이 곧 그 주인공들이었다.
그들로서는 과거의 호돈 상단은 눈에 들지도 않았다. 겨우 변방의 영지에서 자생한 호돈 상단은 특이할 것도 없는, 젊은 열정으로 일어선 상단에 불과했다.
왕도에서 자리 잡을 정도로 컸다면 그것이 한계였다.
당대가 지나면 사라질 운명에 처하는 것이 대부분의 상단들이 걸어가는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