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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여의당천 1권(25화)
제7장 유림천야(儒林天爺) 남궁박(南宮博)과 천생독강시(天生毒彊屍) 거산(巨山)(8)


“암제 어르신은 무공이 극의를 넘어서서 반로환동하셨습니다.”
“아!”
남궁박이 얼른 공주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야! 덤벼!”
그때 당천이 명상에서 깨어나더니 뒤에 서 있는 거산을 향해 소리쳤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었다.
휘이익!
꽈르르릉!
거산은 당천의 명령이 떨어지자 천마의 무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헉! 권강!”
“설마!”
거산의 무공을 본 일행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장기와 남궁박은 거산의 무공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험!”
“……!”
암제가 남궁박과 장기를 향해 헛기침을 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아는 장기와 남궁박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괜히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위협이었다. 입을 잘못 놀려 사천당가가 마교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암제와 괴물 같은 당천이 있는 사천당가와 적이 되고 싶지 않다면 입을 다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밤새 치고받은 당천과 거산 때문에 일행은 폭포 옆 초지 위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밤을 지새워야 했다. 내공이 없는 공주만이 많이 지치고 놀랐는지 청란의 품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다음날 청란은 당천에게 거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저자가 누구인지 소개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보아도 자신의 사부를 죽인 악적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독을 풍기고 복면만 뒤집어쓰면 영락없는 철천지원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청란은 밤새 당천의 무시무시한 무공을 보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내가 잡은 거니까 내 거야! 눈독 들이지 마!”
“……?”
청란은 당천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당천은 무영신투처럼 범인을 잡으면 그자가 자신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 귀엽다.”
“이!”
당천이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는 청란을 향해 한마디 툭 던졌다. 청란은 자신을 희롱하는 듯한 그 말에 얼굴을 확 붉힌 채 이를 갈았다.
“쩝! 쟤도 아까운데!”
당천은 품에 있는 만천화우 암기통과 공주를 비교하면서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
공주는 당천이 자신을 쳐다보자 얼굴을 확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단지 손목만 잡혔을 뿐인데 당천만 쳐다보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 당천이 자신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쁜 놈!”
당천이 다시 공주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자 일행이 일제히 그를 향해 살기를 뿜어 댔다.
“왜? 아침부터 놀자고?”
“험!”
“아닙니다.”
“주군, 날씨 좋습니다.”
움찔!
당천이 주위를 둘러보며 한마디 하자 모두 얼른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렸다. 청란은 영악했다. 그녀는 금방 당천이 일행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성격을 어느 정도 눈치 챘다.
“공자님! 가시지요.”
청란은 당천에게 너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듯 남궁박을 향해 다정하게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좀 더 진도가 나가면 팔짱이라도 낄 것 같았다.
“험험!”
남궁박은 꽃 같은 소녀가 다정하게 웃자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랐다.
“나쁜 놈!”
이번에는 장기, 당 포두, 땡칠의 살기가 남궁박에게로 향했다. 당천의 말을 듣고 보니 공주의 미모에 가려져서 그렇지 청란의 미모도 보통이 아니었다. 아니, 귀여운 면에서는 훨씬 앞섰다.
당천은 머리카락이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어서 영웅건을 두른 절세미남인 남궁박과는 비교가 되지 못했다. 환골탈태해서 반로환동을 이룬 암제도 한 인물 하지만 암제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왠지 연륜이 있어 보여 다가가기 힘들었다.
산적, 말 대가리, 귀신처럼 보이는 얼굴을 가진 당 포두, 장기, 땡칠이 남궁박을 향해 노골적으로 살기를 퍼부었다. 어쩌다 보니 모두 당천을 주군으로 섬기고 있다는 동질감이, 절세미남 남궁박의 존재로 인해 형성되었다. 그러고 보니 대머리도 절세미남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서 동질감을 느끼는 일행이었다.
“공주마마! 가시지요. 조금만 가면 말이 있습니다.”
“네! 공자님!”
남궁박이 어색함을 벗어나기 위해 공주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청란이 공주를 대신해 다정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험!”
“죽일 놈!”
남궁박은 또다시 일행의 살기를 맨몸으로 받아야 했다.
“천아! 네가 가서 마차를 가져와라!”
“이……!”
“천하제일 포졸!”
대파산 아래에 두고 온 말은 물론 마차까지 끌고 오라는 암제의 말에 당천은 발작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천하제일 포졸님.”
모두 당천을 띄워 주었다. 이런 높은 산중에서 어찌 아름답고 연약해 보이는 여인을 걷게 하겠는가? 공주를 위해서라면 자존심 정도야, 하는 마음이 통했는지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 당천을 띄워 주었다. 심지어 땡칠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소리쳤다. 당천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대머리를 보고는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다른 녀석들은 아직 심부름시킬 정도의 경신법이 없지만 대머리는 쓸 만했다. 암제의 암향표에 뒤지지 않는 경신법인 것이다.
“야, 대머리! 가자!”
휘이익!
당천이 명령하자 거산은 천마행공을 펼쳐서 하늘을 빠르게 날아올랐다.
“에잇!”
휘이익!
당천은 자신에 비하면 굼벵이 같은 대머리에게로 돌아와 그의 뒷덜미를 잡고는 포졸신법을 펼쳐 빠르게 대파산을 날아올라 사천성 포청까지 날아갔다.
휘이익!
“헉! 귀신이다!”
갑자기 허공에서 당천과 거산이 나타나자 포졸들은 기겁했다.
“충!”
하지만 당천을 알아본 자들이 일제히 창을 세우며 경례를 했다.
“여기 이 마차 좀 가져간다. 야, 대머리! 들어!”
히이잉!
거산은 말이 묶여 있는 사두마차를 통째로 들어 올렸다. 말 네 마리가 기겁을 하고 울부짖었다.
“가자!”
휘이익!
“컥!”
“아부지!”
거산의 무지막지한 힘에 포졸들은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곧 하늘로 솟구쳐 사라지자 바지에 오줌을 지리거나 기절하는 자가 속출했다. 거산이 천마심공을 펼쳐 사두마차를 내공으로 보호했기에 천마행공의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천이 내공으로 잡아끌자 번개처럼 하늘로 솟구쳐 날아갈 수 있었다.
“헉!”
휘이익!
멀리서 거대한 마차와 말이 하늘을 나는 것을 본 암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연스레 놀라는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휘이익!
쿠구궁!
휘이잉!
“컥!”
암제의 놀라는 소리에 허공을 쳐다보던 일행은 당천과 거산이 말 네 마리가 묶여 있는 사두마차를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자 기겁했다. 특히 공주와 청란은 놀라다 못해 멍한 표정마저 짓고 있었다. 워낙 빠른 속도로 날아왔기 때문에 사두마차가 마술처럼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도 보였다.
“뭘 그리 속닥거리고 있었냐?”
“여기 있는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당천은 그렇게 빨리 날아오면서도 일행이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 듯했다. 당 포두가 일어서서 얼른 대답해 주었다.
“일단 이곳에 매장한 후에 후일 유족들이 시신을 찾으면 수습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곳의 사건이 관에 알려지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때문에 공주의 협조를 얻어 황실에는 살막의 살수가 아닌 산적의 습격을 받아 호위 몇몇이 살해당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사천당문의 도움으로 모조리 소탕할 수 있었다고 보고하기로 결정했다. 안찰사에게 보고하기 위해 암제와 당천, 거산, 땡칠은 공주의 호위무장이 되어야 했다. 공주의 호위가 달랑 네 명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들의 가공할 무위를 보면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황실 행사 때 멀리서나마 공주의 얼굴을 본 정삼품의 관료일 테니 공주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황제 또한 호위무장이 몇 죽었어도 사천당가가 공주를 호위한다고 하면 걱정을 덜 것이다.
“벌써 다 매장한 모양이네.”
“네! 암제 어르신이 도와주셔서 간단하게 끝냈습니다.”
암제의 암기가 땅을 파는 도구가 되었다. 그저 암기를 한 번 날리면 구덩이가 파이고 흙이 덮여서 무덤이 되었다. 살막의 살수들은 한곳에 모조리 모아 묻어 버렸고, 동창과 금의위의 인물은 한 사람씩 신분을 확인하고 비석까지 세워 주었다. 그리고 곤륜삼선의 무덤은 봉분을 만드는 대신 등선비 하나로 대신했다. 고루마장의 독까지 없애 버리자 이선, 삼선의 시체도 일선처럼 녹아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곤륜삼선은 살해된 것이 아니라 명호대로 등선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사부의 위명을 높이는 일이니 청란도 승낙했다.
“그럼, 가자!”
“……!”
당천이 떠나자고 말하자 모두 멍하니 사두마차를 바라보았다. 이런 깊은 산중에서 어떻게 사두마차를 끌고 가야 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말 한 마리도 끌고 가기 힘든 첩첩산중이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바로 절벽 같은 험한 산길이 나왔다.
“대머리, 들어!”
“네!”
히이잉!
초지에 내려와 풀을 뜯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던 말들이 다시 놀라 울부짖었다.
“타!”
“……?”
공주는 허공에 들린 마차에 어떻게 타란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공주마마! 제가 모시겠습니다.”
휘이익!
청란은 당천에 대해 그동안 간단하게라도 설명을 들었는지 더 이상 놀라지 않고 공주를 부축해서 사두마차에 탔다.
“헤헤! 출발!”
당천은 마부석에 앉아 고삐를 쥐고는 출발을 명령했다. 마부라도 된 양 신나는 표정이었다. 비록 고삐를 쥐고 있긴 하지만 내공을 운용해서 거산이 빠르게 천마행공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휘이익!
“험! 우리도 가자!”
당천과 거산의 상상도 못한 기행에 어이가 없는지 암제 역시 헛기침을 하고 암향표를 발휘해 마차를 쫓아갔다.
‘헉! 괴물 같은 놈들!’
장기는 전력을 다해 유운신법을 펼쳐 쫓아갔지만 점점 멀어지는 마차를 보면서 감탄사가 아닌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자신도 남궁박처럼 마차 꽁무니에 매달려 갈걸 하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남궁박은 마차 옆에서 풀 뜯는 말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출발하자 얼떨결에 머리 위에 있는 마차바퀴에 매달려 가게 된 것이다.
“젠장!”
일갑자에 가까운 공력과 삼성에 달한 암향표로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게 된 당 포두였지만 또 자신만 까마득하게 멀어지자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오면서 말 두 마리 찾아봐라!”
‘흐미!’
그런 당 포두에게 암제의 천리전음이 전해졌다. 산 아래에 있는 말을 찾아서 오라는 것이다. 당 포두는 결국 암향표를 수련한다는 생각에 산 밑까지 가서는 말을 타고 터덜터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말에 노숙을 위한 물건들이 잔뜩 실려 있었기 때문에 달려갈 수 없었던 것이다.
다각다각!
“멈춰라!”
“뭐야?”
그런 당 포두의 앞에 진짜 산적들이 나타났다. 사천성 인근에 사는 불한당들로, 가끔 대파산 근처로 원정 나와서 심심풀이로 산적질을 하는 뒷골목 출신들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형님! 쟤 진짜 산적처럼 생겼는데요.”
“야! 쫄지 마! 우리가 숫자가 많잖아!”
머리가 큰 일곱이었다. 두목으로 보이는 머리가 가장 큰 놈만 거치도를 들고 있었고 나머지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꼴을 보아하니 뒷골목에서 밀려난 패거리로 장작을 팔아 연명하다가 가끔 산적으로 변하는 놈들인 듯했다.
“야! 말이랑 주머니에 있는 거 다 털어놓고 가라!”
“……!”
놈들이 하는 행동이 하도 같잖아서 할 말을 잃어버린 당 포두였다.
“형님! 저놈 포졸 복장인데요.”
“으하하하! 포졸 한 명 정도는 우리 칠두파가 털 수 있다. 우리 칠두파는 최초로 포졸을 턴 위대한 전설의 문파가 되는 것이다.”
“형님! 저놈 등에 있는 도가 너무 큰데요?”
“내 거치도가 더 커, 임마!”
“으아악!”
드디어 당 포두의 성질이 폭발했다. 그동안 당천 일행에 끼어 있으면서 졸개의 설움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꼈던 당 포두였다. 그동안 쌓인 분노와 한을 풀어내려는 듯 고함을 지르며 칠두파에게 달려들었다.
“으악! 저놈 미쳤다!”
퍼퍼버벅!
“크엑! 그냥 나무나 하자니까.”
머리 큰 나무꾼들이 모여 만든 칠두파의 최후였다. 사천성 변두리에 살아서 뒷골목 왈패들에게는 염라대왕으로 통하는, 자칭 명포두 진형래의 명성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칠두파는 그날로 조직을 해산하고 얌전한 나무꾼으로 돌아갔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