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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1권
1화
프롤로그


차갑다.
이를 악물고 버티려고 했지만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칼날 같은 북녘의 바람이 오늘따라 얄밉게 느껴졌다.
그 같은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호흡을 조절했다.
‘후, 긴장하지 마. 이번이 마지막이다.’
찰칵!
총기를 점검하며, 50BMG탄이 장착된 탄창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한 번도 그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저격총 M―200 체이탁(Chey Tac)이 유려한 몸체를 드러냈다.
“긴장하지 마라. 한 시간이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끝난다.”
얼굴을 짙게 가로지르는 얼룩덜룩한 국방색 위장 크림이 하얗게 번져 있었다. 그 아래로 드러난 한 사내의 얼굴은 단호함과 어떠한 난관도 이겨 낼 것 같은 불굴의 의지로 가득 차있었다.
‘……후, 저도 잘 알고 있지요. 그래도 긴장되는 것을 어쩝니까?’
군인의 기본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이다.
투덜거림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애써 삼키며, 눈앞의 꽉 막힌 상관을 응시했다.
“지금까지 모두 잘해 왔다. 긴 말은 하지 않겠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임무가 될 것이다.”
“…….”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하며 조용히 장비들을 점검했다.
‘언어’만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 온 수많은 임무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한 시간’이 될 것을…….
“1분 뒤, 시작한다.”
꿀꺽!
긴장감이 주위를 장악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즐기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김격식…… 놈을 제거한다.’
북한 정권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만큼 ‘거물’이기에 위험도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스윽!
저격총의 PDA(탄도 계산용)스코프를 바라보며, 지하 벙커 입구 주변에 있는 경비원들의 위치를 하나씩 곱씹었다. 마찬가지로 팀장을 비롯한 10명의 팀원들 중 세 명이 저격총으로 적을 겨누었다.
‘쏜다. 맞아라. 맞아야 한다.’
스코프를 통해 2km 밖의 적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 호흡이 멈추고, 심장 소리마저 잦아든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집중력…… 그리고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죽지 마라!”
타앙!
재장전을 위해 배출되는 가스의 매캐한 향을 맡으며, 새로운 표적을 조준했다. 기계적인 움직임이지만, 무엇보다 빠르고 능숙했다.
“사, 살려 다오. 달라는 건 뭐든 주겠다.”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났다. 지하 벙커의 최하층…… 그 장소에 그들이 있었다.
“그럼, 고맙게 받아 가지. 네 목숨을.”
타앙!
때는 겨울.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양강도 삼지연군(三地淵郡)에서 벌어진 일이다.



1. 전역


“끄응…….”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새하얀 최고급 침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피곤함이 전신을 두드렸다.
그 순간 불쾌한 감정이 치솟았다.
결코, 잊을 수 없는…… 하지만 잊고 싶은 기억의 편린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제길!”
침대에서 내려와 꿈속에서 본 장면들을 잊기 위해 머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휴우, 휴우…… 진정해라. 진정해! 정현, 전쟁은 끝났어.”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망각할 때도 되었건만, 그 시린 겨울날 삼지연군(三地淵郡)의 기억은 정현의 발목을 거칠게 잡아챈다.
“서른이 머지않았는데, 이게 무슨 궁상인지.”
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로 28살이 되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일자리는커녕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다.
‘뭐? 나보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정현은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 임무를 끝으로 정현은 민간인의 신분이 되었다. 더불어서 막대한 퇴직금도 지급받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 적응하지 못했고,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여 취직한 회사마다 문제를 일으켰다.
‘정신과 치료도 여러 번 받았지. 그나마 운동이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의사는 직업 군인이었던 정현의 과거를 꼬집으며, 정신적인 문제라는 진단을 내렸다.
처음에는 노발대발했던 정현이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하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구토를 하며 도망갈 상황을 여러 번 겪었던 정현이다. ‘적’과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만큼 잔인한 일도 많이 저질렀다.
“……운동이나 하러 가야겠군.”
몸을 혹사시키고 나면 불쑥불쑥 치솟는 충동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원론적인 해결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것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현이 찾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 * *

2017년 대한민국이 있는 동북아시아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포정치와 독재로 북한을 이끌던 김정일이 사망을 한 것이다.
사망 원인은 고혈압과 당뇨병을 비롯한 합병증…… 역사에 오랫동안 기록될 ‘악인’의 사망치고는 허전할 정도였다.
이후, 북한은 김정일의 삼남 김정은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지지 기반은 취약했고, 예전처럼 북한의 주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지도층들과의 잦은 마찰이 발생하였다.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지도자를 원했던 그들이었기에 김정은의 실망스러운 능력은 지도층들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갖게 하였다.
‘그래, 그때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 생각했지.’
정현은 고개를 모로 저었다.
북한에서 일어난 치명적인 내분…… 그것은 북한 조선인민군 4군단장 김격식과 그의 사촌인 정찰국장 김대식이 모반을 일으킨 것이다.
순식간에 북한의 상황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하루에도 수천 명의 피난민들이 압록강을 넘어 북한을 탈출하였다.
그러한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은 무인정찰기를 이용하여, 수시로 북한의 탐색하던 미국이었고, 곧 동맹국인 한국도 알게 되었다.
‘명목은 탄압받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전쟁이었던가? 아무튼 운이 좋았어.’
중국이 끼어들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선언하며 무력으로 반발하던 때였다. 게다가 김정일 사후 북한과 중국의 사이도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
결국 중국의 도움을 받지 못한 북한은 김정은과 김격식의 세력으로 나뉘어져 휴전선이 무너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까지 침묵했으니, 북한의 결말은 예정되었다고 할 수 있지.’
대세가 기울어진 것을 깨달은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21세기 이후 중국과 파워 게임(Power Game)을 벌이던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러시아에게 많은 이익을 안겨 주고 밀약을 맺었다.
물론, 그와 반대로 대한민국과는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 권한을 보장받는 등 자국의 이익을 위한 다양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러시아로 망명하다니.’
상황을 파악한 김정은이 경계가 취약한 러시아로 도주를 했지만, 결국 러시아의 협조로 인해 한국으로 인도(引導)되었고, 2023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형을 당하였다.
‘그리고 김격식은…….’
김정은을 밀어내고 잠시나마 정권을 차지한 조선인민군 대장이자 4군단장 김격식은 한미연합군을 피해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의 삼지연군(三地淵郡)으로 도망친 뒤, 핵무기를 협상 카드로 내밀었다.
하지만 포로로 잡힌 과학자들의 실토로 김격식에겐 핵무기가 없다는 정보를 입수한 한미연합군은 거침없이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영토를 휩쓸었고, 압도적인 전력에 북한군은 지리멸렬하였다.
‘물론, 북한 정권의 무의미함을 깨달은 점도 컸지.’
손바닥이 아무리 커다래도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김정일의 정권 말기에는 이미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그러한 의식이 팽배했고, 일부 양심 있는 북한군의 장성들은 휘하의 병력들과 함께 항복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바로 우리들!’
정현이 속했던 곳은 10명으로 이루어진 비공식 ‘팀’이었다.
707특수 임무대대, NIS(국가정보원), UDT(해군특수전여단)를 비롯한 전군에서 최고로 꼽히는 인원들을 모아, 주요 인물 암살 및 특수 임무를 목적으로 만든 집단인 것이다.
“하아, 하아…….”
위잉!
인체의 온도를 감지하는 센서가 작동하며, 체육관의 자동문이 열렸다.
“오오, 최고 기록이야. 10km에 28분이라니.”
거친 호흡과 함께 체육관 안으로 들어선 정현을 반기는 것은 트레이너인 ‘준석’이었다. 올해로 30살이 되는 노총각이지만, 군살 없는 몸매와 사교적인 성격으로 체육관의 여성 회원들에게는 제법 인기가 있었다.
“후우, 비켜 주시죠. 아직 멀었습니다.”
세계 최고 기록과 2분 차이를 기록한 뒤, 글러브를 착용하고 샌드백 앞에 섰다. 이어서 시작되는 폭풍 같은 펀치들은 보는 사람들이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계속되었다.
퍽, 퍼버벅!
“휘유! 정말 말이 필요 없군.”
“그러게 말이야. 정현이를 볼 때마다 내가 트레이너가 맞는지 부끄럽다니까.”
준석과 동갑내기 트레이너인 ‘문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도 태권도, 유도, 복싱 등을 비롯한 다양한 운동을 섭렵한 유단자들이지만 정현에게는 한 수…… 아니, 두 수는 접어 줄 수밖에 없었다.
‘독종…….’
정현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였다.
자그마치 3년이 지났다. 그 긴 시간을 하루도 빠짐없이 체육관에 나와서 미친 사람처럼 운동에 매달리는 정현을 보면 누구라도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괴상한 것은 웨이트 운동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체력을 소비하는 달리기와 거칠게 움직이는 격투기만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대련하기가 무섭다니까. 보호구를 착용해도 제대로 하면 3분을 버티기가 힘드니 원…….”
“이하(以下)동문(同文)이다.”
준석과 문수의 한숨 소리가 한층 더해지는 사이에도 정현의 움직임은 끊이지 않았다.
퍽, 퍼버벅!
‘후우, 후우…… 빌어먹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날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정현을 미치도록 괴롭혔다.
‘샌드백으론 어림도 없어. 부족해, 부족하다고!’
정현은 중독되어 있었다.
공포와 폭력이 지배하는 전장의 향기에…… 결국, 일그러진 표정으로 준석을 바라보았다.
“서, 설마…….”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는 준석.
그 순간 단호한 정현의 목소리가 도주를 봉쇄했다.
“대련,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제발 살살해 줘.”
준석이 체육관의 트레이너로 있는 이상 대련 요청을 거부할 권리는 없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의 표정을 짓고 있는 준석을 보며 자신이 지목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는 문수였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어서 부탁드립니다.”
“…….”
문수는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