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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문 열어!”
[삑, 삐비빅!]
음성인식 시스템이 등록된 사용자임을 확인한 후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혼자 살기에는 사치라고 할 수 있는 30평의 아파트…… 잘 정리된 거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오랜만에 무리했더니 뼈마디가 쑤시네.”
약간은 후련해진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선 정현은 과도한 운동으로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냉장고를 열었다.
‘오늘은 해물 그라탕으로 해 볼까?’
남자 혼자서 산다고 하면 그 누가 믿을 것인가?
갖은 재료와 반찬들로 꽉꽉 채워진 냉장고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그들을 요리해 줄 정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해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정현에게 남은 것은 시간뿐이다.
원치 않는 백수 생활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만큼 소일거리도 많아졌다.
복싱, 태권도, 유도 등의 격투기들은 기본이었고, 요리와 음악, 승마 등…… 흥미가 생기는 분야는 뭐든지 파고들었다. 다행히 전역을 하며 받은 퇴직금과, 그동안 임무를 수행하며 모은 성과급이 있어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에아(Ea), 38˚로 부탁해.”
[예, 알겠습니다.]
정현의 자택을 관리하는 프로퍼티 매니저(Property Manager) 프로그램 ‘에아’가 성실하게 명령을 수행한다.
이윽고 샤워부스 안에 따스한 수증기가 퍼지기 시작했고, 정현은 뭉친 근육을 주무르며 온수 샤워를 즐겼다.
[딩동! 정현 님, 오븐의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샤워가 끝나 갈 때쯤 스피커에서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정현은 수분 제거기(Air Dry)를 이용하여 물기를 제거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맛있겠는데.”
오븐에서 꺼낸 해물 그라탕은 먹음직스러운 향기를 풍기며 정현을 유혹하고 있었다.
주택 내부의 모든 가전제품과 그것을 조율하는 관리 시스템은 프로퍼티 매니저(Property Manager) 프로그램인 ‘에아’의 통제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실수란 존재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21세기 초의 ‘과학’이라는 용어와 엄연히 구분되는 현재의 ‘초과학’의 힘은 대단했다.
슈퍼컴퓨터(Super Computer)의 연상 능력인 20기가플롭스를 우습게 능가하는 성능과 수백, 수천만의 패턴으로 정리된 에고(Ego) 능력까지…… 부유층의 자택을 관리하는 프로퍼티 매니저 시스템은 현대의 과학이 보여 주는 한 단편에 불과했다.
우적, 우적!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 식탁에 놓인 그릇이 자동 세척기로 옮겨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후, 다른 건 몰라도 요리를 배운 것은 참 잘한 일이야. 그런 의미에서 요즘 유행하는 요리 좀 검색해 줄래?”
[예, 알겠습니다.]
요리 학원부터 시작해서 독학까지 이어진 정현의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조리법과 재료만 파악한다면 웬만한 요리들은 모두 어지간한 수준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고만 치지 않았으면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텐데.’
요리에 대해 생각하자 결국 마지막은 쓴웃음이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취직했던 직장들과 마찬가지로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한 요리 학원의 사고…… 정현이 저지른 난투극으로 발생한 전치 4주 이상의 환자만 해도 3명이었다.
[정현 님, 총 2,756건이 검색되었습니다. 인기순으로 확인하시겠습니까?]
“아니, 그만하자. 이번 주 스케줄이나 가르쳐 줘.”
[예, 알겠습니다.]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참기가 힘들었다.
누구나 즐기는 평범한 일상이,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듯 답답했다.
‘부족해…… 도대체 뭐가 부족하지?’
답답하지만, 명확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정현은 한숨을 내쉬며, 이번 주의 스케줄을 정리해 주는 달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금일은 2028년 1월 5일로 수요일입니다. 음력으로는 12월 9일…….]
“아니, 날짜는 제외하고 요일별로 말해 봐.”
[목요일 : 체육관(1) / 승마 클럽(1) / 음악 학원(1)]
[금요일 : 정신과 정기검진 예약(1)]
…….
“벌써 정기검진 날이네.”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하여 진료를 받는 것은 정현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알 수 없는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정현이 가진 최우선 과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번에는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간절하기까지 하다.
‘전역’을 하고 5년이 지났다. 23살의 청년에서 28살의 건장한 남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변한 것은 없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에서 한 걸음도 떼어 놓지 못한 정현…… 사회의 일원이 되어 평화로운 일상에서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다.

* * *

“많이 좋아지셨네요.”
“감사합니다.”
정현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담당 의사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료를 받을 때마다 앵무새처럼 같은 결론을 내뱉는 인물이었지만, TV에도 출현한 적이 있는 나름 유명한 인물이기에 담당 의사로 선정했다.
“정현 님의 증상은 과거 ‘군인’이었던 시절 겪었던 안 좋은 기억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대인 관계를 기피하게 만들고, 필요 이상으로 거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그렇군요.”
의사가 생각하고 있는 ‘군인’으로서의 자신과 실제의 자신은 지구와 태양만큼의 거리가 있지만, 딱히 수정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우리 팀의 존재 자체가 비밀이고, 결코 알려져서는 안 되니까.’
정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암살 집단의 존재는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야기할 것이다.
물론, 정현도 전역을 하는 과정에서 결코 ‘팀’의 존재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결코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식습관으로 영양분을 잘 섭취하고, 운동 등의 건전한 취미 생활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셔야 합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다. 확실히 운동으로 에너지를 한껏 소비하고 나면 마음속 갈증이 한층 가벼워진 느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서 종교 활동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으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의 말을 전하는 정현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평소처럼 진정제의 효과가 있는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비싸기만 더럽게 비싼 약…….’
정현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진료실을 나서려고 했다.
“아, 정현 씨, 잠시만 기다리시죠.”
“……?”
그런 정현을 향해 갑작스럽게 떠오른 것이 있다는 듯, 받친 손바닥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제지를 했다.
정현으로서는 새로운 치료법이 있을까 하여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혹시, 리얼(Real)이라고 들어 보셨는지 궁금하군요.”
“리얼 말입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현을 보며 의사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끄덕!
정현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를 재촉했다.
“리얼(Real)은 가상의 공간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가상현실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컨덴츠…… 바로 게임이지요.”
“가상현실게임?”
뜬금없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정현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람의 정신, 감정, 신체 등의 기관들은 모두 뇌의 통제를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통제할 수 없는 정신병을 가진 모든 환자들은 뇌 어딘가에 이상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
무지한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의사를 상대로 정현은 침묵을 선택했다.
아는 것이 있어야 맞장구라도 쳐 줄 수 있지 않는가?
“최근 의학계에 발표된 하나의 이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설문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의사는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더니 하나의 창을 생성시킨 뒤, 정현이 볼 수 있게 화면을 돌려주었다.
“이게 뭡니까?”
“아아, 보고 계시면 제가 하나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정현은 고개를 끄덕인 뒤, 첫째 줄을 장식하고 있는 제목을 살펴보았다.

『가상현실시스템과 뇌(腦)의 관계』
가상현실시스템이란?
접속기를 통해 서버(Server)에 접속하여,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뇌파를 통해 그것을 유기적으로 컨트롤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주제어가 되는 문자를 입력하거나 음성으로 검색하는 구시대적 방식이 아니다.
접속기를 통해 사용자의 뇌파를 해석하고, 그것이 데이터로 변환되어 서버로 이동한다.
그렇게 하여 서버에 도착한 데이터는 구체화되고, 다시 하나의 신호화 되어서 접속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최종적인 임무는 사용자에 대한 ‘자극’이다.
서버에서 보내 온 신호를 전달하는 접속기는 사용자의 뇌(腦)를 비롯한 신경들을 자극하여 무형의 존재였던 신호와 데이터들을 유형의 것으로 탈바꿈시킨다.
사용자의 뇌와 신경이 자극을 받게 되어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가상현실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접속기와 뇌(腦)다.
수많은 해석과 자극, 인식 등의 단계가 반복되며, 그것은 고스란히 뇌의 활성화를 의미한다.
만약, 가상의 세계에서 활동하며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 뇌를 자극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안전 시스템이 철저하게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뇌로 가는 필요 이상의 자극은 차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지속적으로 흐르는 플러스된 뇌파는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뇌의 활성화를 돕고 좋지 못한 부분을 회복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하하,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가상현실시스템이 정현 씨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설명을 해 주며, 이번에는 옆의 그래프를 보라는 듯 손가락질을 하는 의사의 모습에 정현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이 청색으로 표시된 그래프가 보이십니까?”
“네, 잘 보입니다.”
“몇 퍼센트지요?”
“27퍼센트…….”
혹시나 하며 말끝을 흐리는 정현에게 의사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렇습니다. 현재 우울증 등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27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가상현실시스템을 겪기 전보다 호전된 증세를 보였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하하하, 제가 장난칠 이유가 없지요. 물론, 예전보다 상태가 악화된 사용자도 있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극소수라고 합니다. 현실에서 해소할 수 없었던 스트레스를 비롯한 모든 것들을 가상현실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정현은 잠시 침묵을 선택했다.
머릿속을 스치는 오만 가지 생각이 심정을 복잡하게 만들고,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