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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과거에는 가상현실을 통한 테스트도 많이 해 봤지. 그런데 과연 효과가 있을까?’
가상현실시스템이 처음으로 적용된 곳은 바로 ‘군대’였다.
위험성 때문에 실행하지 못한 다양한 군사훈련들이 가상현실에서 실시되었다.
그로 인해 많은 시뮬레이션과 워 게임(War Game)이 좀 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실시되었고, 최근에는 새로운 무기 체계 개발과 효율적인 장비 개량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가상현실시스템이 대두되고 있을 정도였다.
‘별다른 느낌은 없었던 것 같은데. 다만, 가상현실시스템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수류탄의 파편을 뒤집어썼을 때는 깜짝 놀라긴 했지.’
정현은 5년 전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가상현실시스템은 놀랍다.
하지만 그뿐이다.
현실과 비교하면 어느 것 하나 비슷한 수준을 갖추지 못했다.
‘그런 걸 해 봐야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는 순간, 의사가 선수를 쳤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최근부터 가상현실시스템의 사용자가 되었지요. 제2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은 하나의 기적과 같았습니다.”
“…….”
정현은 5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잠시 본분을 잃고 흥분해서 가상현실시스템의 장점에 대해 찬양을 하는 의사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건가?’
확실히 강산이 변할 시간이긴 했다.
과거 분단 시절을 살던 사람들이 북한이라는 하나의 국가가 완전히 몰락하여, 거대한 수용소처럼 변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20% 정도의 인구가 흡수되었다고 했나? 아직도 완전한 통일은 멀었군.’
대한민국과 미국의 주도하에 멸망하게 된 북한의 주민들은 오랜 시간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세뇌(洗腦)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세계의 어떤 국가의 국민들도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한 곳이 북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및 러시아 정부의 협력을 얻어 북한의 국경선을 완전 봉쇄한 뒤, 점진적인 흡수 정책을 펼쳤다.
세계 각국의 지원과 미국, 일본, 중국 등의 뒤를 잇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식량과 생활 필수품들을 무상 지원했고, 의무교육을 실시했다.
물론, 의무교육에 공산주의…… 즉, 그네들이 말하는 ‘우리식 사회주의’의 허망함과 부조리를 일깨워 주는 정신교육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처음에는 반발도 있었고, 과거 북한 정부와는 다른 방식의 통제라고 생각하며 압록강을 넘어 탈출하려는 무리도 있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정책은 북녘의 대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상태다.
20%에 달하는 과거 북한의 주민들이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시끌벅적한 남한의 사회에 적응하여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80%의 북한 주민들도 어서 변해야 하는데…… 음, 그러고 보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군.’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정현을 삼천포로 빠트렸다.
정신을 수습한 뒤 앞을 보니, 가상현실시스템에 대한 칭찬을 1절로 모자라서 애국가로 만들어 4절까지 부를 태세인 담당 의사가 보였다.
“그 완벽한 현실성과 만족감은…… 중얼중얼!”
쾅!
“그래서……!”
움찔!
의사는 갑자기 탁자를 내리친 정현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며, 쉴 틈 없이 떠들던 입을 멈췄다.
그 모습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하던 정현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결론은 뭡니까?”
“……한번 해 보시라는 거죠. 하하하!”
“예.”
“…….”
담당 의사의 시선이 멍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 * *

“에아, 가상현실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접속기에 대해서 알려 줘. 종류와 가격, 성능 등에 대해서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자가 주택으로 돌아온 정현은 편안한 옷으로 환복한 뒤, 에아를 이용하여 검색을 실시했다. 명확하지 않은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각오였다.
[총 13만 4,765건이 검색되었습니다. 가장 신뢰성이 높은 검색 결과부터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래.”
정현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천장에 달린 영상 생성기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허공에 반투명한 그림들을 떠오르게 했다.
“이것인가?”
[가상현실시스템의 접속기로는 보시는 대로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이 장점인 고글 모양의 유닛(Unit)형과, 가격은 비싸지만 다양한 기능과 감도까지 우수한 캡슐(Capsule)형이 있습니다.]
허공에 생성된 그림들이 정현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헬멧과 고글이 합쳐져 있는 형태의 유닛(Unit)형 접속기는 저렴한 가격과 휴대하기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가상현실시스템의 감도를 나타내는 싱크로율을 10∼30%까지밖에 지원받지 못한다.
반면, 캡슐(Capsule)형 접속기는 가격이 비싸지만 다양한 기능들이 있고 싱크로율을 최대 70%까지 지원한다. 그만큼 메리트가 있는 것이다.
[(주)웅비에서 현재 정식으로 서비스하고 있는 표준형 접속기의 가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유닛형은 300만 원/캡슐형은 1,000만 원입니다. 거기에 표준형에 없는 옵션(Option)을 원하실 경우 추가 비용이 들어갑니다.]
(주)웅비는 대한민국의 대표 그룹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익집단이었다.
가상현실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상용화가 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주)웅비는 가상현실시스템이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사업이라는 것을 깨닫고, 최초로 기술을 개발한 기업을 합병하였으며, 공격적인 투자로 국가로부터 2년간 접속기의 독점 개발 및 판매권을 획득하였다.
타 기업이나 회사에서 아무리 좋은 가상현실 컨덴츠를 개발하였더라도 (주)웅비에서 제작한 접속기를 사용해야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왕이면 캡슐(Capsule)형이 좋겠지. 옵션도 추가하고…… 감도는 물론이고, 탑재되어 있는 다양한 시스템이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곰곰이 생각을 한 뒤 결정을 내린 정현은 에아에게 말했다.
“기본은 캡슐형으로 하고, 옵션으로 건강관리와 생체활동조절 시스템을 설정하여 주문해 줘. 총 금액이 얼마지?”
[예, 건강관리는 300만 원/생체활동조절은 100만 원이며, 한 달에 한 번씩 기사가 방문을 하여 기능검사 및 약물 보충을 실시할 것입니다.]
건강관리 기능과 생체활동조절 기능은 캡슐 구매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옵션(Option) 기능이었다.
장시간 접속을 하는 유저에게 생리 현상 등의 필수적인 활동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입하여 로그아웃 소요를 줄여 주고, 마찬가지로 다양한 영양 성분 투입 및 근육의 마사지 등을 실시하여 사용자의 건강관리를 해 주는 것이다.
[접수되었습니다. 총액 1,400만 원이 결제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남은 잔액이 얼마지?”
[현재 정현 님의 계좌 잔액은 5억 7,400만 원입니다.]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네.”
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불가능이라고 여겨지는 수많은 임무를 수행하여 많은 공훈을 쌓은 정현에게 국가는 보상으로 30억에 달하는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했다.
덕분에 20대의 젊은 나이에 본인 소유의 집도 얻게 되었고,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좋은 자리도 마련해 드릴 수 있었다.
“5년 동안 사고만 치고, 쓰기만 했더니 순식간이군. 이래 가지고서야 몇 년 뒤에는 먹고살 것을 걱정해야겠네.”
지금까지 물어 준 합의금만 모아도 웬만한 집 한 채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 한숨을 내쉬는 정현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리얼(Real)이라고 했던가? 가상현실게임에 대해서 검색해 봐.”
[검색 시작하겠습니다. 총 1,074만 3,077건이 검색되었습니다.]
천만 단위의 검색에 10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프로퍼티 매니저(Property Manager) 프로그램 에아가 뛰어나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상현실게임에 대해서 검색을 하고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장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창을 활성화시켜 봐.”
[예,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거실 중앙에 생성된 반투명한 창이 정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
202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상용화를 시작한 인피니티(Infinity)사의 핵심 게임으로서, 가상현실시스템을 게임과 가장 성공적으로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스트(East) 대륙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특이한 형태의 발달 과정을 보여, 여러 종류의 시대관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다양한 직업들과 스킬, 아이템, 몬스터를 비롯하여 정신없이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탄탄한 스토리와 수많은 컨덴츠 등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더불어 현재 대한민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 영국, 미국 등에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대상 국가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세계 게임 시장에서 12%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그 발전 속도는 눈부실 정도다.
현재 한 달 매출액은…….

“그만! 대충 알겠어.”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은 게임성과 상업성을 인정받은 명실상부 세계 제일의 게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귀찮아하는 정현의 모습에 에아는 긴 설명문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해 주었다.
고개를 끄덕거린 정현은 몇 개의 글을 더 읽어 본 뒤, 한숨을 내쉬며 검색을 종료시켰다.
“상당히 피곤할 것 같은 게임인걸.”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현을 괴롭힌 정신적인 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로 옥죄고 있다.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귀찮음과 피곤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가상현실게임이라…….”
정말 어렵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거린 정현은 간단히 방 청소를 실시하고 집을 나섰다.
“하아, 하아…….”
지금부터는 저녁 운동 시간이다.



2. 로그인(Log―in)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다.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거친 심장의 박동과 둔탁한 소음이 귀를 자극했다.
“하앗!”
서로 엇갈리는 글러브를 통해 거리를 가늠했다.
주먹을 뻗기만 하면 상대방을 가격할 수 있는 거리…… 그 순간 정현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휙휙!
“큭!”
채찍처럼 휘어지는 잽이 준석의 가드 위를 후려쳤다.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는다면 이러할까?
‘이래서는 승산이 없어.’
이를 악문 준석이 가드를 올린 채로 정현에게 접근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할 생각이었다.
‘간다!’
퍼억!
“윽!”
단단히 각오한 준석의 의지를 꺾어 버리는 통렬한 일격이었다.
비록 가드 위를 때린 것이지만, 자연스러운 무게중심 이동을 통해 파워가 실린 정현의 어퍼컷은 상체를 최대한 숙여 낮은 자세로 접근해 오던 준석의 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