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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재빠르게 로그아웃을 하여, 인터넷을 통한 정보 수집에 들어간 정현은 곧 최고의 효율을 보여 주는 퀘스트와 사냥감의 궁합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고블린이라…….”
다시 리얼의 세계로 접속한 정현은 하몬 성의 중앙에 있는 내성 옆의 경비대 건물을 찾아가서 1급 경비병인 ‘NPC 하멜’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응? 처음 보는 녀석이군.”
경비대의 건물 입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30대 초반의 남성 NPC가 눈을 깜빡거리면서 말했다.
“전 모험가인 테라라고 합니다. 하멜 님께서 고블린을 소탕할 인원을 찾는다고 해서 왔습니다.”
잡화점이나 빵집의 NPC들보다 더욱 예의를 갖추는 정현.
그도 그럴 것이 NPC 하멜은 하몬 시에서 가장 많은 퀘스트를 관리하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호, 자네가 고블린을 상대할 수 있다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정현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하멜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해, 이상하다고. 분명히 고블린을 상대하기에는 약해 보이는데, 어쩐지 이름을 들어 본 것 같단 말이야?”
프로그램상으로 레벨 10인 정현은 고블린 사냥 퀘스트를 습득할 수 없지만, 최근 130의 명성치 상승으로 미비하게나마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에 잠시 고민을 하던 하멜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오늘은 기분이 좀 이상하군. 맘대로 해 보게. 하지만 고블린을 얕보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놈들의 독침 공격은 매섭기로 소문이 났거든.”
띠링!
[하멜의 고블린 사냥 의뢰]
등급 : E
설명 : 하몬 시의 동문 밖, 숲에는 비열한 붉은 손톱 고블린 부족이 서식하고 있다.
얌전하던 그들이 최근 숫자가 늘어나자 대담하게 여행자들을 습격하는 등의 골치 아픈 행동을 하여, 경비대에서 붉은 손톱 고블린을 사냥할 모험가들을 모집하고 있다.
1급 경비병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하멜의 의뢰를 무사히 수행한다면 더욱 많은 의뢰를 부여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조건 : 붉은 손톱 부족 고블린의 손톱[10]
보상 : 돈(+5S) / 명성치(+17)
보상을 제외하더라도 고블린은 재료 아이템을 많이 드랍하는 편이기에 돈을 모으기가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에 최소 레벨 13의 고블린을 사냥감으로 정한 정현이었다.
‘다음은 잡화점인가?’
잡화점으로 이동하여 이번에는 붉은 손톱 고블린의 독침[5]을 모아 오라는 퀘스트를 부여받았다.
두 번째 퀘스트는 보상으로 명성치는 없지만, [10]실버가 책정되었기 때문에 돈이 필요한 정현으로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게 했다.
“오크 사냥 파티 모집합니다. 25레벨 이상에 아이템, 컨트롤 모두 자신 있는 분들로 모집합니다.”
“구리, 철광석 판매합니다. 지금 막 광산에서 캐 온 재료들입니다. 순도도 높습니다.”
“매직 등급의 가죽 신발 팝니다. 옵션으로 민첩[2] 부여되어 있습니다. 80실버부터 경매 시작합니다.”
웅성, 웅성!
고블린을 사냥하러 가기 위해 광장을 가로지르는 정현의 시야에 수백 명이 넘는 유저들이 들어왔다.
도시 중에서는 그나마 한적한 편인 하몬 시가 이 정도일진대, 다른 곳은 어떠하겠는가?
‘후,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정현은 미래의 일을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피식 웃고는 바쁘게 걸음을 옮겨서 광장을 지나, 하몬 시의 동문으로 빠져나왔다.
“이봐, 저 사람이 최근 들어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는 니켈이야. 저번에는 붉은 오크 주술사를 물리치고 제기(祭器)를 구해 왔다지?”
“그래? 과연 등에 매달린 대검을 보니, 그 실력이 짐작되는군. 이번에는 무슨 일로 동문을 나서는 걸까?”
저레벨들의 사냥터가 많은 동문이라서 그런지, 유동 인구도 많았다.
덕분에 정현보다 높은 명성치를 가진 유저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비병들이었다.
띠링!
[도시에서 벗어났습니다.]
[아르고스 초원으로 진입합니다. 지도를 가지고 있다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필드에서는 PK가 가능하며, 지형이나 기상의 영향을 받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사냥을 할 수 있는 건가?’
고블린들이 서식하는 숲은 하몬 시를 중심으로 북동쪽 방향에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목적지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정현의 심장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토끼, 여우, 늑대들…… 야생이라고 하지만, 그래 봐야 동물들이다. 하지만 고블린은 약하다고 평가를 받아도 몬스터니까.’
다시 한 번 피가 끓어오르는 감각을 맛보고 싶었다.
비명 소리와 긴장감이 공존하는 달콤한 전장의 향기가 아스라이 뇌리를 스쳤다.
저벅, 저벅…… 움찔!
“여긴가?”
도시 주변에 있는 초보자들의 사냥감인 토끼나 여우 등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긴 지 10분쯤 지났을까?
울창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굵고 높은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숲을 발견할 수 있었다.
띠링!
[붉은 손톱 고블린족의 숲으로 진입합니다.]
[현재 필드의 적정 레벨은 13∼17입니다. 사용자의 레벨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정현의 레벨은 클래스 설정을 한 뒤, 그대로다.
노리고 있는 사냥터의 적정 레벨보다 최소 3∼7이나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진 숲으로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는 정현은 걸어오는 동안 소비된 SP를 체크하고, 장비들의 내구력을 살피며, 전투를 준비했다.
‘앞서 있는 자들을 따라잡으려면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파티를 맺는다면 나는 개인으로…… 그들이 1∼2레벨 높은 몬스터들을 사냥한다면 나는 그 이상의 몬스터들을 찾겠다.’
다시 발동된 승부욕이 정현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칼과 같이 위험했다.
일반적으로 리얼의 몬스터들은 상당히 수준이 높기 때문에 고급 아이템을 착용하거나 컨트롤에 자신이 없다면 솔로잉으로는 동 레벨이나 1∼2레벨 낮은 몬스터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파티 사냥으로는 3∼5레벨 정도 높은 몬스터를 사냥한다.
그런데 정현은 자그마치 솔로잉으로 3∼7레벨 높은 몬스터들을 사냥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삭, 사사삭!
‘한 마리? 아니 두 마리군.’
숲으로 진입한 지 열 걸음쯤 되었을까?
애타게 전투를 기다리던 정현에게는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나뭇가지의 이파리들이 흔들리며 대충이나마 적의 규모를 알려 주었고, 정현은 손을 감싸고 있는 매직 급 아이템 ‘파워 너클’을 서로 맞부딪치며 전의를 다졌다.
“와라!”
“끼에! 인간이다. 우리 숲을 침입하다니.”
“침입자는…… 끼끼끼! 용서하지 않는다!”
부자연스러운 발음으로 괴상한 소리를 섞어 가며 정현을 위협한다.
약 150cm 되는 초등학생 정도의 체격에 손에는 뭉뚝한 곤봉을 하나씩 들었고, 마귀할멈을 생각나게 하는 길쭉한 코와 호리호리하면서도 묘하게 근육질인 몸은 과연 평범함을 벗어난 몬스터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후, 강권(强拳)!”
띠링!
[강권(强拳)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근력(+3), MP(초당 ―1)의 변화가 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정현의 전신에서 붉은 아지랑이와 같은 기운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정현의 몸을 중심으로 회전이라도 하듯 일렁거리며 은은한 빛을 뿌려 대는 붉은 기운…….
아름답고 묘하게 몽환적인 그 모습은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정도로 짧았다.
나타날 때와 같이 순식간에 정현의 전신으로 스며든 붉은 기운을 끝으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스킬의 이펙트(Effect)가 종료되며 정현은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끼끼끼! 공격이다.”
쒜에엑!
그사이 선공 몬스터라는 것을 알려 주려는 듯, 접근해서 뭉뚝한 곤봉을 휘둘러 오는 고블린.
별다른 특징이 없는 것을 보니, 레벨 13의 붉은 손톱 고블린이 분명했다.
‘MP소모가 크다. 생각보다 빨리 끝내야겠군.’
근력이 3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지만, 총 MP가 40밖에 되지 않는 정현으로서는 유용한 스킬인 ‘카운터 어택’을 사용할 MP가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터엉!
“음!”
고블린의 공격력을 알아보자는 생각과 얼른 끝내자는 생각에 피하기보다는 빗겨서 막아 낸 정현은 팔뚝을 은은하게 울리는 통증과 함께 3의 HP가 소모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방어력이 8이니, 11 정도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겠군. 무방비 상태에서 정타로 맞으면 5방에 게임 오버라…….’
리얼의 사냥 난이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재미있군.’
씨익!
섬뜩한 미소와 함께 정현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뱀이 나무를 타고 넘듯이 곤봉을 휘감아서 앞으로 바싹 당겨 버리는 정현. 그러자 방금 전 공격을 가했던 고블린이 앞으로 쓰러지듯이 끌려왔다.
콰직!
“끼익!”
물 흐르듯이 이어진 니킥이 무방비 상태로 끌려오던 고블린의 복부를 강타했고, 괴로움에 바닥을 나뒹구는 사이 두 번째 고블린이 괴성을 지르며 뒤에서 곤봉을 휘둘러 왔다.
콰앙!
“끼에?”
하지만 정현의 손바닥 안이었다.
예상하고 있던 공격이었기에 살짝 몸을 돌리는 것으로 공격을 무력화시킨 정현은 왼손으로 곤봉을 쳐 내고, 활짝 개방된 고블린의 가슴팍을 오른손으로 강하게 타격했다.
퍼억!
“케켁!”
정현의 공격은 상당히 강력했다.
동 레벨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근력 수치를 비롯하여, 해결한 유저가 손에 꼽히는 초보자 마을의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공격력 +8의 매직 급 무기도 착용하고 있었다.
퍼억!
“윽!”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3레벨의 몬스터를 우습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현이 두 번째 고블린을 공격한 뒤 몸을 추스르는 사이, 바닥을 뒹굴던 고블린이 곤봉으로 정강이를 후려쳤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군. 그렇게 나오셔야지…….’
HP가 줄어들고 통증이 느껴졌지만, 정현의 반응은 오히려 기꺼운 것이었다.
콰직!
“끼엑!”
사커 볼 킥으로 쓰러져 있는 고블린에게 응징을 해 준 다음, 포기할 줄 모르고 다시 뒤에서 덮쳐 오는 두 번째 고블린을 향해 ‘카운터 어택’ 스킬을 사용하였다.
‘그냥 잡아도 되지만, 스킬 숙련도를 신경 써야 하니까…….’
스킬의 능력으로 정현의 순간 속도가 30% 증가되고, 아슬아슬하게 곤봉을 빗겨 내며 주먹이 전진했다.
콰직!
“끼엑!”
띠링!
[고블린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굉장한 공격! 크리티컬 데미지가 적용됩니다.]
[붉은 손톱 고블린에게 [38]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로 막대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놀라운 경험을 하여, 근력(+1), 집중(+1)이 상승합니다.]
우연처럼 정현의 일격은 정확히 명치를 가격했고, 강권 상태로 인해 상승한 데미지와 크리티컬 공격의 가산점…….
게다가 초급 2레벨의 카운터 어택으로 11이라는 수치가 추가되어 10레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데미지를 이루어 냈다.
털썩!
완벽한 반격으로 인해서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된 붉은 손톱 고블린.
그사이 쓰러져 있던 고블린이 정신을 차리고 기습을 하려고 했지만, 너무도 신속하게 정리된 상황에 함부로 공격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왜? 무서워?”
“인간, 우리 고블린 강하다. 너는 곧 후회할 거다.”
퍼억!
말하는 틈을 노려서 정현의 앞차기가 머리통을 가격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뒹구는 고블린에게 인정사정없이 이어지는 추가타들이 섬뜩함 그 자체였다.
“끼엑! 이, 인간 오지 마라.”
동료가 빛으로 변해 사라지는 광경을 여과 없이 지켜보던 뒤편의 고블린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물론 말뿐인 공포가 아니라 정현의 무기인 ‘파워 너클’에 잠재된 특수상태 공포 ― Lv. 2에 걸린 것이었기에 힘 빠진 목소리로 구슬프게 외쳤다.
“이미…… 늦었어!”
콰직!
‘시작되어 버렸거든.’
적을 눈앞에 무릎 꿇리고, 자신의 강함을 증명한다.
뼈와 살이 부딪치는 강렬한 감각과 마주치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노골적인 적의…… 그리고 강제로 그것을 꺾는 데서 오는 우월한 느낌까지, 모두 정현을 중독되게 만들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끼에, 끼에에!”
포식자를 앞에 둔 사냥감의 비명 소리를 뒤로하며 정현은 칠흑 같은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리얼』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