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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유여향 1권



칠포유여향 1권(1화)
서장(1)


자는 홍점(鴻漸)이며, 또는 계자(季疵).
호는 경능자(竟陵子), 상저옹(桑苧翁), 동강자(東岡子) 등으로 불리는 육우(陸羽)는 당 현종 개원(開元:733년) 때 경능군(竟陵郡:현재 호북성 천문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고아로 버려진 육우는 용개사(龍盖寺) 주지인 지적 선사(智積禪師)에 의해 거둬졌고, 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약관의 나이에 용개사에서 나와 많은 인물들과 교분을 맺게 되었다.
755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이십 대 청년이 된 육우는 난리를 피하여 난민과 함께 절강성 호주(湖州)에 정착한다. 후세는 호주를 가리켜 육우의 제이의 고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774년 육우는 호주자사(湖州刺使)로 부임한 안진경(顔眞卿)이 운해경원(韻海鏡源) 삼백육십 권을 편찬하는 작업에 참여한다. 이 작업에서 육우는 차에 관계된 이야기를 수집하였고, 그 줄거리를 자신의 저서 다경(茶經) 칠지사(七之事) 편에 보충, 편집하여 비로소 다경을 탈고(脫稿)하였다.
804년 칠십이 세의 나이로 호주에서 생을 마쳤으며, 그때까지 군신계(君臣契), 원해(源解), 점몽(占夢), 무림산기(武林山記) 등 많은 책들을 집필했으나, 후대까지 이어진 것은 오직 다경뿐이었다.
그러나 육우는 아무도 모르게 다경 외에 마지막으로 한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죽기 직전 자신이 마지막으로 집필한 책을 자신이 어려서 자랐던 용개사 주지에게 맡겼고, 맡길 당시 ‘하늘이 내게 내려 준 소임으로 만들었으나, 이 책이 영원히 공개되지 않길 바라노라.’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진경(眞經).
혹은 육우진경이라고도 불리는 이 책이 바로 육우가 은밀히 남긴 그의 마지막 저서였다.
그가 죽고 다시 용개사의 주지들이 여러 명 바뀔 때까지 그의 염원대로 진경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과연 진경은 그의 바람대로 영원히 잊혀질 것인가?
그렇게 천 년의 세월이 흘러만 갔다.

1장 대마두의 최후(1)

휘이잉…….
산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무런 봉분(封墳)도, 비석도 세우지 않은 무덤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삼년상이 끝났군.”
한 소년이 무덤 앞에 선 채 나직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 대략 열 살 정도 되었을까.
일신에 걸친 남루한 백의가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졌는데, 머리 위에 쓴 것은 고루한 도사들이나 쓰는 도관(道冠)이었다.
본래 이러한 도관들은 제법 나이가 든 도사들이 쓰는 것으로, 이처럼 열 살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가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러한 도관을 비스듬히 쓰고 있어 아이의 인상이 어딘가 삐딱하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아버지 삼년상도 오늘로 끝났으니까, 이제는 유언을 지켜야 되겠군. 백천성(白天星), 천성아. 죽은 아버지의 유언을 반드시 지키려고 하다니…… 너야말로 천고에 다시없는 효자로구나.”
아이는 나이답지 않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백천성.
이는 바로 그 자신의 이름이었고, 앞에 있는 무덤은 삼 년 전에 죽은 그의 아버지 백묵겸의 무덤이었다.
평생 떠돌이 도사로 천하를 주유하던 아버지가 이곳에 정착하자마자 알지 못할 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뒤, 그는 무덤가에서 삼년상을 치러야만 했다.
물론 이 삼년상이라는 게 많은 이들이 하고는 있지만, 당시 불과 일곱 살이던 어린 그가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삼년상을 끝내었고, 이제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무당파로 가서 한 사람을 만나라고 하셨지. 무당법문(武當法門)은 본래 무당파와 한 뿌리라고 하셨으니까. 근데 사람들은 무당파는 알아도 무당법문은 모르던데…….”
죽은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무당법문은 무당파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무당파이면서 정통 법문의 맥을 이은 곳이라고 했다.
사실 아직 어린 그로서는 그 법문이라는 게 뭐하는 곳인 줄은 알 수 없었으나, 죽은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귀신을 종처럼 부릴 수 있는 술법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했다.
‘생전에 아버지가 허풍이 심했으니…… 아니, 심한 정도가 아니라 거짓말이나 다름없었지. 그러니까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반은 접어서 생각한다고 해도, 아무튼 무당파가 무당법문의 뿌리라고 할 수 있었으며, 그랬기에 아버지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반드시 무당파에 가서 한 사람을 만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덤 앞에 놓인 투박한 찻잔에서 은은한 다향이 향불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찻잔 속에 담겨져 있는 건 아버지가 생전 즐겨 마시던 무이암차(武夷巖茶).
무이암차야말로 하늘이 내려 주신 최고의 축복이다, 라고 늘상 말해 왔던 아버지 덕에 그는 거의 매일 무이암차를 마셔 왔고, 단지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는 차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 차는 여기다 놔두고 갈게. 아버지가 언제나 즐길 수 있도록 말이에요. 당분간 난 이곳에 오지 못할 테니까, 무량수불…….”
흡사 팔십 먹은 노도사처럼 두 손을 합장한 채 도호를 외운 그는 옆에 있는 보따리로 손을 뻗었다.
거의 자신의 몸집만 한 크기의 보따리.
백천성은 지체 없이 큰 보따리를 등에 짊어졌다.
“삼 년 전까지만 해도 난 아버지를 따라 곤륜과 사천, 그리고 이곳 기련산까지 떠돌아다녔지. 근데 지금 무당파까지 가야 한다니…… 하필이면 왜 무당파인 거야? 쓰파…….”
어린애답지 않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열 살의 꼬마, 어울리지 않은 도사 복장을 한 아이 백천성은 유난히도 파란 하늘을 보더니 첫 발을 떼었다.
무당파.
아버지가 묻혀 있는 이곳 기련산에서 쉬지 않고 걸어도 꼬박 석 달을 걸어야 할 거리였다. 그건 솔직히 열 살의 어린아이에겐 너무 먼 거리였다.

* * *

무당산(武當山).
호북성(湖北省) 균현(均縣)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이 산이 유명한 까닭은 산이 절경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 산에 도문의 성지요, 천하만검의 으뜸이라는 무당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휘익!
한 줄기 흑영이 무당산 산기슭을 비조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흐흐…… 드디어 성공했다.”
득의 어린 웃음을 나직이 터트린 자는 이제 마흔 살가량 되어 보이는 흑의 중년인이었다.
매우 준수한 용모이되, 고리눈과 입가에 음험한 기운이 흐르고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사악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앞으로 십 년만 산에서 처박혀 내 진전을 잇게 된다면…… 넌 제이의 음양마, 아니 음양신녀가 될 수 있다.”
흑의 중년인은 우수에 쥐어진 새하얀 부채를 습관처럼 가볍게 떨쳤다.
“날 놓아줘! 안 그러면 곧 후회할걸!”
그때 그의 왼쪽 아래서부터 악쓰는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자세히 보니 흑의 중년인은 왼쪽 옆구리에 대략 열 살가량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를 끼고 있는 상태였고, 백의를 입은 계집아이가 발버둥 치며 악을 쓰고 있었다.
“나 제갈청아(諸葛靑雅)를 납치하다니…… 우리 할아버지가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
흑의 중년인은 코웃음을 쳤다.
“제갈염황(諸葛念滉)은 이미 내게 속아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러니 헛된 망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거짓말! 우리 할아버진 남에게 속지 않아.”
“크크……. 꾀 많은 늙은 여우도 때론 노련한 너구리에게 당하는 법이다. 그 너구리가 나 음양마(陰陽魔) 두광(杜쮗)이라면 특히나 그렇지.”
음양마 두광.
그는 외관상 마흔 살가량으로 보이나, 실상은 팔십이 넘은 노마두였다. 그가 이렇게 젊어 보이는 것은 그가 연성한 음양화화마공(陰陽花化魔功) 때문인데, 그것은 여자의 순음진기를 취하여 공력을 높이는 사악한 공부로, 당연히 강호에선 금지된 마공이었다.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우연히 조부인 제갈염황과 세가 밖으로 유람을 나온 제갈청아를 보게 된 두광은 그녀의 재질이 매우 뛰어남을 알고는 자신의 제자로 삼으려고 했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제갈염황의 분노를 사서 적지 않은 내상까지 입게 되었으나, 그를 엉뚱한 곳으로 유인해 버리고는 이처럼 제갈청아를 납치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네년이 이 사부의 눈에 띈 것은 천고에 다시없는 행운이다. 일단 내 진전을 잇게 되면 음양조화선(陰陽造化扇)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음양조화선은 바로 그가 우수에 쥐고 있는 새하얀 부채였다.
“사실 이 음양조화선은 오백 년 전 기인인 조화 노인이 남긴 신물로, 천하에 다시없는 병기일 뿐만 아니라 한기와 더위는 물론 백독을 막아 주는 효능이 있다.
촤락…….
두광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흰빛의 부채, 음양조화선을 가볍게 펼쳐 보였다.
“또한 사부인 나를 통해 음양화화마공을 배우게 되어 흡기취정(吸氣取精)의 묘를 터득하게 된다면, 장담하지만 넌 삼십 년 이내에 천하제일의 내공을 가질 수 있다.”
흡기취정이란 상대방의 내공을 빨아들여 자신의 내공을 쌓는 걸 의미하는데, 사실 이는 남녀 간의 운우지락(雲雨之樂)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음양마 두광 이름 앞에는 천하제일색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데, 그것은 그가 이러한 방식으로 수많은 여인들을 강간하여 음기를 흡수한 뒤 죽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제갈청아가 음양마 두광의 제자가 되어 흡기취정을 배운다면 천하제일색녀가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제갈청아는 아직 나이가 어려 흡기취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십 년이면 이 계집은 내 제자이자 내 여인이 되어 있을 터이니, 그땐 제갈염황이 아니라 누가 와도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된 상황……. 그 늙은이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두광이었다.
“크흐흐……. 지금이야 아직 어려서 네년이 앙탈을 부린다만…… 흡기취정의 묘를 알게 된다면 네가 나보다 더욱 설칠 것이다.”
제갈청아는 여전히 앙칼지게 소리쳤다.
“제갈세가의 후예는 다른 자들을 사부로 모시지 않아! 그러니까 날 어서 풀어 줘!”
“시끄럽다!”
두광은 차가운 어조로 버럭 소리쳤다.
“어린 계집! 더 이상 떠든다면 네년의 입부터 찢어 놓겠다.”
제갈청아는 찔끔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자신의 입을 찢어 놓을까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조용한 곳에서 내상을 다스려야겠다. 제갈염황 그 늙은이에게 당한 일격을 방치한다면 자칫 더 지독한 상황에 빠질 수 있으니…….’
두광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제갈청아를 납치하는 과정에서 제갈염황에게 스치듯 일 장을 맞았으나, 그 내상은 절대 가볍게 볼 수 없었다.
‘그 늙은이의 절학인 천성귀원신공은 내가 연성한 음양화화마공과는 상극이니……?’
내심 중얼거리던 그는 멈칫거렸다.
어디선가 매우 고소하면서도 절로 입맛이 땡기게 하는 그런 맛있는 냄새가 그의 코끝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그 냄새는 실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기에 두광은 입속에 절로 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
“뭔가를 굽는 냄새 같은데……?”
그는 냄새가 풍겨 오는 곳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겨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