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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유여향 1권(25화)
10장 봉황화를 지켜라(2)
“으음…….”
그는 기이한 신음 소리를 냈다.
문득 계곡 사이를 흐르는 맑은 개울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거울처럼 투명하고 맑은 물, 그 위에 떠 있는 한 송이 꽃잎. 그 꽃잎을 담은 물살이 바위에 부딪히며 휘돌아 나갔다.
그가 천천히 감았던 두 눈을 뜨자, 입안에서 은은한 과일향이 감도는 걸 느꼈다.
“과연 이것이 무이암차란 말인가? 이것이 진정한 활감청향의 차 맛이로군.”
감탄하기는 봉황화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연소한 나이이나 지금과 같은 차는 처음이었어요. 백 공자의 차는 실로 천하일절이로군요.”
백천성은 그녀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차는 단지 마시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그 효험을 느껴야만 하는 터…… 아마 지금쯤이면 봉 소저는 독상이 아까보다는 조금 호전되었을 것이오.”
“……!”
흠칫 놀란 그녀는 황급히 공력을 운기해 보았다.
확실히 체내에 독은 여전했으나 아까 보는 조금 독기가 약해진 상태였다.
“도…… 독을 해독했나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백천성은 고개를 저었다.
“내겐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 마신 무이암차가 지닌 효능이라고 할 수 있소.”
그는 가지고 있던 종이 상자를 봉황화 앞으로 내밀었다.
“사실 독이란 것은 인간의 몸 입장에서 보자면 외부의 이물질이고, 그 이물질들은 몸의 균형을 깨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들었소. 하지만 차는, 특히 무이암차는 체내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며 균형을 잡아 주는 효능이 있으니, 차를 장복한다면 소저의 독도 치유될 것이오.”
“아…….”
봉황화는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무검자도 마찬가지였다.
“차가 독기를 억제하고 풀어 준다니……. 평생 동안 차를 마셔 왔으나 미처 몰랐던 사실이로군.”
봉황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다시 한 번 백 공자에게 감사드려요.”
백천성은 별거 아니라는 얼굴을 했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 사실 차는 장복해야만 효험이 있는 것이니 즉시 해독하고자 한다면 해약을 먹어야 하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별 도움도 안 되는 것이오.”
“…….”
“그런데 소저가 누군가에게 중독된 거라면…… 그러니까 내가 하독을 한 흉수라면 정말 소저가 중독되었는지 매우 궁금해했을 것이오.”
“……?”
잠시 의아한 얼굴을 하던 봉황화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표국으로 돌아가면 해결될 일이에요. 제가 중독된 독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해독할 방법은 있으니까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순간 어디선가 극히 사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흐흐흐……. 봉황화, 네겐 결코 그럴 기회가 없다.”
스읏…….
동시에 선상 위로 내려앉은 검은 그림자 하나.
귀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얼굴 위에 뒤집어쓰고 있는 귀신 가면이었다. 그 아래는 검은 묵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나타난 것만으로도 죽음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귀면의 묵포 괴인.
그가 나타나자 배 위에 있는 봉황표국의 표사들은 일제히 병장기 등을 뽑아 들었다.
“웬 놈이냐?”
“정체를 밝혀라!”
그들은 지체 없이 귀면괴인을 향해 각자의 병기를 휘두르며 덮쳐 갔다.
“불나방 같은 놈들…….”
귀면괴인은 귀찮다는 듯 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를 향해 달려들던 십여 명의 표사들이 마치 알 수 없는 벽에라도 충돌한 듯 답답한 신음과 함께 뒤로 나가떨어지는 것이었다.
쿠당! 쿠당!
“크윽……. 독…… 독이다…….”
“우와앗……. 몸이 녹고 있다…….”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진 표사들의 몸이 순식간에 한 줌의 독수로 녹아내려 버렸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으음…….”
봉황화가 신음을 내뱉듯 부르르 교구를 떨더니 이내 앞으로 나섰다.
“그대가 누구기에 함부로 살수를 펼친단 말인가?”
귀면괴인은 전율스런 안광을 번뜩이며 그녀를 주시했다.
“봉황화…… 본좌는 이미 네게 여러 번의 기회를 주었다.”
그 말에 그녀는 뭔가를 느낀 듯 멈칫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그럼 당신이…….”
“그렇다. 네년은 진작에 그 물건을 본좌에게 넘겼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에 처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것만을 내준다면 본좌는 그냥 물러나겠다.”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봉황화의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한기가 흘러나왔다.
“비록 내가 죽는다고 해도 결코 네놈에게 그것을 내놓지는 않겠다!”
실로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그 물건’이 무엇이기에 그녀가 죽음마저 불사하겠다고 하는 것이란 말인가?
“죽어라!”
그녀는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우수를 휘둘렀다.
어느 틈엔가 그녀의 옥수엔 지극히 가느다란 세형의 검이 쥐어져 있었는데, 검 끝에서부터 날카로운 검기가 폭출되었다.
츠파아악…….
“크크크……. 어림없다.”
냉소와 함께 귀면괴인의 몸 위로 검은 흑운이 뿜어져 올라왔다.
퍼억!
흑운과 검이 그대로 충돌하며 기이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으음…….”
봉황화는 뒤로 튕겨지듯 물러났는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교구를 휘청거렸다.
단 일 격에 당한 패배였다.
“이제 네년을 이 자리에서 죽인 뒤, 그 물건은 본좌가 직접 가져가겠다.”
외침과 함께 귀면괴인이 곧장 그녀를 향해 덮쳐 왔다.
우수를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내뻗어 갔는데, 흡사 병아리를 낚아채는 독수리의 그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봐, 늙은이……. 그렇게 쉽게는 안 될걸.”
슈우우욱…….
그녀를 덮쳐 가던 귀면괴인의 눈앞으로 세 줄기 빛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만약 이대로 손을 더 뻗기만 하면 그녀의 머리를 부술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된다면 자신 역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황급히 신형을 뒤로 날린 그는 그제야 자신을 향해 날아든 빛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조…… 종이…….”
귀면괴인은 황당하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눈빛을 했다.
자신의 행동을 제지한 그 빛이 겨우 종이에 불과하다니…….
“단순한 종이만은 아니지.”
백천성은 봉황화 앞을 가로막은 채 그를 보며 히죽 웃었다.
“그거 몇 장만 있으면 늙은이 정도는 묻어 버리는 데 지장 없지. 그러니까 종이는 아주 위험한 거라구.”
스윽…….
말과 동시에 곧장 그의 신형이 귀면괴인 앞으로 날아갔다.
귀면괴인은 느닷없는 움직임에 멈칫거렸으나 이내 냉소를 날렸다.
“크크크……. 감히 본좌에게 덤비다니 미친놈이 따로 없구나. 소원이라면……? 엇!”
갑자기 그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파츠츠츳…….
곧장 그의 눈앞까지 날아들던 백천성의 신형이 갑자기 다섯 개로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구분환영술.
무당법문의 법술 중 하나인 이것이 펼쳐지자, 어느 것이 환영인지 실체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 상태에서 백천성은 품속에서 누런 부적들을 꺼내 그를 향해 홱 뿌렸다.
“이 종이들을 무시했다간 큰코다칠걸. 코가 없는지도 모르지만…….”
휘우우우우…….
부적들이 마치 꽃잎처럼 퍼지더니 곧장 귀면괴인 위로 쏟아지는 것이었다.
아니, 단순히 쏟아지는 게 아니라 작은 불덩이가 되어 그의 몸 위로 퍼부어졌다.
화악…… 화르르르…….
설명은 길었으나, 백천성이 위기에 처한 봉황화 앞을 가로막고 귀면괴인을 공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저 숨 한 번 들이켤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기괴한 공격을 받게 되자 귀면괴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
그는 버럭 소리치며 환영들을 향해 쌍수를 휘둘렀다.
슈우욱!
손끝에서 검은 구름이 검처럼 일며 일제히 백천성의 환영을 베어 가는 것이었다.
퍽! 퍼퍼퍽!
환영들과 화염 덩어리가 그대로 깨져 나갔다.
츠파악…….
백천성은 한 줄기 빛이 되어 곧장 귀면괴인의 가슴 안쪽으로 파고 들어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
귀면괴인은 가슴이 서늘하도록 놀랐으나, 자신도 모르게 왼쪽 손을 거둬들이며 날아들던 백천성의 좌측 관자놀이를 부욱 후려쳐 갔다.
백천성의 공격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펼쳐진 것이었다면 귀면괴인의 반응 역시 불가사의할 정도로 빨랐기에 백천성이 당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백천성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발등……!’
그런 그의 눈 속으로 귀면괴인의 오른쪽 발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지체 없이 왼쪽 손을 움직여 팔목에 채워져 있는 유리은형살환을 움직였다.
츄왁!
거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은빛의 강철선이 전광석화처럼 쏘아져 날아가 귀면괴인의 오른쪽 발등을 꿰뚫었다.
“크윽……. 아…… 암습을…….”
귀면괴인은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오른쪽 발을 절룩이며 뒤로 물러섰다.
어느 틈엔가 그의 오른쪽 발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은밀지옥사.
유리은형살환 중의 한 변형인 이것의 위력은 실로 놀라워 거의 금강불괴에 가까운 귀면괴인의 신체마저 꿰뚫고야 만 것이었다.
귀면괴인은 분노가 치밀었다.
“감히 본좌의 신체를 상하게 하다니…… 결코 그냥 놔두진 않겠다! 지옥광풍(地獄狂風)!”
과우우우웅…….
그의 전신에선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지독히도 검은 흑무가 폭출하기 시작했다.
마치 폭풍이 그의 몸속에 있다가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았는데, 그들이 타고 있는 배가 금방이라고 부서질 듯이 크게 흔들렸다.
백천성은 다급히 소리쳤다.
“무검 사형……!”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번쩍!
한 줄기 빛이 흑무를 갈랐다.
먹장구름이 햇살에 갈라지듯, 맑은 광채를 담은 검기는 곧장 흑무를 뿜어내고 있는 귀면괴인의 가슴을 강타했다.
콰와아앙……!
흑무 속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렸다.
그 속에서 처절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어디 두고 보자! 무검자! 네놈이 감히 본좌의 일을 방해하다니…….”
슈슈슛…….
검은 흑무가 빨려들듯 허공 위로 올라갔고, 그것은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무검자.
그는 배 위에 우뚝 선 채 귀면괴인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
백천성이 재빨리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무검 사형…… 설마 그놈이 멀쩡하게 도망친 건 아니겠죠?”
무검자는 무감각한 음성으로 말했다.
“모른다.”
“……?”
“그가 멀쩡한지 안 한지는……. 다만 확실한 건 그놈은 결코 나에 비해 하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
백천성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뭐야? 그럼 그놈과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마주칠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그가 구분환영술과 부적을 다소 요란하게 펼친 것은 바로 무검자에게 일 검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무검자의 일 검이라면 능히 상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하지만 상대는 도망치고야 말았고, 그것이 찝찝하게 만들었다.
‘왠지 느낌이 안 좋은 놈인데…… 젠장…….’
그는 새삼 투덜거렸다.
그러나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갑자기 남운룡의 비명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으와아아악! 배…… 배가 갈라진다!”
* * *
“보고드립니다.”
말쑥한 무복을 걸친 무사가 집무실에 앉아 있는 갈의 노인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갈의 노인.
무림맹 만기당의 당주이자, 당금 강호에서 이십사초 철혈괴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철혈신장(鐵血神杖) 우진풍은 무사를 보며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무슨 일인가?”
무사가 대답했다.
“무당파에서 법사를 파견했다고 전해 왔습니다.”
우진풍은 멈칫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도착한다고 하더냐?”
“사정상 전서구를 늦게 보냈다고, 아마 지금쯤이면 얼추 도착할 때가 되었다는 연락입니다.”
“…….”
우진풍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는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의문의 살인 사건들.
강호 명숙이라고 불릴 만한 기인들이 자신의 거처 등에서 살해되었는데, 그 죽음에 대한 아무런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었기에 지금 맹 내에서 여러모로 난처한 지경에 빠져 있었다.
“제갈세가엔 연락을 해 보았나?”
우진풍이 무표정한 눈으로 무사를 바라보자, 무사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이미 했습니다. 하지만 그쪽의 반응이 회의적이었습니다.”
“회의적……?”
“아무래도 무림맹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하긴, 제갈세가가 지난 삼십 년 동안 강호의 일과 무관하게 지내 왔지. 어찌 보자면 강호 무가가 아니라 상인 같을 정도로…….”
우진풍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나직이 중얼거렸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의 행동은 뭔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나타나는 그의 습관 중 하나였다.
한동안 그렇게 있던 우진풍은 무사에게 눈빛을 보냈다.
“나가 보게.”
“존명…….”
무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이내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우진풍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법사라…… 과연 그 법사라는 인물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무리 이 살인 사건이 술법과 관계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철저히 합리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만 믿는 자로, 애초부터 무당파에 있다는 법사라는 존재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다만 맹주가 직접 내린 결정이기에 수하로서 따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법사란 놈이 살인 사건을 푸는 데 방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내쫓아 버릴 것이다.”
그는 주먹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의 명호에 들어가 있는 철혈이라는 말은 강호의 마인들을 처단할 때만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매우 강하고 독단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무래도 그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해 놔야겠지.”
우진풍은 책상 앞에서 일어섰다.
그는 지금 맹 내에 가까운 몇몇 인사들을 찾아가 협조를 구할 생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에 대해선 그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그의 손을 들어 줄 자들이므로 껄끄럽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법사란 놈이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좋은 다리가 되겠구나.”
우진풍은 피식 실소를 하며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 * *
무림맹.
수많은 왕조들이 명멸해 간 고도 낙양의 중심부에는 하나의 거대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하나의 요새를 방불케 하는 규모와 위용.
이곳이 바로 백도인들의 심장이자 상징인 무림맹이었다.
오후.
아침 해가 중천으로 떠오르며 뜨거운 열기를 내뿜기 시작하던 시각. 맹 입구를 지키고 있던 외단경비 소속의 무사 영만과 오구는 다소 지겨운 모습을 하며 연신 하품을 해 댔다.
“아함……. 오늘도 지루한 하루로구먼.”
“그러게.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는 이곳을 굳이 우리가 지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낄낄……. 그 소리 이따 조장님에게 해 봐. 아마 한참 귀여워해 주실 게다.”
오구의 투정에 영만은 이죽거렸다.
“아무도 없다는 게 행복인 거야. 괜한 일로 사람들이 찾아오면 애꿎은 우리만 피를 본다구.”
“그걸 누가 모르나. 다만 심심해서 그런 거지.”
네 명.
그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네 명의 인물들이 무림맹 입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삼남일녀.
그중 한 명은 매우 차가운 인상의 노도인이었다.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는데, 그중의 한 명은 지극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의 청년은 극히 대조적이었다.
한 명은 조금 뒤로 처진 채 자신의 몸집만 한 커다란 봇짐을 지고 낑낑거리며 걸어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마치 유람이라도 나온 듯 한 손에 쥔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
“……!”
그들 중 부채를 쥐고 있는 청년이 영만과 오구에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전해 주겠소. 무당파에서 사람이 왔다고…….”
“무…… 무당파…….”
“저분이 바로 무당 최고의 검인이신 무검자 어른이오. 그리고 난 백천성이라고 합니다.”
히죽 웃어 보이는 백의 청년.
그가 바로 백천성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세 명은 무당파를 함께 떠나온 무검자와 남운룡, 운여청이었다.
마침내 그들이 무림맹에 도착한 것이다.
<『칠포유여향』 제2권에서 계속>
<참고 문헌>
김영숙. 『중국의 차와 예』. 불교춘추사, 2006년 6월 22일 초판 발행.
김경우. 『중국차의 세계』. 월간 다도, 2008년 6월 16일 초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