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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
천하제일 호위무사 1(1화)
1장, 청부의뢰(1)
하북성(河北省).
북부 지방에 자리 잡은 곳으로, 광활한 곡창지대를 가진 북부의 대농업 지대이다.
하북성 동쪽 끝에 위치한 한 외딴 마을.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마을 어귀에서부터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리며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흑의경장 차림의 죽립을 눌러쓴 사내이다. 허리에는 칼을 차고 있는 것이 무인인 모양이다. 사내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광장을 지나쳐 여러 갈래로 이어진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은 홍등가로 바로 이어진 골목으로, 골목 초입부터 지분을 바르고 나온 여인들이 손님을 맞을 준비에 분주하게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호호호, 벌써부터? 급하셨나 보다.”
입구 초입에서부터 벌써 꽃단장을 끝마친 여인 하나가 사내의 옷깃이라도 잡아끌 요량으로 손을 뻗었다가 흠칫 놀라며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만일 이대로 사내의 옷자락을 잡았다가는 그의 허리춤에 있는 칼이 뽑혀져 나와 자신의 손을 자를 것만 같았다. 아니, 아마 틀림없이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홍등가에서 잔뼈가 굴러먹은 여인의 본능적인 직감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정확히 일 장의 거리를 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얼빠진 모양으로 사내가 가는 것을 쳐다만 보고 있는 여인에게 이제 갓 스물이나 넘었을까 싶은 앳된 여인이 다가와 물었다.
“왜 그래요. 언니?”
그 말에 정신이 든 여인이 한숨을 내쉬며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우… 무림의 사내인가? 큰일 날 뻔했네.”
“뭐가? 왜 그러는데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 무림의 사내는 만지지도 건드리지도, 상종하지도 말라. 쳇, 재수가 없으려니까 영업개시부터 이 난리람. 그나저나 저리로 가면 무황이가 있는 곳인데?”
“무황이요? 그게 누구예요?”
“왜 있잖아. 여자 무지하게 밝히는 어린놈.”
“아! 그 색마?”
묻는 여자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줄곧 이곳에서 지내면서 사내에 대한 이야기만 무성했지 실제로는 자신도 사내의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듣자 하니 나이는 이제 막 약관을 넘었지만, 외모는 그보다도 조금 더 어려 보인다고 했다.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를 나이에 외모 또한 어려 보이니 그게 무슨 남자일까 싶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소문을 듣자니 누구라도 호기심이 생길 법하다.
소문에 의하면 그 무황이라는 사내와 동침을 한 여인이라면 그날 밤을 잊지 못해 매일같이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미소를 띠우니 그에 대한 소문은 이곳 마을은 물론 하북성 전체에까지 퍼져 있었다.
그와의 밤을 못 잊어 매일같이 한숨을 내쉬는 여인이 수십이요, 그의 앞에서 옷고름을 풀고 싶다는 홍등가의 여인이 수백이다. 하지만 그는 한 번 찾은 여인은 두 번을 찾는 법이 없었고, 매일같이 새로운 여인을 찾아 헤맨다는 하북성 제일의 풍류 남아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뜸해 최근 그의 얼굴을 보았다는 여인은 없었다.
그런 그의 거처가 저런 허름해 보이는 골목에 있다니 누구라도 호기심이 동할 법하다.
그 모습을 보고 늙은 여인이 혀를 찼다.
“쯧쯧, 너도 이제 이쪽에 발을 담갔으니 잘 알아 두어야 할 거야. 행여나 그놈한테 마음을 주면 안 돼. 그 반반하게 생긴 얼굴과 세치 혀에 농락당한 년들을 한 줄로 세워 놓으면 여기서부터 광장까지는 이어질 테니.”
“그 사내가 그렇게 인기가 많아요?”
“행실이 조금 그래서 그렇지. 얼굴 잘생겼지, 언변 뛰어나지, 여자 마음 잘 헤아려 주지. 성격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게 최고라는 거 아니겠어?”
늙은 여인은 주먹을 꽉 쥐며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여인이 자지러질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호! 세상에 그 정도예요?”
주먹은 그녀들이 발을 담구고 있는 세상의 표현법.
엄청나게 크다는 표현이다.
수십 년을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노류장화의 말이라면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갖으리라.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내 기둥서방으로 앉혔을 텐데.”
젊은 여인이 은근한 어조로 물어봤다.
“그러면 제가 한번 도전해 볼까요?”
“아서라. 그러다가 그놈한테 빠져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는 년들이 이곳에만 열이 넘는다. 무엇보다 넌 못생겨서 안 돼!”
“피!”
여인의 입술이 쌜룩거렸다.
* * *
홍등가에서부터 이어진 골목 후미.
그곳의 맨 끝에는 판자로 만든 허름한 집이 세워져 있다.
출입문 위에는 조그마한 푯말이 걸려 있었는데, 그곳에는 무영이라는 조그마한 글씨가 쓰여 있다.
이곳이 언제부터 자리 잡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홍등가에서 가장 오래된 노류장화가 이곳에서 보낸 세월이 삼십 년. 그 여인이 이곳에 오기도 전부터 존재하던 판잣집이라니 그 유구한 세월을 버텨 온 판자들에게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라도 할 판국이다.
그런 그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끼이익―!
판잣집 문이 열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문 뒤로 조금 전에 홍등가를 지나쳐 왔던 흑의경장의 사내가 보였다. 사내가 집 안 내부를 훑어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겉보기에도 형편없었지만, 실내는 더욱더 형편없었다. 구석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 있고,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도 풍겨 왔다. 있는 것이라고는 덩그러니 탁자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사내가 집 안으로 걸음을 내딛으면서 말했다.
“계시오?”
잠시 후, 안쪽에 조그맣게 생긴 문이 열리면서 부리부리하게 생긴 장한이 걸어 나왔다.
“뉘시오?”
“의뢰를 하러 왔소만.”
“하아아아암! 어디서 왔소?”
장한은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크게 했다. 고개를 젖히고 목젖까지 보일 만큼 큰 하품이었다. 눈가에는 찔끔 눈물도 보이면서 오른손은 사타구니 사이를 긁고 있었다. 그 격의 없는 행동에 흑의경장 사내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 책임자를 만나면 이야기하겠소.”
“그냥 나한테 이야기하면 되오. 여긴 나밖에 없으니까.”
장한이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감히!!!”
흑의경장이 살기를 일으켰다. 은연중에 그 기세가 뻗어 나갔는데, 숨이 막힐 듯한 기세가 장한에게 쏘아져 갔다. 그 기세만으로 미루어 보건대 흑의경장의 무공 수위는 일류 수준에 가까워 보였다.
만일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사람이 일류고수의 살기에 노출된다면 아마 숨이 막혀 질식할지도 몰랐다. 이것은 눈앞의 장한을 혼내 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장한의 수준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무공을 익힌 고수들끼리는 종종 이런 식으로 상대의 실력을 가늠 짓기도 했다.
장한은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능청을 떨었다.
“잘못하면 사람 죽이겠네. 무림맹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나 보오?”
흑의경장 사내가 몸을 움찔거렸다. 자신의 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는 것을 보건대 이자의 무공 실력은 최소한 자신과 비슷한 수준. 저렇게 무방비 된 상태에서 내공도 끌어올리지 않고, 일류고수의 기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긴다는 것은 자신이라도 손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흑의경장의 사내는 살기를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어떻게 알았나?”
“놀랄 것 없소. 대단한 것도 아니니. 검 손잡이에 실을 꼬아 매듭을 짓는 방식은 황기철 방주가 주로 쓰는 표식인데, 황기철방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은 모두 무림맹에 귀속되어 있고, 황기철 방주가 직접 만든 검은 무림맹의 일류고수급들에게 나누어진다고 들었소. 돌머리가 아닌 이상 그 정도 추리 정도는 해야지. 이 바닥에서 밥 먹고 살려면. 안 그렇소?”
다른 건 몰라도 장한의 눈썰미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흑의경장의 사내는 살기를 거뒀다.
장한이 그 모습을 보고 또다시 히죽거렸다.
“이런 밤중에 혼자 온 것을 보면 이것은 무림맹에서 하달되는 일이 아닌 비공식적인 일이고, 하필 이곳에 찾아온 것을 보면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인가 보오. 안 그렇소?”
흑의경장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미리 말하지만 우리는 사람 죽이는 일은 안 하오. 살인청부를 하려거든 살막이나 가 보슈.”
“살인청부는 아니다.”
“살인청부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소? 어지간한 일이면 맹에 있는 무사들로도 충분할 텐데. 요즘 무림맹에 사정이 안 좋다더니 그 말이 진짜요? 이런 촌구석까지 걸음을 다 하시고?”
“황 어르신께서 보내서 왔다.”
“황 어르신이라 하면?”
“황오현 장로님.”
장한이 무르팍을 쳤다.
“아하, 무림맹의 황 장로님께서 보냈구려. 난 또 누구라고. 왜요? 가지고 간 약이 잘 안 듣는다고 하더이까? 흠. 이상하군. 그 약이라면 십 년의 신혼생활은 끄떡없을 텐데. 재료가 조금 구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효과는 확실한…….”
흑의경장 사내가 헛기침을 토해 냈다.
“크흠!!!!”
“아차, 나도 모르게 고객님의 정보를 유출할 뻔했네. 하지만 뭐 그쪽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 대단한 비밀도 아니지 않소?”
장한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그 웃음이 경망스럽기 그지없다.
흑의경장 사내가 그의 모습을 보고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솔직히 자신이 이런 곳에서 저런 놈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황오현 장로가 보내서 온 것이기는 하지만, 무림맹의 앞날이 걸린 이런 중대 차의 일을 이런 삼류 거렁뱅이 같은 작자에게 맡겨야 한다니 도저히 자신은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것은 맹주 또한 수락한 사항이니 자신이 거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흑의경장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호주머니에 있는 주머니를 탁자에 던졌다. 주머니는 정확히 탁자 가운데로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