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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호위무사 1(25화)
7장, 화무린을 찾는 사람들!(4)


황오현 장로가 호위를 요청했다는 것은 대공자 측에서도 무림맹주의 딸의 존재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떠한 계기로 인해서 당문화의 존재가 그들에게 알려졌겠지. 그걸 황오현 장로가 감지한 것이고.
만일 그랬다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정보망을 동원하여 딸의 존재를 찾고 있을 것이 분명할 터.
만일 당문화를 노리는 이들이 외부 세력이라면 모르겠으나 무림맹의 대공자의 세력이라면 무림학관 내에도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즐비했다.
학관 자체에서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무림맹주의 숨겨진 딸이 여기 있다고 광고하는 꼴밖에 되질 않는다.
“그렇군. 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네. 아직 어린 나이에 무척이나 생각이 깊군.”
화무린이 씨익 하고 웃었다.
“이 바닥에서 먹고살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죠.”
“하하, 그런가?”
“아참! 그리고 한 가지 더요.”
“응? 말씀하시게.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이거는 그거랑은 관계없는 개인적인 일인데요. 혹시 최근에 학관 내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든가 수상한 사람이 침입을 했다든가. 뭐 그런 일 없었나요?”
“응? 그게 무슨 소리인가?”
화무린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꺼내 펼쳐 놓았다.
“혹시, 이런 기호 보신 적 있으세요?”
착각이었을까? 그것을 본 진상풍 관주의 얼굴근육이 부르르 떨었다.
“이건, 어디서 났는가?!”
그 격렬한 반응에 오히려 화무린이 더 놀랄 지경이었다.
“혹시 보신 적 있나요?”
진상풍 관주가 침중한 음성을 흘리며 이내 입을 열었다.
“실은, 몇 해 전 우연히 무림학관 내의 정보를 빼돌리고 있는 자를 발견했네. 내가 잡아서 심문을 하려고 했으나 스스로 독단을 깨물고 자결을 했지. 그때 그자의 품속에 종이가 한 장 있었는데, 그 종이에도 이러한 기호가 쓰여 있었네. 이건 도대체 어디서 난 건가?!”
“장서각에서 발견했어요.”
“장서각이라면 서고가 아니던가? 그런 곳에 이 종이가 있었다고?”
“책장에 밑에 은밀히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흐음 그래?”
진상풍 관주가 침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요즘 무림학관이 예전 같지가 않네. 자네도 지내보면 알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편협함으로 가득 차 있다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네. 뭔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해 가더군. 나는 그것이 세월 탓인 줄로만 알고 있었지.”
“그건 사파의 세력이 정파에 비해 너무 커진 탓이 아닐까요?”
진상풍 관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한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네. 무림에 정파만 존재한다고 평화롭고 의기 넘치는 곳이 될 줄 아는가? 천만에. 천만에.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똑같다네. 단지 표현하고 하지 않고, 절제하고 하지 않고의 차이일 뿐이지. 정파라고 해서 정의롭고, 의협심 많은 이들만 있는 곳은 아니지. 무림은 지금 곪아 가고 있는 중이네. 그리고 무림학관 역시.”
“그런 말씀을 하는 이유가 혹시 무림학관 뒤에 또 다른 배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긴가요?”
“그래. 이해가 빠르군.”
진상풍 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곳뿐만이 아니라 무림 곳곳에서 정체불명의 세력들이 있다고 생각하네. 그들이 알게 모르게 무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너무 심한 비약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생각해 보게. 지금의 무림은 마교나 천마교, 배교, 그리고 세외사마 세력들과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루며 오늘날까지 이어 왔지. 하지만 지난 백 년간은 무림 역사상 가장 길다고 말할 수 있는 태평성대를 누려 왔네. 그게 이상하지 않은가?”
“어째서죠?”
“무림이란 갑과 을의 관계처럼 늘 명확한 구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네. 무수히 많은 세력들이 크고 작은 분쟁을 해결해 가며 세력을 확장하는 전쟁터 같은 곳일세. 하지만 근래에는 그들과의 분쟁은커녕 움직임조차도 전혀 포착되고 있지 않지. 마치 그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야. 이래도 모르겠나?”
“그들이 무림 침략을 포기했을 수도 있잖아요?”
진상풍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들은 결코 무림을 포기하지 않을 자들이네. 무림의 광활한 대지와 살기 좋은 기후 조건. 이곳은 그들에게 있어 지상낙원이나 다름없지. 이렇게 좋은 곳을 내버려 두고 그들이 포기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 그래서 나는 한 가지 가정을 해 보았네.”
“그게 뭔가요?”
“그들은 이미 중원에 들어와 있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야.”
“설마 암암리에 무림에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는 뜻인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네! 바로 이게 그 증거이지!”
진상풍은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흔들었다.
“그래서 나는 은밀하게 무림학관의 내부를 조사하고 있었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에게 감시가 붙었지.”
“무림학관 내에서 관주님을 감시하는 자가 있다고요?”
“그래. 어찌나 은밀히 감시하던지 나도 그들의 존재를 최근에서야 알았네.”
“그들이 누군지는 밝혀내셨어요?”
진상풍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 상대에게 경각심만 줄 뿐이지. 내가 그런 짓을 뭣 하러 하겠나?”
화무린은 그때서야 자신이 들어오기 전에 주위를 경계했던 진상풍 관주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흠. 관주의 무공 수준이면 능히 초 일류급 이상의 무공 수위일 터인데. 그런 관주의 이목을 속이고 감시할 수 있는 자들이라니… 과연 어디서 온 자들일까? 이거 괜히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드는 거 아니야?’
화무린은 괜히 말을 꺼냈다 싶어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했다.
뭐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겠지. 나중에 도움 받을 일이 있으면 설마 관주가 모른 척하겠어? 어차피 당문화를 호위하기 위해서는 위협이 될 만한 세력이 있으면 미연 방지 차원에서라도 알고 있어야 하니까.
진상풍 관주가 은밀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싫어요!”
화무린은 그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말을 단호하게 끊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진상풍 관주가 황당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 아직 말도 안 했네.”
“보나마나죠. 관주님께 감시가 붙어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가 없으니 저보고 이에 대해서 조사해 달라는 거잖아요?”
“허허, 귀신이구만.”
“꼭 된장인지 똥인지 찍어 먹어 봐야 맛을 아나요? 척하면 척이지. 그리고 관주님이랑 저랑은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초면에 이런 부탁을 막 해도 되나요?”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게나. 내가 오죽하면 그러겠나? 무림학관 내에 믿을 만한 사람이 너무 없어서 그러네.”
“싫다니까요? 그리고 전 지금 일하고 있는 중인 거 아시잖아요. 이중 청부는 계약 위반이거든요?”
“이보게 화 소저. 진짜 이러긴가?”
“네. 이럴 건데요.”
“내가 모든 것을 다 불어도?”
헐, 이 양반이 보자 보자 하니까 완전히 막나가자네?
“지금 협박하시는 건가요?”
진상풍 관주가 헛기침을 토해 냈다.
“크험! 내가 언제 협박을 했다고 그러는 건가? 다만 상부상조하자고 의견을 제시한 것뿐일세.”
“그 말이 그 말이잖아요! 와, 진짜 치사해. 황 장로님은 관주님이 이런 사람인 거 알고 계시나요?”
“글쎄. 지금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와, 이거 정보나 하나 주워 보려고 괜히 말 꺼냈다가 영락없이 코 꿰이게 생겼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다.
어차피 이곳에 불순 세력의 간자가 숨어 있다면 위험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조사는 이루어져야 한다.
진상풍 관주의 조력을 받으면 일이 한결 쉬워질 수도 있을 테고, 만일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당문화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큰 비밀이 있지 않은가?
만일을 위해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 줄 이를 한 명 만들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좋아요! 하지만 저도 조건이 있어요.”
“조건?”
“혹시라도 나중에 저의 신분에 관해서 문제가 생긴다면 관주님이 그것을 증명해 주셔야 해요.”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제 직업의 성격상 화무린이 아닌 다름 이름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그때 관주님께서 제 신분을 보장해 달라는 소리예요. 그 정도쯤은 해줄 수 있으시죠?”
상황이 어떻게 뒤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화무린도 변체환용술(變體環容術)을 언제까지고 계속 지속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변체환용술을 유지하는 데는 진기가 계속 이어져 있어야 하고, 적지 않은 심력이 뒤따른다.
마음만 먹으면 계속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언제까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자신이 화무린의 모습으로 이곳에 입학한 것도 원래의 계획과는 다른 그때의 상황만을 면해 보자는 고육지책이었다.
화무린은 적당한 기회를 봐서 본모습으로 돌아갈 것도 염두해 두고 있었다.
그때 진상풍 관주는 화무린을 계속 무림학관 내에 머물 수 있게 도와줄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 줄 것이다.
진상풍 관주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좋네. 내 힘이 닿는 데까지는 도와주도록 하지.”
그 말을 화무린이 냉큼 받았다.
“좋아요! 계약 성립!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예요?!”
“걱정 마시게.”
두 사람은 이 같은 결론에 서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나 화무린 같은 경우에는 엄밀히 따지자면 손해 본 것이 전혀 없으니 진상풍과의 대화를 통해서 꽤나 많은 이익을 본 셈이다.
“그러면 더 이상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왜?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는 겐가?”
“이놈이 자꾸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네요.”
화무린은 공복으로 비어 있는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아침은 꼭 먹어야 해서요.”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는 그 익살스러움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진상풍은 화무린이 꼭 마음에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여유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또한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사고나 행동들이 또래의 아이들과는 왠지 다르게 느껴졌다. 진상풍이 보아 오던 저 나이 때의 여자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무공은 갈고닦으면 일정 수준에 이를 수 있다지만 저러한 것들은 타고난 것이지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탈하지만 경박하지 않고, 그 모습 자체가 솔직하여 상대방에게 호감을 이끌어 냈다.
진상풍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어서 가 보게. 아직 식사 시간 전이니 서둘러서 가면 식사를 할 수 있을 걸세.”
“그러면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무린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나섰다.
화무린이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진상풍이 나지막이 혀를 찼다.
“쯧쯧, 아깝군. 아까워.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났다면 가히 천하를 호령할 인재가 될 수 있었거늘.”
그 음성에는 진상풍 관주의 진심이 묻어 있었다.


<『천하제일 호위무사』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