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천하제일 호위무사 1(24화)
7장, 화무린을 찾는 사람들!(3)


“그대가 화무린 소저인가?”
“네, 맞는데요.”
“반갑군. 나는 진상풍이라고 한다네. 이곳의 관주직을 맡고 있는 늙은이지.”
당문화가 노인의 정체를 확인하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당문의 당문화라고 합니다.”
“그대가 당문화 소저로군. 내 이야기는 가끔 들었네. 가주께서는 잘 지내고 계시는가?”
“예, 덕분에 잘 지내고 계십니다.”
“그게 왜 내 덕분이란 말인가? 다 가주의 인품 덕이지. 여러모로 당문에서 신경 써 준 덕분에 이곳 학관이 무탈 없이 운영되고 있네. 가주께는 늘 감사하다고 대신 좀 전해 주게나.”
“예, 알겠습니다.”
“이 늙은이가 다름이 아니라 화 소저에게 용건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네. 자리 좀 피해 주실 수 있겠는가?
“예?”
무림학관의 관주라면 당문화의 입장에서 보면 꽤나 높은 신분이다.
그런 그가 무슨 이유에서 화무린을 호출한 것도 아닌 직접 이렇게 찾아와서 용건을 밝히는 걸까?
진상풍은 그런 당문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무린을 쳐다보며 말한다.
“화 소저 시간 괜찮겠는가?”
“네, 뭐. 시간은 괜찮습니다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진상풍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의 주위에는 학생들이 오고가며 힐끔힐끔 시선을 주고 있었다.
“여기서는 조금 그렇군.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겼으면 하는데 말이야.”
화무린이 슬쩍 당문화를 쳐다봤다.
당문화는 자신보다도 한참이나 높은 배분의 진상풍이 어려웠는지 빨리 가보라고 눈치를 줬다. 그렇지 않아도 화무린도 진상풍 관주를 한번 만나 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적인지 아군인지 확실하게 구분을 해 둬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조력자로 써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방으로 장소를 옮긴 진상풍은 기감을 확대시켜 주위에 듣는 이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이 사뭇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무림학관 내에서의 가장 높은 배분은 다름 아닌 관주가 아니던가?
관주의 방에서 그것도 당사자인 그가 무엇을 이렇게 조심스러워해야 한단 말인가?
그의 행동에서 화무린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방에서 남의 귀를 조심해야 할 만큼 그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과 그를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 무림학관 내에 있다는 것을!
진상풍 관주가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입을 열었다.
“내가 돌려서 말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하니 바로 물어보도록 하지. 혹시 소저는 황오현 장로를 알고 있는가?”
“황오현 장로요?”
역시 그 문제였던가? 하긴 그 문제를 제외하고는 일면식도 없는 관주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딱히 있어 보이진 않았다.
화무린은 일단 시치미를 뗄 작정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그분이 누구시죠?”
너무나 자연스럽게 시치미를 떼는 터라 하마터면 진상풍은 그 말에 속아 넘어갈 뻔했다. 하지만 여지껏 살아온 관록과 눈썰미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그는 화무린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허허, 노부까지 속일 속셈인가? 그대가 무림학관에 오기 전부터 황 장로에게 서신을 받았다네. 이래도 거짓말을 할 셈인가?”
‘서신? 직접 만난 건 아니라 이거지? 그렇다면 서신에는 어떠한 내용이 써져 있었을까? 혹시 내 정체까지도 알고 있는 건가? 이 사람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글쎄요. 저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허허, 조심성이 많은 아가씨군. 소저가 당문화 때문에 무림학관에 온 것을 알고 있네. 그가 나한테 당문화와 자네를 한 방에 넣어 달라고 부탁했지. 나는 처음에는 두 사람이 친분이 두터워서 같이 학관 생활을 하려고 한 줄 알았네. 하지만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둘은 이곳에서 처음 본 사이더구만. 내 말이 틀렸나?”
화무린은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노인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부정을 하기에도 긍정을 하기에도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화무린은 그냥 침묵으로 일관했다.
“소저가 연 교관에게 한 일로 인해서 회의가 벌어진 것을 알고 있는가? 부관주가 소저를 주시하고 있네. 끝까지 침묵을 지키겠다면 내 말리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은 내가 도와줄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야. 그렇게 된다면 소저가 꽤나 난처해지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겠지. 허나, 만일 그대가 사실을 모두 털어놓고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내 황 장로와의 친분을 생각해서라도 마땅히 그대를 도와줄 것이고.”
쩝, 괜한 행동으로 이목을 끌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성질을 조금 누그러트릴 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무린은 진상풍 관주를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정광이 깨끗하고 심지가 굳어 보이는 눈이다. 노안으로 인하여 다소 색깔이 탁하기는 하나, 그 깊이는 연륜만큼이나 깊어 보이고, 그 어떤 유혹이나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을 굳건함이 엿보였다.
화무린은 관상을 보는 것에도 제법 조예가 깊었다.
이런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면 버렸지, 결코 동료를 배반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그 조심성 많은 황오현 장로가 이 사람에게 부탁을 청했다고 함은 그만큼 이 사람을 신뢰해서였을 것이다.
진상풍 관주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무림학관 내에서 비교적 행동의 제약 없이 활동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화무린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
문제는 진상풍 관주가 자신과 당문화에 대해 얼마만큼이나 알고 있느냐인데.
한참 동안이나 생각한 화무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진상풍 관주 같은 이에게는 돌려서 말하는 것보다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더욱 나은 선택이 될 수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정보만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진상풍 관주는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좋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당문화의 신변을 지키려고 온 사람입니다.”
“당문화의?”
진상풍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화무린이 당문화에게 접근한 것은 뭔가 목적을 바라고 온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그녀의 신변을 보호하고자 이곳에 온 것이라면 자신이 추측한 여러 가지 상황과는 전혀 맞지가 않게 된다.
당문화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니.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부터?
사천당문이 다른 문파와 피를 부를 만큼 척을 진 곳이 있었던가?
“무림학관은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되는 곳이라네. 당문화가 외부에서 무슨 잘못을 하고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만큼 무림학관의 경비 수준은 낮지가 않네. 그런데도 이곳에서 당문화가 위험을 겪을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무림학관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당문화를 노리는 자들은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자들일 겁니다.”
“흐음.”
진상풍 관주가 신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하긴, 그러니 그 조심성 많은 황오현 장로가 자네를 부른 것이겠지. 혹시 자네의 사문을 알려 줄 수도 있겠는가?”
화무린이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무영문의 제자입니다.”
“무영문?”
진상풍 관주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화들짝 놀라며 반문한다.
“혹시 십대 신비 문파 중에 하나라는 그 무영문이란 말인가?”
“맞습니다. 제 사문입니다.”
딱히 거짓말할 이유가 없음에 화무린은 솔직히 자신이 무영문 소속임을 밝혔다. 거래를 함에 있어서 솔직해진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깊은 신뢰를 얻어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진상풍 관주는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자였다.
하지만 화무린은 자신이 무영문주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무영문이 일인전승 문파임을 모를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여자의 몸으로 있는 상태이니 문주임을 밝힌다면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도 밝혀야 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감추어야 할 비밀.
결코 세상에 밝혀져서는 안 될 무영문의 비밀이었다.
“오호, 놀랍군.”
진상풍 관주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화무린을 살폈다.
“그랬었군. 그렇다면 부탁을 받고 당문화의 신변을 보호해 주고 있는 건가?”
“네.”
“이제야 자네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군그래. 나이에 걸맞지 않은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어 수상쩍게 생각하고 있었네. 철가장이라고 그랬는가?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곳에서는 자네와 같은 인재를 배출해 낼 수는 없지. 이제 봤더니 무영문이었군. 허허허.”
진상풍 관주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혹시 당문화를 노리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어이어이, 그건 그렇게 가볍게 물어볼 문제가 아니라고!
자그마치 이십만 냥짜리 의뢰라고!
진상풍 관주의 말이나 표정을 보건대 당문화를 노리고 있는 자들이 당문과 은원이 얽힌 이들쯤으로 생각하는가 보다.
만일 당문화의 출생에 비밀에 대해서 말해 주면 그의 태도가 어떻게 변할까?
화무린의 생각이 맞는다면 당문화를 노리고 있는 적은 분명 무림맹의 대공자와 그의 추종세력들이 분명했다.
진상풍이 아무리 무림학관의 관주고, 무림에서 차지하고 있는 배분이 높다고는 하나 그들 세력에 비교하자면 그의 힘은 조족지혈.
더군다나 진상풍 관주가 지금은 비록 의리로써 황오현 장로를 도와주고 있다고는 하나 언제 그의 마음이 변심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화무린의 입장에서는 불확실한 위험을 만들 바에는 차라리 도움을 받지 않는 편이 속편했다.
“음… 그것은 죄송합니다. 더 이상은 말씀해 드릴 수 없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황오현 장로님께 직접 물어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화무린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상풍 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네. 더 이상 자네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연 교관의 일은 내가 최대한 무마시켜 보도록 함세. 자네도 더 이상은 문젯거리를 만들지 말고 조용히 지내도록 하게나.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내가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없겠고? 당문은 학관 내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곳이니 학관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일이네만.”
화무린이 손사래를 치며 거절의 뜻을 밝혔다.
확실히 진상풍은 당문화의 문제를 가볍게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저렇게 도와준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거겠지.
‘뭐, 본인이 멋대로 착각한 것이니 그냥 저대로 내버려 두면 될 일이고. 내가 굳이 친절하게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든다고 그러면 도리어 가까운 곳에서 말이 나올 수 있는 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