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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활 1
마지막 부활 1권 (1화)
프롤로그
1960년도는 대한민국의 격변기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자 정권을 노리고 있던 박정희 소장이 군사적 쿠데타를 일으킨 탓이다.
덕분에 4대 대통령이었던 윤보선과 장면 일각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이었으니 사람들은 늘 세상에 대한 한탄을 늘어놨고 자신들의 민족적 한을 달래 줄 구원자를 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의 사쓰마번(오늘 날의 가고시마)에서 한 무도인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한국의 기자들을 모아두고 직접 시현류의 사방베기를 시전해 보이며 카메라에 대고 외쳤다.
―조선의 겁먹은 무도인들이여! 보고 있나! 딱 칠 일을 기다리겠다! 그때까지 날 상대할 자가 없다면 더 이상 조선 땅에는 본국을 상대할 무도인이 없다 여기겠노라!
그 무도인의 이름은 토고우 츄우이, 당시 일본에서 검으로는 이길 자가 없다는 명성을 지닌 일본 고유 검파의 무도인이었다. 또한 그가 익힌 시현류는 메이지유신 당시에 온건파였던 신선조에 대항하기 위해 성장한 검파였으며, 혈풍시현류라고 따로 불릴 정도로 일본에서는 그 명성이 대단히 높은 검파였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그 기사를 본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그에 대항하는 민족의 무도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염원과는 달리 토고우를 상대할 상대는 오 일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무도인들이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더욱 모습을 감춘 탓이다.
바로 그때 자신을 서울대 철학과 교수라고 밝힌 이경명 교수가 자신이 키운 제자들을 이끌고 토고우가 머물고 있는 체육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토고우를 앞에 대고 자신 있게 외쳤다.
―나는 한국의 이경명 교수요! 그리고 이들은 내가 익힌 대한민국 해동검도의 제자들이니 어디 한 번 상대해 보시오!
그때까지 특종을 찍고 있던 기자들은 은거하다 나타난 이경명 교수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벌여줄 줄 알았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토고우가 열 명에 달하는 이경명 교수의 제자들과의 단체 대련에서 부상 하나 없이 그들을 꺾어 버린 것이다. 이후 토고우는 한국의 무도인들을 전부 겁쟁이 조센진이라 폄하하며 체육관을 떠났다. 그리고 그 날 각 신문사의 기사들의 헤드라인들 또한 전부 한국 무도계의 어두운 미래만을 역설하게 됐다. 1960년 후반, 조선 비맥의 무예를 지닌 강홍도 노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오 년 후.
“큭… 졌소.”
토고우가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그를 덤덤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강홍도가 길게 기른 수염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그대가 바라보는 조선이 겁쟁이들의 나라인가?”
그의 물음에 토고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무겁게 고개만을 떨어트렸다.
“약조한 대로 십 년간 현판을 내리게.”
강홍도는 그 말을 끝으로 바람같이 시현류의 본 도장을 빠져나갔다. 도장깨기 신화가 태동하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그렇게 과거 일본에 의해 수모를 겪은 국가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이 년간 일본의 전 도장을 돌아다니며 도장깨기를 시작한 고유 무예 비천(秘天)의 지킴이 강홍도는 일본의 한 방송국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나라 조선, 아니 대한민국의 잠재력은 무한하오. 한낱 좁은 식견으로 우리의 민족성을 평가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소.
일본에서도 대서특필로 쓰여진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일본의 마지막 도장까지 자신의 발밑에 두게 됐고 한국의 무예가 녹록치 않음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시작된 각 나라의 무예 대련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해관계를 시작으로 이어져 내려왔으니 십 년마다 열리는 그 대회를 무도인들은 약자로 AST(Asia Spirit Training). 아시아 스피릿 트레이닝이라 부른다.
1장 사형선고 (1)
휘이잉.
바람이 분다.
준원은 망원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노리쇠를 뒤로 당겼다. 실탄이 장전되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고요한 정적이 감돈다. 도심의 새벽녘, 주위는 어둠이 내려앉아 골목 사이로 개 짖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이어 스코프에 보이는 옥상 반대편 고층 건물의 사무실에는 목표물이 소리를 지르며 부하 직원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죽이는 것이 옳을까? 신이라도 된 것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죽여도 되는 것일까?
준원은 이내 쓸데없는 생각이라 치부해 버렸다.
이건 정당함을 따지고자 하는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모른다. 단지 받은 만큼 돌려줄 뿐이다.
준원은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무선 마이크에 입을 열었다.
―hero 위치 고정 완료했다.
―big daddy 암전 준비 됐다. 파티를 시작한다. 5.
작전 네임 빅 대디라 부르는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4.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3.
심장이 차가워진다.
―2.
목표물이 점차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준원은 방아쇠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1.
마지막 카운트다운 종료를 알리자마자 준원의 손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이 들리고 멀리서 보이던 사무실을 비롯한 고층 빌딩 전체의 전기가 나가, 사위가 어둠에 사로잡혔다.
―빠져나와. hero.
빅 대디의 음성이 다시 들려오는 사이에도 준원은 이미 들고 있던 총을 분해해 장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빠져나갈 시간은 충분하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내 이름은 강준원.
부모의 과거를 알기 전까지 나는… 평범했다.
* * *
육 년 전.
“가족분들께 말씀드려서 준비하셔야 합니다. 얼마 남지 않으셨습니다.”
의사가 마치 기계 장치처럼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나 준원은 그의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알아 들으셨습니까?”
“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CT촬영 결과는 생각보다 더 악화된 상태로 나왔습니다. 이 부분을 보시죠. 말기에 이르는 암세포들이 시커멓게 덮여 있지요. 얼핏 보면 폐에만 국한되어 있는 폐암 2기처럼 보이지만 조직 검사 등 여러 검사를 거친 결과로 환자분의 상태는 폐암 말기로 측정되었습니다.”
“예.”
“이상한 건 보통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조직에도 전이가 되는 것이 암인데도 불구하고, 환자분의 암 세포들은 오직 폐에만 남아 있다는 것이죠.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라 저희 쪽에서도…….”
“그만 듣고 싶네요.”
들어봤자 새로운 케이스니 입원을 해서 새로 개발된 신약 투여를 해보지 않겠냐는 물음을 할 것이 뻔했다.
“의사 선생님.”
문득 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준원이 물었다.
“예.”
“얼마나 살 수 있죠?”
“한 달도 채 안 됩니다. 항암제 치료라도 받으면 살날을 조금이나마 늘릴 수는 있겠죠.”
“그렇군요.”
준원은 허탈한 마음에 웃어 버렸다.
준원은 올해 나이 스물 셋으로 올곧게 살아온 청년이다. 아버지는 그가 말도 제대로 못할 당시, 홍콩 등지에서 의문의 자살을 택했고 이후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지하 단칸방에서 힘겹게 살아왔다. 하지만 준원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늘 지켜야 할 어머니가 있었고 돌아올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몸살로 고생하던 날 약국에 다녀오시던 어머니가 뺑소니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별 탈 없이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
만약일 뿐이지만.
“젠장.”
길거릴 걷다 허탈하게 피식 웃은 준원은 어느새 자신의 직장인 신응주류 도, 소매 창고에 도착했다. 동시에 멀리서 그가 걸어오는 것을 본 직장동료들의 목소리가 준원의 귓가에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준원아!”
그냥 병원만 다녀왔을 뿐인데 동료들의 목소리가 십 년 만에 들은 목소리처럼 정겹다. 죽기 전이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감상적으로 변했다.
“어이! 병원 갔다 온 일은 어떻게 됐어!”
맥주 도, 소매 일을 하는 신응주류의 김정택이 애써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고 강준원에게 다가왔다.
“별것 아닙니다.”
“평소의 준원이 네가 아닌데?”
정택은 늘 활달하고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준원의 안색이 그리 좋지 못함을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전 사장님께 다녀올게요.”
“어… 어. 그래.”
김정택이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마침 그의 등 뒤로 나머지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지 않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다.
엄청난 물량을 감당해야 하는 터라, 늘 숫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늘 제 몫 이상을 해냈던 준원이 자리에 없다면야 더더욱 그랬다.
“그만두겠다고? 왜 갑자기?”
신응주류 사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소파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준원이 무겁게 입을 뗀다.
“어머니께 가보려 합니다.”
“어머니?”
“네.”
대답하는 준원을 바라보던 사장이 재차 입을 연다. 어떻게든 능력 좋은 준원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갑자기 왜? 너 얼마 전에 나온 프로 알지? 이 시대 달인을 찾아서!”
“예.”
“너 쌓아 올린 박스를 대각선으로 굴려서 한 번에 옮기는 걸로 완전 떠 버렸어. 본사에서도 네가 이미지 마케팅에 성공한 공로를 인정했고. 조금만 더 하면 너 인마. 승진도 가능해. 왜 이런 아까운 기회를 놓치려고 그래?”
“사정이 있어서요.”
입을 여는 준원의 표정은 분명 평소와는 달랐다. 그런 탓에 한동안 떠들어대던 사장도 어쩔 수 없이 준원의 사직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조건이 있다. 내키면 언제든지 돌아와. 내가 사장 자리에 있는 한 네 사직서는 책상 밑에 고이 넣어 두마.”
그도 능력 좋은 준원을 이렇게 보내기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웠는데도 선선히 승낙해 주셔서.”
“아냐. 인연이 어떻게 사람 마음대로 되냐. 붙잡지 못하면 보내야지. 뭐. 그래도 돌아올 자리는 늘 있다는 걸 명심해라.”
사장의 말에 준원이 힘없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낸 준원은 다음으로 자신의 집을 향했다.
부시불식간에 찾아온 죽음이란 단어에 준원은 험난한 세상을 버틸 힘을 잃었다.
“으아아악!”
집으로 돌아온 그는 소주 나발을 물다 말고 과거 어머니가 쓰시던 화장대를 한 옆으로 거칠게 밀어냈다.
쨍그랑!
화장대 올려져 있던 몇 개 안 되는 스킨들이 방바닥에 뒹굴며 깨졌다.
“왜! 대체 왜!”
어머니가 어릴 적 자신을 품에 껴안고 풀밭에서 찍은 사진이 함께 깨져 있는 것을 본 그는 사진 속 어머니를 보며 외쳤다.
대체 왜냐고.
왜 나를 지켜 주지 않았냐고.
마지막까지!
마지막 부활 1권 (1화)
프롤로그
1960년도는 대한민국의 격변기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자 정권을 노리고 있던 박정희 소장이 군사적 쿠데타를 일으킨 탓이다.
덕분에 4대 대통령이었던 윤보선과 장면 일각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이었으니 사람들은 늘 세상에 대한 한탄을 늘어놨고 자신들의 민족적 한을 달래 줄 구원자를 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의 사쓰마번(오늘 날의 가고시마)에서 한 무도인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한국의 기자들을 모아두고 직접 시현류의 사방베기를 시전해 보이며 카메라에 대고 외쳤다.
―조선의 겁먹은 무도인들이여! 보고 있나! 딱 칠 일을 기다리겠다! 그때까지 날 상대할 자가 없다면 더 이상 조선 땅에는 본국을 상대할 무도인이 없다 여기겠노라!
그 무도인의 이름은 토고우 츄우이, 당시 일본에서 검으로는 이길 자가 없다는 명성을 지닌 일본 고유 검파의 무도인이었다. 또한 그가 익힌 시현류는 메이지유신 당시에 온건파였던 신선조에 대항하기 위해 성장한 검파였으며, 혈풍시현류라고 따로 불릴 정도로 일본에서는 그 명성이 대단히 높은 검파였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그 기사를 본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그에 대항하는 민족의 무도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염원과는 달리 토고우를 상대할 상대는 오 일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무도인들이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더욱 모습을 감춘 탓이다.
바로 그때 자신을 서울대 철학과 교수라고 밝힌 이경명 교수가 자신이 키운 제자들을 이끌고 토고우가 머물고 있는 체육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토고우를 앞에 대고 자신 있게 외쳤다.
―나는 한국의 이경명 교수요! 그리고 이들은 내가 익힌 대한민국 해동검도의 제자들이니 어디 한 번 상대해 보시오!
그때까지 특종을 찍고 있던 기자들은 은거하다 나타난 이경명 교수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벌여줄 줄 알았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토고우가 열 명에 달하는 이경명 교수의 제자들과의 단체 대련에서 부상 하나 없이 그들을 꺾어 버린 것이다. 이후 토고우는 한국의 무도인들을 전부 겁쟁이 조센진이라 폄하하며 체육관을 떠났다. 그리고 그 날 각 신문사의 기사들의 헤드라인들 또한 전부 한국 무도계의 어두운 미래만을 역설하게 됐다. 1960년 후반, 조선 비맥의 무예를 지닌 강홍도 노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오 년 후.
“큭… 졌소.”
토고우가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그를 덤덤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강홍도가 길게 기른 수염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그대가 바라보는 조선이 겁쟁이들의 나라인가?”
그의 물음에 토고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무겁게 고개만을 떨어트렸다.
“약조한 대로 십 년간 현판을 내리게.”
강홍도는 그 말을 끝으로 바람같이 시현류의 본 도장을 빠져나갔다. 도장깨기 신화가 태동하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그렇게 과거 일본에 의해 수모를 겪은 국가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이 년간 일본의 전 도장을 돌아다니며 도장깨기를 시작한 고유 무예 비천(秘天)의 지킴이 강홍도는 일본의 한 방송국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나라 조선, 아니 대한민국의 잠재력은 무한하오. 한낱 좁은 식견으로 우리의 민족성을 평가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소.
일본에서도 대서특필로 쓰여진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일본의 마지막 도장까지 자신의 발밑에 두게 됐고 한국의 무예가 녹록치 않음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시작된 각 나라의 무예 대련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해관계를 시작으로 이어져 내려왔으니 십 년마다 열리는 그 대회를 무도인들은 약자로 AST(Asia Spirit Training). 아시아 스피릿 트레이닝이라 부른다.
1장 사형선고 (1)
휘이잉.
바람이 분다.
준원은 망원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노리쇠를 뒤로 당겼다. 실탄이 장전되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고요한 정적이 감돈다. 도심의 새벽녘, 주위는 어둠이 내려앉아 골목 사이로 개 짖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이어 스코프에 보이는 옥상 반대편 고층 건물의 사무실에는 목표물이 소리를 지르며 부하 직원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죽이는 것이 옳을까? 신이라도 된 것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죽여도 되는 것일까?
준원은 이내 쓸데없는 생각이라 치부해 버렸다.
이건 정당함을 따지고자 하는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모른다. 단지 받은 만큼 돌려줄 뿐이다.
준원은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무선 마이크에 입을 열었다.
―hero 위치 고정 완료했다.
―big daddy 암전 준비 됐다. 파티를 시작한다. 5.
작전 네임 빅 대디라 부르는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4.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3.
심장이 차가워진다.
―2.
목표물이 점차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준원은 방아쇠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1.
마지막 카운트다운 종료를 알리자마자 준원의 손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이 들리고 멀리서 보이던 사무실을 비롯한 고층 빌딩 전체의 전기가 나가, 사위가 어둠에 사로잡혔다.
―빠져나와. hero.
빅 대디의 음성이 다시 들려오는 사이에도 준원은 이미 들고 있던 총을 분해해 장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빠져나갈 시간은 충분하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내 이름은 강준원.
부모의 과거를 알기 전까지 나는… 평범했다.
* * *
육 년 전.
“가족분들께 말씀드려서 준비하셔야 합니다. 얼마 남지 않으셨습니다.”
의사가 마치 기계 장치처럼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나 준원은 그의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알아 들으셨습니까?”
“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CT촬영 결과는 생각보다 더 악화된 상태로 나왔습니다. 이 부분을 보시죠. 말기에 이르는 암세포들이 시커멓게 덮여 있지요. 얼핏 보면 폐에만 국한되어 있는 폐암 2기처럼 보이지만 조직 검사 등 여러 검사를 거친 결과로 환자분의 상태는 폐암 말기로 측정되었습니다.”
“예.”
“이상한 건 보통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조직에도 전이가 되는 것이 암인데도 불구하고, 환자분의 암 세포들은 오직 폐에만 남아 있다는 것이죠.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라 저희 쪽에서도…….”
“그만 듣고 싶네요.”
들어봤자 새로운 케이스니 입원을 해서 새로 개발된 신약 투여를 해보지 않겠냐는 물음을 할 것이 뻔했다.
“의사 선생님.”
문득 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준원이 물었다.
“예.”
“얼마나 살 수 있죠?”
“한 달도 채 안 됩니다. 항암제 치료라도 받으면 살날을 조금이나마 늘릴 수는 있겠죠.”
“그렇군요.”
준원은 허탈한 마음에 웃어 버렸다.
준원은 올해 나이 스물 셋으로 올곧게 살아온 청년이다. 아버지는 그가 말도 제대로 못할 당시, 홍콩 등지에서 의문의 자살을 택했고 이후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지하 단칸방에서 힘겹게 살아왔다. 하지만 준원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늘 지켜야 할 어머니가 있었고 돌아올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몸살로 고생하던 날 약국에 다녀오시던 어머니가 뺑소니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별 탈 없이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
만약일 뿐이지만.
“젠장.”
길거릴 걷다 허탈하게 피식 웃은 준원은 어느새 자신의 직장인 신응주류 도, 소매 창고에 도착했다. 동시에 멀리서 그가 걸어오는 것을 본 직장동료들의 목소리가 준원의 귓가에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준원아!”
그냥 병원만 다녀왔을 뿐인데 동료들의 목소리가 십 년 만에 들은 목소리처럼 정겹다. 죽기 전이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감상적으로 변했다.
“어이! 병원 갔다 온 일은 어떻게 됐어!”
맥주 도, 소매 일을 하는 신응주류의 김정택이 애써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고 강준원에게 다가왔다.
“별것 아닙니다.”
“평소의 준원이 네가 아닌데?”
정택은 늘 활달하고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준원의 안색이 그리 좋지 못함을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전 사장님께 다녀올게요.”
“어… 어. 그래.”
김정택이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마침 그의 등 뒤로 나머지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지 않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다.
엄청난 물량을 감당해야 하는 터라, 늘 숫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늘 제 몫 이상을 해냈던 준원이 자리에 없다면야 더더욱 그랬다.
“그만두겠다고? 왜 갑자기?”
신응주류 사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소파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준원이 무겁게 입을 뗀다.
“어머니께 가보려 합니다.”
“어머니?”
“네.”
대답하는 준원을 바라보던 사장이 재차 입을 연다. 어떻게든 능력 좋은 준원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갑자기 왜? 너 얼마 전에 나온 프로 알지? 이 시대 달인을 찾아서!”
“예.”
“너 쌓아 올린 박스를 대각선으로 굴려서 한 번에 옮기는 걸로 완전 떠 버렸어. 본사에서도 네가 이미지 마케팅에 성공한 공로를 인정했고. 조금만 더 하면 너 인마. 승진도 가능해. 왜 이런 아까운 기회를 놓치려고 그래?”
“사정이 있어서요.”
입을 여는 준원의 표정은 분명 평소와는 달랐다. 그런 탓에 한동안 떠들어대던 사장도 어쩔 수 없이 준원의 사직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조건이 있다. 내키면 언제든지 돌아와. 내가 사장 자리에 있는 한 네 사직서는 책상 밑에 고이 넣어 두마.”
그도 능력 좋은 준원을 이렇게 보내기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웠는데도 선선히 승낙해 주셔서.”
“아냐. 인연이 어떻게 사람 마음대로 되냐. 붙잡지 못하면 보내야지. 뭐. 그래도 돌아올 자리는 늘 있다는 걸 명심해라.”
사장의 말에 준원이 힘없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낸 준원은 다음으로 자신의 집을 향했다.
부시불식간에 찾아온 죽음이란 단어에 준원은 험난한 세상을 버틸 힘을 잃었다.
“으아아악!”
집으로 돌아온 그는 소주 나발을 물다 말고 과거 어머니가 쓰시던 화장대를 한 옆으로 거칠게 밀어냈다.
쨍그랑!
화장대 올려져 있던 몇 개 안 되는 스킨들이 방바닥에 뒹굴며 깨졌다.
“왜! 대체 왜!”
어머니가 어릴 적 자신을 품에 껴안고 풀밭에서 찍은 사진이 함께 깨져 있는 것을 본 그는 사진 속 어머니를 보며 외쳤다.
대체 왜냐고.
왜 나를 지켜 주지 않았냐고.
마지막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