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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활 1권 (2화)
1장 사형선고 (2)


시한부 판정을 받은 오늘, 준원은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또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준원은 어느새 들고 있던 소주병을 놓고는 깊은 한숨을 쉬며, 어머니가 웃고 있는 사진을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마음이 금방 무거워질 줄 알았다면 원망의 화살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돌리지 말 것을 그랬다. 준원은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애써 울음을 참았다. 악화된 상황이 혼란스러웠고 남의 일일 것 같았던 몸마저 폐암에 걸렸다 하니 세상이 온통 어지러웠다.
준원은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것 같은 사진 속 어머니를 보며 슬프게 웃었다. 그러면서 깨진 액자 속 사진을 빼던 그는 갑자기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는 편지를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대체 뭘까? 준원의 흐릿하던 눈동자가 천천히 또렷해져 갔다. 이어 그의 손이 고이 접힌 편지를 펴 보느라 바빠지기 시작했다.

준원아.
네가 이 편지를 보고 있을 때쯤이면 엄마는… 없을 거야.
아픈 너를 두고 가려니까 엄마는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아. 네가 어디에 있던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도 엄마는… 엄마는… 그러니까 엄마 너무 미워하지 마.
엄마는 너를 지키기 위해 떠나는 거야.
네가 커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얼마나 멋있게 컸을까 싶구나.
내 새끼. 예쁜 내 새끼.

“엄마…….”
준원은 읽다 말고 눈물을 훔쳤다. 편지에도 눈물로 인해 색이 바라진 곳이 가득했다. 어머니는 글을 쓰는 내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는 준원의 가슴이 상처가 덧난 것마냥 아려왔다.
그러나 일그러진 준원의 표정에는 슬픔이란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글줄을 이어 나갈수록 그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져만 갔다.

그들의 눈을 피해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하며 도망쳤지만 어디에든 그들은 아가와 엄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그래서 엄마는 가야만 해. 아가를 지켜 주실 분이 있으니까. 그들의 눈을 엄마가 돌려야 하거든. 그러니까 아가, 엄마는 절대 널 버린 것이 아니란다.
그러니 울지 마려무나.
준원이가 울면 엄마가 너무 아파서 못 떠날 것 같으니까 울지 마. 준원아.

편지는 계속 이어졌다.
‘흡.’
그렇게 마지막 대목에 달하던 순간, 준원의 동공이 수축됐다.

아빠는 널 버리고 두고 가실 분이 아니야.

‘날 두고 가실 분이 아니라고?’
두고 가지 않았다면, 자살이라는 것부터 의심해 봐야 했다. 그리고 글자 중간 중간마다 끼어 있던 ‘그들’ 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남았다. 그들은 누구고, 아버지는 왜 자살을 했으며, 날 지켜줄 수 있는 분은 또 누굴까?
하지만 편지 한 장으로 모든 의문을 다 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젠장!”
준원은 화가 났다. 왜 이 편지를 이제야 봤을까? 좀 더 일찍 봤더라면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죽기 전까지 보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치달은 지금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끔 된 것이란 말인가? 땅을 치고 가슴을 두드려 봐도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그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폐암 말기 환자였고 주위에 부모나 일가친척 없는 고아일 뿐이니까.

* * *

“그래서?”
과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준원의 유일한 친구 이용식이 물었다.
“어떻게 됐는데?”
용식은 꽤나 끈질겼다.
병원 다녀온 것을 어찌 알았는지 속속들이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무슨 병이라는데?”
“그걸 네가 알아 뭐하게?”
준원은 톡 쏘아붙이듯 말을 하고는 스스로 술잔에 술을 따랐다. 이내 고요하게 가라앉는 술을 보니 혼란스럽던 마음도 담담해져 갔다. 어쩌면 술기운 때문일지도 몰랐다.
“야.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냐? 됐다. 시팔. 내 더러워서 안 물어본다.”
용식은 토라졌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쭉거리고는 준원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들어 술잔에 따랐다.
“미안하다. 내가 요즘 스트레스를 좀 받아서 그런 거니까. 섭섭해하지 마. 인마.”
준원은 토라진 용식이 마음에 걸렸던지 넉살을 부리며 술잔을 들었다.
“짠.”
이내 너스레를 떠는 준원을 본 용식도 슬쩍 눈치를 보다 이내 씩 웃고 말았다.
“오빠!”
“어?”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준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목 언저리까지 모두 덮이는 잠바를 입은 여자였다. 여자는 익숙한 듯, 준원의 옆자리에 앉고는 추워서 빨개진 볼을 두 손으로 갖다 대며 배시시 웃었다.
“나 올 줄 몰랐지?”
“그럼.”
준원은 감동이라도 받았다는 얼굴로 여자를 포근한 미소로 마주해 주었다.
여자의 이름은 조미령, 용식을 만나던 시점에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한 여자였다. 둘은 공통된 공감대가 이상하리만치 많았다. 고아가 되어 혼자 사는 것도, 일가친척 하나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가는 것도, 고등학교를 중퇴한 것도, 대화만 나누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미령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준원은 잠깐 고민했다.
털어놓을까? 하고.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는 말하고 모두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피붙이처럼 지내 온 둘의 눈물을 볼 자신이 없어서가 더 가까운 이유였다.
“오빠, 왜 그래?”
계속되는 침묵에 이상한 직감이라도 느낀 건지 미령은 걱정되는 눈빛으로 준원을 바라봤다.
“아니야.”
그녀의 물음에 넋이 나가 있던 준원이 흠칫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어? 뭐라 했어?”
“왜 그래? 넋 나간 사람처럼. 걱정되잖아. 이 바보야.”
“아니야. 아무것도.”
준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아직은, 적어도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말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오빠 같이 가.”
술에 얼큰하게 취했는지 준원은 차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횡단보도 앞에서 비틀거리며 주춤댔다.
“미령아. 얼른 준원이 부축해서 가라.”
뒤따라 포장마차에서 계산을 하고 나온 용식이 비틀거리는 준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미령은 용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준원에게 천천히 다가서려 했다. 그때 갑자기 청록색 봉고차 한 대가 교차로에서 튀어나와 횡단보도 앞에 급제동을 걸었다.
준원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사이, 봉고차 문이 벌컥 열리며 크고 두꺼운 손이 준원의 멱살을 잡아 낚아챘다.
“오빠!!”
놀란 미령이 목이 찢어지도록 외쳤다.
드르륵―!
동시에 끌려들어 간 준원의 놀란 얼굴이 창문에 보였다. 미령은 그런 준원을 급히 쫓아가며 어느새 신고 있던 힐도 바닥에 내팽겨진 채 달려가는 차를 쫓아 달렸다.
뒷좌석에 달라붙어 양손을 가져다 댄 준원도 쫓아오는 미령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차는 빨랐고 미령의 달리기는 한계가 있었다. 서서히 거리가 벌어져 갔다.
미령의 숨결이 거칠어질수록 둘은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미령이 닿지 않는 차를 향해 마지막 손길을 뻗었다. 그녀의 애타는 눈동자가 뒤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는 준원과 마주했다. 준원 또한 들리지 않는 차 안에서 미령의 이름을 부르며 발악했다.
부르릉!
하지만 이미 떠난 차는 엔진 소리만 내며 미령의 시야에서 사라져 갈 뿐이었다.

* * *

“당신들 누구야!”
준원은 더 이상 미령이 보이지 않자 벌게진 눈으로 소리쳤다.
“실례가 많았소.”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는 준원의 예상과는 달리, 정중한 어투로 사과부터 시작했다. 그 부드러운 말투에 준원도 사태 파악을 하려는 듯 차 안을 둘러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보내 주세요. 대체 왜 저를 끌고 오신 거죠?”
“묻고 싶은 것이 많겠지만 일단 알려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소. 첫 번째로 우리가 왜 당신을 이리 납치하듯 끌고 왔는지 말해 주겠습니다.”
“다 들으면 보내 주나요?”
“…….”
준원의 질문에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면서 옆에 놓인 서류 가방을 열어 파일 철을 준원에게 건넸다.
“살펴보십시오.”
남자의 말에 준원은 긴장된 기색으로 천천히 파일 철을 받아 들었다. 묵직한 것이 안에 서류가 잔뜩 들은 것 같았다. 뭘 보여 주려 하는 것일까? 준원은 잠시 노란 파일 철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천천히 파일 철을 열었다.
열린 파일 철 안에는 수십 장의 서류가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준원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검은색 도복을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중년 남자였다.
‘이건?’
아버지다. 어릴 적 기억이지만 똑똑히 기억한다. 이윽고 준원이 사진 속 남자를 뚫어지게 응시하자 준원을 쳐다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십니다.”
“알아요.”
“예.”
“근데 대체 당신들은 누구죠? 왜 나도 갖고 있지 않은 우리 아버지 사진을 갖고 있는 겁니까?”
“아버님은 마땅히 존경 받으셔야 할 분이셨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얘기부터 해!”
“자세한 설명은 그분께서 해주실 겁니다.”
“그분이라니?”
“서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단 하나입니다.”
“그게 뭐죠?”
긴장된 낯빛의 준원이 가쁜 숨을 쉬며 물었다.
“강준원 씨의 주변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는 겁니다.”
높낮이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마주한 준원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봉고차가 멈춰선 곳은 울창한 산림이 우거져 있는 산 초입이었다. 어떤 산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준원을 끌고 온 남자 둘은 차에서 내려 먼저 걸어갔다.
“여기가 대체 어디죠?”
뒤따라 차에서 내린 준원은 이제 진정이 좀 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악의로 납치한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하니 조금은 안심이 된 것이다.
“오대산입니다.”
“오대산?”
오대산이라면 강원도에 있는 산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지금 서 있는 곳이 강원도라는 것, 위치를 파악한 준원은 슬쩍 뒤에 보이는 봉고차를 봤다. 운전석을 보자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어서 언제든 몸을 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준원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파일 철에 들어 있던 서류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도망가지 않으십니까?”
문득 앞서 걷던 남자가 뒤를 돌아 물었다.
“왜 도망가야 합니까?”
도리어 질문하는 준원을 향해 사내가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조소나 비아냥거림이 아닌 맑은 웃음이었다.
“결단이 서신 모양입니다.”
“궁금한 것만 해결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글쎄요. 두고 보겠습니다.”
남자는 뭔가를 확신하는 어투로 대답했다. 그러나 준원은 개의치 않고 남자를 지나쳐 앞서간 다른 남자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들이 이끄는 곳을 따라간다면 적어도 부모님들이 품고 있는 비밀들의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얼마쯤 산을 타고 올라갔을까?
곳곳에서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이 보일 때쯤 준원과 남자들 앞에는 커다란 비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로로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문수성지라 쓰인 비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