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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활 1권 (3화)
1장 사형선고 (3)


“여기 계신 것 맞습니까?”
납치와 같은 일을 사주한 사람이 머무는 곳치고는 주위는 소란스러웠다. 옆을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비밀스럽게 만나기 위해서는 사람이 없는 경내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준원은 내심 의아해졌다.
“때론 흔한 곳이 숨을 곳이 되기도 합니다.”
독심술이라도 익힌 것일까? 남자는 준원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마음이 들킨 것이 기분이 나빴던지 준원은 애써 무던한 척하며 발길을 돌렸다.
“이제 다 왔습니다. 그분은 상원사에 계십니다.”
준원은 등 뒤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더욱 발길을 재촉했다.
한 차례 더 숲길을 지나, 한참을 걸어 간 준원은 이윽고 마당에 세워진 문수전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세웠다. 동시에 선두에서 걸어가던 남자도 걸음을 멈추고 준원에게 다가왔다.
“이쪽입니다.”
남자는 준원을 마당 앞, 누각으로 안내했다. 누각을 구경하는 등산객들을 지나 앞 쪽으로 걸음을 옮긴 그들은 이내 백발을 단정하게 빗어 묶은 노인 앞에서 걸음을 재차 멈춰 세웠다.
“고생했다. 문수야.”
“예. 노사님.”
문수라 불린 남자는 짧게 목례를 해 보이고는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준원만 여전히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네놈이냐.”
노인은 다짜고짜 거친 말투로 준원을 맞이했다.
“누구십니까?”
준원이 노인의 말에 인상을 쓰며 물었다.
“누구일 것 같으냐.”
노인이 여전히 준원에게 등을 돌린 채로 물었다.
“궁금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오면서 문수라는 분이 건네 준 파일을 봤습니다.”
“제법 침착하구나. 잔뜩 졸아 쭈뼛거릴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만 저는 제 아버지에 대해 뭘 알고 있으신 건지가 듣고 싶습니다.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할아비 앞에서 오만불손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예?”
준원은 잘못 듣기라도 했다는 양 굳었던 표정을 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가 먹었느냐?”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준원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재차 물었다.
“내가 네 할아비다.”
“할아… 버지?”
눈을 동그랗게 뜬 준원은 이내 과거를 회상했다. 아주 희미하게 감춰졌던 기억이 빠끔히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외할아버지.’
주름살이 많아지고 인상이 부드럽게 바뀌었으나 다섯 살 때쯤 보았던 외할아버지가 틀림없었다. 왜 이제야 나타난 것일까? 준원의 눈빛이 반가움에서 섭섭함으로 그리고 원망으로 바뀌었다.
“어디… 대체 어디 계셨어요!”
갑작스레 소리 친 준원 때문에 근방에서 상원사 동종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준원을 슬금슬금 피했다.
“이유가 있었다고 이야기해 봤자 들어먹지도 않을 것이지 않느냐.”
준원의 외할아버지, 김소흥이 이글거리는 준원의 눈빛과 상반되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마주하며 말했다.
“엄마가 죽었어요! 엄마가 죽었는데도 장례식에도 오지 않으셨다고요! 전 천애고아가 됐고 지금까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세요?!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이라도 살펴보신 적 있냐 말입니다!”
“안다.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찌 지내왔는지 알고 있다. 그거면 답이 되었느냐?”
“됐습니다! 아버지고 뭐고 아무것도 듣지 않고 돌아가겠어요! 괜히 궁금해했네요. 무슨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고 여기까지 찾아왔을까요? 이미 돌아가신 분들인데. 갈 테니까 잡지 마세요. 할아버지와 저의 연은 여기서 끝입니다.”
그 말을 하며 고개를 돌린 준원이 산 아래로 걸음을 돌렸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뜨거운 것이 울컥울컥 솟아 올라와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네가 아프다는 것을 안다!”
등 뒤로 들려오는 노인의 외침에 준원이 돌이라도 된 양 걸어가던 걸음을 멈춰 세웠다. 전보다 더 굳어진 표정 속에 슬픔이 깃들었다.
“그럼 더 잘됐네요. 어차피 죽으면 있던 연도 끊어질 테니까요.”
“고쳐 주마!”
다시 걸음을 옮기던 준원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구해 줘? 잘못 들은 걸까? 하고 준원은 눈을 부릅떴다. 울음으로 핏발 선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시팔…….”
나지막이 욕을 내뱉은 준원이 다시 김소흥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비장한 얼굴로 그의 앞으로 걸어가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나… 살고 싶어요. 젠장. 살고 싶다고요. 할아버지!”
이내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준원이 김소흥의 모시 바지춤을 잡고 천천히 주저앉아 갔다. 준원에게는 사실 기댈 곳이 필요했었다. 아프다고 투정을 부릴 수도, 기대서 마음껏 울 수도 있는 가족이란 울타리를 원했던 것이다.
“안다. 할아비가 안다.”
김소흥도 그런 준원을 안쓰럽게 내려다보며 주저앉은 준원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할아버지. 나. 살려 주세요. 나 죽기 싫어요.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오냐. 그리하마. 반드시 그리하마.”
토닥이는 손길에 준원은 김소흥의 어깨에 기댄 채 평생 꾹 참았던 눈물을 모두 터트렸다.

“이제 좀 진정이 되었더냐.”
“예.”
“허허. 이 녀석아. 네놈 덕분에 이 할아비 낯짝이 더 두꺼워지는 줄 알았느니라.”
주지가 직접 내어 준 객방에서 김소흥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준원도 방금 전 일으켰던 소란을 떠올리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할아비는 질질 끄는 것을 싫어한다.”
“정말 저를 고쳐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오냐.”
“어떻게 말입니까?”
“의료 차트를 보니 폐암이라 하더구나. 근데 조금 특별한 케이스라지?”
“제 담당 의사를 아십니까?”
“알지 못해도 알아볼 수 있는 게지. 말하지 않았느냐.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김소흥의 말에 준원은 ‘그럼 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라는 질문을 애써 목구멍 뒤로 밀어냈다. 우선은 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아도 숨이 붙어 있어야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겠는가? 준원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김소흥의 말을 경청했다.
“네 병은 병이 아니다. 폐암이 아니라는 게지. 너와 비슷한 일을 겪으신 분이 한 분 더 있었다.”
“뭡니까.”
“네 증조할아버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이 병을 고치셨습니까?”
“애초부터 고칠 필요가 있는 병 따위가 아니었다. 네 담당 의사 놈이라는 녀석이 말한 건 어디까지나 일반 상식과도 같은 관례들만을 보고 얘기하는 게지. 허나 네 신체는 남들과는 다르다.”
“다르다니요?”
“호흡이 갑자기 가빠지지 않더냐.”
호흡? 준원은 가만히 생각해 봤다. 그런 적이 있었나 하고 깊이 되새겨 보니 어릴 때도 분명히 그랬다.
갑자기 숨통이 막히면서 내장이 요동치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때마다 병원에서는 천성적으로 천식이 있다고만 대강 얘기할 뿐이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얘기하는 선천성 천식과는 달리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러한 증상들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세상에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많다. 네 증조할아버님도 그리하셨던 분이지.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폐활량을 지니고 계신 분이었으니 말이다.”
김소흥이 놀란 준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폐활량이라니요?”
준원이 반문했다.
“그 의사 놈이 봤다는 암 조직은 암이 아니라 말 그대로 네 폐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폐다.”
“예?”
“폐 안의 폐, 말 그대로 네 폐 안에는 또 다른 폐가 둘러싸고 있다. 그것이 더욱 커져 가면서 마치 암 조직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
준원은 김소흥의 말과 함께 어린 시절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막 입학했을 당시, 아르바이트 하던 곳으로 향하는 버스를 놓쳐서 급한 마음에 함께 일하는 친구와 뛴 적이 있었는데 꽤 긴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준원은 초죽음이 된 친구와는 달리 늘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아르바이트 하던 장소에 도착해 왔다.
물론 평소의 꾸준히 운동을 했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겠지만 늘 돈 버는 일에만 시간을 할애해 온 준원에게 운동은 사치에 불과했다.
잠잘 시간도 부족해 쪽잠을 자며 아르바이트에 매진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비정상적인 체력을 유지했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맞아. 굳이 병원에 가기 전까지 아프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었어.’
사이가 긴밀한 거래처 사장의 권유에 못 이겨서 공짜로 정기검진만 받지 않았더라면 암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어떻게 아십니까?”
모든 정황이 들어맞자 준원은 내심 크게 놀랐지만 계속 벌렁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물었다.
“가져온 진료 차트를 보아하니, 네 증조부님도 너와 같은 증상이셨더구나. 그분이 남기 신 일기를 보고나서야 깨달았지. 결국 네 몸은 선조부터 이어 내려온 천보(天寶)인 게야.”
김소흥이 미리 챙겨 두었던 옛 고서적을 품속에서 꺼내 준원의 앞으로 밀어내며 턱짓을 해 보였다. 보라는 뜻이다.
“암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는 희망의 끈이 준원의 앞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는 그 끈을 망설임 없이 잡을 때였다.
“하하. 하하하!”
진땀을 쏟아 내던 준원은 이 순간, 맥이 탁 풀려버린 양 넋을 놓았다. 다시 살 수 있는 희망의 불을 지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준원에게 있어서 김소흥의 말은 듣고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네게 들려주어야 할 말이 그것뿐이라면 이야기는 쉬울 게다.”
이내 턱을 한 차례 쓸어 담은 김소흥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 전에 한 가지 여쭈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덩달아 입을 닫고 있던 준원도 훨씬 좋아진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말해 봐라. 차라리 네가 궁금했던 것을 묻는 것이 더 빠르겠다.”
“예. 이곳에 오면서 들은 이야기 중에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뜻하는 의미가 대체 뭡니까?”
“말 그대로다. 네 주변의 모든 일상은 계획적이고 조작된 일들이다. 이곳까지 오면서도 도중에 차가 몇 번 멈췄었지?”
“네.”
“번호판을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번호판이라니요?”
“네가 타고 온 차 또한 대포 차라고 말해 준다면 이해가 되느냐.”
“그러니까 왜 대포 차를 타고 온 겁니까. 제가?”
“근원적인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 것 같구나.”
“근원적인 이야기라니요?”
“널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고, 한국 곳곳을 감시하는 CCTV를 이용할 수 있는 끄나풀까지 갖췄다면 이해되겠느냐. 결국 너를 빼오기 위해 번호판을 바꾸는 것은 물론, 대포 차까지 운용한 게다.”
준원이 머리가 아픈지 골을 부여잡은 채 눈을 감았다.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혼란스럽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너를 감시하고 있는 건 중국의 정화라 불리는 이들이다. 그 기원도 아득한 이들이지.”
“중국이라니요?”
머리를 감싸 쥔 준원이 흔들리는 눈빛이 물었다.
“중국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반도와 함께 많은 전쟁을 치러 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한반도의 선인(仙人)들이 있었지. 그들은 선인들의 무학을 질시하고 증오했다. 넘어서기를 원했지. 그것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네 아비가 그 맥을 이어온 수호자(守護者) 역할을 해왔던 것이고.”
“지금 할아버지 말씀은 아버지가 그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다가 돌아가셨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맞다. 네가 모르는 진실 중 하나지. 네 아비는 자살을 택한 것이 아니다. 장렬히 전사한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