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마지막 부활 1권 (25화)
9장 훈련소 (2)
입소하고 훈련병으로서의 준비를 마치는 사이, 주말이 다가왔다. 본격적인 훈련은 다음 주부터 시작될 것이었고 그들은 그동안 각종 매체들이 끊긴 막사 안에서 수양록을 쓰고 첫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서로 이름부터 좀 알아. 난 김필재야.”
유한과 같은 소대에 함께 하게 된 15번 훈련병은, 자신을 김필재라 밝히며 밝게 웃었다. 그러자 눈치만 보고 있던 다른 훈련병들도 하나둘씩 자기 이름을 밝혀 갔다.
“난 장윤재.”
“나는 이호림.”
“난 윤성필.”
……그렇게 해서 총 여덟 명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좌중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름을 밝히지 않은 유한과 준호에게 향했다.
“뭐해? 다 이름 얘기했는데?”
김필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준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나는 김준호.”
“김준호? 4학년 3반 또라이 김준호?”
문득 준호의 대답이 들리자마자 조용히 있던 장윤재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준호에게 다가왔다.
“너 또라이 김준호 맞지? 야. 얼굴 좀 바뀌어서 몰라봤네. 김준호네. 이 새끼.”
조교가 없는 틈에 그간 못했던 욕설을 하려는지, 장윤재는 욕설을 하며 준호를 헐뜯기 시작했다.
약육강식,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군대는 어느 곳보다 그러한 이치가 쉽게 통용되는 곳이었다. 각 지역에서 모르던 남자들만 폐쇄된 곳에 갇혔으니, 첫 인상만큼 중요한 것도 없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장윤재는 준호를 괴롭힘으로써 강인한 면을 본능적으로 부각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같은 동창인가 봐?”
지켜보던 김필재의 물음에 장윤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라니? 너 몇 살인데?”
“나? 스물 셋.”
“나는 스물여섯이야. 형이라 불러. 새끼야.”
팔뚝에도 용 문신을 한 김필재의 말은 생각보다 파급력이 컸다. 나지막한 그의 한마디에 함께 있는 생활관이 차갑게 냉각됐다.
“나이나 말해 봐. 다.”
그렇게 김필재의 말에 따라, 나머지 훈련병들은 각자의 나이를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가장 나이가 많은 건 역시나 김필재였다. 그러자 그는 호랑이가 날개라도 단 양 더욱 의기양양해져 뱀같이 날카로운 눈으로 준호를 노려봤다.
“너는 몇 살이냐?”
“저… 저도 스물셋.”
“알아. 병신아. 친구라며. 내가 등신이냐? 그것도 모르게.”
알고도 물어봤다는 그의 말에 훈련병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김준호는 누구나 욕설을 할 만큼 만만한 상대로 인식됐다.
“너는 왜 대답이 없냐? 아까부터?”
이내 김필재는 타깃을 바꿔 가만히 앉아 있던 유한을 쳐다보며 시비를 걸었다.
“대답이 없네? 내 말 씹냐?”
하지만 마치 들리지 않는 양, 유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슬슬 얼굴을 찌푸리며 유한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왜 말이 없냐니까?”
이어지는 그의 시비조에 눈을 감고 있던 유한이 처음으로 눈을 떠, 그를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는 계속 준호를 괴롭히는 장윤재를 쳐다보며 말했다.
“적당히 해 둬라. 거슬리니까.”
싸늘했던 생활관이 더욱 냉각됐다. 장윤재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보이며, 갑자기 관물대 위에 올려놓았던 야삽을 꺼내 들며 앉아 있는 유한을 향해 삿대질을 하듯 야삽을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나한테 그랬냐? 시발 놈이. 확.”
막, 장윤재가 유한을 위협하려던 순간 조교가 나타났다.
“훈련병들, 뭐하는 겁니까.”
조교가 나타나자마자 장윤재는 곧장 야삽을 관물대에 넣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냉각된 분위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있던 후에 훈련병들은 종교 활동을 갔다.
각자 종교는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으로 나뉘어졌는데 각자 마음에 맞는 훈련병들끼리 종교를 정했다. 김필재와 장윤재는 아직도 유한이 못마땅했던지 그가 가려는 곳을 뒤따라왔다. 그리고는 제식을 하며 움직이는 도중에 유한의 양옆에 서며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왔다.
“시발 놈아. 벙어리냐? 대답 좀 해 봐.”
둘은 조교의 눈치를 힐끗 힐끗 보며 계속 유한에게 말을 걸었다.
정작 유한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담담한 모습에 김필재의 표정도 더욱 싸늘해져 갔다.
그날 밤.
조교마저 생활관에 머물지 않게 된 취침 시간에 김필재가 누워 있던 유한과 준호의 팔을 발로 툭툭 쳤다.
“따라와. 시발 놈아.”
아무래도 일전에 있었던 일을 앙갚음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아무런 말이 없던 유한이 처음으로 슬그머니 일어나 그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준호도 몸을 잘게 떨며, 장윤재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화장실로 따라나섰다.
복도를 지키고 있는 불침번을 지나 함께 화장실로 간 네 명은 이내 화장실 문을 닫았다.
“윤재야.”
“예. 형.”
장윤재는 김필재의 턱짓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번째 화장실 칸으로 준호를 데리고 들어갔다.
“너도 들어가.”
그리고는 우두커니 서 있던 유한에게도 턱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김필재는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오른발로 유한의 배를 걷어찼다. 그 순간, 걷어찬 김필재의 오른발이 유한의 손에 잡혀 안으로 이끌려졌다.
“어어?”
김필재도 뭔가 불안함을 느낀 듯, 급히 소리를 치려했으나 어느새 유한이 오른팔로 김필재의 숨통을 옥죄며 왼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김필재가 바동거리며 두려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널 죽일 수도 있어.”
나지막한 한마디, 그 속에 담긴 살기는 평범한 김필재가 감당할 만한 기세가 아니었다. 김필재는 무슨 소리인지 들을 생각도 없이 고개만 연신 끄덕여댔다.
그럴수록 숨통이 조여졌다.
“크흡.”
김필재의 눈에 핏발이 서고, 그의 정신이 흐릿해져 갔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던 그 찰나, 목을 옥죄고 있던 유한이 그의 숨통을 놓아 줬다. 그리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화장실 문을 빠져나왔다.
똑똑―!
이어 그는 준호가 장윤재와 함께 들어간 문을 노크했다.
“형 왜요?”
장윤재가 슬그머니 문을 열며 배꼼이 눈을 내밀자마자, 유한의 손이 빠르게 그의 눈을 찔렀다.
“악!”
손가락으로 눈을 찔린 장윤재의 비명과 함께 유한이 문 안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오른손으로 장윤재의 목젖을 눌러 그의 몸을 들어 올렸다.
“컥컥.”
장윤재의 눈에도 김필재와 같이 두려움이 서렸다. 강한 사람에 대한 막연한 공포였다.
“이번 일… 입 벙긋하는 순간, 훈련소 생활 꽤 재미있어 질 거다. 알아들었나?”
숨통이 막힌 장윤재는 대답 대신 눈만 끊임없이 끔뻑거려 댔다.
쿵―!
그제야 유한이 손에 힘을 풀어 주며 장윤재를 놓아주자, 지린내가 화장실 안에 풍겼다. 어느새 장윤재가 활동복 바지에 오줌을 싸 버린 것이다.
“흑흑.”
어느새 조용히 흐느끼고 있던 준호는 쪼그려 앉은 채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눈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어… 떻게?”
나직하게 이어지는 준호의 음성에 유한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화장실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삼 주가 넘는 기간 동안 유한과 준호의 주변에는 훈련병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잔뜩 겁을 먹은 김필재와 장윤재가 다가가려는 훈련병들을 제지한 까닭도 있었지만 유한이 풍기는 묘한 분위기가 차갑게 느껴진 탓이었다.
물론 늘 유한의 곁에 머무는 준호도 덩달아 유한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삼 주차가 흐르고 본격적인 사격을 배우게 된 훈련병들은 모두 긴장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펑―! 펑―!
격발되는 소리가 사격장에 울려 퍼지자, K2를 든 채 미리 대기하고 있던 훈련병들은 소곤거리며 마른침들을 삼켰다.
“저. 형, 형은 괜찮으세요? 무섭지 않아요?”
어림짐작으로 유한을 형이라 생각한 준호는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유한을 형이라 부르며 계속해서 졸졸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런 대답이 없는 유한을 태연하게 형이라 말하며 굳이 유한이 대답이 없어도 계속 말을 걸어왔다.
“저는 총소리는 처음 들어 봐요. 휴. 누가 잘못해서 절 쏘면 어떡하죠?”
준호는 유한의 대답은 상관없다는 양, 자기 말만 계속 해댔다.
“하지만 형이 있으니까 이상하게 안심이 돼요.”
그러면서도 그는 늘 특유의 백치미 있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내 앞 열의 사격이 모두 끝나고 차례가 다가오자, 유한과 준호는 각자 9사로 10사로 부사수로 지정되었다. 앞에는 조교가 언제든 위험을 감지하고 움직일 수 있게끔 각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가장 위험한 훈련이라 불리는 사격술이라서 그래서인지, 사격장 안에는 자연스레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후우. 무섭다.”
준호는 싸늘한 표정의 조교들 눈치를 보며, 들고 있던 총을 거치했다.
펑―!
이윽고 앞 열에 있던 사수들이 위치를 잡고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어어?”
그때였다. 준호의 앞 열에 있던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갑자기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총의 총구의 방향을 갑자기 대번에 틀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시발! 집에 가고 싶어! 나 보내 줘!”
동시에 조교를 비롯한, 상황을 통제하던 소대장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머지 훈련병들도 사격하던 것을 멈추고 얼음장처럼 굳은 채 몸을 덜덜 떨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태가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었다.
“훈련병들 모두 총을 거치시키고 아무것도 하지마라! 사격을 멈춰!”
“가만히 있어! 모두 가만히 있으라고!”
펑―!
기어코 협박을 하던 25번 훈련병이 허공에 대고 실탄 한 발을 쐈다. 분위기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혀… 형 어… 어떡해요. 이러다 사람들 죽겠어요.”
지켜보던 준호가 벌벌 떨며, 유한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동시에 유한이 갑자기 들고 있던 K2를 내려놓으며 차갑게 눈을 빛냈다.
“가까이 다가오면 다 쏴 버릴 거야. 가까이 오지 마.”
“쏴.”
그때였다.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있던, 좌중 사이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어떤 새끼야!”
총구가 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돌아갔다. 그와 함께 억센 손길이 K2를 잡고 있는 25번 훈련병의 손목을 내리쳤다.
“끄악!”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25번 훈련병의 비명 소리가 사격장에 울려 퍼지자, 어느새 그의 목덜미를 부여잡은 유한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의 멱살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 정도 아픔도 못 견딜 거라면 애초부터 총을 들지 말았어야 했다. 네가 죽으면 네 주변 사람들이 받을 고통이 지금 네가 느끼는 아픔의 수십 배라는 걸 잊지 마라.”
뭐라 반박할 새도 없이, 훈련병을 제압한 유한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멱살을 쥐고 있던 훈련병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조교와 소대장들이 훈련병을 제압하며 벌 떼같이 몰려들었다.
“17번 훈련병, 이름이 뭐냐.”
상사 김학준이 조용히 사라지려던, 유한의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유한의 움직임에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총 앞에서도 대담했던 유한의 용기를 더욱 치하해 주고 싶었다.
“17번 훈련병 1소대장님의 질문에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김유한입니다.”
“대단했어.”
“아닙니다.”
“아니다. 우리 중 누구도 너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을 거야. 보고가 들어가면 연대장님이 네 공을 치하해 주실 거야.”
김유한의 어깨를 툭툭 쳐준 김학준은 이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몰려든 조교들 사이로 사라졌다.
늦은 밤.
“김 상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신데?”
김학준보다 한참 젊은 중대장 이도필은 소대장실에 찾아와 말을 걸었다.
“이거 보십시오. 이 녀석 별 특이사항도 없는 평범한 신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있었던 사건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대단했어요. 그 훈련병. 그렇죠?”
“네. 그런데 이렇다 할 특별한 부분이 없으니 그것도 의문입니다.”
“특별하다니요?”
“직접 눈으로 본 그 녀석, 웬만한 체육학과보다, 아니 제가 본 어떤 특수부대의 병장들보다 빨랐습니다. 아니, 눈으로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에이. 농담도. 사람이 어떻게 안 보이게 움직입니까.”
“글쎄요. 그게.”
김학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뒷말을 덧붙였다.
“저도 의문입니다.”
<『마지막 부활』 제2권에서 계속>
※이 글 속에 나온 인명, 지명, 단체명은 허구이며 실제와는 연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