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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25화)
七章 광안을 개방하다(3)
‘만민공덕(萬民功德)이란 무엇이지?’
만민공덕. 흔히들 신선이 선계로 올라가기 위해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백인공덕, 천인공덕, 만민공덕의 순으로 가리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딱 만 명을 위해 공덕을 쌓는 것이겠는가?
모든 백성을 위해 공덕을 쌓고 선행을 행하는 것이 만민공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만민공덕은 약자를 보호하는 마음, 자신보다 약한 자를 챙기려는 마음, 병자를 치료하겠다는 의생의 마음, 그 모든 것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었다.
‘만민공덕이란 무엇이지?’
그것은 그리 쉽게 결론 내려질 것은 아니었다.
이 우주라는 건 크게 음양의 하늘로 갈라졌다고 한다.
거기서 건곤감리가 탄생했다.
음과 양으로 이루어진 하늘은 한쪽은 남자가 되고, 한쪽은 여성이 되어 세상에서 살아간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함께, 또는 따로 힘을 합쳐 세상을 일구고 살아가게 된다.
거기서 희로애락, 기쁨, 분노, 사랑, 슬픔을 느끼고, 생을 살아가고,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삶이 된다.
그리고 삶이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된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도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길, 가장 합리적인 길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역사라고 거창하게 말하나, 이 역시 사람의 삶이다.’
모든 것의 근본에는 인간의 삶이 위치한다.
‘만민공덕이라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쌓아야 하는 덕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듯이, 만민공덕이라는 것도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제 실마리 정도는 잡은 것이다. 만민공덕으로 나아갈 실마리를…….
귀도귀음와 전투 도중에 개방되었지만 안착되지 못했던 광안이, 이제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천령의 두 번째 단계, 광안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
장유를 보러 왔던 도예림은 한참을 살펴보다가 돌아가려 했다.
그러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미약한 움직임이 있었다. 장유의 손가락 끝이 꿈틀한 것이다.
장유의 손끝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고 그 뒤로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미 석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석 달이 지나도 전혀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꿈적도 하지 않던 장유가 손끝이나마 움직였다.
희망 없는 기다림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이다.
‘일어나려고 하는 거야?’
도예림은 희망 가득한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장유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장유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분명히 일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아빠, 아빠! 장유가, 장유가 일어나려 하고 있어요!”
도예림은 기쁜 얼굴로 뛰어나가며 도원겸을 불렀다.
소식을 들은 도원겸과 비허량, 유고가 당장 달려왔다.
그들이 왔을 때 즈음에는 장유의 손끝에서 시작된 꿈틀거림이 팔 전체로 퍼져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팔 전체가 경련으로 떨리고 있다고 판단될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미세하게 움직이던 가운데, 장유의 입술이 마침내 입을 열고 제 기능을 했다.
처음으로 말을 뱉은 것이다.
“무, 물…….”
***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기름칠이 되지 않은 기관 장치마냥 움직이지 않는 근육과 관절이었다.
‘아,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지?’
순간 욱신거리는 고통이 가슴께를 엄습했다.
그와 함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검은 도강이 날아들고, 막으려고 했지만 도강은 자신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마지막을 보였던 것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시야가 희미해서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도예림, 도원겸, 비허량, 유고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으로 기억했다.
‘하하, 살아 있는 건가?’
고통 다음으로 엄습한 감정은 안도였다.
쓰러지기 직전에는 천수의곡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살아 있기까지 했다.
‘두 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나는 격인가?’
한 번은 정말로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고, 또 한 번은 죽을 뻔했지만 극적으로 살아났다.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눈은 뜨려고 했지만 잘 떠지지 않았고, 주변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귀로 들리지 않았다.
하나 전신의 감각이 주변의 광경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었다.
눈을 뜨지 않았음에도 초감각을 얻은 것마냥 뇌 속에 보이는 듯이 공간이 각인되며 자신의 주변 공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광안이 개방된 건가?’
장유는 근육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광안을 회수했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은 혼란을 가져올 뿐이었다.
장유는 광안을 회수해서 갈무리했고, 부동심을 유지시켜 주는 정안만을 개방했다.
‘그나마 내공은 잘 움직이는군.’
나아가야 할 길의 실마리를 어렴풋이 잡았고, 광안이 개방되면서 혈도가 넓어지고 튼튼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단전의 크기 또한 커졌으며, 선기의 양도 많지는 않지만 늘어나 있었다.
‘덕(德)이라는 것인가.’
이제는 알았다. 왜 자신이 선기를 치료에 사용했을 때 선기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는지를. 또 왜 선기가 늘어나 있는 것인지를.
선기를 치료에 사용한 것도 덕이었으며, 의곡을 위해 삼천을 막아선 것도 덕이었다.
모든 것은 덕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덕을 쌓으면 선기도 늘어나는구나. 과연 선계의 기운.’
선계의 기운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싶어 납득이 갔다.
어쩌면 머리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덕을 잃으면, 한순간에 선기도 틀어지겠지.’
덕에 반응하여 늘어난다면, 덕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선기 또한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거, 내 몸속에 있는 기운이 무서워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니…….’
장유는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나마 웃으려고 했으나, 움직이라는 입술 근육은 미동도 하지 않고 미간 근육만이 씰룩거렸다.
‘아, 먼저 근육부터 깨워야겠구나.’
장유가 몸의 선기를 불러일으켰다.
장유가 부르자 선기는 말 잘 듣는 강아지마냥 의지를 따라 몸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굳어진 근육을 풀어 주고, 약해진 근력을 강하게 했다.
장유는 근육이 반쯤 풀렸을 때,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 물…….”
성공이었다. 생각만큼 원활하게 움직인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입술 근육이 움직였다.
곧이어 장유의 감각에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가 자신의 상체를 일으켰다. 곧 입안으로 물을 넣어 주었다.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겠구나.’
***
물을 마신 뒤 한참을 선기로 몸을 자극하고 나서야 근육들이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새살이 돋아났지만 흉터가 남은 장유의 가슴팍을 보며 도원겸이 물었다.
“어떠냐?”
장유는 아직 욱신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애써 태연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상처가 심했다. 아직 더 쉬어야 할 것이야.”
진심으로 걱정하는 도원겸이었다.
도원겸과 장유가 대화하는 동안, 도예림과 비허량, 유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장유를 바라보았다.
“우청이 죽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장유도 보았다. 운공을 하던 도중이라서 죽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도원겸을 향해 튀어 나가던 도중에 진우청의 가슴팍이 쩍 갈라져 있는 모습을 스쳐 지나가며 확인했다.
“너는 나에게 있어 마지막 남은 제자다. 너까지 죽어 버렸다면 나는 살 의욕을 잃었을 것이야. 살아 줘서 고맙구나.”
도원겸이 장유의 손을 잡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의 헐렁한 왼쪽 팔이 눈에 들어왔다.
장유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시선을 왼쪽 팔에 두자, 도원겸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오른팔마저 잘리고 우청이가 살아 줬다면 더 고마웠을 것을.”
게다가 진심으로 제자를 아끼는 마음에 도원겸의 눈가가 붉게 물드는 것을 보고 있으니, 장유의 눈시울도 같이 시큰해졌다.
도원겸은 장유마저 침울해지자 겸연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거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 몸부터 회복하려무나. 다른 사람들도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으니, 나는 이만 나가 보마.”
도원겸이 나가자 비허량과 유고, 그리고 도예림이 다가왔다.
“하하하, 걱정 많이 하신 모양이네요.”
장유가 웃으며 입을 열자 유고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고, 도예림은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서는 상처 부위를 계속해서 살폈다.
비허량은 장유의 이마에 꿀밤을 먹이며 제발 좀 걱정 시키지 말라고 했다.
장유가 어찌하여 그런 신위를 보인 것인지 궁금해할 법도 한데, 누구 하나 물어보지 않았다.
장유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의곡의 복구 작업에 참여하려고 했으나, 다른 이들의 만류로 방에서 구금(?)된 채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 여윤과 대털, 호치가 다녀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다시 도원겸이 찾아왔다.
“몸은 좀 괜찮으냐?”
“예, 걱정해 주신 덕분입니다.”
장유는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 걸어 다닐 정도가 되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했다.
도원겸은 방금 전까지 장유가 마시던 차를 바라보았다.
“차를 마시고 있었나 보구나. 이제 좀 움직일 만해 보이니 다행이다.”
“그래서 이제 복구 작업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장유가 넌지시 의사를 비추자 도원겸은 슬며시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복구 작업 대신에 해 줘야 할 일이 생겼구나.”
“그것이 무엇입니까?”
“구룡성으로 가 줘야겠다.”
장유는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도원겸은 한숨을 푸욱 쉬고는 말했다.
“알다시피 구룡성 측에서 이번 습격자들에 대해 조사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 모양이더구나.”
도원겸은 이야기를 시작하며 장유가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몸이 아직 완치되지 않았는데 멀리 보내는 것은 미안하나, 지금은 곡주인 나와 부곡주인 유고, 그리고 비허량까지 누구 하나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없구나.”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의곡은 흔들린 상태였기에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그들까지 사라진다면 의곡은 사정없이 흔들릴 것이다. 사람은 눈 앞에서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리는 존재였다.
“한데 일반 제자를 보내면 구룡성 쪽의 체면이 서지 않게 되니, 미안하지만 예림이와 함께 다녀와 주겠느냐?”
장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도원겸이 미소를 지으며 하나뿐인 팔로 장유의 등을 토닥거렸다.
도원겸이 나간 이후, 장유는 구룡성에 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장유는 구룡성까지 안내할 사람들을 만나러 도예림과 함께 갔다가 충격스러운 사실을 맞이했다.
물론 나쁜 쪽으로가 아니라 좋은 쪽이었지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구룡성 창천대 대장 악유선이라고 합니다.”
은하환영창 악유선. 그가 이번 생에서 다시 장유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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