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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24화)
七章 광안을 개방하다(2)
귀도귀음은 박도에서 요요한 소리를 내며 휘둘렀다.
이번에는 도기나 도강을 형성시키지 않았으나, 내공으로 전신을 감싸서 신체적 능력을 올렸다.
장유가 귀도귀음의 박도를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과정에서 그의 장포가 지익 하고 찢기며 남은 대침들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아까 전에 도망칠 때 세침을 모두 던져 버리는 바람에 대침은 몇 개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길! 대침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한데 그 대침 몇 개마저도 사라지고, 이제 남은 대침이라곤 장유의 손에 들린 대침 하나뿐이었다.
장유는 손에 든 커다란 대침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개탄했다.
장유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귀도귀음이 크게 기뻐하며 비웃었다.
“핫핫핫! 이제 침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장유였다.
‘아뿔싸! 내 스스로 침이 하나뿐임을 밝힌 꼴이 되어 버렸어.’
손에 든 대침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트리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장유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속임수라고도 할 수 없는 속임수였다.
“그런다고 내가 속을 줄 아나?”
그런 속임수에 성 급의 고수가 걸려들 리 만무했다.
귀도귀음이 박도의 날을 세웠다. 다시 공격을 가해 오려고 하는 것이다.
‘온다.’
장유가 그렇게 느낀 순간, 그의 신형이 들이닥쳤다.
‘육박전은 내게 불리하다.’
장유는 몸을 비틀 듯이 움직이며 성 급 고수의 박도를 피하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왼쪽 허리가 살짝 갈라졌다.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피는 어느새 허리를 붉게 적셨다.
그 고통에 장유는 순간 비틀하였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입술을 깨물고는 서둘러 지혈을 했다.
하나 지혈을 한다고 해서 고통마저 사라지지는 않았다.
“크흑.”
장유의 꽉 다문 입술 사이로 고통스런 신음이 비집고 나왔다.
“꼴좋구나. 킬킬킬.”
귀도귀음은 공격이 성공하자 소리 내어 웃었다.
성 급의 고수가 이제 벽의 초입을 바라보고 있는 하수의 허리를 베고 기뻐한다면 이상한 일이나, 장유에 대해서는 벽 급의 고수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는 행동이 허술하기는 하나, 이미 성의 경지에 오른 고수니까.’
해석이 잘못되기는 했으나, 그는 장유가 도강을 막아 내고 선기의 강기를 뿌린 것이 성 급의 고수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헤헤, 너나 잘해.”
장유가 피 흘리는 얼굴 위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꼭 승기를 잡은 듯한 미소였다.
그 미소에 더욱 기분이 나빠진 귀도귀음이 달려들려고 했으나 그의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뭐지? 이게?”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자 오른쪽 허벅지에 대침이 하나 박혀 있었다.
그의 시선이 장유의 손으로 향했다. 없었다. 장유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할 대침이 지금 자신의 다리에 박혀 있는 것이다.
“방금 전에 피하면서 찌른 건가? 느낌도 없었는데?”
“정답이야. 북두지의 수법 중에 순간 점혈이라는 게 있거든. 헤헤, 쿨럭! 그걸로 점혈하고 침을 찔렀지. 그리고 거기 실이 연결된 것 보여? 침에 연결된 게 바로 봉합용 실이란 건데, 이렇게 쓸 줄은 몰랐어.”
그 말에 귀도귀음은 다시 자신의 허벅지를 내려다보았고, 허벅지에 박힌 대침에서 시작된 작은 실 하나가 장유의 손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미안한데, 내가 이겼어.”
장유의 손이 빛나는 순간, 실을 타고 대침으로 흘러든 선기가 귀도귀음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번 공격을 위해 남은 선기의 대부분을 밀어 넣은 장유였다.
몸속에서 선기와 마기가 충돌하는 고통에 귀도귀음이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질렀다.
“아아아악!”
그 틈에 장유는 뒤로 몸을 뺐다.
장유가 실에서 손을 떼자 선기가 멈추어졌고, 곧 고통도 잦아들었다.
상황은 거의 역전되어 귀호대가 형성했던 포위망이 허물어졌고, 천수의곡의 강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고수인 비허량과 도원겸이 몸을 추스른 채 검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귀도귀음에게 있어 다행인 점은 자신의 내공이 몸속으로 들어온 선기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서 크게 내상을 입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나 내상을 전혀 입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그의 입가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이이익, 망할 녀석!”
그가 입으로 피를 흘리며 장유를 노려보았다. 생사대적을 보는 시선이었다.
귀도귀음의 표정이 붉어지며 단전 끝까지 쥐어짠 마기가 그의 도 위로 집중되었다.
강기는 길어질 만큼 길어져 도 위로 삼 척이나 솟아나 있었고, 그 두께는 웬만한 남성의 허벅지보다 굵었다.
그가 장유를 향해 도강을 휘두르려는 찰나,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전음성이 귀호대 전원에게 날아들었다.
“귀호대, 이제 그만 후퇴하라.”
그들의 뇌리를 스치는 단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천살이시다.’
천수의곡 쪽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으나 그들은 확신했다.
어딘가에서 모든 상황을 천살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천살의 명령은 목숨과 같았기에 그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천수의곡 측에서도 귀호대가 몸을 빼자 더 이상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다. 의곡 측의 피해가 몹시 컸기 때문이다.
귀호대가 의곡 밖으로 몸을 빼내었을 무렵, 귀도귀음이 저 멀리서 강기를 휘둘렀다.
‘내게 수치를 준 네 녀석만은 죽여 버린다!’
거침없이 공간을 넘어 쇄도하는 쾌도술의 묘리가 담긴 도강은 정확하게 장유를 노리고 있었다.
장유는 뒤늦게 날아오는 도강을 확인하고는 얼마 남지 않은 단전을 쥐어짰다.
‘선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하던 선기가 거의 완전하게 고갈되었다. 말을 듣지 않는 단전을 물에 젖은 의류 비틀 듯이 비틀어서 뽑아 올린 선기는 채 한 움큼도 되지 않았다. 그것이나마 손에 집중시켜 도강을 막으려고 했다.
카각!
하나 허망하게도 도강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대응하는 것이 한 호흡 이상 늦어 버렸다.
장유가 선기를 손에 집중시켰을 무렵, 이미 도강은 장유의 가슴께를 베고 지나갔다.
“커헉!”
간신히 몸을 뒤틀어 사망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으나 갈비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가슴이 흉하게 패였다.
“장유!”
“장유야!”
“장유!”
도원겸이 잘린 자신의 왼팔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날아들었고, 도예림과 비허량도 뒤이어 뛰어왔다.
“쿨럭…… 아…….”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이런 감각,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천살의 검이 자신의 심장을 관통했을 때도 이런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었다.
‘또…… 죽는 건가.’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의곡이 멸망하지 않았으니까.
자신이 알던 미래와 많이 틀어지긴 했지만 의곡은 삼천의 습격에서 살아남았다.
자신의 가슴께를 지혈하고 봉합하려고 노력하는 도원겸의 손길이 느껴지고, 뿌옇게 변한 눈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도예림으로 여겨지는 얼굴이 보였다.
‘분명 울고 있겠지.’
뒤늦게 달려온 건지 유고의 목소리도 비허량의 음성과 함께 들리고, 담우의 목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하나같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
귀호대가 천살의 앞에 부복했다.
그들이 천살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천살이 찾아온 것이다.
귀도귀음은 죄스러운 마음에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간신히 입을 비집고 나온 사죄의 한마디에도 천살은 묵묵부답이다.
대신 바람 소리만이 새벽에 되어 가는 대숲을 울렸다.
천살은 소리 없이 대숲 쪽으로 걸어가 대나무를 쓰다듬었다. 그에게서는 절대자의 고독이 풍겨지고 있었다.
아직 채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이라 꽤나 많은 별들이 남아 제각기 반짝이고 있었다.
천살은 대나무 잎을 쓰다듬던 걸 그치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패왕의 문을 보지 못했구나.”
혼자 하는 말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이제 빛이 점점 밝아지고 있는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북천이 흔들리니 패왕이 움직이는구나. 또한 패왕의 별은 아직 죽을 운명이 되지 않았으니, 절대로 죽지 않겠지.”
자신이 직접 움직여도 소용없을 것이다.
천기는 아직 패왕을 흔들리게 하지 않고 있으니.
하나, 흔들리지 않는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은 북천과 천살, 패왕을 내리지만, 살리는 것은 결정하지 않는다.’
누가 살아남을지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하나 자신의 등 뒤에는 삼천의 천년대업이 있었다.
‘지고 있는 무게가 다르다는 사실, 그것이 패왕을 흔들리게 만들 것이다.’
하나 천살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등에 업고 있는 것이 삼천의 천년대업이라면, 장유의 등에는 정파의 미래가 실려 있었음을.
패왕과 천살. 지고 있는 무게가 만만치 않은 둘의 접촉은 현재는 천살만이 알고 있으나, 후에는 무림이 역사가들이 평가하는, 시대를 뒤집을 두 존재의 만남이 될 것이다.
한참을 천기를 살피던 천살이 말없이 부복해 있는 귀호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수고했다.”
천살의 말에, 귀호대는 단체로 머리를 바닥에 피가 나도록 찍었다.
그리고 귀도귀음이 피가 철철 흐르는 이마를 숙인 채로 천살에게 부탁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패왕의 문을 보지 못한 내 실수다. 이제 그만 금천단애로 돌아가자.”
하나 천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불허였다.
귀도귀음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으나 명령에 불복할 수는 없었다.
먼저 천살의 신형이 바람에 씻기듯 사라졌다.
천살이 사라지자 귀호대는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떠나기 전에 귀도귀음의 시선은 천수의곡을 향했다.
‘이 수모는 반드시 갚아 주마.’
장유, 그는 전생에 없었던 악연을 하나 추가했다.
미래가 서서히 틀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나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이어질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좋은 방향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
깨끗하게 정리가 잘된 방의 푹신한 침대 위에는 윗옷이 벗겨진 청년이 누워 있었다.
귀호대의 습격을 막아 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최후에는 귀호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불의의 일격을 허용하고는 가슴께가 갈라져 버린 장유였다.
쩍 벌어졌던 상처는 많이 아문 상태였으나 깨어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도예림과 도원겸, 원무관과 의생관의 스승들이 들락날락거렸으나, 그는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늦게서야 출발해서 도착한 구룡성의 전투부대는 삼천의 발호를 막는 데 쓰이지 못하고 지금은 의곡 복구 작업을 돕고 있었다.
모두가 걱정하는 가운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천수의곡이 안정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