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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고검기 1권(25화)
十二章 나는 너의 적이다(4)


참룡흑도를 쥔 한 손으로 허공중에서 몸을 지탱하는 조천악. 한 팔만으로 몸을 띄운 그의 두 다리가 수십 개의 그림자를 만들며 금비의 옆구리를 노리고 쏟아져 들었다.
마교에 전해 내려오는 비전무공 중의 하나인 광마질각(狂馬迭脚), 오십여 년 전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강호를 주름잡았던 야수마제(野獸魔帝)의 야수참권(野獸慘拳)의 절초가 조천악의 발끝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금비의 몸이 조천악의 발길질을 피해 활에 튕기듯 뒤로 쭈욱 밀려 나갔다.
삼 장여를 뒤로 쏘아지듯 날아가며 금비가 말을 이었다.
“천악, 네 야망에 대해 조금은 짐작했던 바, 하지만 그것은 내 짐작보다 훨씬 원대하구나. 아마도 그 물건이 네 손에 들어갔다면 너는 전설을 실현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눈빛을 번득이며 금비의 신형을 따라가는 조천악, 그의 흑도가 허공을 가르는 번개처럼 금비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까까깡!
금비의 옥루고검과 조천악의 참룡흑도가 허공에서 격돌하며 달빛 아래 몇 개의 불꽃을 튀겼다.
금비의 얼굴에 고통스런 표정이 스쳤다. 두전성이를 비롯한 이화접목의 절예는 신형을 안정시키고 상대의 공세를 받아 낼 때야 가능한 것으로, 지금처럼 허공중에 몸을 띄운 상태에서는 운용이 불가능하기에, 그저 검을 흔들어 조천악의 공세를 받아 낼 수밖에 없었던 금비로서는 내부가 진탕되는 고통스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금비는 처음과 다름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위지강이 위선자라 하나 그는 어쩔 수 없는 정파의 사람, 그 물건으로 무언가를 꾸민다 하더라도 세상의 이목을 생각해 신중하고 또 신중할 것이다. 적어도 네 손에 들어갔을 때의 어지러움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금비를 죽이기로 작정한 듯 아무 대꾸 없이 참룡흑도를 휘둘러 금비의 사혈만을 노리는 조천악의 공세. 술 취한 것처럼 흔들리는 칼날이 금비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흔들리는 칼날 속에 숨은 도기 하나하나가 모두 상대를 격살시킨다는 절초, 한 번의 칼질으로 전신의 십대 사혈을 모두 노리는 군마검법의 군마혈아(群魔血牙)가 펼쳐지고 있었다.
금비의 옥루고검이 눈부시게 흔들리며 허공중에 수십 개의 검영을 수놓았다.
한순간 허공중에 뿌려지는 빗줄기처럼 금비의 검극에서 터져 나온 세우결이 군마혈아의 도세를 차단했다.
카라라라랑!
호쾌하게 터져 나오는 검과 도의 격돌음 속에서, 금비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또한 위지강이 그 물건의 해악을 막고자 수중에 넣으려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일, 무어라 하더라도 네 손에 그 물건이 들어가는 상황만은 막는 것이 옳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끼어들었지만 나는 운이 좋았구나.”
순식간의 격돌 끝에,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대치한 채 마주 보았다.
더욱더 강렬한 투기를 발산하며 마기를 끌어올리는 조천악의 모습. 그는 이제까지의 격전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모습으로 허공에 칙칙한 마기를 피워 올리며 금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마주 보고 선, 한 손에 든 옥루고검을 아무렇게나 아래로 늘어뜨리고 한 손을 뒷짐 지고 선 채 담담한 신색으로 조천악을 바라보는 금비의 모습은 미풍 속 갈대처럼 부드러웠다.
실로 극강(極强)과 극유(極柔)의 대결. 서로 극렬히 상반되는 기세 속에서 두 사람은 한치도 양보 없이 대립하고 서 있었다.
담담한 눈빛으로 조천악을 바라보던 금비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천악, 너는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어야만 했지. 하나 이 물건은 조금 위험하지 않느냐?”
“개소리를…….”
조천악이 이를 갈며 참룡흑도를 허공중에 휘둘렀다.
우우웅!
소름 끼치는 도명(刀鳴)을 허공중에 흘려 내며 흑도가 울었다.
천마강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리는 조천악을 바라보며 금비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나는 너보다 몇 달을 먼저 태어났으니 애써 말하자면 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너는 단 한 번도 나를 형은커녕 친척으로조차 대한 적이 없었지. 나역시 네가 어려워 그저 피하기만 했구나. 우리가 이렇게 서로 친근함이 없는 것도 아마 그 탓일 것. 하나 이제 우리도 나이를 먹었으니 서로를 존중하며 의지해야 하지 않느냐?”
“미친 녀석. 헛소리는 다 지껄였느냐?”
칙칙한 마기가 조천악의 온몸을 휘감았다.
시커먼 마공의 기세를 온몸에 휘감은 채 조천악의 오른손에 든 칼이 허공으로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참룡흑도가 부서질 듯이 떨며 울고 있었다.
사방을 시커멓게 물들이는 마기에는 아랑곳없이, 금비가 그런 조천악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한 번도 진지하게 다퉈 본 적이 없었지. 사실 지금도 나는 너의 불같은 성정이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내가 너를 겁내 본 적은 없느니, 지금도 그러하다.”
“호오, 그러냐? 어디, 네놈의 큰소리가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
“천악, 네가 도리를 넘어서는 강함만을 추구할 생각이라면 나는 언제나 너의 길 앞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증명해 주마.”
“오냐, 증명해 봐라!”
이제 조천악의 몸은 참룡흑도가 뿜어내는 마기 속에 완전히 잠겨 들어 손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하늘 가득 펼쳐지며 금비를 깜깜한 마기 속에 가두어 버린 참룡흑도가 어둠 속에서 귀곡성을 흘리며 금비를 향해 짓쳐 들었다.
끼아아아악―
섬뜩한 귀신의 울음소리와 달마저 가려 버리며 금비를 옥죄는 조천악의 천마강기. 사방에서 메아리 치는 듯한 참룡흑도의 귀곡성 속에, 어디서 다가오는지 모를 가공할 도세.
군마도법 절초 중의 절초, 명부군마세(冥府群魔勢)가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이 캄캄한 암흑 속에 갇혀 버린 것만 같았다.
금비를 뒤덮어 새카만 암흑 속에 가두어 버린 참룡흑도의 마기와 귀곡성을 사방으로 메아리치며 당장이라도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 버릴 듯한 방향을 알 수 없는 도세 속에서, 금비의 옥루고검이 한 줄기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풍광결(風光訣).”
쭈아아아악!
새카만 명부군마세의 마기가 비단폭이 찢어지듯 갈라지며, 그 뒤에서 경악에 찬 조천악의 얼굴이 드러났다.
갈라진 마기 뒤, 금비의 목어림을 향해 날아드는 참룡흑도를 쥔 조천악의 손이 달빛 아래 드러나고, 그 갈라진 틈새로 금비의 옥루고검이 한 줄기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조천악의 명부군마세의 마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드러난 두 사람의 모습. 조천악의 흑도는 금비의 목줄기에 닿아 가느다란 혈선을 만들고 있었고, 금비의 옥루고검은 조천악의 이마 한가운데 머물러 새빨간 점을 찍고 있었다.
조천악의 입이 천천히 열리며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루혈괴와 싸울 때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겨우 이겼다 들었다……. 하나 지금 너의 무공은 그놈을 훨씬 뛰어넘는구나. 본신의 절예를 감추었던 것이냐?”
“그건 아니다. 하지만 두향응과의 싸움을 통해 내가 조금 더 성장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조천악이 천천히 참룡흑도를 거두어들이자, 금비 역시 옥루고검을 검집에 갈무리했다.
조천악은 잠시 동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금비를 바라보았다.
담담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선 금비에게 조천악이 말했다.
“너는…… 나를 막을 생각이냐?”
“그것은 너에게 달린 것이다. 너는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냐?”
“물론 천하제패다.”
금비가 싱긋이 웃었다.
“과연 네가 품을 만한 뜻이다. 너 정도의 그릇이 품을 뜻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겠지. 그래, 천하의 주인이 되어 무림을 안정시키고 중흥을 이루어 볼 셈이냐?”
“안정? 중흥? 무슨 헛소리냐? 오직 천하를 내 발밑에 두어 그 위에 군림할 뿐, 내게 반역하는 자들은 철권으로 다스리고, 내게 충성하는 자들에게는 영화를 약속할 것이다. 허울 좋은 껍데기 같은 무황성을 멸망시키고, 삼은 삼패를 비롯해 구파일방 허수아비들의 씨를 말려 버린 후 마교천하를 이룩할 것이다!”
금비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위험한 생각……. 어찌 네 야망을 위해 시산혈해를 이루며 또한 다른 방파를 말살하려 한단 말이냐?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웃어 넘길 일이나 너는 그것을 이룰 만한 근간(根幹)과 천부의 자질을 가진 사람. 도저히 그럴 수가 없구나. 네가 그 일을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간에 네 야망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될지…… 나는 짐작하기조차 싫다.”
“그래서…… 너는 나의 적이 될 것이냐?”
이글거리는 눈빛, 오만함과 투지를 온몸에 채우고, 죽어도 꺾이지 않을 결의를 뿜어내며 마교의 소교주가 금비에게 물었다.
금비는 그런 조천악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결국 한 줄기 탄식과 함께 금비의 대답이 들려왔다.
“네가 뜻을 꺾지 않겠다면…… 그렇다, 나는 너의 적이다.”
금비의 대답과 함께 터지는 조천악의 앙천광소(仰天狂笑). 그 웃음과 함께, 조천악이 하늘을 바라보며 사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크하하! 좋다! 아주 좋다! 나 역시 무황성의 떨거지들이나 정파의 쓰레기 중 누구도 내 상대로 여길 만한 자가 없어 자존심이 상하던 차, 지금의 너라면 내 적수로 부족함이 없다. 그래, 유운신검 유자성의 아들이여, 너를 내 평생의 숙적으로 받아들이마. 어디 네 모든 능력을 동원해 나를 막아 보아라!”
진정으로 마음이 흡족한 듯 웃음을 터뜨리는 조천악을 바라만 보던 금비가 그 웃음이 잦아들 때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천악,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없겠느냐? 명리는 뜬구름과 같은 것, 네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전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네가 호생지덕으로 강호를 구하고 마교를 천하에 으뜸가는 방파로 만들어 다른 문파들과 화합을 추구하며 무림을 중흥하려 한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도울 것이다. 또한 나 역시 이 힘든 천명 중에 너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 어찌하여 모든 것을 태우고 너 자신 또한 태워 버릴 야망에 몸을 맡기려는 것이냐?”
조천악이 뚝 웃음을 멈추더니 금비를 바라보았다.
금비를 바라보는 조천악의 눈빛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천악이 온몸 가득 집념의 불길을 피워 올리며 금비를 향해 결의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호생지덕을 운운하는 너 같은 무리가 어찌 뜻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체로 바다를 메우고 그것을 건너갈 것이다. 그렇다, 불꽃처럼 나를 불사를 것이다. 세상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내 야망을 펼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태울 것이다. 숯이 되어 사그라지는 일은 내 인생에 결코 없을지니 숙적이여, 보아라. 이 야망의 불꽃의 모습이야말로 진정 나인 것이다!”
그 외침을 끝으로, 조천악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허공중에 한 마리 비조(飛鳥)처럼, 조천악은 피풍을 펄럭이며 월광 아래 날아 사라져 갔다.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금비에게 전음을 쓰지 않고 육성으로 소리치는 조천악의 목소리가 멀어지듯 들려왔다.
“오늘 네놈을 죽이진 않더라도 사지 중 하나쯤은 잘라내 버리려 했으나 도리어 적수를 얻었으니 즐거운 일, 오늘은 온전히 살려 보내 주마. 하지만 나는 오래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어서 내 진정한 호적수로 성장해 내 앞에 나타나 주길 바란다!”
사라져 버린 조천악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금비가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실로 난감하구나. 어쩌면 저 녀석의 존재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두 사람보다 더욱 위험할 듯하다. 나란 녀석은 능력도 없는 주제에 어쩌자고 이렇게 힘든 적을 늘려 가기만 하는 걸까? 차라리 외할아버님을 찾아가 저 녀석 볼기를 후려쳐서라도 바로잡아 달라고 매달려 볼까.”
혼자서 중얼거리는 금비에게, 싸움을 피해 멀찍이 떨어져 숨어 있던 독로가 어느새 다가와 옷자락에 머리를 비볐다.
금비가 웃으며 독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예끼 녀석, 주인이 죽을 둥 살 둥 싸우고 있는 동안 숨어 구경만 한 주제에 이제 와서 위로한답시고 아양을 떠는 것이냐? 그래, 괜찮다. 어쨌거나 저놈과 나는 혈연, 최선을 다하다가 정 안 된다면 엎드려 빌어 보기라도 할 일이지. 왜, 못할 것 같으냐? 하하, 천악의 말대로 나는 부친의 혈한도 모른 척하는 인간이다. 그깟 짓이 무에 그리 비쌀까.”
금비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우울한 표정을 풀고 웃으며 독로의 엉덩이를 한 대 후려쳤다.
“자, 가자. 어째 지금은 걷고 싶구나. 그저 길만 잡거라. 내 뒤따라가마.”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 한 소리 울음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독로의 뒤를 따라가며, 금비의 들릴 듯 말 듯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천악. 오늘 나는 오직 네 뜻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네 모습이 많이 부러웠다. 나 역시 그렇게 살다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후련할까…….”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