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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훔치다 1권
1화



무림의 천하제일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천하제일인? 글쎄…… 마교주 천마가 아닐까?
천하제일인이라면 당연히 무림맹주 독고요겠지!
천마? 신검? 그 사람들도 강하긴 하지만 무황성의 성주 장천만 하겠어?
사마련주 기태천이 제일이라니까! 못 믿겠어? 한번 만나봐.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질질 쌀 거니까.

마교주 마성(魔星) 곽우.
무림맹주 검성(劍星) 독고요.
무황성주 무성(武星) 장천.
사마련주 혈성(血星) 기태천.

넷 모두 무림의 절대고수로 천하를 사분하고 있는 세력의 주인들이었다.
천하제일인이란 자리를 두고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직접 겨루지 않는 이상 공식적인 천하제일인은 항상 공석일 것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무림혈전!
마교가 중원을 침범하며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무림맹주는 마교로부터 중원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들고 일어섰고 무황성주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며 무사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사마련주는 천하를 다투는 세력 셋이 움직이자 하는 수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전쟁에 참전했다. 그로서는 싸움 없이 편안했던 일상이 좋았던 것이다.
시산혈해가 펼쳐지는 무림혈전은 오 년이 지나서도 끝날 줄 몰랐다. 그들은 팽팽한 접전을 벌이며 단 한 치의 승부를 예상치 못하게 했다.
무황성의 철검대(鐵劍隊)를 무찌른 마교의 지옥혈마대(地獄血魔隊)는 무림맹의 정천검대(正天劍隊)에게 멸하였고 무림맹의 청룡대(靑龍隊)는 무황성의 은영단(隱影團)에 암습당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절정고수가 부족했던 사마련은 한 방을 노리며 조용히 자신의 땅만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승부의 판도를 뒤엎을 만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네 명의 절대고수들이 전략적 요충지인 섬서의 작은 산에서 모두 모이게 된 것이다.
마교주 곽우는 이를 갈며 주름이 가득한 독고요에게 소리쳤다.
“그만 포기하지? 너넨 이제 싸울 애들도 없잖아?”
독고요는 그 말에 아미를 구기며 별로 길지도 않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조까.”
그의 말에 발끈한 곽우가 내공을 일으켰다. 그러자 거대한 기도가 그의 몸에서 흘러나와 주변을 장악했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못했다.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무황성주 장천때문이었다.
“너넨 갑작스레 왜 튀어나오고 지랄이야, 지랄이! 그렇게 천하가 탐났냐!”
“문답무용.”
장천의 입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굳건하게 닫힌 그의 입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검을 빼 들고 기를 끌어 올렸다.
그 범상치 않은 기세에 손이 축축하게 젖은 곽우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유독 젊어 보이는 중년인이 뒷짐 지고 서 있었다. 사마련주 기태천이었다.
“넌 그냥 빠지지? 우리들 중에 가장 약하잖아.”
기태천의 입술이 씰룩였다.
실은 자신도 그만 이 전쟁에서 손을 떼고 싶었다. 하지만 보는 눈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천하 삼대 세력이 서로 싸우고 있는데 자신만 발을 빼면 사람들이 뭐라 부르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고요의 말이 자존심을 자극했다.
얼굴을 굳힌 기태천은 뒷짐 진 손을 풀며 자세를 잡았다.
“인생 한 방이야. 새꺄.”
“이런 니미럴! 오냐! 오늘 여기서 끝장을 보자꾸나!”
곽우가 바닥을 박차며 달려들자 독고요, 장천, 기태천 역시 일제히 자신의 독문절기를 쏟아부었다. 특히 가장 약했으리라 여겼던 기태천은 혈기를 뿜어내며 누구 못지않게 상대를 압박했다.
절대고수 네 명이 혈전을 벌이자 땅이 요동치고 하늘이 진동했다. 그들이 끌고 온 수하들은 서로 싸우다 자리멸렬하거나 절대고수의 기파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그 싸움은 열흘이나 지속되었다.
동이 트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움직임을 멈춘 그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주시했다.
“잠깐! 할 말이 있다.”
그때 기태천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기태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서로에 대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계속 싸운다면 분명 우리는 모두 죽어.”
“그래서?”
기태천의 말에 흥미가 이는지 곽우가 물었다. 기태천은 이때다 싶었는지 어젯밤부터 생각했던 말을 바로 내뱉었다.
“각자 제자를 하나씩 키우는 거야! 그리고 이십 년 후 이곳에서 다시 겨루는 거지. 어때?”
“그러니까 제자를 키워서 그들을 겨루게 한 다음 무공의 고하를 나누자?”
“그렇지! 그리고 그때까지 휴전하는 거지.”
기태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독고요가 아미를 구겼다.
“이십 년? 그때까지 노부가 살아 있을 것 같나?”
“꼬우면 뒈지지 말고 살아야지.”
곽우가 실소를 지으며 말하자 독고요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계속 싸운다면 기태천의 말대로 모두 죽고 말 것이다. 거기에 오 년이나 계속된 전쟁에 대부분의 정예를 잃었다. 이 전쟁을 계속한다면 이기고 지고 간에 회기 불능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해도 좋을 것 같았다.
“불가!”
그때 걸쭉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장천이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적을 앞에 두고 등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무식한 새끼! 그렇게 싸우다 뒈지고 싶어?”
“적의 계략에 넘어갈 바에야 장렬히 싸우다 죽는 것을 택하겠다.”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장천에게서 흘러나왔다. 마치 한 마리의 고고한 학 같은 그의 모습에 나머지 세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천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들에게서 거센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일까? 장천이 눈살을 구기며 한 발 물러섰다.
“뭐하자는…….”
“결정해. 여기서 다굴 맞아 뒈지고 무황성도 풍비박산하던가 아니면 이십 년 후에 만나던가. 어차피 수하들도 다 죽었는데 눈치 볼 사람도 없잖아?”
장천은 마른침을 삼키며 눈알을 굴렸다.
그들의 기세로 보아하니 거절했다간 정말 자신만 공격할 것 같았다. 그럼 개죽음도 그런 개죽음이 없으리라.
아무리 적을 앞에 두고 물러서기는 싫었으나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집에 있는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딸내미의 목숨을 저버릴 수 없었다.
결국 장천은 그들을 죽일 듯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비겁한 새끼들…….”
“결정 났군. 좋아! 앞으로 이십 년 뒤!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때! 이 무림에서 누가 최고인지 결정이 날 것이다!”



제1장 사마련의 대공자(1)


사마련(邪魔聯).
사악한 마귀들이 산다고 알려져 있는 사파제일의 문파에는 서른세 개의 전각이 세워져 있다.
그런 전각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전각.
염천각(炎天閣)이라 불리는 그곳이 바로 사마련주 기태천의 거처였다.
“무황성은?”
태사의에 앉은 기태천이 턱을 괴며 묻자 사마련의 군사인 사무언은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별다른 대외적 활동이 없습니다. 하지만 암중으로 무슨 일을 꾸미는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합니다.”
“장가 놈, 그놈 조심하게. 그 새끼 본 적 있나? 미친 새끼야. 완전 싸움에 미친 무식한 새끼.”
“…….”
“그건 그렇고 운이의 상태는?”
“예. 현재 염화심법이 오성에 도달했다 합니다. 혈화폭무신공 역시 꽤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육성의 벽을 넘을 것입니다.”
염화심법(炎火心法).
혈화폭무신공(血火爆武神功).
지금의 기태천을 있게 만들어준 그의 무공들이었다.
염화심법은 오행 중 화기를 수련하여 단전에 쌓는 내공심법으로 염화심법을 운행할시 그 어떤 무공이든 파괴적으로 변하였고 병장기에 화기를 실을 수 있는 고급 심법이었다.
그러한 염화심법은 혈화폭무신공과 아주 궁합이 잘 맞았는데 위력이 엄청난 혈화폭무신공은 당하는 순간 고깃덩어리가 되거나 혹여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스며든 화기로 인해 피가 끓어오르며 체내에서부터 폭발해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그만큼 시전자에게도 위험을 안겨주었다. 혈화폭무신공의 내공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시전자가 그 힘에 못 이겨 폭주한 내공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러한 마공을 익혀 사마련의 기대주로 떠오르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사마련의 이(二) 공자 화운이었다.
“그런가. 음…… 약왕각(藥王閣)에 연락에서 오행신단(五行神團)을 내리라고 하게.”
“오행신단이라면…… 염화단(炎火團)을 말씀이십니까?”
사무언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사마련의 무가지보 중 하나로 오직 사마련주만이 섭취할 수 있는 영단이 바로 오행신단이었다. 그리고 염화단은 그 오행신단 중 양기를 강하게 지닌 영단(靈壇).
염화심법을 익히고 있는 자에게 그보다 좋은 영약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염화단을 섭취한다면 염화심법의 성취에 크나큰 도움이 되겠지. 그로 인해 한층 더 발전하게 된다면 결코 아깝지 않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음?”
사무언이 말을 늘이자 기태천이 고개를 틀어 그를 바라보았다.
“무천 공자님께는…….”
“그만!”
사무언의 말을 자른 기태천의 얼굴이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