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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제1장 사마련의 대공자(2)


“그 놈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 하지 않았나?”
“하지만 무천 공자님은 사마련의 대공자이십니다. 화운 공자님께 그러한 영단을 내리신다면 필시 무천 공자님께도 무언가 내리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간의 사람들이 무천 공자님을 어찌 보겠습니까?”
“뭐로 보긴? 실패작으로 보겠지.”
“주군!”
기태천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사무언이 그를 불렀다. 하지만 기태천은 더욱 아미를 구기며 말했다.
“난 그 녀석에게 기회를 줬어. 하지만 그 녀석은 실패했지! 그리고 이것 역시 녀석에게 시련이라면 시련일 터! 이러한 시련을 견뎌내지 못한다면 그 녀석은 더 이상 이 사마련에 남아 있을 자격조차 없네!”
“하, 하지만 주군…….”
“군사.”
“예. 말씀하시지요.”
“자네가 볼 때는 내가 그런 실패작에게 신경을 쏟을 만큼 한가해 보이나?”
“…….”
사무언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라면 염화단을 받을 사람은 대공자 무천이었다. 아니, 그에게 그 일만 생기지 않았더라면 염화단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절세의 기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자였다.
뛰어난 오성과 무골로 단숨에 염화신법을 칠성까지 도달한 그는 후에 기태천조차 뛰어넘을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었다.
“다신 그 녀석 이야기 꺼내지 말게나.”
기태천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닫았다.
무엇보다도 무천에게 걸었던 기대가 큰 사람은 기태천일 것이다. 비록 말은 안 했다지만 일취월장하는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입장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화운 공자님께 염화단을 내리겠습니다.”
“음.”
기태천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사무언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 * *

연화는 사마련의 수많은 시녀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무천에게 배속된 유일한 시녀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천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였다.
“공자님. 조식을 올리겠습니다.”
문 앞에서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로 입을 연 연화는 곧 만날 무천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사람들은 뒤에서 무천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비록 과거 창공을 날아다니는 용과 같다 하지만 지금은 별 볼일 없는 병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연화에게는 아직도 무천은 창공의 용이었다.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고 그저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아, 연화? 들어와.”
문 안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연화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아!’
가벼운 미소가 걸린 사내가 침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들어오는 햇살 때문인지 연화는 그가 눈부시다고 느꼈다.
방금 일어난 것인지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자신이 본다는 것이 더욱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연화는 허리를 숙여 소반을 들고 방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순간 무천의 채취가 그녀의 콧날을 간질였다. 그래서인지 더욱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그녀는 무천의 곁으로 가 소반을 내려놓았다.
“잘 잤어?”
“아! 예.”
“난 못 잤어. 이상한 꿈을 꿨거든.”
“무슨 꿈이요?”
연화는 바닥에 조신하게 앉으며 물었다.
항상 음식을 들고 오면 무천은 그녀에게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앉아 있도록 했다.
무천은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거워했는데 그것이 몇 년이 지나자 이젠 그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리하고는 했다.
“글쎄. 내가 도둑이 되어 있더라? 경공을 쓰면서 남의 집 담벼락을 넘나드는데 그렇게 아찔할 수가 없었다니까? 말 나온 김에 우리 같이 도둑이나 할까? 내가 구 할 갖고 연화한테는 일 할 줄게.”
“푸훗! 공자님도 참…….”
“싫어? 그럼 일 할 더 얹혀줄까?”
“…….”
해맑은 얼굴로 무천이 물었다. 하지만 연화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공이 사라지는 단전.
내공 운용은커녕 경공조차 펼칠 수 없는 몸.
그런 몸을 지닌 무천이었다.
그가 말하는 꿈은 말 그대로 꿈이었다.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연화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무천이 물어왔다. 연화는 그런 무천을 바라보다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무슨 일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얼굴이 어두워?”
“그거야 공자님의 그림자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 동업인데 내 몫이 왜 그렇게 적어요? 적어도 오 할은 주셔야죠.”
“그런가?”
“당연하죠. 아무튼 어서 식사부터 하세요. 음식 다 식어요.”
연화는 다시 소반을 들고 창가 옆에 있는 식탁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음식들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무천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대충 묶고는 식탁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자. 어서 드세요.”
젓가락을 무천의 앞으로 내려놓은 연화가 말하자 무천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맞아! 장강에는 정말 사람만 한 물고기도 살아?”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무천이 물었다.
연화가 알기에 무천은 아주 어렸을 적에 파천궁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후로는 매일 매일 무공만을 익히며 파천궁 밖으로 단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바깥세상의 이야기에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밖에서 들어오는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밥 먹는 것도 까먹고 귀를 기울이고는 하였다.
어찌 보면 천진난만하지만 연화는 그런 무천을 안타깝게 여겼다. 하지만 무천은 그런 연화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젓가락을 들며 또다시 입을 놀렸다.
“그런데 오 할은 좀 많지 않아? 이 할 어때?”
“…….”

* * *

두어 개의 횃불만이 주변을 밝히는 밀실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눈앞에 놓인 거대한 바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우…….”
화운의 입에서 깊은 숨이 흘러나왔다.
상체를 벗고 있는 그의 몸은 구슬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는데 군살이 하나도 없는 훌륭한 몸이었다.
기이한 열기가 그의 전신에서 뻗어 나왔다. 얼마나 뜨거운 열기인지 흘러내리는 구슬땀이 금세 수증기로 변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염화심법을 운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순간 그의 눈이 번뜩였다.
콰직!
강하게 진각을 밟은 그의 몸이 비틀어지며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툭!
그가 끌어 올린 기세와는 달리 내뻗은 주먹이 바위에 가볍게 닿았다.
팟!
빠르게 손을 회수한 화운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쩌정! 쾅!
거미줄처럼 금이 새겨지던 바위가 갑작스레 폭발하며 가루로 변해 버렸다.
절정의 발경이었다.
염화심법이 지닌 폭의 묘리를 지닌 발경은 바위를 중심에서부터 파괴시켜 버린 것이다.
그 엄청난 파괴력은 누구든 감탄을 자아내겠지만 굳게 뻗은 화운의 눈썹은 전혀 미동이 없었다. 이 정도로는 그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만물을 발아래 꿇릴 것만 같았던 사내.
웃는 눈 깊은 곳에 숨겨진 패왕의 기운.
그를 뛰어넘는 순간 화운의 얼굴에 미소가 걸릴 것이다.
짝짝!
박수에 화운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한 사내가 화운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역시 대단한 무위십니다.”
“공각. 자네로군.”
공각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들으셨습니까?”
“무엇을?”
“련주님께서 공자님께 염화단을 내리신다 합니다.”
“염화단을?”
화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염화단의 효능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것을 섭취하는 즉시 자신의 무학 역시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게 다 련주님께서 공자님을 주시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
“이제 공자님께서 사마련의 후계자가 되실 날도…….”
“공각!”
그의 말을 끊은 화운의 눈동자가 지옥의 염화처럼 타올랐다.
“다신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말거라.”
“……제가 실언을 했나 보군요.”
공각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화운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가에 자리 잡은 미소는 사라질 줄 몰랐다.
잠시 그를 노려보던 화운은 깊은 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답답하군. 밖으로 나가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흐르던 땀을 대충 닦은 화운과 공각은 밀실 밖으로 나왔다.
화운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가장 더울 시간이지만 솔솔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더위를 가시게 해주었다.
“공자님 저기…….”
그때 공각이 손을 뻗어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화운의 시선이 그의 손을 따라갔다.
“음…….”
화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공각이 가리키는 곳에는 한 사내가 무엇이 그리 더운지 헥헥거리며 정자에 앉아 있었다.
바로 대공자 무천이었다.
“쯔쯧! 고작 이런 날에도 더위를 타다니…….”
공각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화운의 눈동자가 그를 향하자 공각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화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무천을 바라보았다.
일반 문도에게조차 무시를 당하는 것. 그것이 대공자의 현 주소였다.
으득!
화운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우상과도 같았던 사내가 나약해진 모습에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저벅!
“공자님?”
화운이 움직이자 공각이 그를 불렀다. 하지만 화운은 대답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응?”
더위에 달아오른 뜨거운 몸을 식히던 무천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발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화운이 무뚝뚝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어! 화 사제잖아?”
“…….”
“서 있지만 말고 앉지 그래? 여기 꽤 시원해. 아아~ 좋다. 이게 극락이라니까.”
무천은 정말 극락이라도 다녀온 듯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젖혔다.
화운은 그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어느새 다가온 공각은 못마땅한 얼굴로 화운의 옆으로 섰다.
무천은 계속 눈을 감고 있었고 화운은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 둘은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사형.”
“응?”
먼저 입을 연 이는 화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