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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
인간지도(人間之道)



불량신선 1권(1화)
작가 서문


글쟁이는 항상 즐거움과 자극을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즐겁지 않은 것은 하기 싫고, 무미건조한 일상은 청춘에 대한 죄악이라 울부짖으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글쟁이에게 가장 큰 자극을 주는 것은, 그리고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역시 글이었습니다. 글을 쓸 때 제가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이 글을 보시게 될 독자 여러분들도 글쟁이가 글을 쓰며 느꼈던 만큼의 재미와 자극을 받으실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습니다.
항상 든든히 제 뒤를 지켜 주시는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올리며, 글쟁이 서문 이만 줄입니다.


舌舞팽타준 배상.


서장


석두는 오늘도 신이 났다. 비록 나무를 패서 먹고사는 나무꾼이지만, 그에게는 자부심이 있었다.
바로 산 중의 산, 태산에서 나무를 팬다는 것.
“감히 어떤 나무꾼이 태산에서 나무를 패겠어. 안 그려? 그러니께 이 산의 나무는 다 내 거란 말이제. 와하하!”
산 중의 산. 중원 오악 중에서도 산세가 가장 험하고 웅장하다는 태산. 석두는 콧노래를 부르며 산을 올랐다.
어깨에 걸친 도끼와 등에 멘 지게가 들썩들썩 춤을 췄다.
우르릉 콰콰쾅!
“아이구, 어메!”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에 석두는 펄쩍 뛰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산을 오를 때까지만 해도 맑디맑던 하늘이 어느새 먹구름으로 가득했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던 것이다.
“뭐, 뭐여, 이건? 비도 안 오는데 번개가 쳐야?”
석두는 크게 놀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뒤덮어 흉물스럽게 꿈틀거리고 있는 데다 번개가 여기저기로 내리치는 것이 여간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아, 아이고메! 내가 태산의 나무를 팔아먹어서 산신이 노하셨나 보구먼! 어떻게 해야 하나. 내려가야 허는 건가?”
산신령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께선 이럴 때는 산신께서 노하신 것이라 하지 않으셨던가.
“어, 어메! 저것이 무엇이여?”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던 석두는 또다시 자지러지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뭉실뭉실 피어오르던 구름의 한가운데가 순간 뻥 하고 구멍이 뚫리더니 눈부신 빛줄기가 쏟아져 내리지 않는가!
“시, 신기하구먼!”
어두컴컴한 가운데 밝은 빛이 내리쬐기 시작하자, 석두는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사라졌다. 따듯하고 한없이 포근한 느낌, 그것이 두려움의 자리를 대신했다.
“가서 봐야겄어!”
석두는 도끼를 휙 내팽개치고는 외쳤다. 살면서 언제 이런 것을 볼 날이 있겠는가! 어쩌면 하늘의 선녀님들이 목욕을 하기 위해 내려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석두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산자락을 달리기 시작했다.

구룡검선(九龍劍仙)은 그 생에 가장 염원했던 것을 지금 이루려 하고 있었다. 도를 깨달아 우화등선하기 바로 전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손에 묻힌 피와 죄를 씻기 위해 시작한 수련이 어느새 그를 신선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 있었다.
“아아…….”
흐려진 그의 눈에 감격이 어렸다. 먹구름 사이로 서서히 선계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몸이 점점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신선. 또 하나의 신선이 탄생하려는 순간이었다.

석두는 미친 사람처럼 산을 탔다. 무작정 그 빛이 내리쬐는 곳을 향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처음 와 보는 산의 깊숙한 곳에 들어서 있었다.
“어, 어메! 저것이 무엇이여!”
마침내 그 하늘 구멍이 있는 곳까지 달려온 석두. 그런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설마 하늘 구멍이 저 노인장을 삼키려고 하는 거여?”
태어나서 이십 평생 해 온 것이라고는 나무를 패는 것뿐이었던 석두였기에, 노인이 우화등선하는 선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의 눈에 지금 주위의 상황은 하늘 구멍이 힘없는 노인 하나를 집어삼키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노, 노인장! 하늘로 빨려 들어가면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보소! 노인장!”
석두는 목청을 돋워 노인을 불렀다. 하지만 노인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인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안 되겄어! 내가 가서 구해 와야 되겄구만!”
자신이 직접 노인장을 땅으로 끌어내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힘차게 달려 나가는 석두였다.

“노, 노인장! 하늘로 빨려 들어가면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보소! 노인장!”
구룡검선의 귀에 웬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설치해 놓은 태극방진(太極方陣)을 어떻게 뚫고 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제 곧 자신은 신선이 되지 않는가.
“안 되겄어! 내가 가서 구해 와야 되겄구만!”
‘제발 그냥 가시게.’
세상에 우화등선을 모르는 무식한 이가 있었단 말인가! 우화등선하는 선인을 구하러 온다니! 하지만 구룡검선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이미 자신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사내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자신을 잡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터업!
“흐억?”
하지만 그 다음 순간, 구룡검선은 헛바람을 들이켜며 크게 기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그 청년이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은 것이었다.
‘이, 이런!’
“처, 청년! 어서 이것을 놓게!”
자칫하다간 신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 자신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속도는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선계의 문이 언제 닫힐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안 되겄구먼요. 지 걱정은 마시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돼요! 아시겄소!”
자신의 발을 부여잡은 청년은 등에 지게를 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말은 하나같이 구룡검선의 울화통을 터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고작 나무꾼 하나 때문에 우화등선의 기회를 놓치게 되다니!
“난 괜찮으니 어서 이것을 놓게! 놓으란 말이네! 엇?”
구룡검선은 소리를 지르다 말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선계의 문은 신선이 될 자가 빨리 올라오지 않자 더욱 힘차게 그를 빨아 당기고 있었다.
“노인장 꽉 잡…… 으억! 으어어어억!”
이내 어마어마한 돌풍이 휘몰아쳐 두 사람을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그렇게 두 사람을 삼킨 거대한 뭉게구름은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했다.


제1장 여기가 선계여?(1)


콰앙!
석두는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여?”
눈을 뜨자마자 석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이 밟고 있는 것은 분명 구름이 아닌가!
“이번엔 등선한 이가 둘이나 되는구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석두는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에는 자신이 그토록 구하려 했던 노인장이 감격 어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 저기 말이여…… 여기가 어디랍니까?”
흰 수염을 무릎까지 기르고, 흰 옷을 입고 있는 노인에게 석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껄껄. 몰라서 묻는 겐가? 이곳은 자네들이 그토록 원하던 선계라네, 선계!”
“서, 선계? 에이, 설마…….”
석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선계라면 신선들이 산다 하는 곳인데, 어찌 자신 같은 무지렁이가 그런 곳에 올 수 있겠는가.
“저, 정말 여기가 선계랍니까?”
하지만 이내 석두는 정수리에 번개를 맞은 듯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흰 옷을 입은 노인들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 노인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이구! 이게 무슨 일이여, 이게! 내가 신선이 된 겨? 내가? 어이구, 노인장! 이게 무슨 일이라요?”
석두는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신선이라니! 나무나 패던 무지렁이가 신선이라니! 석두는 자신이 붙잡고 올라왔던 노인을 얼싸안았다.
“그, 그런데 자네가 여기 왜 있는가?”
잠시 얼싸안고 기쁨을 함께하던 노인은 한참 만에 정신을 차렸는지 되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석두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글쎄 말이지라……. 노인장 발을 붙잡고 늘어진 것까진 기억이 나는디 정신 차리고 보니 여기였다, 이 말이라.”
“그, 그럼……?”
구룡검선은 황당한 듯 석두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삼십 년 가까이 도를 수련해 얻은 경지를 이 나무꾼은 자신의 발을 붙잡는 것으로 단번에 얻어 내지 않았는가.
“아따, 내 앞으로 노인장을 형님으로 깎듯이 모시겄소. 난 석두라 합니다, 형님. 형님의 존함은 어찌 되우?”
억장이 무너지는 구룡검선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없이 해맑은 웃음을 짓는 석두였다.

신선이 되면 우선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구룡검선은 등선하기 전에 검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하여 검선(劍仙)이란 이름을 새로 받았다.
하지만 석두가 새 이름을 받는 것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대는 등선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가?”
노인들만 가득한 선계에서 석두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채 이십이 되어 보이지 않는데 우화등선하지 않았는가.
검선이 혹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석두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기에 다른 신선들은 모두 이 젊은 신선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지는 나무꾼을 했었지라.”
하지만 자신에게 그런 시선이 쏟아지고 있음을 석두가 깨닫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천진하게 대답하자 신선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그들 중 한 신선이 외쳤다.
“마, 만물에 도가 있다 하지 않았소이까. 나무를 하다 도를 깨우쳤으니 이 또한 대단하다 하지 않겠소!”
“그 또한 그렇구려!”
“과연 젊은 나이에 도를 깨우친 이는 우리들과 다르구려!”
이내 주위의 모든 신선들이 석두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화등선한 대부분의 선인들은 생전에 대단히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거나 풍운아적인 인생을 살았던 이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오히려 나무를 했다는 석두의 말이 특별하게 느껴진 듯했다.
“그럼…… 그대는 나무를 하다 도를 깨우쳤으니 부선(斧仙)이 어떠하오?”
부선. 도끼의 신선이라는 뜻이니 석두에게는 그야말로 더없이 좋은 이름이었다.
“그것 좋구만요! 부선!”
그렇게 석두는 부선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본격적인 신선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신선의 생활은 무척 단조로웠다. 아침저녁으로 천도복숭아와 감천수로 요기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도에 대한 토론이나 장기, 바둑을 두곤 했다. 때때로 지상의 일을 구경하거나 직접 지상으로 내려가는 신선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신선들이 이미 지상의 일에는 신경을 끄고 있었다.
등선한 지 오래된 선인들 중에는 아예 지상의 기억이 사라진 이도 있었으니, 이미 시간의 흐름이란 이들에게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즐겁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부선이라는 칭호를 하사받은 석두였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산다는 겨?”
사방을 둘러보아도 오로지 구름, 구름, 구름뿐이었다. 선계 곳곳에 흐르는 감로수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복숭아나무 숲을 제외하고는 평야만 펼쳐져 있었으니 그야말로 답답함의 극치였다.
구름을 타고 다니거나 비와 번개를 뿌릴 수 있게 되고, 자신이 원하면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즐겁고 신기했던 것은 고작 삼사 일뿐이었다.
“에휴, 이게 뭐여. 신선이라 해서 대단한 것일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수도승이 따로 없잖어.”
석두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자, 여기저기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신선들이 관심을 보이고 다가왔다. 도를 깨우친 이들이었기에 근심, 걱정, 분노라는 감정을 생소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선께서는 무엇이 그리 근심이신가?”
“근심이 아니지라. 그저 심심해서 그런 것이지요.”
비선(飛仙)이라 불리는 신선이 석두의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새로 온 신선에게 관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와 도에 대한 토론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부선께서는 어째서 말투가 그러하신가?”
“배운 것이 없으니 높은 분들이 쓰시는 귀한 말을 쓸 순 없는 노릇이지라. 안 그려요?”
석두의 대답에 신선들은 안타깝다는 듯 침음성을 흘렸다. 이내 그들 중 얼굴이 곱상하고 수염을 정갈하게 다듬은 한 신선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가 자네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쳐 줌세. 어떤가?”
도를 깨우친다 해서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신선들이었기에 석두에게 자신들의 지식을 가르치려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남는 것은 시간뿐이니 그들에게 석두를 가르치는 것은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아, 지야 감사하지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들―!”
석두야말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달리 할 일도 없는 데다 신선들이 가르침을 준다는데 누가 거절하겠는가.
“그럼 우리들이 신선술을 가르쳐 줌세. 어떠한가?”
“아, 그거 감사하지라! 그럼 지는 나무를 잘 패는 법을 가르쳐 드립지유. 어떻습니꺼?”
신선들은 모두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석두는 신선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든 것이 없는 석두였기에 물을 머금은 솜처럼 신선술을 배우는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