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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2화)
제1장 여기가 선계여?(2)


시간은 물 흐르듯 흘렀다. 그럼에 따라 석두의 신선술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선술을 익히는 속도만 빠를 뿐이었다. 도를 닦지 않고 신선이 된 석두의 신선술은 어딘가 완전하지 못한 구석이 있었다.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의 섭리와 땅의 순리를 알아야만 했다.
땅의 순리는 본능적으로 깨치고 있으되 하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한 석두였기에 그의 신선술은 항상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었다.
“지가 한번 해 볼 터이니 잘 보고 지적해 주시어!”
석두는 바닥의 구름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이내 석두 주위의 구름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변해 갔다.
쿠워어엉!
용은 마치 살아 있는 듯 크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신선들은 박장대소하며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잉? 이, 이 용이 왜 이런 겨?”
석두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단 용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 용은 하늘을 날지 못하고 물고기처럼 꿈틀댈 뿐이었다. 그러면서 인형처럼 울부짖기만 하였으니 다른 신선들이 보기에 박장대소할 만한 장면일 수밖에 없었다.
“허허허, 부선의 재능이 비상하여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깨치는구려. 허허허허!”
이제는 석두에게 거부감 없이 이야기를 걸고 있는 검선 또한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석두는 겸연쩍은 듯 뒷목을 긁으면서도 신선들이 좋아하자 그저 배시시 웃을 따름이었다.
석두의 학습력은 본인조차도 어리둥절해 할 만큼 놀라웠다. 한 번 들은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자신이 뜻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도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 비밀은 천도복숭아와 감천수에 있었다. 천도복숭아는 하나만 먹어도 수명이 일 갑자씩 늘어나고, 허기를 면할 수 있게 해 주는 하늘의 과실이었다. 그리고 감천수는 머릿속을 청명하게 해 주고 마치 태아와 같은 깨끗한 신체로 되돌려 주는 것이었으니, 아무리 머리에 든 것이 없는 석두라 할지라도 학습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이었다.
게다가 잠을 자지 않아도 천도복숭아와 감천수를 마시면 피로뿐 아니라 허기와 배설 욕구까지도 느끼지 않았기에 석두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구만이라, 스승님들.”
석두는 신선들에게 깍듯이 절을 올렸다. 신선들은 이 젊은 신선이 결코 배움이 많아 도를 깨우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사실 그들 중에는 일순간에 도를 깨쳐 신선이 된 이들도 있지 않았던가.
“자, 그럼 이제 도끼질을 가르쳐 드릴까유?”
석두는 주먹을 불끈 들어 올렸다. 당연히 배움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허허. 그래, 부선의 도끼질이 뛰어나다 하니 어디 한번 보도록 합시다.”
비선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주위에 모인 대여섯 명의 신선들도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선이 된 이후로 힘쓰는 일을 하지 않게 된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힘을 쓴다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었다.
“아, 그런데 도끼가 어디 있남유?”
나무를 패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도끼! 신선들은 석두의 질문에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검선이 황금빛 도끼를 들고 왔다.
“이것이면 충분하겠나?”
선계에는 신선들이 살아생전에 쓰던 무구들이나 옷가지들이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구름에 감싸여 묻히지만, 구름을 치워 내면 어렵지 않게 다시 꺼낼 수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더! 우와―!”
석두는 그 황금빛 도끼를 받아 들고 탄성을 내질렀다. 어떤 나무꾼이 쓰던 도끼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한 부잣집의 나무꾼이 쓰던 것이 분명하다고 석두는 생각했다. 묵빛의 손잡이는 쥐는 순간 손과 하나가 된 듯 편안했고, 그 위에 금으로 용이 수놓아져 있었다. 용이 아가리를 벌린 사이로 의기양양하게 뻗어 나온 도끼날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이 분명함에도 날카롭게 빛났다.
“이거면 장작을 패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 분명하구먼유! 대단해!”
석두는 흥분해 소리쳤다. 신선들도 그 모습을 보자 절로 흥이 나는지 저마다 여기저기의 구름을 뒤져 하나씩 도끼를 가져왔다.
선에 다다른 이들은 아기와 같다 했던가. 무식한 나무꾼의 흥에 맞추어 함께 즐거워하는 신선들은 어찌 보면 오륙 세의 어린아이들 같아 보이기만 했다.
“아, 그럼 이제 장작을 패야 하는데……. 아, 저기 좋은 게 있네요!”
오랜만에 도끼질할 것을 찾는 석두의 눈에 적당한 먹잇감들이 포착되었다.
그곳은 바로 천도복숭아 나무 숲!
다른 신선, 아니 지상의 사람들이 보았다면 기절초풍을 하고 쓰러질 만한 행동을 지금 석두와 신선들은 저지르려 하고 있었다.
“자, 제가 하라는 대로 잘 따라 해 주셔야 하구먼유!”
도끼를 든 여섯 명의 신선은 석두를 따라 천도복숭아 숲으로 들어섰다. 이미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신선들이었던 데다가 천도복숭아 나무는 끝없이 널려 있었기에 그들로서도 큰 상관이 없어 보였다.
“다리를 어깨 넓이만큼 벌리고, 허리를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허구먼유. 도끼의 힘이 날에 잘 모이도록유. 그러니까!”
휘익! 콰득!
“이렇게!”
콰득!
“이렇게!”
콰득!
“이렇게에!”
콰드득 쩌어억!
힘차게 도끼가 휘둘러지고, 세 번 만에 어른 허리통만 한 천도복숭아 나무가 베어져 쓰러졌다. 하나만 먹어도 무병장수하고 수명이 늘어나며 두 개를 먹으면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그 천도복숭아! 그 천도복숭아가 무한히 열리는 천도복숭아 나무가 한낱 도끼질의 시범용으로 베어져 넘어간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어렵구먼, 끌끌. 우리들 몸이 많이 약해져서 그런가?”
“아, 비선께선 서생이셨으니 모르겠으나 우리는 무인이었소이다. 아직 이 정도 나무를 쓰러뜨릴 힘은 있어요. 껄껄!”
콰직!
콰직!
우지끈!
나무 쓰러지는 소리와 신선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선계 가득 울려 퍼졌다.
신선들의 도끼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게다가 오랜만에 나무꾼으로서의 직업 혼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석두였기에 분위기는 점점 더 흥겹고 과열되어 가고 있었다.
“이, 이건 무슨 일입니까?”
천도복숭아 숲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니 신선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선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자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헤헤, 보면 모르시겠남유? 나무 베고 있지라. 신선님도 같이 허실라요?”
석두는 까맣게 타들어 가는 다른 신선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이마의 땀을 닦아 내고 있었다. 한편, 그와 함께했던 여섯 명의 신선은 뒤늦게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깨닫고 식은땀을 흘렸다.
“이, 이 일을 어찌할 것이오! 천도복숭아 나무들이……!”
신선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장작더미로 변한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많이 도끼질을 해 놓았던지 신선들의 키만큼 쌓인 장작더미가 다섯 개가 넘었다.
적어도 백 그루 이상의 천도복숭아 나무를 베어 넘겼다는 말인 것이다.
“아따! 신선님들께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구먼요. 보시라요. 복숭아는 다 한곳에 잘 모아 놨지라. 그렇지라?”
석두는 신선들이 사색이 된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천도복숭아 나무라면 아직 자신들이 베어 낸 것의 몇 배는 남아 있지 않던가.
“허허. 아무리 부선께서 아직 선계의 생활에 익숙지 않다지만 이래선 아니 됩니다. 천도복숭아 나무는 천제께서 직접 심으신 것입니다.”
“뭐라? 이 나무들이 천제께서 심으신 나무라고 하시었소? 허미!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어라!”
천제란 말에 석두는 자지러지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제라 함은 하늘의 임금인데, 그런 분이 심으신 나무를 베어 넘겼으니 곱게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허. 걱정 마시게, 동생. 천제께서도 동생이 모르고 한 것임을 아신다면 화내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네.”
검선이 석두를 안심시키려는 듯 다가왔다. 다른 신선들도 천제께서는 인자한 분이라며 석두에게 다가왔다.
이는 석두의 여섯 스승 중 하나인 비선의 머리에서 나온 계책이었다.
‘부선께는 미안한 일이나 죄를 뒤집어씌워야 합니다.’
‘으음. 아우에게는 미안하나 설마 천제께서 이런 일로 아우에게 큰 벌을 내리시기야 하겠소.’
이런 대화가 여섯 신선의 사이에서 오갔음을 알 리 없는 석두는 그제야 안도한 듯했다.
“아따, 역시 형님들밖에 없어라!”
감동까지 받은 석두의 모습에 조금은 미안했던지 그 이후론 더욱 따스하게 그를 대하기 시작한 신선들이었다.
석두와 여섯 신선이 베어 낸 천도복숭아 나무에서 떨어진 복숭아가 한쪽 구석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신선들은 땅에 떨어진 것은 먹지 않는다 하여 그 많은 복숭아는 그대로 버려져 구름에 묻힐 신세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신선들은 석두에게 천제는 다음 개문(開門)의 시기에 선계로 오실 터이니 그때까지 자숙하고 있으라 하였다.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한 석두건만, 저 복숭아들이 그대로 버려지는 것은 도저히 아까워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아따, 땅에 떨어졌다고 안 먹는다니 신선들께서 배가 부르셨구먼. 어따, 정말 아까워서 미쳐 불겠네이.”
여섯 신선들과 어울리면서도 그의 신경은 항상 떨어진 복숭아를 향하고 있었다. 이쯤 되자 석두는 어떻게든 저 복숭아들을 버리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형님들, 들어 보소. 저 복숭아들, 이제 아무도 먹지 않는 것이여?”
“으음, 그렇겠지. 혹여 무엇인가 하려는 생각이라면 그만두거라. 또 다른 잘못을 저질렀다간 천제께서 정말 노하실지도 모르는 일이니.”
협선(俠仙). 규범을 매우 중히 여기는 여섯 신선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의 문제는 귀가 매우 얇아 남의 말에 잘 넘어간다는 것.
석두는 한참 만에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협선의 팔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형님, 어디 좀 가 보아야 할 데가 있다니께요. 빨리 따라와 보셔라!”
협선은 황당한 표정으로 석두를 올려다보다가 마지못해 일어섰다. 비선과 검선이 장기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던 터라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석두는 자신이 처음 선계에 떨어졌던 곳으로 협선을 이끌었다.
“이곳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 구름을 파 보면 아시게 될 것이지라! 헤헤헷!”
말을 마친 석두는 몸을 숙여 구름을 헤치기 시작했다. 협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를 따라 열심히 구름을 파냈다.
얼마나 파내었을까, 마침내 석두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있다아! 어이구, 형님! 있어라, 있어!”
“지게가 도대체 어떻다는 겐가, 동생?”
석두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그가 산에 오를 때 지고 있었던 지게였다. 협선은 그 낡아빠진 지게가 어떻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지게가 아니라 요것이지라!”
“음?”
석두는 지게 안에 들어 있던 것을 자랑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것은 작은 호리병. 도대체 이것이 어떻다는 것일까.
“이것은……?”
“아따, 형님도 다 아심시로! 술입니다, 술! 저 떨어진 복숭아로 술을 빚어 먹으면 기똥차게 맛있을 것 같지 않소?”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천도복숭아 나무를 베어 넘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천도복숭아로 술을 빚어 먹다니!
그런 생각이 채 협선의 뇌리를 관통하기도 전에 복숭아술의 달콤새콤하면서 알딸딸한 향취가 입 안 가득 떠올랐다.
꿀꺽!
“마, 맛있겠구먼.”
“그렇지라? 와하하! 얼른 갑시다, 형님!”
결국 오랜만에 맛볼 술맛에 굴복해 버린 협선이었다.
“그런데 복숭아주는 어찌 빚는 것인가?”
협선은 벌써부터 세상을 다 가진 듯 희희낙락하는 석두에게 물었다.
“아따, 이 형님께서 술을 빚는 방법을 전혀 모르시는구만이라. 나만 따라오시라, 이거요!”
하지만 석두는 전혀 걱정이 없다는 말투였다. 오히려 협선을 닦달해 한달음에 천도복숭아가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자신의 키만큼 쌓여 있는 복숭아를 보자 석두는 벌써 군침이 돌았다.
“일단 술을 빚을 항아리가 필요하겠네이! 어디 해 보실까?”
침을 꿀꺽 삼킨 석두는 바닥의 구름을 한 움큼 뜯어내어 입김을 불어넣었다.
퍼엉!
이내 석두 앞에 어른 서너 명은 충분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름 항아리가 만들어졌다.
“자, 이제 이 안에 복숭아를 넣읍시다. 어허! 뭘 그리 서 있기만 하는 거라요? 퍼떡퍼떡 집어넣으소!”
“아, 알았네.”
석두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협선에게 다그치듯 외쳤다. 사실 협선이 언제 이런 일을 해 보았겠는가. 술을 빚는 것은 하층 계급의 서민들이 주로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복숭아는 생각보다 많았다. 항아리가 어마어마하게 컸음에도 절반 가까이나 들어찼다.
“자, 이제 여기에 이 술을 부으면 장땡이라, 이것이지!”
석두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으며 호리병의 뚜껑을 땄다. 그러곤 그 안의 술을 항아리 안에 부어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호리병은 분명 석두의 한 손에 들릴 만큼 작았건만,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술은 어느새 항아리를 가득 채운 것이었다.
“크으―. 캬아! 맛 좋다! 실수하면 어쩌나 했는데 이것만은 제대로 했소, 형님! 살짝 맛만 봐 보시여! 어서요!”
손끝으로 술을 찍어 맛을 본 석두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신선술이 제대로 성공해서 기쁜 것인지, 아니면 술이 먹고 죽어도 모자랄 만큼 생겨서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흐, 흐흠. 과연 술맛은 변함이 없구먼. 흠흠.”
화주의 맛을 본 협선은 계속 손가락으로 술을 찍어 먹으며 항아리 아래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석두가 재료의 배합이 중요하니 그리 퍼 먹어선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협선은 겨우 아래로 내려왔다.
그럼에도 협선의 볼은 어느새 불그스름하게 상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