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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25화)
제8장 무식이 죄는 아니여(7)


파아앗!
본저의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의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정관념처럼 박혀 있던 것들이 뿌리째 뽑혀져 나가고, 새로운 깨달음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무인들이라면 누구나 바란다는 깨달음의 순간. 그는 지금 그 순간을 맞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이, 잉? 스님? 스님?”
한편, 석두는 본저가 갑자기 바닥으로 내려가 가부좌를 틀고 앉자 무척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또 몸속에서 기운들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운기되기 시작하자 그의 몸을 건드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라냐. 개똥아, 네가 볼 때 이건 어떤 상황이냐?”
컹! 컹! 끄응…….
개똥은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상태라는 듯 크게 짖고는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의 눈에 보이는 본저의 상태는 석두의 똥을 받아 먹었을 때 자신의 상황과 너무나 비슷해 보였던 것이다.
“나가자고? 어따……. 그래서 어디로 가잔 말인가?”
컹!
따라오라는 듯 짖고는 입으로 문을 밀어 밖으로 나가는 개똥이었다. 석두는 주저하듯 본저와 개똥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개똥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컹! 컹!
소림 내부를 순찰 중이던 현배는 개똥과 석두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어 왔다. 하지만 그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의외로 개똥이었다.
“……?”
컹! 컹! 크릉……. 커엉!
개똥은 무엇인가를 전달하려는 듯 열심히 짖어 댔다. 하지만 늑대의 언어를 인간이 알아들을 리가 있는가.
크르릉! 크러렁!
“시, 시주, 이 견자(犬子)께선 왜 이러십니까?”
개똥은 이내 자신의 말을 현배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 답답하다는 듯 땅바닥을 뒹굴었다. 어찌 보면 주인보다 더 똑똑한 녀석이건만, 현배는 개똥의 정신 상태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보, 본저 스님이 지 방에 오셨지라.”
“예. 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석두는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몇 번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으시더니 움직이질 않으셔라. 한번 와 보셔야 되겄어요.”
“예? 설마…….”
현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이내 무엇인가 짐작 가는 것이 있었는지 황급히 지객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컹! 컹!
어서 가 보라는 것처럼 외치듯 짖어 대고는 그 뒤를 따르는 개똥이었다.
“다들 무슨 일인지 아는 것 같은디, 왜 나만 모른당가.”
그리고 석두는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리며 그 뒤를 따랐고 말이다.

지객당에 도착한 현배는 본저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본저의 상태는 그야말로 특이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은 명상에 빠진 듯 호흡이 거의 없었지만 그 존재감은 굉장했던 것이다.
“으, 으음. 시주, 혹 이 스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당연히 이야기했지라. 그것 때문에 문제라도 생긴 것이어라?”
현배는 크게 놀란 표정으로 본저와 석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경악한 듯한 표정과 눈빛으로 말이다.
“그것이 혹여 무공에 대한 것이었습니까?”
“잉? 아마도 그럴 것이지라.”
평소의 그 침착하고 온화한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현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석두를 바라보았다.
‘뭔가 큰 문제라도 생긴 것인가.’
석두는 현배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혹여 자신이 무엇인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현배의 행동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시주께 본 문이 또 큰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잉? 잉?”
‘도대체가 무림인들은 영문 모를 이야기만 해 대는구먼’
석두는 도대체 어째서 이런 상황이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스님은 자신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가부좌를 틀어 버리더니, 이 스님은 이제 또 무공이 어쩌네, 은혜가 어쩌네 하며 자신을 추켜세우지 않는가.
‘선녀님이 아시면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자신이 한 행동이 무인들에게는 얼마나 고맙고 또 큰일인지 알 리 없기에, 뭔가 혼날 일을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석두였다.

유릉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나갔던 현배는 일 각이 지나자 되돌아왔다. 유릉 대사와 십계십승 중 한 명인 살계승(殺戒僧)이 그의 뒤를 따라 석두의 방으로 들어왔다.
살계승은 상당히 근엄하고 진지해 보였다.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에도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으음…….”
살계승은 본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는 본저의 구석구석을 살피더니 말했다.
“망아지경(忘我之境)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대로 방치해 두면 위험하니 제가 직접 이곳을 지켜야 할 듯합니다.”
유릉 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석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흘흘. 이거 소림이 자네에게 큰 빚을 진 것 같구먼.”
“그러니께 아까부터 빚을 졌다고들 하시는데,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래요? 스님은 왜 이렇게 되셨고?”
석두는 도대체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석두가 부탁하듯 말하자 그제야 유릉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본시 큰 가르침과 깨달음이란 그것을 주는 이가 의도하지 않았을 경우가 많다네. 자네가 한 한마디가 본 문의 승려에게 큰 깨달음을 준 듯하니 이 어찌 큰 빚을 진 것이 아니겠는가.”
“헤에…….”
‘난 깨달음 같은 거창한 것을 하게 해 줄 만한 말을 한 적이 없는디……. 역시 선녀님의 말씀을 따라 한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인가 벼.’
석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릉은 흐뭇한 눈으로 본저와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흐음. 그럼 자네가 쉴 곳을 옮겨야 할 터인데……. 현배 스님, 다른 문의 손님들이 오실 때가 어찌 되오?”
“공교롭게도 내일입니다.”
소림은 무림 내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속해 있었다. 무림 불가의 중심이기도 하였기에 그에 속한 다른 문파들이 한 달에 한 번 돌아가며 방문했던 것이다.
그날이 바로 내일, 공교롭게도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날 시기와 겹쳐 버린 것이다.
“그럼 방이 없을 터인데……. 하는 수 없지. 자네, 아내와 한방을 써야 할 듯한데 괜찮은가?”
“예? 한방을요?”
절대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들은 자신과 옥녀가 부부 사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 말이다.
석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개똥이 녀석은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나는지 꼬리를 살랑이며 석두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고 말이다. 마치 옥녀에게 가는 것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어머? 부선께서 이 방엔 웬일이신가요?”
석두가 문을 두드리자, 옥녀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바로 옆방에 있으면서도 석두가 옥녀를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던 것이다.
“아, 그게 말이여…….”
석두는 방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옥녀에게 해 주었다. 옥녀는 본저가 가부좌를 틀고 망아지경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옆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어머나, 정말이군요!”
옆방에 다녀온 그녀의 눈빛은 그야말로 초롱초롱했다. 자신의 눈으로 한 무인이 더욱 큰 성취를 이루어 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석두는 헛기침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부선과 제가 한방을 써야 한다 이건가요?”
그의 이야기의 결론은 옥녀와 석두가 한방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인가 불벼락이 떨어지리라 예상했던 석두와는 달리 옥녀는 의외로 담담했다.
“별수 없지요. 하루라면 저도 상관은 없어요. 단…….”
그녀는 석두를 안으로 들이며 친절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단’이라는 한마디 속에 숨겨진 뜻을 석두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기에 잔뜩 움츠려 들 수밖에 없었다.
허튼짓을 하려 했다간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일 아마 나한전이 열릴 모양이네요. 부선께선 기관진식만 조심하면 충분히 통과해 내실 수 있을 터이니, 이기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나한전이 무엇을 깨우치게 하려는가에 신경을 쏟으셔야 할 것입니다.”
“에……. 지 생각에는 지가 거길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는디…….”
석두는 그제야 자신이 나한전에 도전한다는 사실을 상기해 냈다. 하지만 그가 듣기로 소림의 십팔나한들은 소림뿐 아니라 무림에서도 최고의 고수 측에 들어간다 하지 않던가.
그가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자 옥녀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다가 이내 묘책이 떠올랐다는 듯 손바닥을 탁 쳤다.
“부선, 그럼 이것은 어때요?”
“잉?”
석두는 불안한 듯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바로 미루어 보건대 그녀가 이리 번뜩이는 눈빛으로 제안하는 것들은 십중팔구 턱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물론 거절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고 말이다.
“십계십승은 십팔나한진을 무사히 통과해 낸 이들이 오를 수 있는 위치라는 말씀을 들으신 적이 있지요?”
“아?”
그러고 보니 유릉 대사가 상석 위에 올라 말할 때도 그런 구절이 있긴 했었다. 차기 십계십승에 오를 자격이 주어진다는 말이다.
“분명히 들은 기억이 있긴 하지라. 그런데 그것이 어쨌단 말씀이어라?”
석두가 묻자 옥녀는 당연하다는 듯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분들이라면 분명 십팔나한진에 대해 자세히 알고 계실 것이에요! 그러니 그분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확실히 십팔나한진을 통과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저 번뜩이는 눈을 보건대 진짜 목적은 그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딱히 반박할 것을 찾지 못한 석두였기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상석 위에서, 그리고 상석 근처에서 무공을 수련하던 무승들과 속가제자들의 시선이 석두와 옥녀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외감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수백의 무승들이 무공을 수련하고, 또 비무를 하여도 멀쩡하던 상석을 산산조각으로 박살내 놓은 석두와 그의 아내라 하는 옥녀. 게다가 이번에는 본저가 깨달음을 얻어 망아지경에 빠져 들었다 하니, 그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어, 어째 다들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대요?”
이렇게 노골적으로 시선이 쏟아지자 눈치 없는 석두라 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리 없었다. 석두는 주위의 시선이 자신과 옥녀에게로 쏟아지자 겸연쩍은 듯 목을 움츠렸다.
“호호홋.”
옥녀는 그런 그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또 여간 우스운 게 아니었던지라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마 그에게 그가 헛손질한 것이라 생각했던 주먹이 상석을 박살내 놓았다고 말해 준다면, 이번에는 기절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석두는 옥녀가 웃기 시작하자 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킁킁…….
개똥 녀석만이 그런 주인이 한심하다는 듯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석두와 옥녀는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팔대호원(八大護院)으로 향했다. 그곳은 손님들뿐만 아니라 소림사 내부의 무승들도 일정 배분이 되지 않는 이상 출입이 금지되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도 아무도 막는 이가 없었다. 그것은 석두가 십팔나한진에 도전하는 도전자이기도 했거니와 유릉 대사가 직접 인정한 손님이기 때문인 듯했다.
“시주, 이곳은 들어가실 수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팔대호원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호승(護僧)이 석두와 옥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컹! 컹!
개똥이 그를 경계하듯 짖었다. 감히 어디서 주인의 앞을 가로막느냐는 듯한 외침이었다.
“시끄러, 개똥.”
끄으응…….
하지만 그런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단박에 무시해 버린 석두의 한마디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풀썩 주저앉아 버리는 개똥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저희는 십계십승께 볼일이 있어 온 것입니다.”
“흐, 흐음. 십승께서는 소림 내에서도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입니다. 손님들께서 그분들을 사적으로 만나는 것은 율법상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호승은 옥녀가 직접 말을 걸어오자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럼에도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니 훌륭하다 할 수 있었다.
‘치잇―.’
옥녀는 자신의 미인계가 통하지 않자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조금 무모한 일일지도 모르나 그간 석두가 저질러 온 일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옥녀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눈빛은 개똥을 향하고 있었으니, 꿍꿍이가 있음에 분명했다.
다행히 개똥은 옥녀의 눈빛을 단박에 알아챘다. 그러고는 옥녀의 명령이 있기를 기다리듯 슬그머니 일어섰다.
‘좋아! 똑똑한 녀석!’
옥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뒤를 돌아 힐끗 호승을 바라보았다. 호승은 그들이 순순히 물러나자 한껏 안심한 표정이었다.
“제가 소리치면 단박에 안으로 뛰어 들어가세요!”
“잉?”
옥녀는 재빨리 석두에게 전음을 날렸다. 석두는 머릿속에서 갑자기 옥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화들짝 놀랐다가 옥녀의 번뜩이는 안광을 보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개똥, 물어!”
크허엉!
계단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가 싶던 옥녀의 입에서 불현듯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개똥은 호승의 허리춤으로 달려들었다.
“으, 으아악!”
사실 개똥 녀석은 진심으로 호승을 물어뜯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옷가지를 잡고 물고 늘어졌을 뿐이건만 호승은 지레 겁을 먹어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옥녀에게 등을 떠밀린 석두와 옥녀가 호원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 이런…….”
“저런…….”
그들이 안으로 달려 들어가자 소림 내부에는 당혹감과 황당함이 섞인 적막이 감돌았다. 호승은 한참 만에 평정을 되찾고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석두와 옥녀의 모습은 장생전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헥―! 헥―!
자신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눈을 반짝이고 있는 개똥을 허무하게 바라보는 호승이었다.

“저, 정말 이래도 될라나요?”
석두는 불안한 듯 옥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 어찌할 수 없지요. 우선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게 어떨까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옥녀답지 않은 무책임한 대답뿐이었으니, 석두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옥녀로서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십팔나한진에 도전하기로 되어 있는 이상, 석두의 행동은 어느 정도 충분히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소림의 무승을 망아지경의 단계로 인도했으니 이 정도 일로 크게 불호령을 내릴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 그런디 여긴 어째 이리도 음산하대요. 흐메…….”
석두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장생전의 입구에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좌우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불가의 법도를 다스리고 심판하는 이들로, 소림 내의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항상 행실과 마음을 바로 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불상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만큼이나 불상들은 위압적이었다. 여덟 개의 손에는 각기 다른 병기들이 쥐어져 있었고,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뇌전이, 입에서는 호통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시주, 이곳은 들어오셔서는 아니 되는 곳입니다.”
석두와 옥녀는 장생전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몸이 호리호리한 무승 하나가 눈을 감은 채 합장을 하고 서 있었다.
탐계(貪戒)를 심판한다 하는 탐계승(貪戒僧)이었다.
옥녀는 한눈에 탐계승의 범상치 않은 기도를 읽어 낼 수 있었다. 본연의 기운을 최대한 숨기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태산과 같은 내공이 숨어 있었다.
“소녀, 소녀의 지아비와 함께 십계의 가르침을 받으러 왔사오니 부디 거절치 말아 주십시오.”
옥녀도 합장을 하여 예를 갖추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알게 모르게 천계의 기운을 풍겨 내었다.
하계에서는 결코 얻어 낼 수 없는 절대적으로 순수한 기운. 그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수행이 낮지 않은 탐계승이었기에 옥녀의 기운을 단번에 감지해 낸 듯했다.
“흐음. 본 문에 기재가 들어오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시주와 보살이셨군요. 좋습니다. 저희의 짧은 식견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 안으로 드시지요.”
탐계승은 옥녀와 석두에 대해 흥미가 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옥녀의 눈빛은 쫓아낸다고 해서 쉽사리 나갈 것 같지도 않았고 또 탐계승으로도 쉽사리 속내를 읽어 낼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뛰고 날아 봐야 선녀님 손바닥 안이라 이거지.’
천계에서 도를 깨우친 온갖 고관들과 신선들을 만나 온 옥녀였다. 그들에게 가장 약한 부분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라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탐계승의 뒤를 따랐다.
“왠지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 같어.”
그리고 심상치 않은 불길함에 몸을 떨며 석두도 옥녀의 뒤를 따랐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