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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24화)
제8장 무식이 죄는 아니여(6)


“끄으응. 음냐. 무슨 일이여.”
석두는 바깥이 유난히 소란스러워졌음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하아암―. 참 잘 잤구먼. 근디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냐?”
자신이 이틀을 꼬박 잠만 잤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석두는 잠에 빠져들기 전 마지막 기억을 힘겹게 되살렸다.
“그러니께 힘차게 휘두른 주먹이 빗나갔다, 이 말이여. 그러니께 내가 진 것인감? 에이, 뭐 애초에 이기는 게 힘든 일이었으니께. 안 그런가?”
자신이 휘두른 그 주먹이 상석을 완전히 박살내 놓고, 수백의 소림 무승들을 종이 인형처럼 날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석두는 욱신거리는 몸과 뼈 마디마디를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디 도대체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어라? 나가 봐야겄네이.”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방문을 열고 나가는 석두였다.
“그쪽으로 간다! 막아! 막아!”
“어찌 저걸 막으란 말이오! 으헉!”
밖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수십 명의 무승들과 속가제자들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몇몇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큰 똥 덩어리에 파묻혀 기절해 있었다.
크허엉!
그리고 그들이 쫓아다니는 문제의 똥 괴수는 보통 늑대의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데다 자신의 몸의 세 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똥을 몸에 묻힌 거대한 늑대였다.
“어, 어서 막아 보시오!”
그 늑대의 크기가 워낙 크고 온몸에 방대한 양의 똥을 묻히고 있었던지라 무승들로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던 터였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 늑대의 행동이었다.
크엉! 크허엉! 월월!
마치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마구 짖어 대고, 흉흉한 붉은 안광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소림사 내부를 미친 듯 달려 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는 무승들을 똥이 가득 묻은 자신의 몸으로 가차 없이 짓뭉개 기절시키곤 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똥독이 오르고 또 똥물 속에서 기절한 무승들을 옮기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월월! 크우우우우!
타타타탓!
“지, 지객당 쪽으로 간다! 쫓아라!”
한참 본당 앞을 미친 듯 돌던 늑대는 불현듯 지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게다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어마어마하게 쾌속한 속도로 말이다.
“여, 영물이라도 되는 것인가. 어찌 저리도 빠르단 말인가.”
화살 같은 속도로 지객당을 향해 달려가는 똥 늑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무승들의 눈빛에는 허망함만이 가득했다.
“흐아암―. 도대체 무슨 일이여. 사방에서 구수한 냄새가 가득허고…….”
한편, 석두는 여전히 뻑뻑한 눈을 부비며 지객당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사방에서 구수한 냄새가 가득 풍겨 나오고 있었고, 스님들은 잔치라도 벌이는 듯 시끌벅적하기만 했다.
타타타타탓!
“……하시오, 시주!”
“으음? 뭐라 하시는 겨?”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석두는 눈을 부비며 귀를 기울였다.
“피하시오, 시주! 변 늑대가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소!”
“벼언 늑대? 그것이 뭐여?”
그 외침의 뜻을 도무지 알아먹지 못하겠다는 듯 귀를 후빈 석두는 이상하게 아까보다 구수한 냄새의 농도가 짙어졌음을 느꼈다.
“아따, 눈이 왜 이리 뻑뻑하다냐. 도대체 뭐라 하는 겨.”
타타타타탓!
여전히 뻑뻑한 눈을 억지로 치켜뜬 석두의 눈에 보인 것은 거대한 흑갈색의 물체.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향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크허어어엉!
철퍽!
“흐갸아아아!”
이내 똥 늑대는 석두를 정면으로 덮쳤다. 순식간에 구수한 것에 몸을 파묻힌 석두는 영문도 모른 채 그것과 함께 나자빠졌고 말이다.
“흐, 흐미. 이 구수한 것은…… 뭐여? 또, 똥이……. 우웃!”
할짝 할짝.
석두는 한참 만에 자신의 몸에 묻은 것이 똥, 그것도 아주 오래되어 묵을 만큼 묵은 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경악할 틈도 없이 축축하고 뜨끈뜨끈한 것이 온 얼굴을 핥아 대기 시작했다.
헤엑― 헤엑―
“뭐, 뭣이여……. 우엡! 이, 이눔아, 잠시만 있어. 우엡!”
그 똥 늑대가 소림사 내부를 돌며 미친 듯이 찾아 대던 것, 바로 석두였던 것이다.

소림사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석두가 부숴 놓은 상석을 치우고, 다시 새로운 상석으로 갈아 치우는 일을 하는 데만도 녹초가 된 무승들인데, 이제는 불전의 벽이며 바닥에 마구잡이로 뿌려진 똥들을 닦아 내야 하지 않는가.
더욱 황당한 것은 그 똥 늑대의 행동이었다. 똥 늑대는 석두에게 배를 보이며 뒹굴고, 또 온갖 애교를 부려 대지 않는가.
하지만 녀석이 그렇게 잠잠해졌다고 해서 결코 무승들을 도와주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이 애교를 부린다고 땅바닥을 뒹굴 때마다 똥물들이 사방으로 튀겨 나갔던 것이다.
“이, 이게 뭐야!”
그리고 뒤늦게 어디선가 돌아온 옥녀도 처참하게 변해 버린 소림사를 보고 경악했다. 게다가 온몸에 똥칠을 한 석두와 늑대를 보자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한 표정을 지어 댔고 말이다.
“서, 선녀님 오셨어라. 헤―.”
석두는 그런 옥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특유의 그 바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옥녀는 석두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따라오세요! 그 뒤의 똥개도 같이요!”
“아, 알았어라.”
석두가 일어서자 똥 늑대도 함께 일어섰다. 그리고 그 둘은 코뚜레에 끌려가듯 옥녀의 뒤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둘이 사라지자 무승들은 그제야 청소를 시작했다. 하지만 암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똥독이 올라 천불전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무승들이 오십이요, 똥들은 여전히 건물들에 눌어붙어 있었다.
“닦읍시다.”
현배의 힘 빠진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청소를 시작하는 스님들이었다.

석두와 늑대, 그리고 옥녀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진이 지나서였다. 다시 돌아온 그 똥 늑대는 언제 지저분했냐는 듯 갈색 털을 뽐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석두의 뒤를 졸졸 따르고 있었다.
“똥을 온몸에 묻히고 있었으니께 네 이름은 앞으로 개똥이다. 알았냐?”
끄, 끄으응…….
게다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영물인 것 같았고 말이다.
하면 개똥이가 어째서 그리 석두를 찾았던 것일까. 단순히 말복의 털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개똥도 원래부터 영물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나흘 전 밤.
헤엑― 헤엑―
개똥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무리에서 버림받은 데다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금방이라도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무엇인가 먹을 것이 없나 살피던 녀석의 코에 포착된 것은 알 수 없는 구수한 냄새.
헥! 헥!
비탈진 산길을 뛰어 내려와 녀석이 도달한 곳은 바로 소림사의 담벼락 아래였다.
파바바박!
그 구수한 냄새는 담벼락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개똥은 살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얼마나 팠을까. 겨우 들어갈 만한 개구멍이 완성되자 녀석은 그 아래로 힘겹게 기어 들어갔다.
끄으응…….
늑대가 이렇게까지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가. 하나 녀석은 무리에서 버림받을 정도로 약한 녀석이었다. 무리에서도 워낙 천대를 받았기에 이 정도 일쯤은 녀석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크헝!
마침내 담벼락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한 녀석은 기쁨의 울음을 뿜어내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인간들에게 들키고 말고는 상관없었다. 이 구수한 냄새를 뿜어내는 것. 그것을 먹을 수만 있다면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만 같았다.
타타타타탓!
녀석은 힘차게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구수한 냄새가 뿜어져 나오는 건물을 발견했다. 운 좋게도 문이 열려 있다! 개똥은 마지막 힘을 다해 그 안으로 달려들었다.
크허엉? 크헝!
후우웅! 풍덩!
그렇게 녀석은 해우소의 변기 속으로 사라졌다.

“흐미, 왜 이리 배가 아프당가.”
석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으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었다. 순수한 내공을 가진 석두의 몸에 흡수되지 못한 대환단과 소환단의 인위적인 진기들이 석두의 몸에서 반발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 나온다아!”
석두는 뒤돌아볼 것도 없이 해우소로 달려갔다. 그러곤 자리를 잡자마자 속에 든 내용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푸드드드득! 푸드득!
“후―. 후우―.”
얼마나 쏟아 내었을까, 석두는 그제야 살 것 같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설사의 안에 대환단과 소환단의 잔여 진기들을 모두 섞어 배출한 덕분이었다.
“어따, 이제야 살 것구먼.”
뱃속을 깨끗하게 비운 석두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보람찬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러곤 자신이 배출한 설사가 어떤 일을 일으켰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지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똥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필 재수 없게도 뛰어든 곳이 똥통이었다니.
헤엑― 헤엑―
지독한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 들어왔다. 그리고 그럼에 따라 정신이 조금씩 아늑해져 갔다.
그때였다.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흐미, 왜 이리 배가 아프당가.”
크, 크허엉……!
살려줘! 라는 필사의 뜻이 담긴 울음소리가 작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때 입을 열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 나온다아!”
푸드드드득! 푸드득!
크헝……!
개똥은 입 안 가득 뜨끈뜨끈한 것들이 쏟아져 들어옴을 느꼈다. 이런 개 같은 인생. 인간의 똥을 먹으면서 죽어 가야 한단 말인가.
욕지거리를 내뱉은 개똥. 하지만 이내 녀석은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뜨거운 기운에 몸을 움츠려야 했다.
크, 크릉……!
“어따, 이제야 살 것구먼.”
어마어마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러면서 개똥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입에 똥을 싼 인간의 얼굴을. 그리고 그 인간의 똥이 자신의 몸속에서 무엇인가 일을 저지르고 있음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화르륵!
크허엉……!
마치 온몸이 불덩어리가 된 것처럼 뜨거웠다. 석두의 똥에 담긴 대환단과 소환단의 남은 기운들이 개똥의 온몸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콰르륵!
개똥의 몸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개똥의 혈맥을 보호해 준 것은 놀랍게도 주위의 똥들이었다. 똥독이 올라 부풀어 오른 피부에서 대환단과 소환단의 불순물들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온몸의 털이 빠지더니 새로운 털이 나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크릉……!
그뿐인가. 온몸의 골격과 근육이 뒤틀리며 변해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무인들이 상승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일어난다는 환골탈태. 개똥 5세, 평범하다 못해 약하던 늑대에서 영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환골탈태가 끝난 순간, 개똥은 자신이 이전과는 달리 매우 강해졌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또한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매우 똑똑해졌다. 그런 녀석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크르릉! 크우우우!
우선 그동안 자신의 위에 똥을 싸 댄 이곳의 인간들에게 똑같은 맛을 보여 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 결과, 지금 소림은 똥 냄새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개똥의 옆에는 석두가 있었다.
“흐메―. 구수한 냄새가 아주 좋네이. 이거,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여.”
석두는 구수한 똥 냄새가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그의 말을 들은 옥녀와 무승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무승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세 시진이 지나자 소림사의 곳곳에 묻어 있던 똥들은 깨끗이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냄새는 여전했다.
“그런데 선녀님.”
“예?”
얼굴을 찡그리며 아직 가시지 않은 똥 냄새를 휘휘 날려 보내던 옥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나한전인가에는 언제 들어가게 된다요?”
“유릉 대사께서 곧 남은 한 명의 도전자가 결정될 테니 기다려 달라 하셨어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방장실에 다녀왔던 옥녀였다. 유릉 대사는 길어야 사흘 내로 결론이 날 터이니 기다리라 할 뿐이었다.
“어따, 그럼 오늘은 아니라, 이것이지라?”
석두가 다행이라는 듯 묻자 옥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석두는 배시시 웃으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라. 배가 정말 고픈디.”
‘이 상황에서도 식욕이 동하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야.’
그런 석두의 미소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옥녀였다.
그날 하루 종일 석두는 먹고 또 먹어 댔다. 단시간에 많은 기력의 소모가 있었던 데다가 이틀 동안 못 먹은 것을 모두 보충하려는 듯했다. 그렇게 한나절을 꼬박 먹고, 또 한나절을 꼬박 자고 나서야 석두는 몸이 원상태로 돌아왔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저…… 시주, 계십니까?”
다음 날, 석두의 방 밖에서 한 번 들어 봤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있어라! 들어오시어.”
석두가 반갑다는 듯 외치자 이내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그 뒤에 서 있던 본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일이 있은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본저의 얼굴은 어딘가 창백하게 느껴졌다. 그 터질 듯한 근육과 큰 덩치는 여전했지만 말이다.
크릉…….
본저가 들어오자 개똥이 털을 곤두세우며 적의를 드러냈다. 본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자신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인 듯했다.
석두도 본저의 얼굴을 다시 보자 본의 아니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기분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던 데다가 본저의 얼굴은 여전히 험상궂어 보였던 것이다.
“시주, 소승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본저가 입을 열어 한 말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본저는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말했다.
“아, 아니, 지한테 무슨 무례를 하셨다고 이러신데요.”
석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호들갑을 떨며 일어섰다. 본저는 슬며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소승의 눈이 얼마나 좁고 낮았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이게 다 시주께 한 수 배운 덕분이니,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잉? 이 사람이 또 무슨 소리를 한다냐?’
석두는 도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배웠다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본저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 낸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공격은 정작 빗나가 버리지 않았던가?
“아, 알았으니께 일단 앉으시우. 그러시니께 지가 몸 둘 바를 모르겠어라.”
석두는 우선 이 거북스러운 상황을 피해 보려는 듯 옆 자리를 내주었다. 본저는 주저하다가 이내 그 자리에 앉았다.
“그,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러 오신 거여라?”
“하, 하하.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본저는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 석두의 말투는 마치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지 않은가.
“그런데 그때 비무에서 지가 졌지 않아라? 그런데 왜 지한테 가르침을 받았다 허요?”
“예? 아, 하하하! 하하하핫!”
본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되물었다가 이내 웃어 대기 시작했다.
‘이자는 정말 대인이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도 나에게 승리를 양보하려 하다니! 당연하다는 듯 말하여 순간 내가 정말 비무에서 이긴 것인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잖은가!’
게다가 석두의 말이 그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곡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닙니다. 시주께선 강함에 겸손함까지 겸비하시고 계시니, 소승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 별말씀을…….”
석두는 뒷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럼 그때 비무에서 자신이 이겼단 말인가? 석두는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본저를 바라보았다. 본저는 친절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고 있음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표정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듯한데……. 그럼 정말 내가 이겼단 말이지?’
“그런데 시주께서 사용하시는 무공은 어떤 것입니까? 소승, 이십이 년을 살아오면서 그런 어마어마한 무공은 본 적이 없습니다.”
“무, 무공 말이어라?”
석두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본저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석두는 금세 굳어 버렸다.
“지, 지는 딱히 무공에 얽매이지 않아라.”
“네?”
석두는 이전에 옥녀가 해 주었던 말을 떠올리려 애쓰며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그럼 시주께서는 무공을 연마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그게…… 무공이란 것과 초식이라는 것은…… 에, 약한 내공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라. 그러니께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여 깊은 내공을 소유하게 되면 그런 것은 필요 없어질 것이어라.”
석두는 옥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주섬주섬 늘어놓았다. 자신이 해 놓고도 올바르게 이야기한 것인지 의심이 갔지만 말이다.
본저는 그의 말에 잠시 큰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말이 본저 자신의 사고방식을 무너뜨릴 만한 것이었음에 분명했다. 물론 석두가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음이 분명하지만.
‘그렇다. 초식과 무공에만 얽매여 정작 내 마음의 수행은 게을리 하고 있었으니 어찌 수련에 진척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