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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제8장 멸문(3)


파앗!
운휘의 검에서 광채가 터져 나갔다.
그의 독문무공인 일점뇌(一點雷)였다. 극쾌의 묘리를 이용해 뿌리는 검기가 흑룡을 가르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갈라졌던 흑룡이 순식간에 붙으며 운휘를 향해 방향을 꺾었다.
그 순간이었다.
검게 물든 무천의 눈동자가 태극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꽈득!
“……!”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흑룡이 경직을 일으켰다.
운휘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다시 눈을 부릅떠야 했다.
무천의 몸에서 솟아난 화기와 한기가 용의 형상을 한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흑룡을 물어뜯었기 때문이다.
흑룡은 두 용들의 공격에 대항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다. 마치 그 모습이 세 마리의 용이 똬리를 틀고 싸우는 것 같았다.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울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혈투가 아닐 수 없었다.
세 마리의 용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뜯고 조였다. 하지만 두 마리의 용을 감당할 수는 없었는지 결국 흑룡이 잡히고 말았다.
꽈악!
화룡과 빙룡이 흑룡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 꽉 조였다. 그 고통에 흑룡이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흑룡의 몸에 화룡과 빙룡의 이빨이 틀어박혔다.
화악!
빛과 함께 세 마리의 용이 안개로 변해 사라졌다.
털썩!
용들이 모습을 감추자 무천은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언제 그런 엄청난 기운을 뿜어냈냐는 듯 무천의 몸에서는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자님!”
운휘는 급히 무천에게 달려갔다.
무천은 안고 있던 호연애린의 위로 엎어진 상태였다. 그런 무천에게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공자님!”
무천에게 다가간 운휘가 그를 안아들며 외쳤다. 하지만 여전히 무천은 눈도 뜨지 않았다. 단지 가지런한 숨소리면 들려올 뿐이었다.
핏!
‘음?’
그때 무천의 왼팔에서 새빨간 선혈 한줄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팔 모든 부분이 피로 흠뻑 젖어들었다.
‘이, 이건!’
운휘는 급히 무천의 소매를 걷어 올려 팔을 살펴보았다. 모든 모공에서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운휘는 그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었다.
‘기혈이…… 끊어졌어!’
무천의 몸에는 내공만 없어졌을 뿐 기혈은 튼튼했고 잘 다듬어진 길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기혈이 만신창이가 되고 끊어진 것이다. 이래서는 내공을 되찾는다 하더라도 운용이 불가능했다.
운휘는 고개를 돌려 바닥에 누워 있는 호연애린을 바라보았다. 작지만 분명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상태로 따지만 무천보다 오히려 그녀가 더 위험했다.
운휘는 즉시 무천을 내려놓고 호연애린의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검에 찔린 상처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심각하군!’
눈살을 구긴 운휘는 품 안에서 지혈제와 금창약을 꺼내 상처에 발라주었다. 그리고 한 알의 환단을 그녀의 입에 넣었다.
환단은 입에 들어간 즉시 녹아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운휘는 그녀의 복부에 손을 가져가 내공을 운용했다.
먹인 내상약의 효능을 높이기 위해 약 기운을 온몸에 퍼트리려는 것이었다.
“후우…….”
대략 일각의 시간이 지나자 운휘의 입에서 깊은 숨이 흘러나왔다. 일단 간단히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그녀가 입은 상처가 너무도 컸다. 안색이 좋아지긴 했으나 그래도 창백했다.
일단 흘린 피가 너무도 많았고 내상까지 심각했다.
어서 빨리 의원으로 데려가야 했다.
문제는 무천도 데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공이 사라진 그는 이미 무인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기혈이 멀쩡했던 그는 기를 느낄 수 있고 기를 끌어 모을 수도 있었다. 단지 그 내공이 단전에 모이지 않고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젠 그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그를 이런 허허벌판에 홀로 나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둘 다 이고 가기에는 호연애린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네 이놈들!”
그때 거친 목소리와 함께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장에 급히 검을 빼 들던 운휘는 상대를 확인하자 눈에 띄게 얼굴이 밝아졌다.
“괴공 어르신!”
호령과 함께 나타난 이는 바로 괴공 견자생이었다.
“뭐야? 이놈 왜 이래?”
“말씀드리자면 깁니다. 일단 의원으로 데려가야겠습니다. 어르신 좀 도와주십쇼.”
“흠…… 잠깐.”
“어르신?”
견자생이 몸을 숙여 호연애린을 살펴보았다. 응급조치를 위해 거칠게 그녀의 옷을 벗긴 덕에 반전라의 상태가 된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세히 바라보던 견자생이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손이 다시 밖으로 나오자 손아귀에는 작은 목합이 들려 있었다.
“쯔쯧. 어떤 놈이 이런 가녀린 아녀자에게 이런 살수를 범했는고…… 뭐 주변을 둘러보면 알 것 같기도 하다만.”
“어르신 시간이 없습니다.”
운휘가 다시 다그치자 견자생이 그를 노려보았다.
운휘는 여전히 무천을 안아들고 있었다.
“시끄럽다. 이놈아! 조용히 좀 해!”
낮게 외친 견자생이 다시 고개를 돌려 목합을 열었다. 그러자 향긋함이 흘러나와 주변을 메웠다.
견자생은 그것을 주저 없이 호연애린의 입에 넣고는 기도를 툭 쳤다. 그러자 거리낌 없이 그녀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뭡니까. 그건?”
“생사환단(生死換團)이다.”
“생사환단!”
정파에 의선(醫仙) 제갈수운이 있다면 사파에는 괴의(怪醫) 독사패가 있었다.
생사환단은 바로 괴의의 정수가 깃든 무가지보였다. 죽은 사람조차 살릴 수 있다 알려진 영약으로 천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귀중한 것을 그녀에게 먹인 것이다.
“일단 이 약효로 어느 정도 시간은 벌 수 있을 게다.”
“그럼 어서 내려가시지요. 공자님의 상태도 위중합니다.”
“쯔쯧! 고작 의원에게 데려가려고 저 귀한 생사환단을 먹였겠느냐? 지금 저 밑은 알 수 없는 놈들로 가득하다. 심지어 호연세가조차 그놈들이 차지했더군. 여기 널브러진 놈들과 옷차림이 같은 걸 보니 내려가는 순간 죽고 말 것이야.”
“……!”
운휘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무천이 습격받은 것을 본 순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할 줄은 몰랐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견자생은 자신의 윗옷을 벗어 호연애린의 위에 덮어 주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먼 길이 될 것이다. 따라올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운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견자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을 박찼다.

* * *

호연중이 시선을 돌려 자신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소매만이 남아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심장이 뚫렸음에도 선천지기까지 끌어 올린 종리우의 위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마철강이 데려온 흑풍단의 반수가 목숨을 잃었고 호연중은 왼팔을 내주어야 했다. 만약 그가 마연향에 중독되지 않고 심장도 뚫리지 않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전멸당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종리우는 이미 숨이 끊어졌음에도 굳건한 두 다리로 대지를 딛고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몸에는 온갖 병장기들이 꽂혀 있었다. 팔과 다리에는 화살이 가득 박혀 있었고 가슴에도 세 자루의 검이 꽂혀 있었다.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다니. 과연 명불허전이군.”
창백한 얼굴의 마철강이 입을 열었다. 그 옆에는 마철강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의 호연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철강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심장에 박혀 있는 비수를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턱!
그가 비수를 쥐는 순간 종리우의 고개가 추켜 올라갔다. 그의 반응에 놀란 마철강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설마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움직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다리던 공격은 없었다.
이미 빛을 잃어버린 눈동자는 가만히 마철강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괜찮소?”
“아!”
뒤에서 호연중이 다급히 물었다. 그러자 정신 차린 마철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수를 뽑아 들었다. 이번에는 종리우에게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제길!”
찝찝한 기분에 마철강은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호연중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괜찮소?”
떨어져 나간 팔에 대해 묻는 것이리라.
다시 소매를 바라본 호연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지 고통도 없구려.”
“일단 응급처치부터 하시구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앓아누울 수는 없지 않겠소?”
호연중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이제 시작이었다.
무림에 불 혈풍은…….

* * *

어두컴컴한 동굴의 바닥에는 대리석이 깔려 있었고 가지런히 세워진 기둥에는 횃불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그곳을 한 노인이 가로질렀다.
찢어진 눈과 학사모를 착용한 그는 전형적인 모사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오른 손에는 뱀의 얼굴이 새겨진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척!
대전의 끝에 다다른 그가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앞에는 한 인물이 뒷짐을 지고 돌아서 있었다.
“신 모천(蛇天)입니다.”
“결과는?”
“두 곳 모두 성공적으로 일을 마쳤다고 합니다.”
“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쪽에서는 혈아(血牙)가 그리고 북쪽에서는 성혼(星魂)이 대기 중입니다.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신다면 실행하겠습니다.”
“그전에, 암천여래신공은 얻었는가?”
묵직한 소리가 대전에 울렸다.
모천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더욱 조아렸다.
이번 거사에서 암천여래신공이 차지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는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곳에서 실패를 한다 하더라도 암천여래신공만 얻는다면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현재 호천(虎天)이 사마련 내를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곧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사내가 몸을 돌렸다. 금실로 흑룡을 박아 넣어 만든 장포를 걸친 그의 얼굴에는 금으로 된 반쪽짜리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조금 전 암천혼(暗天魂)이 울었다.”
“……!”
암천혼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모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추켜 들었다. 천주라 불린 사내는 그런 모천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결국 암천여래신공이 세상에 나왔다.”
“천의 모든 무사들을 보내어 그 주인을 찾아내겠습니다!”
모천이 다시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하지만 사내는 고개를 돌리며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지 아니해도 될 것이야. 어차피 그놈이 스스로 우리를 찾아오게 되어 있으니.”
사내의 앞에는 작은 육각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하나의 검은 돌이 기둥과 한 치의 거리를 두고 둥실 떠올라 있었다. 검지만 투명한 그 돌의 중앙에는 작은 불덩이가 갇혀 그 안을 맴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암천여래신공을 익힌 자의 숙명이니까.”
말을 끝낸 사내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자리했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