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5화
第八章 생사지결(生死之結)(3)
그런데 그 순간, 서쪽에서 경고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울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일 때만 들려오는 경고 소리였다.
문뜩 추영독은 이 모든 상황을 일어나게 한 장본인이 서쪽에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추영독은 쓰러지는 수하들을 내버려 둔 채 서쪽으로 부리나케 신형을 날렸다.
본능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당장 서쪽으로 달려가라고.
서쪽에 도착한 추영독은 멍하니 한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흑의를 입은 사내가 무심하게 검을 휘두르며 수하들을 베어 나가고 있었다.
그의 검은 날카롭고 매서웠으며, 몸에서 흘러나오는 붉은빛 마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위압감이 넘쳤다.
수하들은 지척에도 이르지 못한 채 그의 검에 피를 뿌리며 널브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목숨을 잃는 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엎드린 채 신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추영독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훗날 총타를 집어삼키기 위해 꼬마 놈들을 납치하여 키운 적이 있었고, 그중에서 뛰어난 인재가 세 명이 있다고 들었다. 하여 그 녀석들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었다.
그중 두 명은 자신의 신복(臣僕)이 되었고, 한 명은 자신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한데 흑의사내의 모습은 초상화에서 보았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어릴 적의 날카로운 눈매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탓이었다.
추영독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마공을 익히기에 최적인 놈…….”
흑의사내는 어느새 모든 수하들을 베고는 당당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검에서는 연신 붉은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어 매우 기괴했다.
마침내 흑의사내가 추영독의 눈앞에 마주 섰다.
“추영독 부교주?”
흑의사내의 물음에 추영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냐?”
“독고천이오.”
그러자 추영독이 기억이 났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때 그놈이 맞았군.”
“그놈이라니?”
독고천의 물음에 추영독이 검을 뽑아 들었다.
떨리던 그의 손은 어느새 단단히 검병을 쥐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한데 교주 놈의 개가 되었구나.”
“교주님은 내가 처음부터 충성을 바친 상대요.”
독고천이 단호히 말하자 추영독이 이죽거렸다.
“너보다 약한 놈에게 충성을 바치다니…… 자네, 마도인 맞나? 나 같으면 창피해서 물에 코 박고 죽을 걸세.”
“맞는 말이오.”
독고천이 의외로 고개를 주억거리자 추영독이 잠시 멍하니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뭐, 각자만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놈의 사정 좀 들을 수 있겠나?”
독고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교주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난 마도인으로서 무공의 극의를 봐야 하는 사람이오. 겨우 그딴 시시껄렁한 자리에 욕심을 부릴 시간이 없소.”
“그럼 이곳엔 왜 온 건가?”
추영독이 궁금하다는 듯 묻자 독고천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본 교에는 무의 극의를 담고 있는 무공이 쌓여 있고, 힘만 있으면 편히 무공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소. 그러니 그저 밥값 한다는 생각으로 달려온 것이지, 특별한 이유는 없소. 빨리 끝내야 총타로 돌아가서 무공 수련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오.”
말을 끝낸 독고천이 검을 들었다.
순식간에 진기를 끌어 올린 독고천의 몸에서 붉은빛 마기가 넘실거렸다.
그 모습에 추영독이 마주 검을 들었다.
그러자 추영독의 몸에서도 자색 마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추영독이 씨익 웃었다.
“교주와 붙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순간, 추영독의 검이 독고천을 찔러 왔다.
가공할 마기가 허공을 찢어발기며 독고천을 휘감았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 않고 독고천도 검을 마주 찔러 갔다.
콰앙!
공기가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먼지가 치솟았다.
먼지가 허공을 뒤덮고, 검이 쉴 새 없이 부딪쳤다.
까가강!
섬광이 번쩍였고, 연신 굉음이 터져 나왔다.
붉은 검기와 자색 검기가 부딪치며 화려한 불꽃을 터뜨렸다.
순간, 독고천의 검에서 무자비한 검기가 추영독을 삼켜 왔다.
추영독도 이에 질세라 검기를 뿜어냈다.
검기들이 부딪치자 땅바닥이 움푹 파였다.
엄청난 대결에 천마신교의 고수들도 싸움을 멈춘 채 두 사람의 대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독고천의 신형이 연신 번쩍거리며 움직였고, 추영독의 신형 역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붉은빛과 자색의 마기가 허공을 뒤덮었다.
찰나, 독고천의 일검이 기묘하게 꺾이며 추영독의 목을 노려 왔다.
순간, 추영독이 검으로 쳐 내며 곧바로 독고천의 허리를 베어 갔다.
그러자 독고천이 기합성을 터뜨렸다.
“핫!”
순간, 추영독의 검이 튕겨져 나가며 자세가 흔들렸다. 독고천의 검이 빈틈을 헤집었다.
추영독의 다리에서 옅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추영독의 검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멧돼지마냥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모든 검로는 독고천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고, 독고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검만 제대로 맞는다면 저승행이 분명했건만, 그들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추영독은 부교주에 임명된 이후 생사지결을 겨룬 적이 없었다.
그 누가 절정고수인 부교주와 싸움을 하려 하겠는가.
하여 그는 하루하루 지루한 세월을 보냈다.
교주라는 자리를 얻기 위해서 오랜 기간 계획을 짜 왔고 마침내 실천했다.
그러나 막상 교주라는 자리를 얻기 직전까지 다다르자 무언가 허무했다.
그러나 독고천의 검은 달랐다.
전혀 허무하지 않았고, 잠자고 있던 추영독의 투지를 불태우게 해 주었다.
일 검, 일 검에 힘이 담겨 있었고,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단순히 검과 검이 부딪치는 것이 아니었다.
독고천도 갑자기 찾아온 흥분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태껏 제대로 검을 휘두를 만한 상대가 없었다.
희대의 명마를 얻었지만 어지러운 시장바닥에서 겨우겨우 비틀거린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드디어 뛰어놀 만한 드넓은 평야를 만난 것이다.
처음에는 패도적이긴 했지만 서툰 면이 없잖아 있던 독고천의 검이 더욱 묵직해지고 표홀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 누구의 우세도 보이지 않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추영독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독고천은 무아지경에 빠지기 시작했다.
검이 원하는 곳으로 찔러 갔고, 검이 원하는 곳으로 손목을 비틀었다.
추영독은 독고천의 검을 막기에 급급해졌다.
기묘한 움직임의 검로가 연신 추영독을 괴롭히고 있었다.
순간, 추영독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 뒤 소매로 식은땀을 닦아 내리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검귀로구나.”
곧바로 추영독이 검을 찔러 갔다.
독고천의 검도 마주 찔러 갔다.
쾅!
천지를 뒤집는 것 같은 폭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추영독의 의복이 찢겨져 나갔다. 그에 멈추지 않고 독고천의 검은 무자비하게 추영독을 난도질해 나갔다.
추영독의 검은 독고천의 그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추영독은 경악했다.
많은 강호인들은 생사지결을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룬다.
일 초, 일 초가 생사를 결정짓는 생사지결은 그들의 정신과 육체를 더욱 향상시켰으며, 간혹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깨달음을 지금 독고천이 얻고 있었다. 독고천의 검은 한층 현묘한 검로를 따르며 짙은 마기를 뿜어내었다.
이윽고 독고천의 검이 큰 검로를 그리며 추영독의 머리를 노려 왔다.
추영독이 기겁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빠직.
순간, 추영독의 검이 박살 났다.
파편이 얼굴에 박히자 추영독이 신음을 터뜨렸다.
푸욱.
그 순간, 독고천의 검이 망설임없이 추영독의 가슴을 꿰뚫었다.
추영독은 피를 토하더니 손에서 검을 떨어뜨렸다.
허공에서 독고천과 시선이 얽히자 추영독은 쓴웃음을 지었다.
“깨달음을 축하하네.”
그리고 추영독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쿠웅.
이내 가슴팍을 적시는 선혈과 함께 핏기를 잃은 추영독의 몸이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바닥에 쓰러져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추영독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세마인, 추영독은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독고천은 멍하니 검을 늘어뜨린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하나 그것도 잠시. 독고천은 검을 한 번 털어내고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철컥.
검이 검집에 빨려 들어가자 독고천이 검지로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졸리군.”
강호를 진동시키며 정파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절대오마 중 한 명과 생사지결을 나눈 것치고는 지나치게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독고천의 손바닥에서는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독고천은 손바닥을 바지에 쓱쓱 문질러 땀을 닦았지만, 땀으로 흥건해지 등짝은 어쩔 수가 없었다.
독고천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간혹 고통에 가득 찬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독고천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싸움을 지켜보던 부교주 측 마인들은 모두 멍하니 서 있었다.
패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들은 차갑게 식은 추영독에게 다가갔다.
추영독은 평온한 표정을 지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가슴팍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아니었다면, 잠이라도 자고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부교주 측 마인들의 표정은 망연자실에서 체념, 그리고 평온함으로 바뀌었다.
그들도 받아들인 것이다.
강자가 최고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그들이 최고라 믿고 있던 부교주 추영독이 독고천의 칼 아래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간단했다.
“모두들 싸움을 멈춰라!”
염화염왕대주 나죽한의 웅후한 외침에 모든 싸움이 멎었다.
나죽한이 독고천에게 다가가더니, 지척에 다다르자 자신의 검을 뽑으며 부복했다.
그리고 검을 두 손에 공손히 올리고는 독고천에게 내밀었다.
“속하,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독고천은 나죽한의 손에서 천천히 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하늘로 치켜올렸다.
“다들 집안싸움하느라 고생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뜬금없는 독고천의 발언에 몇 명이 당황해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상처 입어 피를 흘리고 있는 것조차 잊고 모두들 한바탕 웃어 젖혔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마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살짝 미소를 짓고 있던 독고천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체를 파악했는지 갑자기 부복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교주님을 뵈옵니다!”
독고천의 모습에 주위에 모든 이들이 동시에 부복했다.
“교주님을 뵈옵니다!”
흑제 노전득뿐만 아니라, 장로 급 고수 모두가 달려오고 있었다.
부복해 있는 수하들을 둘러보던 노전득이 함박 미소를 지으며 독고천에게 다가갔다.
“절대마령대주!”
“옛, 교주님.”
노전득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부복해 있는 독고천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노전득의 손에서 흑묵룡장(黑墨龍掌)이 펼쳐지더니 무방비인 독고천의 등을 꿰뚫었다.
<『천마신교』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