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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
세 개의 이름
불사무적 오마르 1권(1화)
작가 서문
쉽게 읽을 수 있는 글, 간단한 스토리면서도 즐겁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한순간만이라도 세파의 시름을 잊게 만드는 글을 써 보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면, 며칠도 지나지 않아 혀를 차게 만드는 글이 써지더군요.
써 놓은 글에는 캐릭터의 개성이 보이지 않고, 스토리는 스토리대로 꼬여만 갔습니다.
제 머릿속에선 한없이 낄낄거리는데 글로써 표현하다 보면 왜 그렇게 우울해지는지…….
타자인 저조차도 재미없는 글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진도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글 쓰는 재미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30∼50페이지를 쓰다가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300여 페이지까지 써 놓았던 글을 버렸던 적도 수차 있었습니다.
내 글은 왜 이럴까? 왜 시원하지 못하고 답답하기만 할까.
재미없다는 사실을 글을 쓸 때가 아닌, 왜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다 어느 순간 저의 모자람을 알겠더군요.
네 분수를 알아라!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능력을 자각하고 나니 욕심이 버려지더군요.
욕심을 버리자 타인의 시선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홀가분해졌습니다.
인기를 의식하기보다,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기보다 몇몇 독자일망정 제 글을 읽고 초운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곱씹으며 글을 썼습니다.
모자란 필력을 저만의 개성으로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글이 <불사무적 오마르>입니다.
<불사무적 오마르>는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가 이계에 무림맹을 건설하는 이야기입니다.
불현듯 떠오른 스토리를 글로 표현했기에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운이 좋아 독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이렇게 출판까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글이 출판되는 것만큼 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의 모자라고 부족한 점은 성실한 출간 주기로 대신하겠습니다.
보여 줄 것 없는 저로서는 이 약속만은 꼭 지킬 것입니다.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신 문피아와 에프월드 운영자 분들, 미흡한 글을 선택해 주신 뿔미디어 사장님과 지영훈 실장님, 제 글을 사 주신 수많은 대여점 사장님들.
그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분들은 역시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 분들입니다.
<불사무적 오마르>가 잠시 잠깐만이라도 독자 분들의 스트레스를 풀게 만들 수만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나오게끔 수고해 주신 뿔미디어 식구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초운 배상
제1장 내 이름은 세 개다(1)
내 이름은 세 개다.
첫 번째 이름은 곽비.
무림맹의 순찰당주이자 집법사자였으며 십룡의 우두머리가 나다.
천애고아였던 나를 길러 준 분은 중원제일인이자 무림맹주이신 이검룡, 나의 스승이다. 스승은 내가 당신의 자리를 잇기 원하셨고 나를 친아들처럼 대해 주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스승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러한 인연과 축복, 사랑에 감사해 했다.
스승의 친절과 관심에 보답하는 길은 고수가 되는 길.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무공을 수련했다.
무공! 수련! 무공! 수련!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오로지 무공 연마밖에 없었다.
노력의 결실은 20대의 젊은 나를 십룡의 일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다지 자질이 나쁘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었겠지만 피나는 고련이 더 큰 이유였으리라.
그 후 7년.
한 주먹으로 무림칠괴를 때려잡았고 도망치는 암향신투의 다리를 단칼로 베었다. 고작 30세에 불과했을 때는 천하 10강의 하나였던 녹림왕의 두 팔까지 잘라 버렸고 녹림칠십이채의 본거지인 동정수채를 불살랐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재화와 보물을 빼앗았음은 물론 말할 것도 없다.
내 나이 32세.
그때가 내 인생의 최고 전성기였다.
스승의 명을 받고 거친 사막을 헤치길 1년. 드디어 대막오흉의 수급을 자를 수 있었다. 그들의 머리를 들고 무림맹을 찾았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십룡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매담가들이 즐겨 말하는 영웅으로 변해 갔다.
무적철권.
일도진경혼.
중원제일인.
그것들은 나를 칭하는 또 다른 나의 이름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나 스스로가 아주 부자라 생각했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빼앗은 돈도 돈이지만, 무림맹의 후계자에게 필히 따르는 권력과 명예라는 놈이 나를 취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불볕더위의 어느 날이었다.
폐관 수련 중이던 나를 스승이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스승님.”
팔다리가 남보다 길고 마른 스승은 부드러운 외모만큼 자상함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따사로운 미소 속에는 단호함과 결단력, 그리고 완벽성에 대한 요구를 숨기고 있었다.
“왔구나. 이리로 와서 앉아라.”
스승이 나를 향해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네, 스승님.”
맞은편에 앉으며 스승을 보았다.
스승의 갈색 눈동자는 언제나 경험에서 나온 확신과 판단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눈빛이 몹시 흐트러져 있어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밤의 어둠과 비의 장막처럼 스승의 눈에 뿌연 회색빛 습막이 끼어 보인 것이 그저 더위가 주는 나른함의 착각이었을까?
“몹시 피곤해 보이는구나. 고생이 많다.”
스승이 나의 초췌해진 몰골을 보며 걱정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이틀에 두 시진 정도는 자고 있으니 무림맹의 정예들인 질풍대와 신풍대에 비해서는 호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일도경혼의 진척은 있느냐?”
스승의 무공은 3가지 큰 흐름으로 나에게 전해졌는 바, 그중 하나가 일도경혼이라는 도법이다. 일도경혼은 무적철권, 건곤무상공과 더불어 사문의 3대절학 중 하나였다.
“조만간 10성의 경지에 오를 것 같습니다. 건곤무상공도 8성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좋구나. 참으로 좋다. 네 나이 이제 서른다섯. 벌써 8성이면 전성기 때의 사조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냐.”
스승은 일도경혼보다 건곤무상공의 성취에 더 관심을 표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승을 비롯해서 과거 천하제일의 무인으로 경외와 칭송을 한 몸에 받았던 장손달 사조조차 건곤무상공 8성의 경지는 불혹을 넘어서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치하를 하는 스승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평상시와 다른 스승의 눈을 보며 나는 불안정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승님의 사랑과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여 사문을 빛내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 갖춘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분위기상 마음속의 말은 삼킬 수밖에 없었다.
스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일 검으로 20장 밖의 거석을 네 조각으로 만든 사조의 위용을 너로 인해 다시 볼 수 있겠구나. 사문과 무림의 장래가 너에게 달렸다. 기대하마.”
그 말을 끝으로 스승은 침묵을 지켰다.
“…….”
한동안 계속되는 침묵은 무거운 납 같았다.
묵언으로 인한 묘한 공기가 이질적인 긴장감을 만들었고, 나의 가슴은 차츰 서늘해져 갔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자, 스승님. 이제 저를 철옹(鐵甕)의 수련장에서 불러내신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 때문에 저를 부르셨습니까? 무엇이 중원제일인의 스승이자 천하의 무림맹주이신 스승님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까. 저에게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침묵의 시간은 나의 예상을 깨고 있었다. 좌중은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 만큼 고요했다.
‘뭐가 이리 깁니까. 때려 부수는 것 하면 저 아닙니까? 문제가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목구멍이 간질거렸고 분위기는 불편했지만 끝까지 참으며 스승의 말을 기다렸다.
“얘야.”
이윽고 스승이 입을 열었다.
“너는 천마와 혈마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스승의 말에 새삼스럽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들은 죽었지 않습니까? 스승님께서 그들을 죽이셨고 개방 장문인이 그들의 죽음을 직접 확인했다 들었습니다.”
일순 스승의 얼굴이 참담하게 변했다.
“아니다. 그들은 죽지 않았다.”
스승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명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쿵. 쿵. 가슴이 북처럼 두근거렸다.
‘이런 제기랄! 뭔가 이상하다고 했더니, 이럴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스승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죽지 않았다고요? 이게 어찌 된, 어찌 된 말씀입니까!”
언성이 높았지만 스승은 나의 무례를 꾸짖지 않았다.
다만 힘없이 고개를 내저으며 스승이 대답했다.
“죽었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면 천하를 피로 씻은 과거의 대마두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씀입니까?”
“내가 알아낸 바로는 그렇더구나. 그들은 그때…… 탈각의 계로 우리들을 속였던 것이다. 무림이마는 살아 있다.”
“으…….”
이렇게 엿 먹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찬란한 미래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온몸의 피가 증발할 듯이 달아올랐고 머리는 거대한 둔기에 맞은 듯 멍해지고 말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역겨운 느낌이 울컥 밀려왔다.
“그럼 가짜를 죽였단 말입니까? 점창파의 장문인을 일장에 사망케 하고, 화산파의 일절이신 매화검수를 일 검에 양단 내어 버린 그자들이 가짜였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스승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의 손에 심장이 터져 만장 절벽으로 떨어진 혈마가 진짜 혈마가 아니었고, 스승님의 칼에 목이 잘린 천마가 진짜가 아닌 가짜였다니…….”
믿기지 않았다.
무림맹의 정보는 치밀하기로 정평이 나 있고, 철두철미하기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 스승이다.
나는 계속해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맹이 무림지사들과 손을 잡고 전력을 다해 처리한 일이었습니다. 어째서 그럴 수 있었습니까? 이게 가능한 것입니까?”
연이은 질문이었고, 누가 봤으면 불경스럽다 느낄 정도의 흥분이었다.
하지만 스승도 나도, 아무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그렇다. 우리들은 진짜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것 같다. 그들의 음모에 속은 것이다. 죽은 자들은 그들의 제자였다고 하더구나.”
충격을 달래기 위해 한참 동안 애를 써야 했다.
“큰일이군요. 과거 그들 때문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백대문파들은 거의 봉문 상태를 맞이했습니다. 그로부터 고작 20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무림이 원기를 되찾아 가고 있는 중이 아닙니까. 그런데 가짜라니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나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휴우…….”
영혼이 떠나 버린 망자처럼 처연한 얼굴을 하고 있던 스승이 끝끝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누가 있어 그들을 막겠느냐. 장차 참혹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무림의 앞날이 어찌 될지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구나.”
그랬다.
25년 전, 천마교주인 천마와 지옥교주인 혈마는 무림천하를 정복하기 위해 혈풍을 일으켰다. 마도 연합은 강했다. 아무도 그들을 이길 수 없었으며 어느 누구도 그들의 혈로행을 막을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수많은 문파들이 멸문당했다.
이에 무림의 제 문파들은 분연히 일어나 그들과 대항했다.
천하무림맹이 결성된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 강했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자들이 그들이었다.
당시 중원제일인이었던 스승조차 천마와의 싸움에서 백 합, 혈마와 싸워서는 채 구십구 합도 버티지 못했다.
무림맹과 기타 무림연합 세력은 연전연패를 거듭했으며 천마와 혈마 앞에서 흩어지는 까마귀처럼 도망 다녀야 했다.
마귀들이 들불처럼 발호한 그때만 하더라도 온 세상이 곧 멸망할 것만 같았다.
무림의 종말!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숫자의 힘은 무섭다.
더구나 끈질긴 숫자의 힘은 더욱 무섭다.
우세한 인력을 이용해서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한다면, 아군의 희생을 고려하지 않고 계속 공격한다면 상대방에게 심리적인 압박과 충분한 공포감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마귀들은 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소수였고 무림연합은 약했지만 이 또한 다행스럽게 인해(人海)였다. 피바다와 시체 산이 만들어지는 불행을 겪고 나서, 결국 무림의 연합 세력은 마귀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대마두들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천마의 목을 직접 자르고, 혈마의 심장을 터뜨린 사람은 스승이었다.
비록 인해전술로 인해 극심한 부상을 입은 그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할 사람은 그래도 스승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가짜라니.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
잔인한 침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도 스승도, 참혹한 사실 앞에 일순간 벙어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