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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2화)
제1장 내 이름은 세 개다(2)
***
천장애의 혈겁은 스승을 무림맹주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무림에 지대한 손실을 끼치게 만들기도 했다.
과거에 정사를 떠난 천장애 회합에서 살아남은 호걸들은 얼마 없었다. 대부분 그때의 혈겁에서 죽었거나 지독한 중상을 당한 것이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이 구파일방과 사파연합의 장문인, 무림 오대세가의 가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안타까운 사실은 현 구파일방의 장문인 중 과거의 장문과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혈풍이 불고 그 혈풍이 천장애에서 끝날 때까지 5년.
대부분의 비전절학들은 그 당시 유실되었으며 무림의 동량들은 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그로 인해 무림의 원기는 급속으로 쇠퇴해졌다. 갈기갈기 찢겨져 피 흘리던 당시의 무림은 사망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폐병 환자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 후 20년이 흘렀다.
각고의 노력으로 인해 무림의 동량들이 이제 막 싹을 틔우려 하고 있었다. 무림맹주인 스승도 최근에야 과거의 부상을 극복할 수 있었다.
―앞으로 무림이 과거의 성세를 되찾으려면 한 세대는 족히 지나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견해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몰린 상황에서 경천동지할 변괴가 발생한 것이다.
“이제 어쩌시렵니까?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너를 부른 것이다.”
스승의 목소리는 떨렸다.
“…….”
“지금의 너는 나를 뛰어넘는다. 중원제일인! 그들과 겨룰 자격이 있는 사람은 천하에 너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랬다.
중원제일인. 나는 중원제일인으로 불리는 절대고수의 반열에 놓여 있었으며, 나 스스로도 나를 이길 자가 없다고 여기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모래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중원제일인이 고작 그들과 겨룰 자격밖에 되지 않는다? 이, 내가? 천하제일이 되려는 내가?’
고소를 삼키며 스승께 물었다.
“20년 전의 그때처럼 다시 무림첩을 돌리실 생각입니까?”
스승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숨었던 그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자신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바. 무림첩은 오히려 무림의 멸망을 부르고 말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지금의 무림은 그들과 전면전을 벌일 역량이 없다.”
충격적인 이 말은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기도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스승이 그윽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스승의 침울한 얼굴 표정과 슬픈 눈길에서 스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스승이 말한 ‘그래서 너를 부른 것이다’라는 의미가 단도처럼 폐부를 파고들었다.
“어떠냐, 한번 해 보겠느냐?”
“…….”
잠시 생각했다.
한 번 옳다고 판단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내 성격이다. 결과가 뜻대로 나오지 않을지라도 판단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림맹주의 자질에 대한 오해의 시선까지 받곤 했던 나였다.
“미래의 무림맹주는 소문난 것처럼 단순 무식한 사람이 아닐까? 추진력도 좋지만 너무 과도하고 폭력적이야. 말을 듣지 않는다고 수하를 저렇게 두드려 패서야 되겠는가? 성격이 불이야, 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도 좀…….”
“의리도 있고 능력도 있어 보이지만 저렇게 하다가는 무리가 많이 따르게 될 걸세.”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는 중원제일인이고 그를 당할 자는 현재 아무도 없네. 또한 그는 무림맹의 차기 맹주가 아닌가. 차후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라 소문이 자자하니 잘 보일 수밖에 없네.”
“쯧! 그가 폭군이 안 되기만 바란다는 것이 왠지 씁쓸하다네.”
일부의 무림 인사들이 나를 시기하여 이런 식으로 폄하하는 소리를 모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유언비어와 잡설에 흔들릴 내가 아니었다.
‘그동안 몰래 쌓아 둔 재물만 해도 장안의 갑부 못지않다. 조만간 무림맹주가 될 나이고 남부러울 정도의 권력도 가지고 있다. 중원제일인으로 칭송도 받고 있다.’
하지만 권력이나 명예보다 소중하고,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에게 있었다.
‘스승이 베풀어 준 친절과 은혜를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사나이의 약속을 천명으로 여기고 남자의 의리를 목숨처럼 중히 여기는 나다. 이제…… 드디어 그 은혜를 갚을 때인가 보다.’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살기 좋은 세상일수록 힘과 더불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준비한 돈이었다.
그런데 남몰래 준비해 두었던 그 돈이, 비장의 노후 대책이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사실은……’ 하며 숨겨 둔 돈을 꺼내 놓기도 뭐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 돈은 큰 도움을 주지도 못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무엇인들 꺼려하겠습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나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일단 하기로 한 것, 해야 할 것이라면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씩씩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또한 그것이 스승이 원하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던 스승이 결국 눈물을 보였다.
나는 스승의 눈물을 그때 처음 보았다.
“네 장례는 후히 치러 주도록 하마.”
나처럼, 스승도 내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승의 말과 스승의 눈물에 가슴이 시렸다.
왜 그랬을까?
문득 내가 처한 상황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 같았다.
나의 분신 옥쇄가 무림의 미래를 바꾸어 주기는 할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의심이 들자 마음이 약해졌다.
서글픈 마음에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는 곽비. 스승님의 하나뿐인 제자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하겠는가.’
이를 악물고 머리를 털었다.
“제 목숨은 스승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길러 주신 은혜는 낳아 주신 은혜와 같습니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이 말은 흔들리는 나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다.
‘혼인을 하지 않았던 것은 바빠서…… 인연을 찾지 못해서였지만,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처자를 두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
며칠 후, 스승과 다시 독대했다.
“너를 대신할 사람은 정해 놓았다. 그는 소림 출신이다. 너보다 못하지만 그의 외모는 너를 빼다 박았더구나.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은 천운이 우리를 돕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무도 일도진경혼이 가짜인 것을 모를 것이다.”
스승의 계획은 치밀했다. 계획대로만 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꽤 높았다.
‘다만 그 대가가 클 뿐이지…….’
그렇게 다짐했건만 가슴 한 곳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감추며 즉시 스승의 말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 저는 무림맹 사람도 아니고 스승님의 제자도 아닙니다. 두고 보십시오. 저는 악귀가 될 것입니다.”
이미 약조가 되었던 부분이고, 나의 각오이기도 했다.
내 말이 끝나자 스승이 가슴이 무너질 듯 슬픈 표정을 지었다.
“천마와 혈마가 죽는 순간 너의 위업이 발표될 것이다. 곽비라는 이름은 향후 무림지사로 기억될 것이다.”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명예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길러 주고 가르쳐 준 스승님의 은혜는 영원히 제 마음속에 남을 것입니다. 죽어서라도 스승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정색을 하며 그렇게 말했다.
“너의 앞길에 하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이 스승은 언제나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무림의 앞날을 위해 천지신명께 빌겠다.”
“후퇴하면서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스승님의 계책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스승이 재차 당부를 했다.
“꼬리만 보이고 머리는 보이지 않는 자들이 그들이다.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고 여우처럼 의심이 많은 자들이다. 그러니, 그들을 만났을 때 두 번의 생각도 하지 마라. 행여 실수할까 봐 주저하지도 마라. 너를 의심할까 봐 걱정하지도 마라. 그들을 만나는 순간! 기회는 그때다. 그때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게 죽을 것입니다.”
스승이 참담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옥쇄의 기회를 놓치면…… 어쩌면 그때야말로 무림 멸망의 그날이 될 것이다. 가치 있는 희생은 스스로의 값어치를 증명한다. 나는 너의 ‘충절의 죽음’이 무림의 희망으로 나타났으면 하고 바란다. 다른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나.”
자꾸 죽어라 말하는 스승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스승이 이 순간만큼은 야속하게 느껴졌다.
‘스승은 무림의 안녕을 위해 가차 없이 행동할 수 있는 분이다. 어려운 결정들을 둘러싼 윤리적 난관을 뚫고 이런 결정을 하실 수 있는 분도 스승밖에 없다.’
“부디 보중하십시오.”
나는 일어섰고, 무거운 마음으로 무림맹을 벗어났다.
떠나는 나의 품속엔 천폭뢰라 불리는 천하의 기물과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극독, 절대무형지독(絶代無形之毒)이 있었다.
그리고 무영마공과 폭혈마공.
전설로 전해지던 저주의 두 마공이 내 머릿속에 담겨져 있었다.
무영마공은 나를 악귀로 만들어 줄 고육지책이었고 폭혈마공은 나의 목숨, 값비싼 대가를 치를 최후의 비책이었다.
불행히도 천폭뢰가 실패한다면 절대무형지독은 즉시 나의 뱃속을 검게 물들일 것이다.
그러면 절반의 금강불괴인 내 몸은 촌각(寸刻, 아주 짧은 시간)을 버티다 한 줌의 핏물로 녹아내릴 것이고, 내가 원하는 순간은 그때가 될 것이다.
목숨으로 은혜를 갚고, 분신 옥쇄로 천하를 구한다.
절독에 녹아 독액이 된 나의 몸은 폭혈마공으로 인해 천폭뢰처럼 터질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혈마, 천마라 해도 결단코 이 함정에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폭혈마공이 만든 절대무형지독액은 반경 50장 이내의 모든 것을 녹여 버리고 말 것이니까.
스스로 얼굴을 부순 나는 그렇게 5년을 보냈다.
5년이란 시간이 길다면 긴 시간이다. 하지만 나에게 5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그동안, 과거 살인귀로 악명을 떨쳤던 무영마의 무영마공을 수련했고, 무영마의 최고절기였던 무영일점혈을 연마했다.
살수제일문 천살문도 재건했다.
무영마는 천, 지, 인의 살수 등급을 벗어난 사상 최초의 무급(無級) 살수였으며 위대한 살수문의 뿌리였다. 그러한 무영마의 살수마공이 어떻게 해서 스승에게 전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스승의 심모원려(深謀遠慮)로 인해 살수들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5년째 되던 해, 천하제일의 암살 무공이 완성되었다.
내가 두 번째의 무급 살수가 된 것이다.
5년에 걸친 악행은 천하의 기인이사들을 암살함으로써 극에 달했다. 백대문파의 고위 장로들을 살해하고 사파 기재들의 심장을 석류처럼 터뜨린 사람이 나였다.
나의 나쁜 짓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천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더 무서운 살인귀가 되어야 했다.
“천하제일의 마두가 두 명이나 되어서 의아해 했는데 오늘 그 생각을 바꾸어야 할 듯하오. 이제 무림이마가 아니라 삼마요. 천마, 혈마, 그리고 당신 무영마. 삼마로 인해 천하는 피로 씻길 것이고 마도천하가 도래할 것이오. 감탄했소.”
절강성의 북궁 가문을 씨까지 몰살하고 돌아온 나를 향해 뭇 마두들이 엄지를 세우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혈마에 접근하기 위해 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두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죽인 자들의 생간을 씹기도 했다.
마두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는 스스로 악귀가 되었던 것이다.
“당신의 식인신공과 흡혈마공은 고금제일이오. 혈음의 마왕이라는 혈마조차도 그대의 흡혈에 못 미칠 것이오. 인육의 마왕이라는 천마조차도 그대의 식인에 따라갈 수 없을 것이오. 최고요. 무영마야말로 고금제일의 흉마요.”
나를 따르던 소악마들은 나의 악행 앞에서 진저리를 치며 쩔쩔맸다. 몸을 숙이며 아부했다.
‘내가 악명을 떨치는 만큼 무림의 운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겠지만 기회의 확률은 더 커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숨겼다.
천마, 혈마의 악행에 비교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내 소문이 들어가고, 그들로 하여금 내가 자신들과 같은 길을 걷는 마도인임을 각인시키기 위해 잔혹한 살행을 벌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서 간당거리고 있을 그때, 나는 드디어 2명의 마두와 마주할 호기를 얻게 되었다.
나의 악명을 듣고 그들이 나에게 연수를 제의한 것이다.
“존경하옵는 무영마께…….”
이렇게 시작되는 그들의 초청장을 들고 나는 소악마 몇과 대동한 채 망혼곡으로 향했다.
***
피바다 속에 몸을 담그고, 백골탑 위에서 뒹굴었던 나였다.
사지를 찢고 인간의 피를 물처럼 음용하며 생간을 토막토막 잘랐던 나였다.
가슴과 배를 가르고, 끄집어낸 내장을 목에 감은 채 심장을 부수며 앙천광소(仰天狂笑)를 터뜨렸던 나였다.
물경 8년 가까이 그렇게 보냈는데 심성이 변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성에 빠지지 않았을까?
피, 방화, 그리고 살인.
무참한 살육을 하면서, 어쩌면 이것이 나의 본성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스승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짜 악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살인의 쾌락에 빠져 식인과 흡혈을 일삼았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러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이러한 혼란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마두로부터 무림천하를 구한다는 사명감?
그런 생각 자체도 흐릿해져 있었다.
‘나는 악마다. 내가 진정한 흉마다.’
‘그런고로, 내가 아닌 다른 악마는 용납하지 못한다.’
‘나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마두들은 내 손에 천참만륙(千斬萬戮) 날 것이다.’
‘나에게 경배하지 않는 소악종들은 내 손에 피 모래가 될 것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 당시의 나는 아마도 이러한 욕망이 더 강했을 것이리라.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악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