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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25화)
제8장 카미르의 왕(4)
서겅!
비명을 지르는 놈의 목덜미에 칼집을 선사했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며 놈의 목젖이 대합조개처럼 벌어졌다.
녹피가 분수처럼 나를 적셨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목젖이 잘렸음에도 놈은 계속해서 으르렁거렸다.
“이대로 두면 어찌 될까? 다시금 벌떡 일어설까?”
우습게도 이 순간 문득 그것이 궁금했다.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 모험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두 발로 놈의 목을 감았다. 한 팔로 놈의 턱을 밀며 잘라진 목에 칼을 쑤셔 박은 다음 힘을 주었다. 그러면서 썰었다. 톱처럼 칼을 놀리며 목살과 뼈를 잘라 냈다.
미노타우로스가 사지를 뒤흔들며 맹렬하게 반항했지만 이미 두 어깨는 작살이 났고 다리뼈는 아작 난 상태다.
놈의 저항은 곧 허무하게 끝날 것이다.
“이놈!”
거의 끊어졌다 싶을 때 온 힘을 다해 놈의 목을 뽑았다. 두 팔을 비틀며 잡아당겼다.
몇 차례, 용을 쓰며 목을 비틀자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결국 목이 뽑혀 나왔다.
질기디질긴 녀석이었다. 목이 뽑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놈의 사지는 푸드덕거리며 경련을 하고 있었다.
껍질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것이 꼴 보기 싫어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낸들 어쩌나. 지가 움직이겠다는데.
두 팔을 먼저 잘라 냈다.
그리고 두 다리도 잘랐다.
잘린 부위에서 콸콸 쏟아지는 피는 준비해 온 자루에 고스란히 담았다.
근육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살을 도려냈고 뼈에서 떼어 낸 근육은 따로 모았다.
뼈도 한곳에 쌓았다.
잘게 부서진 뼈도 상당했다. 짜증나는 뼈 조각은 모조리 던져 버렸다. 쓸데없는 내장도 다 끄집어내어 저 멀리 내던졌다.
어이없게도 녀석의 위는 엄청나서 내 몸통만 했다.
이해가 갔다. 이렇게 컸으니 검은 표범을 꿀꺽했겠지?
껍질보다는 영 못했지만 미노타우로스의 내장도 제법 질겼기에 혹시 쓸모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곧 포기했다.
그것까지 챙기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무릇 남자는 대범해야 한다. 버릴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턱 힘이 제법 좋은 녀석들만 먹을 수 있겠지만 어찌 되었던 간에 미노타우로스의 질긴 내장은 다른 몬스터들이 처리해 줄 것이다.
“흐흐. 그럼 몬스터 녀석들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모르겠군.”
놈을 해부하는 것은 놈의 시체가 곧 돈이었고,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돈다발을 옮기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미노타우로스의 시체는 오우거의 시체 못지않게 값어치가 있었다. 뼈와 살은 마법의 재료가 된다고 한다. 피는 상당히 비싸게 팔리는데, 효능 있는 마법 시약을 만들 때 사용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래도 트롤의 피보단 못하겠지?
가죽은 레더 아머를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재료라고 제임스가 침을 흘리며 말했다.
그것은 겪어 보았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카미르의 왕은 가죽에 돋아난 털이 철사처럼 질겨서 제법 좋은 물건을 만들 성싶다.
상당히 비싼 하드레더 아머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흐흐. 이것으로 옷을 만들어 내가 입자. 구멍이 좀 많지만 이중으로 덧씌우면 끝내 주는 아머가 될 것이다. 강철 아머보다 더 단단한, 그러면서 몇 배 가벼운 아머를 얻게 되는 것이다. 떼돈 벌었다.”
낄낄거리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제임스, 너에게는 뼈 조각 몇 개 줄게. 흐흐. 그것으로 검집을 만들던가, 아니면 작은 비수라도 만들어라. 내가 선심 썼다. 흐흐.”
미노타우로스의 근육은 질기고 탄력이 좋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고 했다.
특히 이것으로 활시위를 만들 경우 미노타우로스의 뿔로 활의 날개를 만들면 금상첨화다.
사거리가 놀라운 명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한참 도려내고 잘라 내다 보니 칼이 거의 못쓸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건곤무상공을 사용해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자니 기가 찬다.
“나 원……. 이놈의 뼈와 근육은 왜 이리 질기고 단단하담? 다음에는 좀 좋은 칼을 하나 구해 봐야겠다. 괴물의 뼈까지도 잘라 버릴 수 있는 놈으로 구해야겠어.”
날이 뭉툭해진 칼을 보며 혀를 차는데,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지! 하마터면 멋진 무기를 잊을 뻔했구나.”
땅바닥에 파묻힌 배틀 엑스를 뽑아 그것으로 놈의 몸뚱이를 잘랐다. 배틀 엑스는 확실히 달랐다. 플레임 콘토스에 내공을 잔뜩 불어넣어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어 낸 것처럼 예리한 것이다.
단단하기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놈의 도끼에 건곤무상공을 불어넣는다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답이 나왔다.
보물 도끼가 탄생되는 것이다.
전설의 금속이라는 미스릴로 만든 무기가 부럽지 않은 것이다.
“으흐흐흐. 죽인다, 죽여. 졸지에 금덩이를 얻게 되었구나. 아니지, 아냐. 이것은 금덩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으흐흐. 이것을 녹여서 내 칼로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되면 진짜 플레임 콘토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당분간 나와 함께할 성명무기 플레임 콘토스. 바로 화염의 무기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부자가 됐다는 생각 때문에 온몸을 짓누르던 통증은 씻은 듯 사라지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뿔을 자른 다음 놈의 껍질로 잘라 낸 부위를 둘둘 말았다.
뼈는 뽑아낸 힘줄로 모조리 묶었다.
이렇게 저렇게 쌓아 놓고 보니 엄청난 양이었다.
저걸 다 어떻게 들고 갈까 걱정까지 들 정도다.
그러나 내 입은 양에 비례해 째지고 있었다.
“힘든 싸움이었다. 그러나 미노타우로스가 얼마나 강한지, 어떤 능력을 가진 몬스터인지 알았다. 흐흣. 미노타우로스가 이기어도처럼 도끼를 회전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때문에 지독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큰 경험을 얻은 것이다.”
승리를 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미노타우로스의 해부라는 힘든 작업이 만든 피곤함일까.
전신의 내공이 썰물에 쓸려 가는 모래처럼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한참 동안 그렇게 쉬었다.
인근의 몬스터는 왕의 분노에 찬 괴성과 비명 소리에 놀라 접근할 생각을 못할 것이다. 또한 비릿하게 퍼져 있는 미노타우로스의 피는 몬스터와 맹수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줄 것이다.
그렇다면 한숨 자도 된다는 말이다.
상의는 갈기갈기 찢어져 완전히 걸레가 되어 있었고 가죽 바지는 다 온통 헤어져 반바지처럼 변해 있었다.
미노타우로스의 피를 흠뻑 뒤집어썼으니, 녹색 물감을 뒤집어쓴 벌거숭이가 따로 없었다.
군데군데 상처였고 특히 옆구리에 난 상처는 치명적 중상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그렇게 쉬다가 다시 포션을 꺼내 한 병 마셨다.
멀리 있는 바위를 표적 삼아 빈 병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결국, 모든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빈병이 산산조각 났다.
“허공에 대고 질문을 던지기보다, 용기와 열정을 앉아서 다짐하기보다, 내 살과 뼈를 발라내는 고통을 직접 겪는 것이야말로 건곤무상공에 한 발짝 빨리 다가갈 수가 있다.”
나는 한 차례의 격전을 치르며 상당히 강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돌연히 찾아온 깨달음 때문이었다.
바로 [나한의 추].
알고 보니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나한의 추]는 쩔뚝발이에 애꾸 같은 깨달음이었다. 그런데 무림에서의 나는 [나한의 추]에 대해서 왜 그따위 해석을 했을까?
물론 나는 스승이 가르쳐 준 대로 배웠을 뿐이다. 나도 그렇게 이해했고 그때만 하더라도 맞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중원제일인이자 차기 천하제일인으로 불렸다니 내가 생각해도 내가 대견타.
우습기도 했지만 이상하기도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엉터리 같은 해석을 스승은 왜 진짜 진전이라고 말했을까? 왜 사조를 이었다고 칭찬했을까?
스승이 몰랐기 때문일까?
그것 말고는 해석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위안하는데 아무래도 뭔가 찜찜하다.
사조 장손달은 천하제일인이었다. 그런 사조가 자신의 깨달음을 잘못 가르쳤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러면 스승이 나에게 엉터리를 가르친 것인가?
답답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무림으로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어보고 싶어도 못 물어보는 것이다.
과거를 생각해 보니 참으로 위험했다.
깨달음의 무공에서 약간의 오차는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자르는 것과 같다. 한쪽은 붙어 있어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쪼개진 다른 한쪽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약간의 해석 차로 인해 불안전한 무공, 완전히 틀린 무공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가 죽음으로 직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상태로 건곤무상공을 9성까지 밀어붙였으니…… 나중에 무영마공을 터득하지 않았더라면, 마공을 성명절학으로 삼지 않았더라면, 엉터리 [나한의 추]로 인해 주화입마를 당했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잡념과 의혹이 구름처럼 일어났지만 사실 이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는다.
“그래, 답답한 것은 답답한 것으로 끝내자. 알 도리가 없으니 포기해 버리자.”
머리를 쿵 쥐어박고 난 다음 곧바로 포기했다.
포기하자 속이 시원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의 추…….
깨달음의 실마리가 계속해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냥 쉬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이렇게 누워 있다가는 새롭게 느낀 깨달음이 꿈처럼 사라질 것이다. 깨달음을 정리하자.”
아까의 느낌을 되살려 보고 싶었다.
포션으로 인해 어느 정도 체력은 회복되었기에 즉시 정좌한 채 [나한의 추]에 대한 생각을 했다.
밤은 깊어 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번갈아 가면서 운기와 명상을 했고, 어떨 때는 일어서서 일도경혼을 펼쳐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지나자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흐릿한, 알 듯 말 듯한 느낌이 보다 선명해지는 것이다.
신이 났지만 도저히 연무를 계속할 수 없었다.
배가 고파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동안의 엄청나게 먹어 댄 나를 본다면 하루를 쫄쫄 굶은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자리를 뜨자니 이동 시간이 아깝다. 여기까지 한나절을 왔으니 또 한나절을 가야 하는 것이다.
“에잇, 모르겠다. 이놈의 살을 좀 먹자.”
우선은 배를 채워야 했기에 나는 미노타우로스의 잘라 낸 살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워 먹었지만 나중에는 장작 구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먹었다. 목이 마를 때는 자루에 담아 놓은 미노타우로스의 피를 마셨다.
“훌륭한 마법의 재료가 된다고 했으니 이것을 먹으면 혹시 아나? 영약처럼 내공이 증강될지. 흐흐. 특히 이 녀석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조심스럽게 마셔야지.”
이유는 딴 게 아니다. 피가 제일 비싼 것이니까.
내 생각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몰라도 일단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야 생살을 먹는다는, 몬스터의 피를 마신다는 생각을 덜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영약이다, 영약. 이것은 신단 묘약이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생살을 질겅질겅 씹고 피를 마시는데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곽비가 맞기는 한가 보다. 흡혈에 육회에……. 거기에서나 여기에서나 나는 천상 천하제일마가 될 팔자인가 보다. 흐흐.”
맛은 지독했다. 피에서는 요상한 고린내가 진동을 했고, 질긴 살은 입 안에서 미끈거리기 일쑤였다.
공짜로 먹으라고 줘도 다시는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돈을 준다면 또 생각해 보겠지만 영 거북했다.
그래도 어쩌나. 안 먹으면 어지러운데. 안 마시면 목이 마른데…….
끝까지 참고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고 보신한다는 생각이 밥이었던 것이다.
“낸들 구워 먹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뭐든지 구워 버리면 효능이 감소된단 말이야. 생으로 먹어야 진국이다. 흐흐. 날것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그것은 아는 사람만 알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장작을 구하는 귀찮음을 그런 식으로 변명했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