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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
출도(出道)



천도무문 1권(1화)
第一章 비사(秘史)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던 하나의 문파가 있었다.
천도무문(天道武門).
하늘의 도(道)를 무(武)로써 깨닫는다.
오백 년 전 천도무문은 이렇게 거창한 기치를 내걸고 호남 땅에 그 깃발을 올렸다.
초대문주 포운룡을 포함해 다섯 사람으로 시작한 이 작은 문파는 이백 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그 전성기를 구가했다.
무문의 역사상 최고의 고수로 평가받는 제사대문주 추문소,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모여든 일백의 무인들, 그렇게 비로소 무문이 세상으로 나갈 기틀이 세워졌다.
비상(飛上), 웅크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무문이 세상을 향해 일보를 내디디려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 이와 때를 같이해 무림에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폭풍이라는 것은 바로 흔히들 제삼차 마교대전(魔敎大戰)이라 칭하는 것이었다.
역사 속에 사라진 줄 알았던 마교가 삼백 년 만에 부활을 날갯짓을 펄럭이며 대륙에 피의 깃발을 펄럭이기 시작했고, 그런 마교의 깃발 앞에 천하가 숨을 죽였다.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고 했던가?
그런 난세의 피바람 속에서 추문소는 꿈을 꾸었다.
자신이 나서서 저 마교의 깃발을 꺾는다면 천도무문이 단숨에 구파일방에 버금가는 명문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대한 꿈을. 그리고 때마침 천도무문에 소림에서 보내온 무림첩(武林牒)이 도착했다.
무림첩의 내용은 마교에 대항하기 위해 무림맹을 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내심 기다리던 소식에 추문소는 망설이지 않고 전 문도를 이끌고 소림으로 향했다.
하늘이 천도무문의 출도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일까?
난세의 영웅을 꿈꾸며, 자파의 깃발을 펄럭이며 소림으로 향하던 천도무문의 사람들은 뜻밖에도 대별산(大別山)에서 마교의 주력과 조우하고 말았다.
이미 대륙의 삼분지 일 이상을 수중에 넣은 마교가 어찌 대륙 곳곳에 뿌려진 무림첩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겠는가?
마교 교주 척계광은 무림맹의 결성을 막기 위해 곧장 마교의 전력을 투입했고, 그 스스로도 휘하 최고의 정예들을 이끌고 소림으로 향했다.
천도무문은 하필 마교 교주 척계광이 이끄는 마교의 주력과 조우하고 말았던 것이다.
천도무문과 조우한 마교는 그 숫자만으로도 천도무문의 열 배인 일천, 더구나 그들 중 누구 하나 고수가 아닌 이가 없었으니 단일 세력으로는 가히 그 적수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최초 천도무문의 깃발을 확인한 척계광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비웃음이었다.
“천도무문이라, 이름 한번 거창하군.”
천하 위에 우뚝 서려는 자, 아니 이미 천하의 삼분지 일을 장악한 마교의 정점에 선 척계광에게 아직까지 세상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천도무문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외부에 드러난 모습만으로 상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면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최강이라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은 자기 과시욕이었을까?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척계광은 추문소에게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나도 일파의 수장, 그대도 일파의 수장, 우리가 일대일로 승부를 결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단 패하는 쪽은 향후 삼백 년 동안 봉문을 하도록 하지.”
이렇듯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척계광이 어째서 이런 제안을 내놓았던 것일까?
추문소는 이런 척계광의 숨겨진 의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설사 마교라고 할지라도 천하의 모든 무림인들을 말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들 역시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무림맹의 결성을 막기 위해 소림으로 달려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의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척계광이 스스로의 무공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이런 척계광의 내심을 알면서도 추문소는 척계광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분명 그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니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천하 위에 군림하려는 마교, 척계광은 그 마교에서도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이는 곧 자타가 공인하는 중원 최고의 고수 중의 일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를 꺾고 마교에게 삼백 년 봉문의 치욕을 안겨 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천도무문의 위상이 천하를 쩌렁쩌렁하게 울릴 것이 자명했다.
무엇보다도 추문소 역시 내심 스스로의 무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마교 교주 척계광과 천도무문주 추문소, 두 사람의 오만함으로 두 사람은 물론 이 곳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평생을 후회할 대별산에서 일전이 시작되었다.
마교 교주 척계광의 무위야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마교의 사람들이 그가 있었기에 마교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혹자는 그가 마교 전력의 절반이라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정도로, 마교 최강의 마공들을 극성까지 연마해 이미 극마의 경지에 도달한 그의 무공은 오랜 마교의 역사 속에서도 단연 발군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이날의 일전은 사흘 밤낮을 계속되었다.
이날 추문소의 무위는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심지어 천도무문의 문도들마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추문소의 놀라운 무위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최강이라는 칭호에 손색이 없는 무공을 구사하는 마교 교주 척계광을 상대로 추문소는 그야말로 대등한 승부를 펼치고 있었고, 어느덧 천도무문의 사람들은 눈동자에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대했던 이변은 벌어지지 않았다.
승리는 모두의 예상대로 마교 교주 척계광의 몫이었다.
결국 기나긴 일전은 척계광의 마지막 일격에 추문소가 그 자리에서 절명함으로써 끝을 맺었고, 천도무문의 사람들은 약속대로 발길을 돌려 천도무문으로 돌아가 삼백 년 봉문을 선언했다.
천도무문의 역사는 고작 이백 년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삼백 년 봉문의 약속은 너무나 가혹했다.
하지만 천도무문의 사람들은 그 약속을 굳건하게 지켰다.
만약 그날의 일전이 제대로 세상에 알려졌더라면 필시 천도무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달랐을 것이다.
차라리 그대로 마교의 천하가 완성되었다면 천도무문은 적어도 그날의 일전을 지켜보았던 마교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나마 세상에 회자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비록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마교 교주 척계광도 결코 무사하지는 못했다.
그날의 일전으로 척계광 역시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마교 전력의 절반이라고까지 일컬어지던 척계광의 부상과 두 사람의 대결로 인해 지연된 사흘의 시간이 마교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타격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그 사흘의 시간은 소림을 중심으로 한 무림맹에 크나큰 힘이 되었다.
그 사흘의 시간 동안 소림을 중심으로 결성된 무림맹은 재빨리 전열을 정비하고 마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교는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질 수밖에는 없었다.
터무니없게도 극마지경에 달한 척계광의 부재가 주화입마로 세상에 알려졌고, 어쩌면 무림의 역사를 바꿨을지도 모를 대별산에서의 일전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으며, 자연스레 천도무문 역시도 그렇게 세상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고작해야 이백 년 남짓의 역사에 불과한 그들이 삼백 년 동안 침묵했으니 어쩌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날 이후로 약속한 삼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第二章 입맞춤(1)


호남성(湖南省)의 수도 장사(長沙)의 동쪽 외곽에 장원이 하나 있었다.
그나마 삼백 년 전에는 제법 잘나가던 문파가 그곳을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문파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이제는 사람이 아예 살지 않는 듯 보이는 그 낡은 폐장원의 정문 앞에서 삼남 일녀가 긴장된 표정으로 연방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이곳에서 하룻밤 쉬어 가야겠습니다.”
흑의인의 말에 녹의경장의 여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벌써 사흘째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조금은 쉬어도 괜찮지 않겠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여인은 다소 걱정스런 시선으로 흑의인의 옆에 선 청년을 바라보았다.
이제 갓 스무 살은 넘었을까?
꽃다운 여인의 시선을 의식한 듯 청년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청년은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듯 몸 전체가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 있었고, 이를 증명하듯 하의의 오른쪽 허벅지 부분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사형, 소제는 괜찮습니다.”
흑의인을 향해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말과는 달리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다소 일그러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오른쪽 다리에 검상을 입은 것은 사흘 전이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일단의 응급조치만을 취했을 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기에 상처 부위가 덧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사실을 눈치챈 듯 흑의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제 때문이 아닐세. 모두가 지쳐 있으니 유 소저의 의견대로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도록 하지.”
결정과 동시에 흑의인이 천천히 폐장원의 정문을 열었다.
끼∼이∼익.
폐장원의 안으로 들어선 사 인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내부를 둘러보았다.
밖에서 볼 때 그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었지만 폐장원의 내부는 그들의 상상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쉬∼이∼잉.
스산한 바람이 그들이 서 있는 폐장원의 앞마당을 횅하니 스치듯 지나갔다.
“왠지 분위기가 으스스하군요.”
옆에 선 동료의 말에 흑의인이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어려움을 겪다 보니 사제의 마음이 많이 약해진 모양이군. 아무튼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하니 그나마 다행일세.”
흑의인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들을 괜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지금 그들을 추격하는 존재는 무서운 인물들이었다.
흑의인이 앞장서서 건물의 문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문을 열자 족히 삼십 개가 넘는 방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흑의인이 건물의 바닥을 손으로 가볍게 쓸었다. 손에 하나 가득 느껴지는 수북한 먼지.
‘역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가?’
흑의인은 이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며 녹의경장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일단 저는 막내의 상처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허니 유 소저께서 둘째와 함께 주변을 둘러봐 주시겠습니까?”
여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장 공자.”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장 공자라 불린 청년이 여인을 향해 헤픈 웃음을 지었다.
“사제, 무례하지 마라.”
흑의인의 말에 장 공자가 화들짝 얼굴에 미소를 지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흑의인은 부상당한 자신의 사제와 함께 문에서 가장 가까운 빈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무척 어두웠지만 다행히도 오늘은 보름이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그나마 두 사람의 시야를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흑의인은 상처 입은 청년의 하의를 벗겨 다리의 상처를 확인했다.
이미 상처 주위가 썩기 시작한 듯 매캐한 냄새와 함께 고름마저 흘러나오고 있었다.
“녀석, 고통스러웠을 텐데 용케도 참고 여기까지 왔구나.”
흑의인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짓는 어린 사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견한 듯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흑의인은 일단 고름을 닦아 내고 금창약을 바른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기다리자꾸나. 아무래도 제대로 치료를 하려면 검을 소독할 불이 필요할 듯하구나. 유 소저와 둘째가 오면 그때 본격적으로 치료를 하자꾸나.”
흑의인의 말에 청년이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불을 피우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흑의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다리를 잘라 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야. 그나마 쉬어 가자는 유 소저의 말이 아니었으면 천추의 한을 남길 뻔했구나.”
청년이 난감한 표정으로 흑의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형.”
흑의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청년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들이 여기까지야 쫓아왔겠느냐. 너무 염려치 말거라.”
청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일단 이곳에서 하룻밤 묵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긴장이 풀렸던 것일까?
청년은 이내 눈을 감고는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