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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2화)
第二章 입맞춤(2)
그 시각 녹의경장의 여인과 장 공자는 복도 끝에 도착했다.
복도의 끝에는 다시 좌우로 십여 개의 방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각기 반대편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녹의경장의 여인이 다시 왼편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그곳에 외부로 통하는 작은 문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문고리를 잡는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인의 오른손이 빠르게 왼손에 든 검으로 옮겨졌고 재빨리 뒤돌아서면서 검을 뽑았다. 그야말로 기민한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느낌과는 달리 그녀의 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군. 분명 인기척이 느껴졌건만. 내가 너무 예민해졌는가?”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천천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건물 내부에 들어선 이래로 마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할까 봐 굳이 이를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장 공자라는 인물과 함께 있을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불안감이 다소 작았다.
인간이란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때로는 쉽게 안정을 찾는 존재였다. 녹의 경장의 여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차라리 함께 움직일 것을 그랬는가?’
내심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우물이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다행이군.”
사흘 동안 적의 추격을 피해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이곳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까닭에 그녀의 입은 바짝 말라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우물을 대하자 긴장 때문에 참았던 갈증이 그녀를 엄습했다.
때문에 그녀는 무심코 우물 쪽으로 다가갔다.
순간 우물 속에서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아∼악.”
녹의경장은 여인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면서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으나 다행히도 누군가가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받치고 있었다.
‘누군가?’
여인은 재빨리 우수를 검으로 옮기면서 살기를 번뜩였다.
“유 소저, 접니다. 장돈복.”
여인은 천천히 검에서 손을 떼면서 황급히 상대를 확인했다.
“장 공자, 방금…….”
장돈복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난기 섞인 미소를 머금었다.
“무얼 그리 놀라십니까? 설마, 귀신이라도 본 것입니까?”
여인의 몸은 다소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리고 많이 놀란 듯 그녀의 얼굴에는 식은땀마저 흐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여인은 여인이구나.’
장돈복은 긴장한 여인의 모습에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가 누구이던가?
차세대 검후라 불리면서 당금 무림의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또한 명문 중의 명문인 하남 유가장의 금지옥엽으로 하남제일미라 불릴 정도로 아리따운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뭇 청년들의 가슴을 뒤흔드는 미모의 여고수,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라면 그녀가 너무나 뛰어난 까닭에 접근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장돈복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녀의 이렇듯 놀라는 모습은 장돈복에게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긴 귀신이라면 모를까? 천하에 누가 있어 유 소저의 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나름 칭찬과 농담으로 그녀의 긴장을 풀어 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연방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녀의 시야에 건물 뒤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은?”
그녀의 말에 장돈복이 천천히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사당쯤 되는 곳인가?”
마치 장돈복의 말에 화답하듯 건물에 불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장돈복이 놀란 표정으로 녹의경장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소저의 말처럼 이곳에 누군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장돈복이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우수로 검의 손잡이를 지긋이 움켜쥐었다.
동시에 사당으로 추측되는 방금 불이 들어온 건물로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조금 전의 놀람이 가시지 않은 듯 녹의경장의 여인은 조심스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후원에 위치한 건물 앞에 도착한 장돈복은 먼저 왼손으로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장돈복의 말에도 불구하고 사당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장돈복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끼∼이∼익.
장돈복은 만약의 위험을 대비해 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녹의경장의 여인 역시도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긴장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건물 안에는 조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듯 온기가 느껴졌다.
또한 건물을 밝힌 수십 개의 등불 주변으로 삼백여 개의 위패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사당인가?”
장돈복이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긴장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방금 등불에 불을 붙였다.
그것은 분명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조심스레 사당 주변을 세세히 살폈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온 문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통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무언가 섬뜩한 느낌이 두 사람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자가 아니겠는가?
장돈복은 애써 떨림을 감추며 녹의경장의 여인에게 말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요. 유 소저, 우선 대사형과 합류하도록 하지요.”
녹의경장의 여인 역시 이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황급히 사당을 빠져나와 우물 옆의 문으로 향했다. 여인은 그런 와중에도 등불 하나를 챙겨 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던 장돈복이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헉. 깜짝이야. 대사형.”
엉덩방아를 찧는 장돈복과 하얗게 질린 채 등불을 든 녹의경장의 여인을 바라보면서 흑의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시각 폐장원의 정문 앞으로 두 명의 흑의인과 한 명의 백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흔적은 여기로 이어졌습니다.”
한 흑의인의 말에 백의인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흘 동안 달아난 곳이 고작 여기인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백의인은 무심코 정문을 지나치려 했다.
순간 그의 뒤에서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흑의인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잠깐.”
백의인이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제지한 흑의인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뒤에 선 흑의인이 천천히 정문에 걸린 현판을 쳐다보았다.
낡고 허름한 현판에는 천도무문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이를 확인한 백의인 역시 화들짝 놀라면서 흑의인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 천도무문이란 말인가?”
그들의 얼굴에서 지금까지의 여유로웠던 표정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흑의인이 긴장된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하면서 말했다.
“글쎄.”
최초 이들을 안내하고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 뒤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흑의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아는 한 눈앞의 두 사람이 이렇듯 당황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분, 무슨 일이십니까?”
그의 질문에 두 사람이 동시에 정문 위의 현판을 바라보았다.
天道武門
삼 인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놈들로서는 그야말로 좋은 선택이로군. 하필 저곳이란 말이지.”
백의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숙이면서 흑의인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의 임무는 그들을 추격하는 것일 뿐 결정은 흑백쌍마님들께서 하시지요.”
그의 말에 흑백쌍마가 다시금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로서는 무리겠지. 하지만……..”
흑마(黑魔)의 말에 백마(白魔)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즉시 돌아가 본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천도무문이 이곳에 있음을 알리게.”
안내인인 흑의인이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복명.”
흑마가 다소 흥분된 표정으로 백마를 바라보았다.
“우연인가? 운명인가? 하필 지난 자정이 꼭 약속한 삼백 년인가?”
백마가 이를 악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두 사람은 빠르게 담벼락에 몸을 기댔다.
감히 정문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잠입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백마가 흑마를 자신의 목에 올렸다.
일단 잠입하기 전에 내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휑한 바람이 천도무문의 건물을 스치듯 지나갔다.
“설마 천도무문이 삼백 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단 말인가?”
흑마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백마가 허공으로 그를 밀어 올리자 흑마는 곧장 그 탄력을 이용해 담을 훌쩍 넘었다.
바닥에 착지한 이후에도 흑마는 계속해서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백마가 그의 뒤를 이어 담을 넘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건물의 입구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유령보(幽靈步), 그림자도 없고 소리도 없는 마교 최고의 신법이 삼백 년 만에 두 사람의 몸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비록 경비 하나 서 있지 않고, 언뜻 보기에 사람 하나 찾을 수 없었지만 그들은 감히 입구의 문을 이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계속해서 조심스레 유령보를 펼치면서 건물 외곽을 돌아보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이 우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하지만 역시 쉽게는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조심스레 그들을 확인했다.
‘놈들이로군.’
그렇게 등불을 들고 있는 삼 인을 확인한 흑백쌍마는 다시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런 안내자도 없이 저들만이 이렇게 밤늦게 움직일 까닭이 없었다.
이런 생각으로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그들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결코 그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오죽하면 우물 옆에 서 있는 삼 인조차 그 소리를 듣지 못했겠는가?
하지만 두 사람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천둥처럼 크게만 느껴졌다.
“유령보, 본문이 봉문을 풀기가 무섭게 마교라는 것인가?”
목소리와 동시에 느껴지는 상대의 냉담한 시선에 흑백쌍마는 감히 고개조차 돌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지금 상대는 자신들의 유령보를 간파하고, 더구나 자신들의 이목마저 속인 채 등 뒤에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렸다.
두 사람이 힐끔 시선을 교환했다.
달아날 것인지, 대적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쉽게 결정하지 못한 채 두 사람은 한동안 계속해서 그렇게 서로 눈빛만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다시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조용히 떠나겠다면 고개를 두 번 끄덕이도록.”
상대의 목소리에 흑백쌍마가 다시 한 번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대적불가(對敵不可).’
이렇게 두 사람의 중지가 모이자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자신을 노려보던 시선이 어느새 느껴지지 않았다.
비로소 두 사람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예상처럼 등 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눈앞에 알짱거리는 삼 인을 향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조금 전 그가 소란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다시 유령보를 펼치며 황급히 천도무문의 담장을 넘고 있었다.
그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검은 그림자가 그들이 사라진 담벼락에서 일렁였다.
“빌어먹을, 하필 마교인가?”
그러고는 다시 검은 그림자는 어둠과 동화되어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천도무문의 사람이라면 결코 마교가 달가울 리가 없었다.
마교 또한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