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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3화)
第二章 입맞춤(3)
“결국 누군가가 있다는 뜻인가?”
흑의인의 말에 장돈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사형. 조금 전 분명 누군가가 사당의 불을 밝혔습니다.”
흑의인이 녹의경장의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여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 소저의 말이라면 틀림이 없겠지요. 하지만 쉽게 믿어지지 않는군요. 누가 있어 당금 무림의 후기지수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유 소저의 이목을 그토록 쉽게 속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고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포권을 취했다.
“점창파의 진승지가 장원의 주인을 뵙기를 청합니다.”
그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부득불 오늘 하룻밤 이곳에서 신세를 지고자 합니다. 대답이 없으시면 허락의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자 진승지가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장돈복과 녹의경장의 여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진승지를 바라보았다.
진승지는 너무나 담담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고인께서 허락하신 듯하니 우선 물과 땔감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일단 막내의 치료가 급합니다.”
진승지의 말에 두 사람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삼 인이 동시에 잠시 사당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마교의 절대고수들이 추적해 오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방을 밝히는 불빛이 신경 쓰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여차하면 이곳의 주인까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 주인이라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설명할 방도가 없었고, 그렇다고 그들 마음대로 사당의 불을 끌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들을 추적하는 마교의 절대고수는 흑백쌍마였다.
그리고 그들은 몰랐지만 그 절대고수 흑백쌍마는 고작해야 마교 서열 삼백 위에도 들지 못하는 인물들이었다.
천도무문을 방문한 진승지 등 삼남 일녀는 문 가까이에 위치한 두 개의 방을 사용했다.
비록 격식을 그다지 많이 따지지 않는 무림인이라고 하지만 남녀가 유별한지라 녹의경장의 여인은 홀로 다른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경장(輕裝), 말 그대로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무림의 여인들은 무공을 펼치기 위해 이렇듯 경장을 입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녀들이 즐겨 입는 경장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가벼운 옷차림이었기에 침상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몸의 굴곡이 그대로 밖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녹의경장을 입은 하남제일미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그녀의 몸의 굴곡이…….
마교의 눈을 피해 달아난 사흘간의 추격전 때문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녹의경장의 여인은 쉽게 잠에 곯아떨어질 수 있었다.
물론 밖을 지키는 진승지를 어느 정도 믿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가슴에 검을 품고 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피곤한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불침번을 서고 있는 진승지 역시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조금 전까지 사제의 검상을 치료하느라 적지 않은 심력마저 소모한 상황, 계속해서 내려오는 눈까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면서 밀려오는 졸음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무심하게도 실내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는 그런 그를 더욱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하긴, 피곤하기도 하겠지.”
지난 사흘, 그의 생에 있어서 가장 피곤한 나날들이었다.
우연히 목격한 마교와 형산파의 일전, 그리고 뒤따르는 마교의 추격.
마교의 등장도 놀라웠지만 그들이 이렇듯 소리 소문 없이 호남 땅까지 세력권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형산파의 장문인 평보청, 진승지는 과거 그와 일면식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와 비무를 가졌고, 자신과 승부를 내지 못할 만큼 뛰어난 무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고작 삼 초를 버티지 못하다니.”
우연히 목격한 그 장면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명문 점창의 제자로서 무공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마교의 흑마라고 밝히며 형산파의 장문인인 평보청을 제압하던 그의 무위는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을 산산이 부숴 버리기에 충분했다.
“장문 사형이라면 그와의 일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고수인 점창파 장문인 우문보를 떠올렸다.
형산의 어귀에서 평보청의 죽음을 확인한 진승지는 서둘러 사제들이 기다리는 객점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놀란 나머지 너무 서둘렀다는 것이 문제였다.
‘조금 더 참았어야만 했는데.’
진승지는 평보청의 죽음 이후 한 식경을 숨죽이며 그대로 숨어 있었다.
더 이상 마교도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자 모두가 떠난 줄 알고 재빨리 사제들과 합류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런 그의 움직임이 근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던 마교의 이목에 포착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마교의 거센 추격이 시작되었다.
흑백쌍마가 아닌 마교의 수하들만으로도 그들은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위험한 지경에 몰리고 있었다.
그 위험의 순간에 등장한 녹의경장의 여인, 하남 유가장의 금지옥엽이자 신비의 문파인 검각의 제자라고 알려진 하남제일미 유소혜였다.
그녀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삼 인은 다시 그녀와 함께 무당으로 향했다.
그렇게 사흘을 쉬지 않고 달려 이른 곳이 바로 이곳 폐장원이었다.
아직도 호남 땅, 호북의 무당산까지는 너무나도 먼 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마교의 이름 앞에 제대로 당당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문파가 무당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얼마나 더 가야만 할까? 과연 그들의 마수를 피할 수 있을까?’
진승지는 그야말로 착잡한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옆에 서 있는 등잔의 불꽃이 마치 그의 이런 상황을 대변하듯 꺼질 듯 말 듯 그의 시선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대체 누굴까?’
분명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 않다면 유소혜와 장돈복의 말처럼 사당에 불이 들어올 까닭이 없었다.
“대체 왜.”
주인이 있다면 왜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들의 이목을 속일 정도라면 필경 무림인, 그것도 범상치 않은 고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호남 땅에 그런 고수의 이름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등잔의 기름이 다 된 듯 스르륵 불꽃이 사그라졌다.
그와 동시에 진승지도 스르륵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가 잠에 곯아떨어지자 비로소 어둠 속에서 음영(陰影)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참, 귀찮게시리, 꼭 손을 쓰게 만드는군.”
음영은 잠에 곯아떨어진 진승지의 옆을 스치듯 지나가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스르륵 유소혜가 잠든 방의 방문이 열리고 있었다.
잠에 곯아떨어진 유소혜, 얼마나 피곤했던지 그녀는 작은 소리로 코마저 골고 있었다.
음영은 잠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코를 벌름거렸다.
“음, 이것이 여자의 냄새라는 건가?”
무언가를 느꼈음인가?
유소혜가 살짝 몸을 뒤척였다.
순간 음영은 빠르게 침상의 밑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계속해서 유소혜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자 음영은 침상 밑에서 나와 그녀의 전신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역시 남자와는 조금 다르군.”
잘록한 허리와 봉긋한 가슴, 여자가 남자와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음영의 얼굴이 천천히 유소혜의 얼굴로 다가갔다.
느껴지는 그녀의 콧김과 그녀의 호흡, 음영은 당황스러운 듯 황급히 고개를 뒤로 물렸다.
아마도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더라면 필경 붉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음영의 호흡이 다소 가빠졌다.
이런 와중에도 다행스럽게 유소혜는 잠에서 깨지 않고 있었다.
음영은 호흡을 고르고 다시 얼굴을 유소혜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본능이었을까?
음영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입술을 유소혜의 입술에 포개었다.
순간 유소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그녀의 손이 상대의 뺨을 후려갈기려는 듯 빠르게 움직였다.
두 사람의 교차하는 시선, 그리고 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음영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유소혜가 다시 잠의 세계로 빠졌다.
“휴.”
음영이 나직이 한숨을 토해 냈다.
그리고 얼얼한 자신의 뺨을 만지더니 다시 손을 입술로 가져갔다.
조금 전 짜릿한 입맞춤을 떠올린 것일까?
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맑은 두 눈동자가 떠올랐다.
“봤을까?”
그녀의 갑작스런 일격에 뺨을 내주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피할 수 있었지만 첫 입맞춤의 달콤함 때문에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내 그녀의 눈빛과 마주치면서 진승지를 제압할 때처럼 빠르게 그녀의 혼혈을 제압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찰나의 순간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아무렴 어떤가?”
음영은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리고 코를 벌름거리면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스르륵 방문을 열고 밖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것이 여자라는 것인가?”
조금 전 짜릿한 느낌을 떠올리며, 자신의 입술에 손을 가져가면서…….
第三章 숨바꼭질(1)
폐장원의 동쪽 옆으로 난 작은 길.
그 길을 쭉 따라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제법 큼지막한 객점이 눈에 들어온다.
풍운각(風雲閣).
장사성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어 과연 장사나 제대로 될는지 의심스러워 보이는 객점.
하지만 예상외로 그곳을 찾는 손님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사실 이 일대에서 천도무문의 존재를 아는 사람보다는 풍운각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또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단순히 ‘더’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만큼 실제로 아주 많은 차이가 날 정도였다.
구 대 삼백여 년을 이어 온 전통의 맛집이라고나 할까?
특별한 요리는 없지만 흑돼지 통찜과 소면, 그리고 딴 동네에서도 다 파는 죽엽청주(竹葉靑酒)를 파는데 나름 삼백여 년의 독특한 비법이 있어 다른 객점과는 그 맛이 다르다고 소문난 집이었다.
객점 주인의 아내는 일찍 병사하고 지금은 두 부자(父子)가 함께 객점을 운영을 하는데 그중 아들의 이름이 장소팔이었다.
장소팔은 그날 아침도 짜증 섞인 얼굴로 식재료를 수레에 실고 있었다.
“젠장, 대체 언제까지 돈도 안 되는 이 일을 계속하려는 건지.”
옆에서 멀뚱히 자신을 지켜보는 아버지 장봉상에게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투덜거려 보지만 장봉상은 그저 그를 위협하듯 바라보면서 식칼을 아래위로 흔들고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다른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후딱 갔다 와라. 알간.”
장봉상의 말에 장소팔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아들에게 식칼을 휘두르기야 하겠느냐만은 음식 맛이 옛날만 못하다느니, 접대가 영 엉망이라느니, 이러니저러니 손님들의 불만을 듣다가 열이라도 받는 날에는 식칼을 들고 주방에서도 버럭 달려 나오는 장봉상의 불같은 성질을 너무나 잘 아는지라 감히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묵묵히, 꾸역꾸역 식자재를 수레에 실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고 막 출발하려는 찰나, 장소팔은 무언가를 빠뜨린 듯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힐끔 주방을 쳐다보았다.
“아!”
돌 깨지는 소리와 함께 장소팔이 황급히 주방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겨 수레에 싣더니 곧장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수레를 끄는 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소마저 팔아 버리고 장소팔이 직접 수레를 끌고 가야만 했다.
그렇다고 가세가 기울어 소를 판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은 소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특히 유독 운동을 싫어하는 아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그나마 한 달에 한 번뿐인 배달에 몸이라도 움직이라고 아버지가 소를 팔아 버렸지만 그런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 리가 없는 장소팔이 보기에는 그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일종의 심술처럼 보였다.
그렇게 수레를 끄는 장소팔의 얼굴에는 가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실상 그 얼굴 표정과는 달리 장소팔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훨씬 날렵했다. 투덜거리면서 싫은 기색은 하고 있었지만 이런 아들의 내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장봉상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녀석, 괜히 빨리 가고 싶으면서.”
장소팔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장봉상이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그렇게 장소팔이 향하는 곳은 먼지가 자욱한 폐장원 바로 천도무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