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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
세계 창조
샤펜의 유희 1권(1화)
프롤로그 난 죽었다(1)
“하아∼ 공기가 차네?”
뭐, 새벽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 그리고 아직 그렇다 할 만큼 추운 것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고 수능이 앞으로 일주일 남았군.
“아자, 아자! 파이팅! 이제 일주일 남아쓰! 일주일만 지나면 고생 끝이야! 암, 그렇고말고.”
그나저나 이놈의 신호등은 왜 이렇게 안 바뀌는 거야?
오! 바뀌었네.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하겠어.
“위험해요!”
내 옆에 있던 우리 학교 여학생이 다급하게 외쳤다.
뭐가?
끼이이익―!
응? 끼이익?
쾅!
몸이 붕 떠올랐다. 아니, 그것보다 왜 붕 떠올랐지?
아? 머리에서 피가 흐른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스팔트 바닥과 점점 가까워진다……. 안 돼, 얼굴이 바닥에 정면으로 향하고 있어.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우씨, 제기랄!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내가 어쩌다가 죽어 버린 거야?
난 지금 하늘에 떠올라서 내 시신을 보고 있다. 사지 하나하나가 기하학적으로 꺾이고, 머리와 입에서는 피가 구멍 뚫린 물풍선마냥 흐르는 상태.
이 빌어먹을 운전사! 앞이나 똑바로 볼 것이지, 빨간불인데 사람 다니는 횡단보도로 차를 몰아? 이런 뭐 병신, 동태눈 시끼.
그렇다. 나는 등굣길에 있는 보행자 신호등이 파란불이 된 것을 확인하고 걸어갔을 뿐인데, 잡담을 하느라고 앞을 보지 못한 비싼 외제 승용차를 모는 젊은 날라리 같은 녀석이 날 그대로 들이받은 것이다.
“오빠,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추운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빨간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남자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아, 씨발! 개 같은 새끼! 차가 가는데 그걸 못 봐?”
선글라스를 낀 채, 요즘 유행하는 옷을 입은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차바퀴를 발로 차며 지껄였다.
뭐? 씨, 씨발? 개 같은 뭐? 저, 저 쌍놈의 후레자식이! 지가 신호위반한 건데!
내가 주먹을 휘둘렀지만, 역시 놈의 면상을 때리지는 못하고 통과되었다.
젠장! 분명히 아무도 없었으면 냉큼 뺑소니했을 거야!
주위에 나랑 같이 등교하는 학교 애들이 있었으니 다행이지.
“씨발! 내 차가 찌그러졌어! 이건 비싼 외제차란 말이야!”
뭐, 뭐? 잘못을 뉘우치지는 못할망정 차가 뭐? 저, 저 자식을 당장……!
사고 현장에는 이미 등교하던 학생들이 구경하고 있어 인산인해였다.
“야, 사람이 죽었어?”
“우리 학교 교복 입었네?”
“누구지?”
“명찰이 3학년 건데?”
“세상에, 수능 일주일 남기고 저렇게 가 버리다니.”
그런 말 하지 마. 더 비참해지잖아.
안 돼, 이대로 죽을 수 없어, 우리 집에 엄마, 아빠, 동생이 내가 죽은 걸 보고 슬퍼할 텐데. 그리고 일 년 동안 개고생해서 수능을 준비했는데, 수능도 못 보고 죽는 거야? 그런 거야? 그리고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서 저 빌어먹을 놈을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어.
“요∼!”
응?
웬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가 갑자기 날 잡아 어깨동무를 하였다.
가, 가만, 난 유령인데. 게다가 검은 옷?
“안뇽∼ 나 왔어. 오래 기다렸지?”
상큼하게 웃으며 그 아저씨가 말했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 보이는 거대한 낫.
“컥!”
저, 저승사자!
“걱정 마, 걱정 마, 널 잡아먹으려는 것도 아닌데 뭐. 그럼, 어디 한번 볼까?”
저승사자가 인자하게 웃으며 내 시신을 보았다.
“어이쿠∼ 저런, 피 흘리는 거 봐라. 아주 제대로 죽었구만. 여차해서 부활하기도 글렀네. 크크크, 아무튼 한 건 올렸구나.”
저승사자가 기분 나쁘게 웃어댔다. 사람 죽었는데 저렇게 웃다니. 역시 저승사자인가?
“우씨, 그렇게 웃지 마요. 어쨌든 죽었으니 저 이제 저승으로 가는 건가요?”
“저승?”
저승사자가 ‘그게 뭐냐’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 저승사자가 도로 되묻다니? 그, 그러면 저승세계가 없는 거야?
“아, ‘영혼의 낙원’을 말하는 거구나. 넌 아직 거기 갈 필요 없어.”
아, 저승을 영혼의 낙원이라고 부르는구나. 가만, 아직 갈 필요가 없다니?
“그, 그러면?”
“좋은 데 가야지.”
“좋은…… 데라뇨?”
저승이 아니면?
“명계로 가야지?”
며, 명계?
“거기가 뭐하는 덴데요?”
“니가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곳.”
왜, 왠지 저승세계로 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 가면 안 될까요?”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날 친 저 운전자 녀석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
“안 돼. 봐줄 수는 없어. 나도 먹고 살아야지?”
그러면서 그 거대한 낫을 두 손으로 높이 들었다.
안 돼!
휘익!
응?
“지, 지금 뭐하신 거?”
저승사자가 나랑 내 시신 사이의 공간을 낫으로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네 영혼과 신체 사이에 이어진 마지막 끈을 잘라 버렸다고 할까나?”
아!
“휴우, 그런 거구나. 난 또 그걸로 절 치는 줄 알았죠.”
“자, 그러면 가 볼까나? 늦으면 망령이 되니까 잘 따라와.”
저승사자가 한 곳을 가리켰다. 언제 나타났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에 검은 소용돌이가 있었다.
“자, 저곳이 명계의 문이다.”
“저게 무슨 명계의 문이에요? 순 블랙홀이구만.”
“명계의 문이라면 문인 거야, 이 건방진 애송아. 아무튼 빨리 와.”
우욱!
그렇게 해서 난 저승사자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힘이 무지 세서 내가 그냥 들어 올려졌다) 명계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안 돼, 이대로 갈 수 없어! 나에게는 가족이! 컴퓨터에 있는 새폴더에 있는 자료들! 엄마 몰래 숨긴 성적표들! 전부 처분 못했는데?
“얌마, 빨리 따라와. 늦게 가면 줄 오래 서 있어야 한단 말이야.”
퍽!
“아얏!”
“짜식이, 무슨 엄살을.”
그렇게 해서 난 명계로 가게 되었다.
1 명계(1)
“자, 자! 줄을 똑바로 서! 줄 서는데 새치기하면 지옥으로 던져 버릴 테니 그리 알아!”
땅이 시커멓고, 뭔가 이상한 안개가 잔뜩 끼어 있고, 하늘에는 지구의 달의 네 배나 돼 보이는 달이 비추는 이곳이 바로 명계였다.
“하아…….”
땅에는 아무런 식물도 없고 그저 검은색 흙만 있는, 완벽한 흑색 사막이었다.
딱!
“아얏!”
“어딜 보는 것이냐? 줄을 똑바로 서라.”
날 명계로 데리고 온 저승사자가 내게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줄을 선 다른 죽은 자들의 영혼들 옆에도 그들을 인도한 저승사자들이 딱 붙어 있었다.
“근데, 이상한 사람들도 있네요.”
나와 비슷한 현대인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영화에서 나올 법한 중세 갑옷을 입은 사람이나 마법사의 로브를 입은 자, 아니면 미래에서 온 듯 타이즈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 원시인처럼 가죽만 걸친 사람도 보였다.
또 저승사자에게 업힌 어린 아기서부터 늙은 사람까지 남녀노소 전부 줄을 선 채 천천히 한 걸음씩 옮기고 있었다.
물론 영혼인지라 다리가 없었다.
“아, 저거? 저놈들은 다른 세계에서 죽은 놈들이야.”
다른 세계?
“세상은 너만 사는 세계가 있는 게 아니거든. 세계는 아주 많아. 셀 수 없을 만큼.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생기고 있고.”
“네에? 그래요?”
“그래.”
“근데, 이 줄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건가요?”
몇 분? 몇 시간을 기다렸을까?
내가 기다리다 지쳐 물었다.
하아, 이놈의 줄이 지평선 너머까지 있다.
그러면 도대체 몇 킬로미터나 이어진 거야?
“저기, 지평선 너머로 허연 건물 보이지 않아?”
응? 허연 건물?
눈을 가늘게 뜨고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아, 바늘구멍처럼 조그만 한 하얀 점이 보인다.
“저기가 명부야. 저기서 네가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사하고 심판을 하지. 그리고 네가 지옥으로 갈지, 환생할지, 천국으로 갈지 결정이 된다.”
환생? 환생이라니?
“환생도 가능해요?”
“응. 어이, 줄 없어졌다. 앞으로 빨리 가.”
저승사자가 내 등을 떠밀었다.
“음, 얼추 이 정도 속도면 열두 시간 안에 도착하겠군.”
엑!
“열두 시간이요?”
“그려, 열두 시간.”
“그렇게 오랫동안 어떻게 기다려요?”
“걱정 마. 영혼은 시간 개념이 없어서 눈 깜짝하는 사이에 도착해 있을걸? 열두 시간은 내 기준에서 말하는 거야.”
저기요, 저는 벌써 지루합니다만?
“여차하면 눈 감고 백 초만 세어 봐.”
뭔, 거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백 초만 세면 열두 시간이 지난다고?
“뭐야, 저승사자 말 무시하는 거야? 지옥 가고 싶어? 응?”
그래, 하라면 할게. 나 참, 내가 더러워서 한다.
눈 감고 백 초 세랬지?
1, 2, 3, 4, 5…… 100.
귀, 귀찮았다.
영혼이 되니 어지간히 할 일 없…….
“헉!”